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에게 희망을 #2 - 트리나 포올러스

조재훈2009.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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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하루는 하도 화가나서,

그림자의 속삭임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버럭 고함을 질렀습니다.

 

"나도몰라.

그런 건 생각할 시간도 없단 말야!"

 

그때 호랑 애벌레 밑에 눌려 있던

노랑 애벌레가 숨을 헐떡이며 물었습니다.

 

"너 방금 뭐라고 했니?"

 

호랑 애벌레는 얼버무렸습니다.

"혼잣말을 한 것뿐이야.

별로 중요한 건 아니야.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궁금했을 뿐이야."

노랑 애벌레가 말했습니다.

 

"실은 나도 그게 궁금했어.

하지만 알아낼 방법이 없어서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기로 했어."

스스로 생각해도 이 말이 너무 어리석게 느껴졌는지,

노랑 애벌레는 얼굴을 붉히며 재빨리 덧붙였습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그러니까

우리가 가는 곳은 틀림없이 멋진 곳일 거야."

하지만 노랑 애벌레는 또다시 얼굴을 붉히며 물었습니다.

"꼭대기까지는 얼마나 남았을까?"

호랑 애벌레는 근엄히게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있는 곳은

밑바닥도 아니고 꼭대기도 아니니까,

중간쯤에 있는 게 분명해."

노랑 애벌레가 말했습니다.

"그렇구나."

그들은 다시 기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호랑 애벌레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왠지 불쾌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호랑 애벌레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집념을 잃었습니다.

 

"방금 이야기를 나눈 그 애벌레를

짓밝고 올라갈 수 있을까?"

호랑 애벌레는 노랑 애벌레를

피하려고 애를 썼지만 어느 날

 다시 마주치고 말았습니다.

노랑 애벌레는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유일한 길목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그래, 네가 올라가느냐,

아니면 내가 올라가느냐, 둘 중 하나야."

호랑 애벌레는 이렇게 말하고는 ,

노랑 애벌레의 머리를 밟고 올라섰습니다.

 

노랑 애벌레가 슬프게 바라보는 눈빛에

호랑 애벌레는 그만 자신이 미워졌습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위에 무엇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런 짓을

하면서까지 올라갈 가치는 없어."

호랑 애벌레는 노랑 애벌레의 머리에서

내려와 속삭였습니다.

"미안해."

 

그러자 노랑 애벌레가

울면서 말했습니다.

"그날 혼자말을 하는 너를 만나기

전에는 그래도 미래의 희망을 품고

이 삶을 견딜 수 있었어.

 

그런데 그날 이후로는

이런 생활을 계속할 마음이 사라졌어,

하지만 이제 어떻하면 좋을지 모르겠어.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이런 생활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몰랐어.

하지만 지금 나를 바라보는

 너의 다정한 눈길을 보고,

내가 이 생활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확실히 깨닫게 됐어.

나는 너와 함께 기어다니며

풀이나 뜯어먹는 생활을 하고 싶어."

 

호랑 애벌레는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모든 것이 달라 보였습니다.

기둥은 이제 아무런 의미도 없었습니다.

 

호랑 애벌레가 속삭였습니다.

"나도 그러고 싶어."

그것은 위로 올라가는 일을 포기한다는

의미였습니다.

매우 어려운 결단이었습니다.

 

"노랑애벌레야, 우리는 어쩌면 꼭대기에

거의 다 왔는지도 몰라. 우리가 서로 도우면

금방 꼭대기에 도착할 수 있을 거야."

 

노랑 애벌레가 말했습니다.

"그럴지도 모르지."

 

그러나 그들은 깨달았습니다.

꼭대기에 오르는 것이 그들의 가장

간절한 소망은 아니라는 것을.

 

노랑 애벌레가 말했습니다.

"내려가자."

"그래,좋아."

그래서 그들은 올라가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수많은 애벌레가 그들을 밟고 올라갔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를 꼭 끌어안았습니다.

 

숨이 막혀서 답답했지만,

그들은 함께 있어서 행복했고,

눈과 배가 밟히지 않도록 서로 끌어안고

커다란 공처럼 몸을 둥글게 말았습니다.

 

그들은 꽤 오랫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그렇게 끌어안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그들은

자신들을 밟고 가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둥글게 말았던

몸을 펴고 눈을 떴습니다.

그들은  어느덧 애벌레 기둥 옆으로

빠져나와 있었습니다.

 

"호랑 애벌레야, 안녕."

"노랑 애벌레야, 안녕."

 

둘은 파릇파릇한

풀밭으로 기어갔습니다.

배를 채우고 한숨 자려고요.

잠들기 전에 호랑 애벌레는

노랑 애벌레를 꼬옥 껴안아 주었습니다.

이렇게 함께 있는 건

저 무리 속에서 짓눌리는 것과는

확실히 다르구나!"

 

"정말 그래!"

 

노랑 애벌레는 방긋 웃으며 눈을 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