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이나 희귀병들은 제대로 보험 처리를 해 주지 않으면서 성형은 보험과 세금공제 혜택을 해 주고 있으니 정부차원에서 성형을 부추기는 것 같기도 하다. 방송국 카메라 감독들의 육성을 빌리자면, 성형을 받지 않은 얼굴은 소위 화면발이 받지 않는다니, 한국인의 자연스럽고 고유한 얼굴이 TV 화면에 등장하면 오히려 낯설고 이상하게 보인다. 매스컴의 이런 최면효과로부터 꿋꿋하게 자기 모습에 만족하고 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지 모른다. 젊은 여성들도 땀 흘려 일하거나 공부하기 보다는 예쁘게 단장해서 손쉽고 편하게 살고자 하는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기왕이면 외모 단정(?)한 여성을 뽑겠다고 공언하는 취업시장에서 성형수술이라도 해야 좋은 직장을 다닐 수 있다는 주장을 싸잡아 비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물론 의학이 발달되어 안전한 성형수술을 통해 나름대로 자신감도 찾고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남들이 뭐라 말할 수는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이기 때문에 도덕적인 판단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원래 인간도 동물인지라 기왕이면 건강하고 아름다운 유전자에 성적 매력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미의 기준이 우리나라 고유의 자연스러운 몸이 아닌 서양인들의 몸, 그것도 바비인형처럼 왜곡된 기형적인 몸이란 점은 사람들의 자아존중감을 훼손하면서 의학적으로도 부작용을 가져 올 수 있다. 필요 없는 다이어트와 성형수술을 원하기 때문이다.
자신들에게는 맞지 않는 서구적 틀에 미의 기준을 맞추어서 일종의 중독처럼 끊임없이 성형 수술을 하게 되고 자기 외모에 대한 불만으로 우울, 불안, 신체기형공포증(Dysmorpho-Phobia) 등의 정신증상을 앓게 되기 때문이다. 외모에 대한 강박증에 빠져 실력을 쌓을 시간을 수술로 허비한 후, 준비 없이 인생의 후반을 불행하게 살아가기도 한다.
기실, 외모에 대한 만족은 정체성에 대한 만족과 궤를 함께 한다. 자신의 몸을 고치고 싶다는 희망에는 현재의 자신이 아닌 새로운 자기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희망이 숨어 있다. 그러나 전체적인 인격과 환경의 개선에 대한 노력은 뒤로 한 채, 오로지 외모만을 뜯어 고쳐 미모로서만 인생의 모든 승부를 걸고자 한다면, 인공적인 젊음과 미모가 사라지는 시점에 이르러 결국 인격전체가 총체적으로 무너져서 자살기도를 하거나 자포자기한 인생을 사는 경우도 있다. 뛰어난 능력과 외모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한국여성들은 자신에 대한 평가에 인색해 같은 한국인 남성들은 물론 전세계 여성과 비교해서도 외모에 대한 만족감이 가장 낮다고 한다. 아무리 아름다운 미인이라도 오랫동안 우울증과 약물이나 알콜중독 등을 앓다 보면 그 외모가 흉하게 변한다. 결국 이런 마음의 상태를 치유해서 자신의 몸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여성들 스스로의 몫이 아닌가 싶다. 남성들 중에는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를 승화해서 실력을 키우는 이들의 숫자가 여성들보다 상대적으로 많은데 아마 남성중심의 사회였기 때문에 가능한 현상이지도 모른다.
사회의 많은 영역에서 여성들이 자신들의 역량을 키우고 있는 분위기에서 이젠 여성들도 자기 몸을 남자의 환심을 끌기 위한 도구로 격하시키는 대신, 남성들과 동등하게 능력을 키우는 성전으로 좀 더 소중하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다. 외모를 하나의 신앙처럼 생각하는 왜곡된 물신주의가 아닌 총체적으로 인간을 존중하는 사회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갇혀버린 눈과 마음이 지배하는 외모강박증
암이나 희귀병들은 제대로 보험 처리를 해 주지 않으면서 성형은 보험과 세금공제 혜택을 해 주고 있으니 정부차원에서 성형을 부추기는 것 같기도 하다. 방송국 카메라 감독들의 육성을 빌리자면, 성형을 받지 않은 얼굴은 소위 화면발이 받지 않는다니, 한국인의 자연스럽고 고유한 얼굴이 TV 화면에 등장하면 오히려 낯설고 이상하게 보인다. 매스컴의 이런 최면효과로부터 꿋꿋하게 자기 모습에 만족하고 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지 모른다. 젊은 여성들도 땀 흘려 일하거나 공부하기 보다는 예쁘게 단장해서 손쉽고 편하게 살고자 하는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기왕이면 외모 단정(?)한 여성을 뽑겠다고 공언하는 취업시장에서 성형수술이라도 해야 좋은 직장을 다닐 수 있다는 주장을 싸잡아 비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자신들에게는 맞지 않는 서구적 틀에 미의 기준을 맞추어서 일종의 중독처럼 끊임없이 성형 수술을 하게 되고 자기 외모에 대한 불만으로 우울, 불안, 신체기형공포증(Dysmorpho-Phobia) 등의 정신증상을 앓게 되기 때문이다. 외모에 대한 강박증에 빠져 실력을 쌓을 시간을 수술로 허비한 후, 준비 없이 인생의 후반을 불행하게 살아가기도 한다.
기실, 외모에 대한 만족은 정체성에 대한 만족과 궤를 함께 한다. 자신의 몸을 고치고 싶다는
희망에는 현재의 자신이 아닌 새로운 자기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희망이 숨어 있다.
그러나 전체적인 인격과 환경의 개선에 대한 노력은 뒤로 한 채, 오로지 외모만을 뜯어 고쳐
미모로서만 인생의 모든 승부를 걸고자 한다면, 인공적인 젊음과 미모가 사라지는 시점에
이르러 결국 인격전체가 총체적으로 무너져서 자살기도를 하거나 자포자기한 인생을
사는 경우도 있다.
뛰어난 능력과 외모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한국여성들은 자신에 대한 평가에
인색해 같은 한국인 남성들은 물론 전세계 여성과 비교해서도 외모에 대한 만족감이 가장 낮다고 한다.
아무리 아름다운 미인이라도 오랫동안 우울증과 약물이나 알콜중독 등을 앓다 보면 그 외모가 흉하게 변한다. 결국 이런 마음의 상태를 치유해서 자신의 몸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여성들 스스로의 몫이 아닌가 싶다. 남성들 중에는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를 승화해서 실력을 키우는 이들의 숫자가 여성들보다 상대적으로 많은데 아마 남성중심의 사회였기 때문에 가능한 현상이지도 모른다.
여성들도 자기 몸을 남자의 환심을 끌기 위한 도구로 격하시키는 대신, 남성들과
동등하게 능력을 키우는 성전으로 좀 더 소중하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다. 외모를 하나의 신앙처럼 생각하는 왜곡된 물신주의가 아닌 총체적으로
인간을 존중하는 사회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