[옮김][수정] 범죄자 얼굴 공개 논란을 통해 본 우리 사회의 파시즘

박치우2009.02.03
조회69
 [수정] 범죄자 얼굴 공개 논란을 통해 본 우리 사회의 파시즘 [261]

 


글쓴이 아름다운마음 


번호 2253260 | 2009.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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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올린 글이 이렇게 많은 논쟁을 부르게 될지 몰랐습니다. 댓글과 답글 하나씩 다 읽어보았습니다. 추가로 아고라 분들의 지적/비판에 대해 몇 가지 적어보고자 합니다.














 1. 파시즘이라는 논리의 근거가 미약하다.



 - 저는 본문에서 파시즘을 '국가/전체를 위해 개인의 권리를 꺾는 것'으로 정의했습니다. 그리고 그 예로 나치의 인종 학살과 이탈리아의 파시즘을 들었고요. 우리 사회의 경우, 파시즘의 성격으로 볼 수 있는 요소로 강한 애국심으로 인한 배타주의, 공익/국익의 논리 앞에서의 무력함 등이 지적됩니다. 약 3년 전으로 기억됩니다만, 한 시각장애인이 지하철에서 떨어져 죽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 다음날 일군의 시각장애인들이 그 지하철 역사에 가서 철로상에서 시위를 했고요. 그 때 지하철 역사에 있던 사람들의 반응을 텔레비전에서 보고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한 사람의 죽음이 억울한 것은 이해하지만, 왜 다수에게 피해를 주면서 시위를 하느냐'는 게 대부분의 반응이었고, 욕설을 하는 사람도 있었죠.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번 범죄자 얼굴 공개 논란이 현장검증의 과정 속에서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준비 없는 공개에 의해 감정적으로 증폭되었다는 것입니다. 외국의 경우 얼굴을 공개한다는 말씀도 많으셨는데요, 그 경우는 확실히 실형을 받은 이후에 공개하는 합리적 절차를 거친 것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번 사태에서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에서 아무런 설명도 없이 무단으로 공개한 것입니다. 국민의 90%가 원하는 얼굴공개라면 섣불리 공개하기에 앞서서 지금 아고라에서 벌어지고 있듯 다양한 논의가 우선되어야 하며, 엄격한 기준이 정해진 이후에 공개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의 상황을 약간의 비이성적인 집단주의로 보았고, 그래서 댓글에 지적하신 대로 '파시즘'이라고 조금 과하게 명명한 측면이 있습니다.



 



 2. 피해자의 인권을 보장하지 않으면서 피의자의 인권을 존중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 그렇습니다. 저도 이 지적에 대해서는 백 번 공감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피해자의 인권을 보장하는 실효적 장치가 얼마나 있는가에 대해서는 별다른 논의가 없지 않나 싶습니다.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하고 능지처참을 해야 피해자의 인권은 보장받는 것일까요? 저는 피의자에 대한 엄정한 처벌은 '기본'이지만, 피해자의 인권을 중시한다면 피해자의 사후 보상과 심리적 치료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살해를 당한 여성의 가족은 아무런 실질적 보상을 받지 못합니다. 피의자가 두드려 맞는 것을 보고 싶고, 죽는 장면을 보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 분노의 해소일 뿐, 결코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오는 과정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질적 보상 뿐만 아니라, 전문적인 심리적 치료가 병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연구에 의하면, 왕따에서 정신적 피해를 겪는 것은 왕따의 피해자뿐만이 아니라, 가해자 역시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물론 왕따의 피해자가 가해자로 돌변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이 때,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기 위해선 왕따의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에도 있지만, 왕따의 근본 원인을 인식함과 동시에 심리적 치료를 통해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올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닐까요. 살인범이 죽는 것을 본 피해자의 가족을 보면서 저는 그 분들이 슬픔을 잊고 정상적으로 돌아올지, 그게 아니라면 제대로 된 보상을 받은 것인지 의문스러웠습니다.



 



 3. 인권이라는 것은 사회적, 문화적으로 그 특성이 다른 측면이 있고, 어느 정도의 제약은 피할 수 없다. '무제한적 인권'이라는 것은 이상일 뿐이며, 현실에서는 이루어지기 힘들다.



 - 이 지적에 대해서 저는 그다지 동의하지 않습니다. 인권이라는 것을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최소한의 권리'라고 인정하지 않는다면, 본문에서 지적한 대로 최소의 원칙이 무너짐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인권의 사각지대로 내몰릴 위험이 있습니다. 다른 나라의 헌법에서 주어를 nation(국민)이 아니라 people(인민, 사람)으로 정하고 있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 나라는 특수하게 대한민국 국민으로 한정짓고 있지만, 이것은 인권에 대한 얕은 지식에서 비롯된 것이며 우리 사회의 '무의식적 배타성'을 어느 정도는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주장하는 것은 '최소한의 인권'이지 '무제한의 인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무제한의 인권을 옹호한다면, 당장 모두가 평등하게 나눠 갖는 공산주의를 외치는 게 더 빠르겠지요. 저는 강자와 권력자에게만 불균등하게 무게가 쏠려 있고, 제대로 된 생존조차 하지 못하는 약자와 빈곤층에게는 최소한의 인권조차 보장되지 않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1960, 70년대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한국식 민주주의'를 내걸은 일이 있었습니다(정확한 시기는 유신체제 당시입니다). 그 실상에 대해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거라 생각합니다. 고문, 폭압, 가혹한 노동조건 등 최소한의 절차적 민주주의마저도 보장되지 않았음에도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간섭을 막기 위해 변명하고자 지었던 이름이 '한국식 민주주의'였던 것이지요(그렇다고 해서 현재 미국이 '정의'의 이름으로 행하는 전쟁에 절대 동의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눈부신 경제성장의 시기였을지도 모르지만, 제게는 분신을 해야만 했던 전태일과 수많은 직공들의 아픔이 서려 있는 시기로 보입니다. 이 때도, 경제성장이라는 '공익'을 위해 전태일은 얼마간 기본적인 노동권을 제약당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요.



 



 인권을 부분적으로 제약하기 위해서는 그 근거와 절차가 명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이번 공개 논란이 그 논란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물론 이상적으로는 사형제도 반대하고, 이번 얼굴 공개에도 반대하고 있습니다만), 최소한의 절차마저도 무시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연쇄살인범은 그 극악한 범죄에 대해서 응분의 대가를 치뤄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응분의 대가를 치루는 것과 미란다의 원칙(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본인의 발언이 불리하게 이용될 수 있음을 고지하도록 하는 원칙)을 지켜야 하는 것은 별개가 아니겠습니까. 만일 국민의 감정으로만 이번 연쇄살인범을 처벌하자면, 과거 중세와 근대의 유럽처럼 더 이상의 조사도 필요 없이 당장 공개 교수형을 실시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 사회가 그렇게 절차와 합리성을 무시할 것이라 생각지는 않습니다.



 



 피해자의 시신이 나왔고, 범죄를 자백했으니 '모든 것이 끝'이라고 한다면, 법치를 강조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논리에 역으로 휘말릴 수밖에 없습니다. 법과 원칙에 대한 성숙한 자세를 부탁드리는 것은 조중동과 한나라당, 청와대와 대통령이 이번 논란을 통해 용산 참사를 무마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저도 연쇄살인의 아픔을 통감하고, 경제 위기의 시대에 고생을 하는 많은 분들의 아픔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가슴은 뜨겁되 좀 더 냉철하고 명확한 머리를 가지고 이 시기를 지나가야 할 필요를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아래는 원본 글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파시즘을 우려하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자신은 해당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사회가 파시즘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되는가' 하는 질문이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몇 가지 사례를 적어 보았습니다.



 












  1. 불법 외국인이주노동자는 인권을 보호할 대상이 아니며, 즉시 추방되어야 한다. 합법 외국이주노동자만이 정당한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다.



 



 2. 범죄자는, 특히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를 자는 그에 합당한 벌을 받을 각오를 해야 하며 사형 역시 이 벌에 포함된다. 또한 법을 어긴 사람은 자신의 권리를 포기한 것이므로, 얼굴을 비롯한 신상명세를 언론과 경찰에서 공개해도 문제가 없다(혹은 공개해야만 한다). 여기에 덧붙이자면 최근 붙잡힌 연쇄살인범은 사형을 받아 마땅하다.



 



 3. 인간은 모름지기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마련이고, 사회나 국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전체의 공익을 위해서 개인의 권리는 어느 정도 제약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혹은, 국익과 공익 앞에서 개인들은 어느 정도 단합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황우석 사태에서 진실 검증이라는 명분을 차리느라, 줄기세포의 예상이익을 포기해야만 했던가 하는 점은 아쉽다고 할 수 있다.



(※ 참고로,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연구에서 실제 성공한 건은 단 한 건도 없습니다.)



 



 4. 양심적 병역거부는 전쟁/살상 거부라는 개인적 신념을 이유로 헌법에 명시된 국방의 의무를 저버린 것이므로 그에 맞는 처벌을 받는 것이 맞다.



 



 5. 학교의 선배, 군대의 선임, 회사의 상사 등은 인생의 선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윗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은 그 발언과 규칙의 문제점을 지적하기에 앞서 우선적으로 따를 것이 요청된다. 이러한 원칙이 무너지면 사회적 통합이 저해되고 혼란이 가중될 것이다.



 



 6.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을 반대한 촛불시위의 본질은 우리가 안전한 먹거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점에 있다. 따라서 한우의 사료문제와 수입되지 않을(현실적으로는 수입되었지만) 광우병 의심 쇠고기가 미국에 돌아다니는 문제에 대해서는 차후에 고려해도 된다.



 



 7. 전쟁에서 아군이 불리한 상황에 처해있다고 하자. 이 때 간첩과 같은 공작을 시도하던 적군이 붙잡혔다. 이 군인은 아군의 몇 가지 기밀사항을 알고 있는 것 같고, 어떤 사실을 전파했는지를 알고자 한다. 부득이한 경우이므로 자백을 받기 위해 고문을 해도 된다.



 












  위 질문들 중에서 얼마나 동조하시고, 혹은 얼마나 비판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그러나 위 질문들이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비이성적 집단주의를 통한 인권, 개인의 제약, (약자와 타자에 대한)배제주의에 우리 사회가 얼마나 취약한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인권이라는 것은 '최소의 법칙'에 기반합니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보장받아야 하는 원리로 합의를 한 것입니다. 만약 '공익'과 같이 애매하고 주관적인 이유로 특정한 사람을 인권 보호의 대상에서 제외하기 시작하면 인권의 영역은 상당히 축소됩니다.



 



 우리가 이번에 잡힌 연쇄살인범'만의 프라이버시'를 위해서 얼굴을 공개하지 않기로 정한 것이 아닙니다. 범죄자의 얼굴이 공개됨으로 인해서, 그의 주변 인물들(가족, 친구, 마을 주민들)이 받게 될 인권 침해와 오해, 멸시와 같은 걷잡을 수 없는 부작용을 사전에 막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극악무도한 범죄를 방관하고 조장하고자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사형제가 오용되고 돌이킬 수 없는 '오판'으로 인해 무고한 사람이 사형을 당해왔으며, 더 나아가 인간의 존엄성을 해한다고 보기 때문인 것입니다. 전쟁 중에 상대방 군인의 고문을 금지하고 제노사이드(대량 학살)을 금지한 것은 전쟁이 사람을 살리는 희망의 도구라서가 아니라, 고문과 학살이 시작되면 훨씬 더 많은 살생과 비극이 반복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에서 '공익'을 이유로 살인범의 사진을 공개한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신정아 파문 때와 마찬가지로, 최대한의 가십성(흥미를 위하여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성격의) 기사를 내보냄으로써 판매부수를 늘리고 사람들의 눈을 현혹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 현혹되고 감정적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얼마나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으며, '공익/국가'의 이름으로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파시즘은 국가/전체를 위해 개인의 권리를 꺾는 것을 기본으로 합니다. 그리고 국민들이 이에 비이성적으로 동조하게끔 '인종 차별/소수자 억압/국수주의 및 군국주의 부활/공익과 화합 강조/권위와 위계(적 법치) 강조 등의 전략'을 사용했습니다. 나치의 유태인/집시 학살이 그랬고, 이탈리아의 권위주의적 파시즘이 그랬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나라당과 대통령이 '법치와 질서/통합과 소통'을 강조하는 까닭을 연관지어 살펴볼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인권을 강조하는 것은 결코 범죄(자)의 도피처를 마련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인권만의 특수한 성격, 즉 인권이란 '우리가 상호 인정해야 할 최소한의 기준'이라는 성격 때문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모두가 절대적으로 평등한 재산을 가질 수는 없지만, 최소한의 '삶'을 유지할 정도의 권리는 당연히 주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라도 무자비한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이며, 피의자라도 검사/경찰로부터 유도심문과 고문을 받지 않을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어떤 사람을 특정한(특히 주관적인) 이유로 인권의 영역에서 제외시키기 시작하면, 최소의 원칙은 무너질 것입니다. 지난 2006년 전국 법학교수 설문조사에서 국가인권위원회의 '가장 잘한 일'로 "사형제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전원위원회의 결정을 뽑은(09.02.03 <한겨레> 1면 기사 인용) 까닭을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좀 더 성숙한 시민의식과 인권의식을 가지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출처 : 다음, 아고라, 토론, 자유토론, 번호 2253260, 글쓴이 아름다운마음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2253260&RIGHT_DEBATE=R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