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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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석(鄭明析, 1945년2월 17일 ~ )은 대한민국의 종교인이다. 기독교계 신흥 종교인 기독교복음선교회의 설립자이며 현 지도자이다. 저서로는 《비유론》,《잠언집 하늘말 내말》1~6,《영감의 시》 1~3,《새벽 단상》 1~3,《생명의 말씀》 1,2,3, 《구원의 말씀》1,2,3 등이 있다.
그는 1999년에 한국을 떠나[1] 2001년 6월 30일 이후로 강간 혐의로 인해 기소중지 이후 지명 수배가 내려졌다.[2] 그는 2002년에 인터폴에 의해 지명 수배를 받았다.[3] 그는 2003년에 홍콩에서 불법 거주로 인해 체포되었으나 보석으로 풀려나서 달아났다.[4] 그는 또한 사기, 성적 학대, 횡령으로 인해 지명 수배를 받았다.[5] 그 뒤 해외 도피 생활을 계속하다가 2007년5월 11일, 중국 공안에게 부녀자 성폭행 혐의로 체포되어[6][7][8][9][10]2008년에 대한민국에 송환되었다.
일대기
정명석은 1945년 충남 금산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여러 해 동안 그의 고향 주변의 산 속에서 기도로 고독한 삶을 보냈다. 21세가 되어 그는 한국 군대에 참가하였고 나중에 베트남 전쟁에 참여하였다.[11] 30세가 되어 그는 고향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 고항에서 정명석은 문선명의 통일교에 입교하여 그의 교리를 배웠다. 그 곳에서 승공연합에서 반공 강사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통일교에서는 강사가 된 사실 그 자체를 강력 부인하고 있다.[12]1980년 3월에[출처 필요] 통일교에서 나와 애교회를 설립하고, 1983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는 내용이 있으나 목사 안수를 받은 것이 사실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져 있지 않다.
1999년까지 정명석과 그의 종교 활동은 거의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 해 1월에 한국 SBS는 왕(Whang)이라는 여성에 대해 보고하였는데, 그녀는 정명석이 자신과 다른 많은 여성들을 성추행하였다고 말하였다. 이는 정명석이 한국을 떠나게 만들었고 그에게 소송이 전가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 뒤 SBS에 소송을 거는 일이 일어났으나 나중에 소송이 포기되었다. 그 뒤로 몇 명의 다른 여성들이 정명석을 강간죄로 고소하였고 정명석은 여러 범죄 혐의 때문에 국제 방랑자 신세가 되었다. 정명석은 중국 최고인민법원에서 송환을 결정했고, 중국 국무원의 결정에 따라 2008년2월 20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서 대한민국으로 송환되었다[13]2월 23일, 대한민국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는 정명석을 구속했다고 밝혔다[14].
2008년8월 1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6부는 정명석 총재에 대해 징역 6년을 선고했다[15]. 재판부는 이유로 "자신을 메시아로 믿고 따르던 젊은 여신도를 수차례 성폭행하고도 범행을 반성하지 않는 등 죄질이 극히 불량하다"며 이같이 선고했다.
2008년 1월 11일에는 그에게 성추행 및 성폭행을 당한 여성신도(한국여성 1명, 일본여성 1명)에게 위자료 총 60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22]
강간에 대한 주장
정명석은 여러 건의 강간 혐의가 있어왔고 그를 따르던 수백명의 여성들을 성추행한 것으로 고소당한 바 있다.
기독교복음선교회에서 탈퇴한 이전 멤버들의 말에 따르면, 이들은 "교주는 이 사진을 보고 자신의 마음에 드는 여학생을 해외로 불러들여 강간하는 것이 JMS의 조직적인 성범죄 과정"이라고 주장했다.[23]
도요시게 아이즈와의 말에 따르면, 정명석은 온 인류에 대한 아담과 이브의 원죄를 갚기 위해서는 주(主)와 성교를 가질 필요가 있다는 명목(피갈음)으로 그들을 강간한다고 언급하였다.[24] 그 뒤 정명석의 측근들은 그 여성들에게 "누군가에게 말하면 지옥으로 갈 것이다"라고 언급하였다.[25]
한 탈퇴 멤버는 "내가 성폭행을 당하는 동안 나에게 무엇이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 없었으며, 머리가 어지러웠고 지도자가 하는 일마다 저항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26]
반대적 입장
정명석의 성추행 혐의에 대하여 서울방송을 통해 처음 보도가 된 후 기독교복음선교회 신자들의 반발이 심했다. 특히 2002년 중국, 대만, 일본 등 아시아 각국에서 성추행을 당했다는 여성들의 인터뷰가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보도되는 과정에서 신자들은 규탄대회를 열어 불공정하고 편파적인 방송이라며 여성인권 문제 등을 거론하며 격렬히 항의했다.[27] 이들은 방송에서 성추행 피해를 증언한 여성들은 돈을 노리고 자작극을 벌인 것이라고 주장했다[28].
2007년 5월 정명석이 중국에서 체포된 것을 계기로 기독교복음선교회는 기존 교단과 반대파로 나뉘어 치열한 내분에 휩쓸렸다. 정명석의 친동생이 포함된 기존 교단파가 정명석의 귀국을 방해하고 중국 공안에 체포될 때까지 보호하지 못한 것은 물론, 오히려 성추문 사건을 교단 권력 강화와 비리 은폐에 이용해왔다는 것이 반대파의 주장이다. 반교단파는 2007년 여름 결성된 내부 단체들인 ‘정명석 총재 명예회복추진위원회’(명추위), ‘깨어있는 섭리’(깨섭), ‘평신도 대책협의회’(이하 평대협), ‘장년부 비상대책위원회’등으로 이루어져 있다.[29]
2008년1월 7일 중국 정부의 정명석 최종 송환 결정과 1월 12일 두 명의 성추행 피해 여성에 대한 대법원의 위자료 지급 판결 확정[30] 직후 반교단파 측은 언론 보도가 사실과 다르다며 여러 언론사를 항의 방문했고 이 과정에서 물의를 빚기도 했다[31][32]. 평대협은 정명석의 성폭행 혐의는 사실이 아니며, 그동안 비리를 저지른 교단 측이 정명석의 귀국을 막아왔기 때문에 그가 귀국하여 재판을 받으면 사실이 밝혀지고 누명도 벗겨질 것이라고 주장[33][34]해 왔다.
정명석
정명석(鄭明析, 1945년 2월 17일 ~ )은 대한민국의 종교인이다. 기독교계 신흥 종교인 기독교복음선교회의 설립자이며 현 지도자이다. 저서로는 《비유론》,《잠언집 하늘말 내말》1~6,《영감의 시》 1~3,《새벽 단상》 1~3,《생명의 말씀》 1,2,3, 《구원의 말씀》1,2,3 등이 있다.
그는 1999년에 한국을 떠나[1] 2001년 6월 30일 이후로 강간 혐의로 인해 기소중지 이후 지명 수배가 내려졌다.[2] 그는 2002년에 인터폴에 의해 지명 수배를 받았다.[3] 그는 2003년에 홍콩에서 불법 거주로 인해 체포되었으나 보석으로 풀려나서 달아났다.[4] 그는 또한 사기, 성적 학대, 횡령으로 인해 지명 수배를 받았다.[5] 그 뒤 해외 도피 생활을 계속하다가 2007년 5월 11일, 중국 공안에게 부녀자 성폭행 혐의로 체포되어[6][7][8][9][10] 2008년에 대한민국에 송환되었다.
일대기
정명석은 1945년 충남 금산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여러 해 동안 그의 고향 주변의 산 속에서 기도로 고독한 삶을 보냈다. 21세가 되어 그는 한국 군대에 참가하였고 나중에 베트남 전쟁에 참여하였다.[11] 30세가 되어 그는 고향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 고항에서 정명석은 문선명의 통일교에 입교하여 그의 교리를 배웠다. 그 곳에서 승공연합에서 반공 강사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통일교에서는 강사가 된 사실 그 자체를 강력 부인하고 있다.[12] 1980년 3월에[출처 필요] 통일교에서 나와 애교회를 설립하고, 1983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는 내용이 있으나 목사 안수를 받은 것이 사실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져 있지 않다.
1999년까지 정명석과 그의 종교 활동은 거의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 해 1월에 한국 SBS는 왕(Whang)이라는 여성에 대해 보고하였는데, 그녀는 정명석이 자신과 다른 많은 여성들을 성추행하였다고 말하였다. 이는 정명석이 한국을 떠나게 만들었고 그에게 소송이 전가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 뒤 SBS에 소송을 거는 일이 일어났으나 나중에 소송이 포기되었다. 그 뒤로 몇 명의 다른 여성들이 정명석을 강간죄로 고소하였고 정명석은 여러 범죄 혐의 때문에 국제 방랑자 신세가 되었다. 정명석은 중국 최고인민법원에서 송환을 결정했고, 중국 국무원의 결정에 따라 2008년 2월 20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서 대한민국으로 송환되었다[13] 2월 23일, 대한민국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는 정명석을 구속했다고 밝혔다[14].
2008년 8월 1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6부는 정명석 총재에 대해 징역 6년을 선고했다[15]. 재판부는 이유로 "자신을 메시아로 믿고 따르던 젊은 여신도를 수차례 성폭행하고도 범행을 반성하지 않는 등 죄질이 극히 불량하다"며 이같이 선고했다.
기독교복음선교회 이 부분의 본문은 기독교복음선교회입니다.
그가 설립한 기독교복음선교회(CGM)는 이전에 애천교회, 예수교 대한 감리회 진리측, 세계 청년대학생 MS 연맹, 국제크리스찬연합 등의 이름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교리는 통일교와 유사하다[16][17].
성폭행 사건 관련
1999년 SBS는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정명석의 성추문에 대해 보도하여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후 여러 성추행 사건으로 기소중지 되었다. 하지만 2000년 이후 대법원이 성폭행 사실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18][19]
한국 경찰은 2002년 정명석에 대해 인터폴에 공조수사를 요청했으며 인터폴은 2004년 1월 그를 적색수배 명단에 올렸다. 그는 중국에서 수년간 도피 생활을 해오다 2007년 5월 11일 중국 공안에게 성폭행 혐의로 체포되었다.[20][21]
2008년 1월 11일에는 그에게 성추행 및 성폭행을 당한 여성신도(한국여성 1명, 일본여성 1명)에게 위자료 총 60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22]
강간에 대한 주장
정명석은 여러 건의 강간 혐의가 있어왔고 그를 따르던 수백명의 여성들을 성추행한 것으로 고소당한 바 있다.
기독교복음선교회에서 탈퇴한 이전 멤버들의 말에 따르면, 이들은 "교주는 이 사진을 보고 자신의 마음에 드는 여학생을 해외로 불러들여 강간하는 것이 JMS의 조직적인 성범죄 과정"이라고 주장했다.[23]
도요시게 아이즈와의 말에 따르면, 정명석은 온 인류에 대한 아담과 이브의 원죄를 갚기 위해서는 주(主)와 성교를 가질 필요가 있다는 명목(피갈음)으로 그들을 강간한다고 언급하였다.[24] 그 뒤 정명석의 측근들은 그 여성들에게 "누군가에게 말하면 지옥으로 갈 것이다"라고 언급하였다.[25]
한 탈퇴 멤버는 "내가 성폭행을 당하는 동안 나에게 무엇이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 없었으며, 머리가 어지러웠고 지도자가 하는 일마다 저항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26]
반대적 입장
정명석의 성추행 혐의에 대하여 서울방송을 통해 처음 보도가 된 후 기독교복음선교회 신자들의 반발이 심했다. 특히 2002년 중국, 대만, 일본 등 아시아 각국에서 성추행을 당했다는 여성들의 인터뷰가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보도되는 과정에서 신자들은 규탄대회를 열어 불공정하고 편파적인 방송이라며 여성인권 문제 등을 거론하며 격렬히 항의했다.[27] 이들은 방송에서 성추행 피해를 증언한 여성들은 돈을 노리고 자작극을 벌인 것이라고 주장했다[28].
2007년 5월 정명석이 중국에서 체포된 것을 계기로 기독교복음선교회는 기존 교단과 반대파로 나뉘어 치열한 내분에 휩쓸렸다. 정명석의 친동생이 포함된 기존 교단파가 정명석의 귀국을 방해하고 중국 공안에 체포될 때까지 보호하지 못한 것은 물론, 오히려 성추문 사건을 교단 권력 강화와 비리 은폐에 이용해왔다는 것이 반대파의 주장이다. 반교단파는 2007년 여름 결성된 내부 단체들인 ‘정명석 총재 명예회복추진위원회’(명추위), ‘깨어있는 섭리’(깨섭), ‘평신도 대책협의회’(이하 평대협), ‘장년부 비상대책위원회’등으로 이루어져 있다.[29]
2008년 1월 7일 중국 정부의 정명석 최종 송환 결정과 1월 12일 두 명의 성추행 피해 여성에 대한 대법원의 위자료 지급 판결 확정[30] 직후 반교단파 측은 언론 보도가 사실과 다르다며 여러 언론사를 항의 방문했고 이 과정에서 물의를 빚기도 했다[31] [32]. 평대협은 정명석의 성폭행 혐의는 사실이 아니며, 그동안 비리를 저지른 교단 측이 정명석의 귀국을 막아왔기 때문에 그가 귀국하여 재판을 받으면 사실이 밝혀지고 누명도 벗겨질 것이라고 주장[33][34]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