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는 어찌 가는건지, 의정부도 있고 춘천 보충대도 있건만 군인이 될려면 논산훈련소에만 가야 되는 것으로 알고 있던, 저는 어느 겨울날 아침, 매일 늦잠만 자던 아들이 잠깐 PC방에 갔다 오겠노라고 일찍 일어나더군요. 아침 일찍, PC방에 가는 것은, 수강 신청 할 때, 학점 잘 주는 교수님 과목 신청 할려면, 컴퓨터가 빠른 것으로 해야 된다면서 갔거든요. 집에 컴퓨터로 하래두 안하고, 이유를 물어도 말 안해주더니.
그날 밤 친구와 술을 한 후, 집에 데리고 와 함께 자겠다며, 늦은 귀가를 해서는, 심각한 표정으로 할말이 있다면서, 방으로 들어가자고 하더군요.
저는 이놈이 여자 친구가 있어, 혹시 사고를 쳤는가 싶었지요. 그러나 아들은 오늘 아침에 군대 지원을 했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국적의 아들이니 군대 가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막상 간다고 하니,,,,,,,,,,,,,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심정은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군요. 어느 누구나 그렇겠지만, 아들은 4년간 외국에서 생활하여, 군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이 더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외국에 갈 여건이 되어, 다시 가서 산다 해도, 군대는 피하고 싶지 않다고 늘상 말해 왔었지요.
그런 아들을 보며, 부모는 "바담풍"이라 말하고, 옆으로 걷는 "게"처럼 못난이지만 역시 내 아들은 잘 커주었구나 하는 생각을 속으로 했었죠.
20여일의 날을 받아 놓고, 아들은 매일 아침마다 일어나서는 머리칼을 쥐어 뜯으며 "아 ~ ~ ~ 하루가 또 지났다" 며 울부짖었습니다.
그러면서 아들은 친구도 만나고, 지방에 계신 두 할머님도 찾아뵙고, 가족들과 식사도 하고, 주변정리를 하는 동안,
저는 아들이 입소 당일 입고 갈, 새로 산 속옷, 양말과, 겉옷, 운동화 등을 빨아 놓았지요. 그리고 머리를 깍을때, 머리카락 한줌을 갖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왜 그러냐고 묻는 아들에게, 남자들에겐 군대생활이 그리 힘들다고 하는데 네가 앞으로 세상 살아가면서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이 머리카락을 보면서 어려움을 이겨 나가라고 하였지요. 그리고 그 머리카락을 고이 코팅을 하여 보관을 하고 있어요.
혹자는 저 더러 엽기엄마라고 우스개 소리로 말하지만, 저는 아들이 군 생활을 통하여 많은 것을 깨우치고, 변화되길 바라며,
그 군생활 했던 때의 어려움이 사회생활 하면서 참거름으로 쓰이길 바라는 뜻에서 옛 조상들이 소중히 하였던 머리칼을 기념으로 남겨 두었답니다,
드디어 입소하던 날, 아침,,, 아들에게 깨끗이 빨아 놓은, 새로 산 속옷과 옷들을 내어 주며, 입고 가라고 하였더니
제 아들... 어차피 잠깐 입고 집으로 보내질 건데, 헌것 입고, 신고 가겠답니다. 아니다... 이제까지 너는 엄마의 몸을 빌어 이 세상에 태어나, 아기, 어린이, 청소년으로 이 세상을 살아 왔다면, 이제는,, 군대 생활을 시작으로, 어린아이의 껍질을 깨고, 어른으로서 너 스스로 이세상을 헤쳐 나가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러니, 엄마가 너를 처음 낳았을 때도 가장 깨끗한 옷을 입혔듯이, 지금도 가장 깨끗한 속옷과 양말,신발,옷을 입고 가야 한다.
또 그렇게 더럽고 낡은 옷을 받아 보면, 엄마가 더 슬퍼질 것 같아 싫단다. 아들은 제가 준비한 옷을 입은 후, 저희를 안방으로 들어오라 하여 큰절을 합디다.
절을 한 아들은, 얼른 일어나 현관으로 나갔지만, 전 아들의 눈가에 이슬이 맺힌 것을 보았지요.
그런데 , , , 왜 ! ! ! 슬픈 날엔 날씨마저 궂은지요 . . . . . 울 아들 논산훈련소 입소하던 날은, 눈과 비가 뒤섞여 진눈깨비가 내리는 가장 추운 날이었답니다.
머리칼도 없는 까까머리 아들놈 머리에 진눈깨비가 마구 녹아 내립니다... 마치, 앞으로, 모든 일을 저 혼자 받아들이고, 스스로 해결해야 되는 험난한 앞날을 예고라도 하는 듯이요.
아, , , , , 그랬어요. . . 제 얼굴에 녹아내리는 진눈깨비 때문에 저의 눈물은 감출수가 있었지요.
그리고, 연병장에 모여 있는 수천명의 빡빡이중에서 내 아들을 찾느라, 아들이 앞으로 견뎌야 할 고생이 안쓰럽기에,
저에게는, 높으신 분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우렁찬 훈병들의 목소리로 뒤섞인, 입소식은 안중에도 안 들어왔어요.
그날, 군악대가 있었다고 하는데, 저는 기억이 안나요. 그러나 지금은 제 아들이 군악대에 있으니, 모든 군행사에 빨간 군악대 옷 입은 아들들만 눈에 들어옵니다.
그렇게, 제 아들은 한겨울에 입소하여, 태어나서 처음으로 빨래도 해보고, 그것도 찬물에 손빨래를......
너무 배가 고파, 쵸코파이를 타 먹기 위해, 피를 더 갖다 넣어도 시원치 않은, 삐쩍 마른 몸으로 헌혈도 하면서,
막바지 훈련까지 무사히 마쳤으나, 마지막 숙영을 끝내고 고열로 무척 아팠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필이면 종교행사를 가는 일요일에 아퍼서, 쵸코파이를 못 먹었다 하니,
그것이 아픈 것보다 더 억울하고 분했다고 하네요. 그런 일들로 인해, 군대 간 아들들의 쵸코파이와의 추억이 서글픔으로 진하게 채색 되는가 봅니다.
이제 아들은 1월 군번으로 상병이 되었습니다. 반환점을 터치하고, 집으로 돌아 올 날을 향해, 열심히 동해바닷가 부근의 사단 군악대원으로써
각종 군부대 행사와 대민 봉사로 나날을 바쁘게 보내고 있지요. 또한, 저도 아들이 군 생활 하는 동안, 군대에 관한 많은 것들을 알았어요.
작대기 하나가 일병이어서 일병, 이병, 이렇게 올라가는 줄 알았는데, 이제는 계급명칭에 작대기 몇 개인지, 얼마를 지내야 그 귀한 작대기 하나 더 얻는지도 알았고요.
각종 부대 마크를 보고, 부대 이름과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도 알겠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컴퓨터 다루는 실력이 참 많이 늘었답니다.
훈련소에 올라 온 아들의 사진을 보기 위해, 아들에게 인터넷 편지를 쓰기 위해, 또 아들이 군악대이다 보니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아들의 행사사진을 찾기 위해, 사용하기 시작한 컴퓨터 . . . . .
디카도 다룰 줄 몰랐는데, 사진을 찍어 컴퓨터에 저장하고, 동영상을 만들고, 음악파일을 내컴에 저장하고 멋진 군악대 아들의 사진을 인터넷에서 찾아와서는, 아들관련 폴더에 정리도 하고요.
아들에게는 군 생활이 남자로써 험하고 힘든 세상을 체험하고, 이겨내는 방법과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내기 위해, 자기 본연의 성질을 죽여야 한다는 것을 깨우치게 해주었다면,
저에게는 늦은 나이에 컴퓨터 활용하는 방법을 알게 해주었지요. 그 동안의 군 생활을 통하여, 아들은 씩씩한 겉모습은 물론이요
어떤 척박한 환경에서도 살아 낼 것 같은 강한 의지의 소유자로 변모하였고, 그러한 것들은, 외국에 살고 있어, 인터넷으로 서로 연락을 하고 지내는, 아들의 한국 친구들에게도, 입대를 고려 할 정도로 군대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게만 들었다네요.
이렇듯, 한사람이 두려움으로 시작한 군 생활은, 알게 모르게, 본인과 그 주변 사람들을 발전시키고 변화시킨 것 같아요.
그래서, 아들의 인생에 있어, 군 생활이 중요한 한 전환점이 되길 바라며, 그 어느 제례의식 보다 신성하게 준비하고, 바라보았던 이 에미의 심정과,
아들을 변하게 만든 그동안의 군 생활을, 짧은 시간으로 압축하여, 그나마 없는 글재주로 엮어보았습니다
♡♥♡ 지난 일년간 아들이 건강하게 군복무 했음에 감사하며, 앞으로 남은 군생활도 건강하고 무탈하게 지내길 바라면서,
이 이벤트에 응모함으로, 아들의 군생활에 또 하나의 추억을 얹어봅니다 . 아울러, 모든 군 장병의 안전과 건강을 기원합니다. ♡♥♡
저~ ~ ~ 엽기 엄마 아니에요(병무스타 메인테마 선정작)
- 글쓴이 : 이정아 (서울 송파구 방이동)
군대는 어찌 가는건지, 의정부도 있고 춘천 보충대도 있건만
군인이 될려면 논산훈련소에만 가야 되는 것으로 알고 있던, 저는
어느 겨울날 아침, 매일 늦잠만 자던 아들이 잠깐 PC방에 갔다 오겠노라고 일찍 일어나더군요. 아침 일찍, PC방에 가는 것은, 수강 신청 할 때, 학점 잘 주는 교수님 과목 신청 할려면, 컴퓨터가 빠른 것으로 해야 된다면서 갔거든요. 집에 컴퓨터로 하래두 안하고, 이유를 물어도 말 안해주더니.
그날 밤 친구와 술을 한 후, 집에 데리고 와 함께 자겠다며, 늦은 귀가를 해서는, 심각한 표정으로 할말이 있다면서, 방으로 들어가자고 하더군요.
저는 이놈이 여자 친구가 있어, 혹시 사고를 쳤는가 싶었지요.
그러나 아들은 오늘 아침에 군대 지원을 했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국적의 아들이니 군대 가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막상 간다고 하니,,,,,,,,,,,,,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심정은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군요.
어느 누구나 그렇겠지만, 아들은 4년간 외국에서 생활하여, 군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이 더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외국에 갈 여건이 되어, 다시 가서 산다 해도, 군대는 피하고 싶지 않다고 늘상 말해 왔었지요.
그런 아들을 보며, 부모는 "바담풍"이라 말하고, 옆으로 걷는 "게"처럼 못난이지만 역시 내 아들은 잘 커주었구나 하는 생각을 속으로 했었죠.
20여일의 날을 받아 놓고, 아들은 매일 아침마다 일어나서는 머리칼을 쥐어 뜯으며 "아 ~ ~ ~ 하루가 또 지났다" 며 울부짖었습니다.
그러면서 아들은 친구도 만나고, 지방에 계신 두 할머님도 찾아뵙고, 가족들과 식사도 하고, 주변정리를 하는 동안,
저는 아들이 입소 당일 입고 갈, 새로 산 속옷, 양말과, 겉옷, 운동화 등을 빨아 놓았지요. 그리고 머리를 깍을때, 머리카락 한줌을 갖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왜 그러냐고 묻는 아들에게, 남자들에겐 군대생활이 그리 힘들다고 하는데
네가 앞으로 세상 살아가면서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이 머리카락을 보면서 어려움을 이겨 나가라고 하였지요.
그리고 그 머리카락을 고이 코팅을 하여 보관을 하고 있어요.
혹자는 저 더러 엽기엄마라고 우스개 소리로 말하지만,
저는 아들이 군 생활을 통하여 많은 것을 깨우치고, 변화되길 바라며,
그 군생활 했던 때의 어려움이 사회생활 하면서 참거름으로 쓰이길 바라는 뜻에서 옛 조상들이 소중히 하였던 머리칼을 기념으로 남겨 두었답니다,
드디어 입소하던 날, 아침,,, 아들에게 깨끗이 빨아 놓은, 새로 산 속옷과 옷들을 내어 주며, 입고 가라고 하였더니
제 아들... 어차피 잠깐 입고 집으로 보내질 건데, 헌것 입고, 신고 가겠답니다.
아니다... 이제까지 너는 엄마의 몸을 빌어 이 세상에 태어나, 아기, 어린이, 청소년으로 이 세상을 살아 왔다면, 이제는,, 군대 생활을 시작으로, 어린아이의 껍질을 깨고, 어른으로서 너 스스로 이세상을 헤쳐 나가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러니, 엄마가 너를 처음 낳았을 때도 가장 깨끗한 옷을 입혔듯이,
지금도 가장 깨끗한 속옷과 양말,신발,옷을 입고 가야 한다.
또 그렇게 더럽고 낡은 옷을 받아 보면, 엄마가 더 슬퍼질 것 같아 싫단다.
아들은 제가 준비한 옷을 입은 후, 저희를 안방으로 들어오라 하여 큰절을 합디다.
절을 한 아들은, 얼른 일어나 현관으로 나갔지만, 전 아들의 눈가에 이슬이 맺힌 것을 보았지요.
그런데 , , , 왜 ! ! ! 슬픈 날엔 날씨마저 궂은지요 . . . . .
울 아들 논산훈련소 입소하던 날은, 눈과 비가 뒤섞여 진눈깨비가 내리는 가장 추운 날이었답니다.
머리칼도 없는 까까머리 아들놈 머리에 진눈깨비가 마구 녹아 내립니다...
마치, 앞으로, 모든 일을 저 혼자 받아들이고, 스스로 해결해야 되는 험난한 앞날을 예고라도 하는 듯이요.
아, , , , , 그랬어요. . . 제 얼굴에 녹아내리는 진눈깨비 때문에 저의 눈물은 감출수가 있었지요.
그리고, 연병장에 모여 있는 수천명의 빡빡이중에서 내 아들을 찾느라,
아들이 앞으로 견뎌야 할 고생이 안쓰럽기에,
저에게는, 높으신 분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우렁찬 훈병들의 목소리로 뒤섞인, 입소식은 안중에도 안 들어왔어요.
그날, 군악대가 있었다고 하는데, 저는 기억이 안나요.
그러나 지금은 제 아들이 군악대에 있으니, 모든 군행사에 빨간 군악대 옷 입은 아들들만 눈에 들어옵니다.
그렇게, 제 아들은 한겨울에 입소하여, 태어나서 처음으로 빨래도 해보고, 그것도 찬물에 손빨래를......
너무 배가 고파, 쵸코파이를 타 먹기 위해, 피를 더 갖다 넣어도 시원치 않은, 삐쩍 마른 몸으로 헌혈도 하면서,
막바지 훈련까지 무사히 마쳤으나, 마지막 숙영을 끝내고 고열로 무척 아팠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필이면 종교행사를 가는 일요일에 아퍼서, 쵸코파이를 못 먹었다 하니,
그것이 아픈 것보다 더 억울하고 분했다고 하네요. 그런 일들로 인해, 군대 간 아들들의 쵸코파이와의 추억이 서글픔으로 진하게 채색 되는가 봅니다.
이제 아들은 1월 군번으로 상병이 되었습니다. 반환점을 터치하고, 집으로 돌아 올 날을 향해, 열심히 동해바닷가 부근의 사단 군악대원으로써
각종 군부대 행사와 대민 봉사로 나날을 바쁘게 보내고 있지요.
또한, 저도 아들이 군 생활 하는 동안, 군대에 관한 많은 것들을 알았어요.
작대기 하나가 일병이어서 일병, 이병, 이렇게 올라가는 줄 알았는데,
이제는 계급명칭에 작대기 몇 개인지, 얼마를 지내야 그 귀한 작대기 하나 더 얻는지도 알았고요.
각종 부대 마크를 보고, 부대 이름과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도 알겠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컴퓨터 다루는 실력이 참 많이 늘었답니다.
훈련소에 올라 온 아들의 사진을 보기 위해, 아들에게 인터넷 편지를 쓰기 위해, 또 아들이 군악대이다 보니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아들의 행사사진을 찾기 위해, 사용하기 시작한 컴퓨터 . . . . .
디카도 다룰 줄 몰랐는데, 사진을 찍어 컴퓨터에 저장하고, 동영상을 만들고, 음악파일을 내컴에 저장하고 멋진 군악대 아들의 사진을 인터넷에서 찾아와서는, 아들관련 폴더에 정리도 하고요.
아들에게는 군 생활이 남자로써 험하고 힘든 세상을 체험하고, 이겨내는 방법과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내기 위해, 자기 본연의 성질을 죽여야 한다는 것을 깨우치게 해주었다면,
저에게는 늦은 나이에 컴퓨터 활용하는 방법을 알게 해주었지요.
그 동안의 군 생활을 통하여, 아들은 씩씩한 겉모습은 물론이요
어떤 척박한 환경에서도 살아 낼 것 같은 강한 의지의 소유자로 변모하였고, 그러한 것들은, 외국에 살고 있어, 인터넷으로 서로 연락을 하고 지내는,
아들의 한국 친구들에게도, 입대를 고려 할 정도로 군대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게만 들었다네요.
이렇듯, 한사람이 두려움으로 시작한 군 생활은, 알게 모르게, 본인과 그 주변 사람들을 발전시키고 변화시킨 것 같아요.
그래서, 아들의 인생에 있어, 군 생활이 중요한 한 전환점이 되길 바라며,
그 어느 제례의식 보다 신성하게 준비하고, 바라보았던 이 에미의 심정과,
아들을 변하게 만든 그동안의 군 생활을, 짧은 시간으로 압축하여, 그나마 없는 글재주로 엮어보았습니다
♡♥♡ 지난 일년간 아들이 건강하게 군복무 했음에 감사하며, 앞으로 남은 군생활도 건강하고 무탈하게 지내길 바라면서,
이 이벤트에 응모함으로, 아들의 군생활에 또 하나의 추억을 얹어봅니다 .
아울러, 모든 군 장병의 안전과 건강을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