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대전 2 : 최후의 결전]전쟁의 이유와 그 결과의 허망함에 대하여

정주영2009.02.11
조회179

 


 


무엇을 위한 싸움이고 무엇이 남는가. 적벽의 마무리는 이런 질문을 던짐으로써 중국의 스케일 지향증이 결중국의 위용을 자랑하려 하는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준다.  


국내 작가들이  쓴 많은 '삼국지'(평역 포함) 중 내가 재미있게 봤던 책은 정비석의 '삼국지'였다. 지금은 없어진 고려원 출판사에서 나왔던 이 6권짜리 책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었다. 그 중 적벽대전은 제 3권의 제목이기도 했다. 문헌에 기록된 적벽대전은 겨우 한 줄이란다. 그런 점에서 '삼국지연의'를 쓴 나관중은 천재다. 평역이라 해도 '삼국지'의 해석은 나관중의 틀을 크게 넘지는 않는 것으로 안다. 물론 책이 술술 읽힌다면 그건 이야기의 구성과 작가의 필력에 힘입은 바 크다. 나 역시 그래서 정비석의 '삼국지'를 그토록 읽고 또 읽었던가 보다. 글씨는 꽤 작았지만 정비석의 필체는 간결하며 눈과 뇌에 잘 들어왔던 것 같다.


'삼국지'를 읽다보면 저절로 유비의 편에 서게 되고 제갈공명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게 되며 조조는 간신이자 황실의 역적으로만 보인다. 두 편의 적벽 시리즈가 다 개봉한 지금에 와서 보면 오우삼 감독도 크게 이런 틀에서 벗어나지는 않았다. 다만 그는 간웅이니 시대의 영웅이니 하는 판단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공명과 주유의 유대감이 형성되기도 하며 그 외 인물들은 밀려나 있는 듯하다.


 

'삼국지'를 읽었다면 두 편의 <적벽대전> 에서 나오는 병법 운용이라든가 조조의 83만 대군이 육지에서는 유비의 공격을 받고 물에서는 화공에 당해 패퇴하는 모습은 익숙하다. 오우삼 감독은 이것은 누구나 다 아는 얘기일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먼 옛날의 역사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두 번째 편인 '최후의 결전'의 상영시간은 2시간 20분. 우리가 기대해 마지 않았던 불쑈(?)는 영화가 끝나기 30분쯤 전부터 볼 수 있다. 갖가지 불에 관련된 사고도 많은 때라 '불쑈'라는 말을 하기가 좀 그런데 그저 스펙터클에만 초점을 맞추고 영화를 봤다면 이 장면을 보기까지 그 기다림의 시간은 지루했을 거다. 혹시 자신이 이 영화를 보고 그렇게 느꼈다면 그간 중국 영화를 몇 편 관람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이 보여주는 스케일에 익숙해져서 그런 건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모사나 책사들의 전략은 매끄럽게 운용되며 이런 작전을 짜는 데 한 치의 실수도 없다. '삼국지'를 읽을 때 도 인간인데 어찌 실수가 없을까라는 생각은 전혀 해보지 않았는데 두 편의 <적벽대전>에서도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30분의 화공 장면 전에는 '삼국지'에 나오는 잘 아는 사건들이 우리들을 기다린다. 그리고 꽤 현실감 있게 묘사됐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제갈공명이 동남풍을 예견하는 부분은 목욕재계하고 하늘에 제사를 올려 바람의 방향을 바꾸게 했던 책 속의 장면과는 다르다. 오히려 <적벽대전>의 공명은 자연을 관찰하여 그 징후를 읽어내는 현실감 있는 인물로 묘사된다. 삼고초려가 있기 전까지의 그가 밭 갈고 땅을 일구었던 농부였다는 건 여기서의 영웅은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는 사람이라는 감독의 철학이 읽혀지기도 한다. 동시에 그도 백성 중 한 사람이라는 점도 새삼 깨닫게 된다.  하긴 <거대한 전쟁의 시작>에서는 직접 말까지 받아낸 공명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사건들 그 사이 사이에는 수질이 맞지 않고 풍토가 달라 전염병이 돌고 오랜 전쟁에 지쳐 죽어가는 병사들과 전쟁이 끝나면 집으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는 병사들의 모습이 대비되며 나온다. 조조가 자신의 야심 때문에 아무 것도 모르는 백성들을 군인으로 차출해 죽음으로 내모는 건 아닐까? 그건 아닌 것 같다. 결전을 앞두고 조조는 전염병을 앓고 있는 병사들을 손수 찾아 한 군인의 이름을 부르며 전쟁이 끝나면 다 같이 집으로 돌아가자고 말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조조의 관직은 국무총리에 해당하는데 그런 그가 일개 병사의 이름을 직접 불러준 것이다. 그 사병의 이름을 어떻게 알았을지 궁금하기 그지 없으나 그 정도면 휘하의 인물들은 그를 존경해 마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그게 아니더라도 그는 적어도 처세의 달인은 아니었을까.


조조가 절세미인으로 소문난 교국로의 두 딸 중 둘째인 소교를 그렇게 원해서 전쟁을 일으켰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전장에서 시를 읊고 풍류를 즐기는 낭만적인 인물이라 웅대한 야심에 맞는 여인 한 명을 원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는 전쟁은 전쟁대로 낭만은 낭만대로 즐기며 사는 걸 그는 바라고 있었을 거다. 그게 아니라면 이 모든 게 이길 수 있다는 과도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정비석의 '삼국지' 각 권 내지에는 각 권의 무대가 되는 장소들을 사진으로 실어 놨는데 사진으로 본 적벽은 꽤 커 보였다. 한참 어릴 때라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곳에 83만의 병사가 진을 칠 수가 있겠는가 하는 의심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지금 책을 읽었다면 그 곳에 80만명을 우겨 넣는게 가능했을까 의심부터 했을 거다.


결전 후의 병력 손실은 주유와 유비 측도 만만치 않다. 책에는 83만 조조군이 패퇴하고 조조는 관우에게 목숨을 구걸했다고 되어 있지만, 감독은 이 시리즈를 영웅들의 얘기로 갈무리하지 않으려 한다. 전장에서 죽어가는 병사들과 살육의 현장 속에서 주유가 느끼는 건 일종의 회의다. 홀홀단신으로 적진에 들어가 조조를 대면하는 소교는 전쟁을 그치는 것이 백성을 위하는 길임을 설파하지만 사나이의 야심에 한 여인의 고언이 들어찰 여지가 없다. 조조와 차를 나누는 장면에서 소교는 그의 야심을 찻물이 가득찬 찻잔에 비유한다. 그리고 주유는 그의 그득한 야심 때문에 살육의 현장이 된 전쟁터에서 회의를 느낀다. 칼을 겨누며 조조를 죽일 수 있었는데도 '이 전쟁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으니 가시오' 라고 조용히 말하는 주유는 오우삼의 양조위가 아니라 왕가위의 양조위다.


서로 다른 주군을 모셔도 일맥상통하는 생각으로 우정이 쌓인 공명과 주유. 이들은 잠시나마 찾아온 평화를 만끽하며 대화를 나누는데, 카메라는 두 인물의 옆모습을 클로즈업하여 화면에는 이들의 얼굴만(!) 보인다. 그들은 전쟁을 통해 그만큼 가까워진 것일까? 이제는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를 벗들은 우정어린 말로 서로를 떠나 보낸다. <영웅본색>의 의리는 <적벽대전>에 와서는 우정이 된다. 그런데 둘의 우정의 장을 마련해 주기 위해 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면 그거야말로 좀 황당하다. 오우삼 감독은 전쟁이 평범한 사람들의 희망을 어떻게 앗아가는지를 보여주며 또 한 편으로는 그 가운데에서도 피어난 두 모사의 우정을 그리지만, '삼국지' 가 결국 영웅들의 얘기이기도 하다 보니 백성들은 빠뜨린 채 서둘러 마무리한 듯한 느낌이다.    


그래도 주제는 확실히 전했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전쟁'  목적이 무엇이든 거기에 희생되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그것이 가져다 주는 회의. 그리고 난데 없는 격한 우정으로의 갈무리. 오랜만에 쵸코파이나 먹어봐야겠군.ㅡ.ㅡ;

-----------------------------------------------------------------------------------------------------


 

미녀에 참한 소교 역의 린즈링은 대만 최고의 모델이자 패션 관련 방송의 쇼호스트이기도 한데, 타이완에서 가장 섹시한다리를 가진 여자라고 한다. 양조위의 키가 그리 크지 않은 터라 <적벽대전> 중 1편인 <거대한 전쟁의 시작>에서 그가 돌진하는 장면은 초등학생이 갑옷 입고 적진에 뛰어드는 듯하여 키득키득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왜 아내와 나란히 서 있는 장면이 별로 없었나 했더니 바로 카메라도 커버 못하는 둘의 키 차이 때문이었다. 양조위가 그리 작다고는 할 수 없지만 린즈링의 키가 174 cm 라니 말 다했다. 참, 그녀는 이 두 편의 <적벽대전>이 첫 영화 출연작이란다. 


 

뽀너스 한 컷 더. 근데 오우삼 감독님, 그녀의 다리 좀 보게 치파오라도 입혀주고 찍으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