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비둘기

민석기2009.02.03
조회49
간혹 성당을 가면 항상 웃는 신자들과,고민하고 고독한 나와는 꼭 무었인가가

다른게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징집 영장을 받아들고 입대하기 전에 성당을 갔었는데,그날은 신부님께서

주의 기도문을 외시며,몊사람과 손을 잡을 것을 권하셧다.

나는 내 옆을 힐끔 쳐다보았는데,내옆에는 어느 아가씨가 목발을 짚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

"손을 잡을까"

"혹시 먼져 잡으면 놀라지 않을까"

"곰발같이 투박한 내 손을 잡기는 잡을까?"

하는 별의별 생각에 멈칫하는데 대뜸 그 아가씨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내손을 잡았다.

그 아가씨는 자기의 불편한 다리와는 아무관계도 없는 듯- 쓸데없이 흔들리는 나를

위로 하듯이ㅡ

나는 그때 그아가씨의 손을 잡고,"부드럽다,예쁘다"라는 것보다,이사람도 나랑 똑같은

체온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이 라는 따스함을 느꼈다

입대후에 그 당시 까지만 해도,실제 신자는 아니었으나,신자임을 빙자해 종교행사에 참석했다.

그러면서 나도 이제 종교의 필요성을 느끼고,군 성당에서 교리를 배웠고,

드디어 내가 성사를 받을때가 왔다.그런데 이게 원일....

때마침 내,휴가 날자와 겹처서 끝내 성사를 받지 못했다.

그리고 제대.

제대후 성사를 다시 받고 드디어 신자가 되었다.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상당히 못마땅하게 생각하시던 아버님이 암으로 1년여를 투병생활을 하시면서

임종 무렵에 하느님을 인정하시고 병자성사를 받으신후 하느님께로 돌아가셧다.

그 때는 참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평생 종교를 부인하시던 아버님께서 마지막에 인정하셧다는 것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상 중에 성당신부님께 축복을 부탁드렸는데,저녁무렵에,그때 난

"예수를 보았다"

금호동성당의 젊은 신부님이 오셔서, 축복을 주신후 아버님 앞에 절을 하셧다.

설마! 신부님께서 절을 하시리라는 생각을 못했는데...

하는 생각에 잠쉬 머뭇거리는데,신부님께서 내 손을 잡으시고 위로의 말씀을 하셧다.

그때의 그 목소리는 아무도 흉내낼수 없는 ---목소리 같았다.

잠시후 신부님은 홀연히 떠나셧지.

꼭 무언가에 끌린듯한 나를 남겨둔체....

아버님 상도 끝나고 그 다음주에 나는 성당엘 갔다.

미사가 끝나고 나오면서, 수녀님께 지난주 상가를 방문 하신 신부님을 여워밨다,

-어느 신부님이신가요.....

신부님을 가르키는 수녀님의 손 끝을 따라 내 눈이 머문 곳에 젊은 신부님이 계셧다.

나는 신부님께 다가가,

"신부님 지난 주에는 정말 감사했습니다"하고 인사를 드렸더니,

신부님께서는

"아! 죄송하지만 기억이 안나는데요"

순간 실망감과 함께 다시 자세히 설명하자.

"아! 그때요 아닙니다"하며 부모를 잃은 자식을 먼져 위로하셧다.

그 이후 젊은 신부님이 집전하시는 미사를 많이 참석 하였다

언젠가"하늘에 게신 우리 아버지"하며 팔을 벌려 주기도문을 외시는 신부님의

한쪽 손가락이 짧은것을 보았다.-

신부님께서는 구로공단에서 일을 하시면서 생활하던 노동자 신부님이라 말씀하셧다

기계의 예리한 날에 그분의 손가락을 맡기셧다고 했다

꼭 이기적인 극단의 이익만을 위하는 사람들을 위해 죄의 댓가를 대신하신 것 처럼...

그사이 신부님도 바뀌고 직장일로 혹은 그와의 데이트로 성당을 잊고 지냈다.

"여러분 금호동은 도시의 시골이에요.

주택가 들만이 밀집하고 서민들이 주로 모여 살면서 이집,저집 애기를 나누며 서로간의

개성보다는 두리뭉실하게 사는 모습이 도시의 시골 입니다."

주임 신부님의 강론은 여전히 성당을 울리셧고,미사시간 내내 나는 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번 주에는 주말을 금호동에서 보내기로 했다.

토요일 일찍 자고 일요일 새벽에 일어나 처음으로 그와 함께 새벽미사를 보기로 했다.

그는 집안이 고집스러운 불교집안이라 굳이 종교적인 싸움을 하기 싫고

그도 천주교를...아니 하느님을 부인하지 않기에....

그러나 나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간혹 일요일날 출근하는 경우가 있고,

그리고 ---적당한 나의 게으름 때문에....

성당에 도착했을 땐 벌써 미사가 시작 되었고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벌써 4년 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제대하고 나는 참신한 신자로서 성당을 다니면서 무엇인가를 스스로 다짐 하고 믿던 그때.

그를 만났고 데이트를 하면서 주일미사에 소홀해지고 그러면서 점점 더 멀어져 갔다.

그리도 간혹 성당 주변을 지날때면 하번씩 들르곤 했지만 극히 드물었고

지나칠 때 마다 성당 주변은 공사장으로 바뀌었다---신축공사를 하기 위해



---그러길 4년---



굳게 닫힌 문 앞에는 어주머니 한 분이 문 저편에 신부님의 강론에 손을 모으고 계셧다.

이른 주말의 아침,

덜 걷힌 안개와 성당, 그 앞에서 무엇인가를 빌고 간구하기 보다,지나온 한주를 속죄하고

반성하는 듯한 아주머니.

나 스스로도 그 동안 금호동 성당을 많이 찾아보지 못했고 등한시한 죄책감에 감히

문을 열지 못했다.

두배이상이나 커진 성당 .

붉은 벽돌,깨끗한 대리석으로 깔린 바닥을 보며,

함께온 그에게 전에 성당보다 많은 변화와 발전이 있었음을 이야기 하여 주었다.

그 사이 수녀님이 나오시더니 아주머니의 입장을 허락하셧고, 아주머니께서는,

인자하신 너그러운 이해의 손 짓을 하셧다.

"자! 이리로"

문을 열고 들어선 성당안,

자리에 안기전 까지 변화된 성당과 높아진 천정,반짝이는 제대.

왠지 갑자기 이렇게 큰 훌룡한 성당 안에서 무엇인가를 잃은 서운함을 느껴졌다.

국미학교때 원래 우리집은 종교는 없었으나 개구장이인 나와 내 형은 여름 성경학교 때나,

혹은 부활절등,성당에 행사가 있을때만 갔다.

어느해인가 12월24일날 성당엘 갔었는데 성당에서 과자 선물세트를 주었다.

그때 나와 형에겐 그만한 성탄절 선물은 대단한 것임에 들림 없었다.

중학교 진학해서는 시험때 주로 성당 도서관에 공부를 하러 갔었다.

그때 성당은 그리 크지 않았으나, 마당이 있었고,

한쪽 구석에는 언제나 성모상이, 있어서, 항상 지켜보고 계셧지만,

그때는 그런 것 과는 아랑곳 없이 마당을 가로질러,2층 도서관으로 뛰어 다녓다.

공부를 하다 벽을 보면,그때 도서관 벽에는 '사과와 소년'이라는 판화가 걸려 있었는데

내게는 참으로 깊이 와 닿았다.

"사과나무는 그늘을 주고, 놀이터를 주고,열매를 주고,

또 자신의 몸 까지 아끼지 않고 주었다.소년은 성년에서 장년으로,

이제 노년의 빈 몸으로 그 언덕에 왔을때

사과나무는 노년이 된 소년이 앉을 그루터기를 내어 주었다는...

고등학교를 진학하고 내게도 드디어 사춘기가 왔다.

성적은 점점 떨어지고,부모님과의 갈등을 빛는날도 잦아지고,

혹은 미팅에 나가서 바람을 맞아 올때, 굳이 갈댄 없고, 성당으로 갔다.

마당을 가로질러,

그때, 굳게 닫힌 나무문을 밀어 슬며시 들어서면,

언제나, 나는 빈 손으로 오는데, 편안함이 있었다.

사과나무와 소년 처럼...

때론 드문 드문 기도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맨 뒷자리를 찾아.

십자가를 쳐다보면,미웠던 것들, 반항하고 싶었던 것들이 사라졌다.

대학진학에 실패하면서 나름대로 방황을 하면서,그동안 성당을 잊고 지냈다.

이제 금호동의 꿈은 "저 성북동의 쿵쾅대며, 새롭고 커다란 것을 추구하는

채석장의 망치소리에 놀라 달아난 성북동 비둘기 마냥" 화들짝" 놀라 날아가 버린 거야.

그때 그 과자 선물세트의 성탄절도

사과나무와 소년의 도서실도..

간혹 부모님과의 갈등으로 화풀이로 찾던 성당도 - 그때 그 젊은 예수도!

이젠 모두 사라져 버렸어.

자 이제 가자, 에잇!

파견 성가를 부르는 소리에 아무 생각없이 성당문을 밀치고 나왔다.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눈부신 주말 아침 햇살에 나는 멈칫 했지만,

내앞에는 주임 신부님이 서 계셧다.

그동안 등한시 했던 나를 꾸짓을 것 같아 머뭇 거리며 인사를 했는데

웃는 얼굴로 맞으시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