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명우2009.02.07
조회58

 

나는 정비를 합니다.

자전거를 고치고

스키와 보드를 수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기름때와 쇳가루와 먼지속에서

하루를 보내고, 판매도 하고,

주문도 해야하고,

수시로 들어오는 정비도..

퇴근 후 시간을 쪼개가며

해내야 합니다.

특히 겨울은 더욱 바쁩니다.

 

"나는 바쁩니다."

"나는 가진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남보다 더 바쁩니다."

"그래서 남보다 더 열심히 해야합니다."

 

 

나에게 천사같은 사람이 생겼었습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미치도록 사랑스럽고,

나에게로 다가온 그녀가

어쩔줄 모르게 예쁘고 감사하고..

하늘에게 두손모아

정성스레 기도를 올리는 일도..

언제부터인가 일상이 되었습니다.

 

전 그녀를 만나러 갈때면,

늘상 손을 씻습니다.

30초.

1분.

3분.

5분.

씻고 또 씻습니다.

콤프레샤라는 에어를 생성하는 기계로

작업 할 때 묻은 온 몸의 먼지를 제거합니다.

 

티없이 맑은 그녀에게 한올의 티끝이라도

묻을까 싶어.

손톱 밑에 기름때를 손이 벌게 올때까지

씻고 또 씻습니다.

 

 

바빠서 퇴근이 늦었습니다.

전 조마조마 합니다.

뛰는 가슴으로 화가 나있을 그녀에게 달려갑니다.

 

시간만 조금 있다면 집에가서 씻고 가도 좋으련만.....

 

사랑하는 그녀에게..

잘해줄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잘보이고 싶은 작은 제 마음도..

마음대로 쓸수 없는 저의 생활이 밉기까지 합니다.

혹여나 땀냄새가 날까 싶어.

그녀의 곁에 바짝 다가가기 어렵습니다.

 

그녀는 조금 새침합니다.

제가 좀 늦었기 때문이지요.

늘 그렇듯..

약속시간도 지키기 어렵고,

남들 처럼 잦은 연락도 쉽지가 않습니다.

한 번 두 번,

그녀와의 약속이 미뤄질 때마다,

실망스런 그녀의 낯빛에 가슴이 아려옵니다.

어둡고 불안한 마음이 한순간 엄습합니다.

작고 여린 그녀가.

하루종일 일만하는 저의 사정을 알아주기는

어렵겠지요.

언젠가는 일을 하던 중 꾀죄죄한 모습으로

거울을 봤습니다. 먼지와 피곤한 모습.

두텁게 내린 다클써클을 갖은 멍청한 내가 있었습니다.

 

일이 중요한가.

사랑이 중요한가.

저에겐 일도 사랑도 모두 중요한데.

일이 없이는 사랑도 없고,

사랑 없이는 일하는 의미가 없고.

그저 답답한 마음에 눈시울이 붉어질때가 있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그녀는 나에게 냉담합니다.

"너에게는 기댈 수 있는 여유가 없구나."

전 무너지는 가슴으로, 그말도 안아보았습니다.

항상 힘든 저의 모습을 보며 그녀는,

자신의 힘듬을 묵묵히 참아왔던 것입니다.

말도 하고 싶고, 어리광도, 투정도 심한 그녀는..

참다가 참다가..

더는 참기 어려운 듯.

냉랭한 표정과 쌀쌀맞은 말들로 저를 대합니다.

저는 알고 있습니다.

저에게 누군가를 위로하고 따뜻하게

포용할 수 있는 여유가 부족하다는 것을..

언제나 남들이 걸을때도 달리고,

뛸때도 함께 뛰며 살아와야 했기에..

지금에 제 모습이 당연하게만 느껴집니다.

 

하지만 부족함 없이 자라온 그녀는

저에게 더는 기대할 것이 없다는 듯한 가벼움으로..

조금씩 마음을 채워가는 듯 합니다.

저에대한 기대도 버리고,

깊은 사랑은 조금은 잘라내 버리고,

 

저는 그녀에게 가벼워지고 있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시도때도 없는 그녀의 싸늘함에

늘 제 가슴에는 언제든 울 수 있는

응어리가 하나 들어앉았습니다.

상처를 삼키고 삼키니 작은 알약이 되었고,

조금 더 쌓이니 주먹만한 응어리가 진것이겠죠.

그래도 그런 그녀를 전 사랑했습니다.

세상 전부를 준대도 놓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일은 계속 늘어가고..

몸은 열개라도 모자랐지만,

틈틈히 그녀를 위해 노력하고,

선물도 하고,

작은 시간이라도 함께 함을.

두 손모아 감사했습니다.

 

그래도 한달만 기다리면 쉴수도 있고..

그녀와 함께 여기저기 놀러 다닐 수도 있고..

그동안 못해준 것들..

전부다 다 해줄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때, 그녀는 조금 시간을 갖자고 말합니다.

"당분간 나를 잊고 지내줘."

그말에 난 또 '덜컹' 하고 가슴이 내려앉지만,

환한 얼굴로 "그래. 알았어."

언제든 힘이 될 수 있게 씩씩하게 기다리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합니다.

 

그런그녀는 하루, 이틀, 삼일.....

2주가 지나서야

"그만 만나자...."

문자 한통으로 돌아 왔습니다.

이미 어렴풋이 그녀의 차가운 마음에

익숙해 있던 저는..

그런 그녀가...

저에게 미안해 하는 그녀가...

그저 안쓰러웠습니다.

문자로 이렇게 밖에 말할 수 없는.

이것밖에 안되는 자신이라고 말하는 그녀가...

그저 안쓰러웠습니다.

 

저는 곧 무뚝뚝하게 대답을 하고는,

다른 친구에게 보내는 것처럼 메세지를 꾸며,

그녀의 핸드폰 번호를 입력합니다.

아무렇지 않은 듯,

다른 여자에게 영화 보러 가자고 말하는

문자를 받은 그녀는...

더이상,

가식으로 포장한 것처럼 느껴지는 내가 싫다며,

믿음도 버리겠다며,

마지막에 남은 동정까지 버리고

매섭게 그녀는 떠났습니다.

 

아마도 그녀는 못난 나에게

미안해하는 맘없이...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었겠지요?

 

 

시간이 지나고,

한참이 지나면,

그녀도 지워질테고,

예쁜 추억도..

천사같은 미소도..

그녀의 얼굴도..

그녀의 향기와 냄새도..

전부 지워지겠지만....

 

난 오늘도..

퇴근할때마다

손이 벌겋도록

비누칠을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그녀를 안았던 두 어깨를

부르르 떨며..

손을 씻습니다.

 

아마도 나는..

여름이 오고..

가을이 지나고..

또 한번의 겨울.

또 한번의 겨울.

그리고 또 한번의 겨울이 지나도.

손을 씻는 일만은..

그녀를 만나러 가는 설레임에..

아픈줄도 모르고 수세미로 벅벅 밀어대던

손 씻는 습관은..

죽을때까지 버리지 못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