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화재 참화의 교훈을 되새기는 특별전 '숭례문 기억, 아쉬움 그리고 내일'에서 눈길을 끄는 유물이 있다. 숭례문 앞 연못인 남지(南池) 터로 추정되는 곳에서 발견됐다는 '청동용두(靑銅龍頭)의 귀(龜)'다. 청동으로 된 용의 머리를 가진 거북을 의미하는 '청동용두의 귀'는 1926년 남지 터에 조선우선회사로 추정되는 건물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지하실 기초공사를 하던 중 석실(石室) 안에서 '청동용두의 귀'와 팔괘 도안이 그려진 그림인 '지류'(紙類)가 발견된 것. 청동용두의 귀는 1929년 12월 조선총독부 박물관에 보관된 후 최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이 관리하고 있었으나 일반인에게 전시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어느 문화재청 관계자의 말처럼 문화재청이나 국립중앙박물관이 "그간 유물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문화재청은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이 보관하고 있던 '일제강점기 조선문서철'이란 문서를 열람한 후 이 유물의 존재를 알게 됐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숭례문 앞에 청동용두의 귀가 있었을까. 전문가들은 '청동용두의 귀'가 음양오행상 물을 상징하는 현무(玄武)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무는 물을 상징하는 동물로 거북이와 비슷한 모양인데다가 숭례문 앞에 연못을 둔 것이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면 이 유물 역시 현무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석실 내부에서 함께 발견된 '지류'에 물(水)이 불(火)을 포위하는 형태의 도안이 그려진 점도 이 같은 추정을 뒷받침한다. 결국, 1926년까지 관악산의 화기를 누르던 '청동용두의 귀'가 철거된 지 82년만에 '국보 1호'가 화마의 희생물이 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 조상순 문화재청 학예연구사는 "아직 연구가 필요하지만 문서철에 기록된 내용으로 볼 때 '청동용두의 귀'는 조선 후기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며 "유물의 가치는 이제부터 조사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조선은 관악산의 화기를 억누르기 위해 경복궁 경회루 앞 호수 안에 '금동제 용'을 넣거나 불을 먹고 산다는 해태를 궁궐 앞에 파수꾼처럼 세우기도 했다 [출처] 매일경제 2009.02.09 . . . www.cyworld.com/gaon59
숭례문의 火魔 파수꾼 청동용두의 귀
숭례문 화재 참화의 교훈을 되새기는 특별전 '숭례문 기억, 아쉬움 그리고 내일'에서 눈길을 끄는 유물이 있다. 숭례문 앞 연못인 남지(南池) 터로 추정되는 곳에서 발견됐다는 '청동용두(靑銅龍頭)의 귀(龜)'다.
청동으로 된 용의 머리를 가진 거북을 의미하는 '청동용두의 귀'는 1926년 남지 터에 조선우선회사로 추정되는 건물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지하실 기초공사를 하던 중 석실(石室) 안에서 '청동용두의 귀'와 팔괘 도안이 그려진 그림인 '지류'(紙類)가 발견된 것.
청동용두의 귀는 1929년 12월 조선총독부 박물관에 보관된 후 최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이 관리하고 있었으나 일반인에게 전시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어느 문화재청 관계자의 말처럼 문화재청이나 국립중앙박물관이 "그간 유물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문화재청은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이 보관하고 있던 '일제강점기 조선문서철'이란 문서를 열람한 후 이 유물의 존재를 알게 됐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숭례문 앞에 청동용두의 귀가 있었을까.
전문가들은 '청동용두의 귀'가 음양오행상 물을 상징하는 현무(玄武)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무는 물을 상징하는 동물로 거북이와 비슷한 모양인데다가 숭례문 앞에 연못을 둔 것이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면 이 유물 역시 현무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석실 내부에서 함께 발견된 '지류'에 물(水)이 불(火)을 포위하는 형태의 도안이 그려진 점도 이 같은 추정을 뒷받침한다.
결국, 1926년까지 관악산의 화기를 누르던 '청동용두의 귀'가 철거된 지 82년만에 '국보 1호'가 화마의 희생물이 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
조상순 문화재청 학예연구사는 "아직 연구가 필요하지만 문서철에 기록된 내용으로 볼 때 '청동용두의 귀'는 조선 후기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며 "유물의 가치는 이제부터 조사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조선은 관악산의 화기를 억누르기 위해 경복궁 경회루 앞 호수 안에 '금동제 용'을 넣거나 불을 먹고 산다는 해태를 궁궐 앞에 파수꾼처럼 세우기도 했다
[출처] 매일경제 2009.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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