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이 내게 준건은 '깨달음을 얻는다'라는 것이 아닌 '다진다'였다. 아직 마지막 종착역인 지점까지 가진 않았지만 쇠고기를 다져서 산적을 만들듯이 나는 스스로를 곱게 다져서 단단한 덩어리 하나를 낳았다. 나는 점점 내 본질에 가까워지고 있는 듯하다. 이 사실이 나를 가볍게한다. 20대 초반에 나를 짓눌렀던 고정관념, 죄의식, 성공에 대한 압박, 금전적인 욕심, 스스로 단정지은 미래 등은 이제는 더이상 나를 짓누를 순 없다. 모든 이에게 그 나름대로의 삶이, 그리고 상처와 치유가.. 그리고 각각의 삶의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게 어려운 과정이었다. 모든 이들을 내 생각대로 바꾸려고 하지 않고, 넌 그럴수도 있구나 라고 생각하는 그것을 깨닫게 되는 데도 많은 시간을 썼다. 이해라는 것은 내 자리에서 그 사람을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옆에 서서, 같이 한 방향을 바라보며 공감하고 느끼는 것임을 알았다. 나는 혼자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 많은 사람과 소통하며 지내는 사회인이며 그러나 그들과는 다른 단 하나의 유일무이한 특별한 존재임을 다시금 알았다. 각각의 위치에서, 그리고 삶에서 점점 더 나은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이 행복한 삶이며, 유토피아라는 건 삶에서는 찾을 수 있는 실존의 존재임을 알았다. 꿈꾸는 자에게 꿈은 찾아오고, 현실이 된다. 진정한 나는 누구인지 그 내가 원하는 삶은 어떤 삶인지 내가 나에게 묻지 않는한 꿈은 찾아오지 않는다.
이번 여행이 내게 준건은 "깨달음을 얻는다"라는 것이 아닌 "다진다"
이번 여행이 내게 준건은 '깨달음을 얻는다'라는 것이 아닌 '다진다'였다.
아직 마지막 종착역인 지점까지 가진 않았지만 쇠고기를 다져서 산적을 만들듯이
나는 스스로를 곱게 다져서 단단한 덩어리 하나를 낳았다.
나는 점점 내 본질에 가까워지고 있는 듯하다.
이 사실이 나를 가볍게한다.
20대 초반에 나를 짓눌렀던 고정관념, 죄의식, 성공에 대한 압박, 금전적인 욕심, 스스로 단정지은 미래 등은
이제는 더이상 나를 짓누를 순 없다.
모든 이에게 그 나름대로의 삶이, 그리고 상처와 치유가..
그리고 각각의 삶의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게 어려운 과정이었다.
모든 이들을 내 생각대로 바꾸려고 하지 않고,
넌 그럴수도 있구나 라고 생각하는 그것을 깨닫게 되는 데도 많은 시간을 썼다.
이해라는 것은 내 자리에서 그 사람을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옆에 서서, 같이 한 방향을 바라보며 공감하고 느끼는 것임을 알았다.
나는 혼자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 많은 사람과 소통하며 지내는 사회인이며
그러나 그들과는 다른 단 하나의 유일무이한 특별한 존재임을 다시금 알았다.
각각의 위치에서, 그리고 삶에서 점점 더 나은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이 행복한 삶이며,
유토피아라는 건 삶에서는 찾을 수 있는 실존의 존재임을 알았다.
꿈꾸는 자에게 꿈은 찾아오고, 현실이 된다.
진정한 나는 누구인지 그 내가 원하는 삶은 어떤 삶인지 내가 나에게 묻지 않는한
꿈은 찾아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