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사업을 할 때, 쟁쟁한 기업의 CEO들을 만나서 보고 배운 것이, ‘기업인이 별도로 좋은 일을 하지 않아도, 돈을 많이 벌어서 국가에는 세금을 많이 내고, 주주에게는 배당을 많이 하고, 사회에는 많은 사람을 고용하는 것이 곧, 사회 공헌이요 환원이다.’란 것이었다.
그래서 회사의 제품을 판촉용으로 조금 빼내어, 주변 사람들에게 주는 정도는 별도로 사업자등록을 하지 않아도 무방하다고들 했지만 굳이, 개인사업자등록을 하고 그에 따른 세금도 꼬박꼬박 내고 있다.
그런데 며칠 전, 부가세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세무서에서 통보가 왔다.
부랴부랴, 세무사로 계시는 선배님을 찾아뵙고 확인을 해 보니 실수를 하셔서 그만, 우리 것 신고를 누락시키신 것이었다.
후배를 아끼시는 마음에서 수수료도 받지 않으시는 분이신데, 연세가 드시니 어쩔 수 없으시나 보다.
그 분도 암 환우가족이시다.
부인께서 유방암으로 수술을 하신지 5년이 지나고 나서 혹시나 하고 정밀검진을 했더니, 원발 암은 깨끗이 없어졌는데 간암이 새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어저께는 바로 얼마 전에 별세하신 한 환우분의 가족을 만났는데 역시, 애초에 발견이 되어 치료를 한 암 때문이 아니라, 숨어있던 암 때문에 그렇게 되신 거라는 것이다.
또 그 조금 전에는 완전관해 되어 2 년여를 건강히 지내던 한 환우가 재발 된지 채 한달이 못 되어 유명을 달리하는 황당하고도 가슴 아픈 일이 있었다.
이처럼, 암은 단 일각도 방심할 수 없는 상대일뿐더러 결코, 친구하며 동거할 수 없는 아주 악질적인 존재인 것이다.
관해란 용어 자체도 말 그대로, 검사 상으로 암 조직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지 그것이 곧 완치의 상태를 의미하지는 않는 것이다.
현재, 병원에서는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다며 그냥 정기적으로 추적관찰만 하자!’고 해도 내가 굳이 한방이나 민방으로, 단순한 면역증강 차원이 아닌, 본격적인 항암을 계속하려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관해 초기부터 지금까지는 암전이 억제를 염두에 두고서, G-Rh1, Rh2, Rg3, M1(IH-901), M4, PPT, PPD 등을 풍부히 함유한 인삼제품을 주로 썼으나 그것만으로는 아무래도 미덥지 않던 차에 모 한의원 원장이 옻에서 추출한 우루시올을 권해 주었다.
내가 볼 때, 그 둘은 서로 궁합이 잘 맞을 뿐더러, 이제까지의 연구 결과를 봤을 때도 특히, 나와 같은 악성림프종에서 예후가 좋았다는 데에야 더 이상 망서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또, 평소에 옻 식품을 선호하고 젊은 시절, 옻나무로 친구들과 장난을 쳤을 때도 아무런 탈이 없었기에 그 부작용에 대한 염려도 덜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복용을 해 보니 그것이 결코, 만만찮다.
함께 먹고 있는 인삼 성분들과 서로 상승작용을 해서인지, 서서히 복용량을 늘려가고 있는 지금, 아직도 권장량의 절반이 채 되기도 않았는데 벌써, 심한 알러지 반응이 나타나 어지간히 고생스럽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한지, 항문부위의 점막이 갈변하여 조금씩 떨어져 나오고 있는데 지금까지 약 50 평방센티는 되는 것 같다.
인공화합물이든 천연물이든, 그것이 세포독성에 기초한 항암제라면 그에 대한 암세포의 임사점이 정상세포보다 낮다는 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용되는 항암제가 환자의 몸을 다치지 않으면서도 완전한 효과를 발현하는 임계점을 찾는 일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즉, 정상세포에는 안전하되 암세포는 전부 사멸되는 임계점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병원치료에서 항암제의 완전반응을 좀처럼 도출해 내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도 암세포의 완전임사점까지 항암제의 세포독성을 높이지 못하는 데에 있다.
왜냐하면, 숙주세포의 치사량과 암세포의 치사량 사이의 간격이 그리 넓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다 통상, 실험에서의 치사량은 피 실험동물의 반수가 죽는 양으로 정의되고 있다.
그러므로 숙주의 안전한 복용량과 암세포의 완전한 임사량 사이의 간격은 자연, 더욱 더 좁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에 반해, 어떤 독성에 대한 각 개체의 민감도는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비근한 일례로, 인삼사포닌의 경우, 어떤 사람은 10 ppm에서 효과가 발현되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100 ppm에서도 반응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 그 이전에, 제품의 법제 방법이나 복용자의 비만도, 장내 환경 등에 의해서도 그 흡수율이 크게 달라진다.
그러므로 병원에서 일반적으로 하는 것처럼, 환자의 체중에 근거하여 시용량을 일률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그야말로, 비과학적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꼭 같은 암종에서 꼭 같은 함암제를 써도 그 유효율이 각자 다르게 마련인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항암제의 도달율도 형편없이 낮은 수준이다.
그 일례로, 내가 맞은 표적치료제의 경우도 선택성이 탁월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그 도달율이 고작, 20 % 내외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 항암제를 투여해도 대개는 약간의 부분반응이 나타나다가 곧, 내성이 생겨서 더 이상 쓸 수가 없게 되고 되려, 환자의 몸만 망치고 마는 것이다.
때문에 일단, 항암제를 쓸 양이면 반드시, 자신의 경우에 합당한 항암용량을 찾아내어 완전반응을 유도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항암제는 목숨이 경각에 달했다 싶을 정도로 강하게, 그리고 짧게 써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이지, 약한 농도로 맞춰서 오래 쓰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낼 소지가 없지 않다고 본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이같이, 심한 괴로움을 당하고 있으면서도 앞으로, 우루시올의 복용량을 지금보다 더욱 높여보려고 마음을 먹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당면 문제는, ‘그 적정 시용량을 어떻게 찾아 내냐?’는 것이다.
짧은 기간 내에 의사가 단독으로 그걸 찾을 수는 단연코, 없다고 본다.
환자 스스로도 어지간히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반드시 환자가 의사가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 그 임계점을 찾아야 는데 그것은 곧, 표준치료의 범주를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고로, 의료사고 시의 귀책사유 등을 우려해서, 그 어떤 의사도 그렇게 해 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현실적으로는 결국, 자기 자신이 스스로 할 수 밖에 없는 성질의 것이 되고 만다.
또, 항암제의 세포독성을 어떻게 조절하느냐의 문제도 있다.
그 대안이 바로, 항암제는 병원에서 맞고 환자는 ‘항암활성제’를 써서 세포독성을 조절하는 것이다.
그 목적으로 가장 보편적인 물질이 스테로이드 제제와 인슐린 등이다.
나의 경우는 이전의 화학항암 때와 마찬가지로, 인삼의 유사인슐린 효과를 응용해서 그 나름의 목적을 달성해 보려 하고 있다.
이에 관한 한은 환자 당사자 외는 그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영역이다.
이러한 환자만의 생각이나 방법을 남에게 권유하는 것은 더 더욱 금물이다.
이러는 나 자신을 지켜보노라니, 단 하나 뿐인 목숨을 담보하면서까지, 무모하리만큼 과감하게, 그리고 고독한 모험을 감행해야 하는 나의 이 처지가 참으로 처절하기만 하다.
암 환자가 사는 길(4)
미국에서 사업을 할 때, 쟁쟁한 기업의 CEO들을 만나서 보고 배운 것이, ‘기업인이 별도로 좋은 일을 하지 않아도, 돈을 많이 벌어서 국가에는 세금을 많이 내고, 주주에게는 배당을 많이 하고, 사회에는 많은 사람을 고용하는 것이 곧, 사회 공헌이요 환원이다.’란 것이었다.
그래서 회사의 제품을 판촉용으로 조금 빼내어, 주변 사람들에게 주는 정도는 별도로 사업자등록을 하지 않아도 무방하다고들 했지만 굳이, 개인사업자등록을 하고 그에 따른 세금도 꼬박꼬박 내고 있다.
그런데 며칠 전, 부가세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세무서에서 통보가 왔다.
부랴부랴, 세무사로 계시는 선배님을 찾아뵙고 확인을 해 보니 실수를 하셔서 그만, 우리 것 신고를 누락시키신 것이었다.
후배를 아끼시는 마음에서 수수료도 받지 않으시는 분이신데, 연세가 드시니 어쩔 수 없으시나 보다.
그 분도 암 환우가족이시다.
부인께서 유방암으로 수술을 하신지 5년이 지나고 나서 혹시나 하고 정밀검진을 했더니, 원발 암은 깨끗이 없어졌는데 간암이 새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어저께는 바로 얼마 전에 별세하신 한 환우분의 가족을 만났는데 역시, 애초에 발견이 되어 치료를 한 암 때문이 아니라, 숨어있던 암 때문에 그렇게 되신 거라는 것이다.
또 그 조금 전에는 완전관해 되어 2 년여를 건강히 지내던 한 환우가 재발 된지 채 한달이 못 되어 유명을 달리하는 황당하고도 가슴 아픈 일이 있었다.
이처럼, 암은 단 일각도 방심할 수 없는 상대일뿐더러 결코, 친구하며 동거할 수 없는 아주 악질적인 존재인 것이다.
관해란 용어 자체도 말 그대로, 검사 상으로 암 조직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지 그것이 곧 완치의 상태를 의미하지는 않는 것이다.
현재, 병원에서는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다며 그냥 정기적으로 추적관찰만 하자!’고 해도 내가 굳이 한방이나 민방으로, 단순한 면역증강 차원이 아닌, 본격적인 항암을 계속하려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관해 초기부터 지금까지는 암전이 억제를 염두에 두고서, G-Rh1, Rh2, Rg3, M1(IH-901), M4, PPT, PPD 등을 풍부히 함유한 인삼제품을 주로 썼으나 그것만으로는 아무래도 미덥지 않던 차에 모 한의원 원장이 옻에서 추출한 우루시올을 권해 주었다.
내가 볼 때, 그 둘은 서로 궁합이 잘 맞을 뿐더러, 이제까지의 연구 결과를 봤을 때도 특히, 나와 같은 악성림프종에서 예후가 좋았다는 데에야 더 이상 망서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또, 평소에 옻 식품을 선호하고 젊은 시절, 옻나무로 친구들과 장난을 쳤을 때도 아무런 탈이 없었기에 그 부작용에 대한 염려도 덜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복용을 해 보니 그것이 결코, 만만찮다.
함께 먹고 있는 인삼 성분들과 서로 상승작용을 해서인지, 서서히 복용량을 늘려가고 있는 지금, 아직도 권장량의 절반이 채 되기도 않았는데 벌써, 심한 알러지 반응이 나타나 어지간히 고생스럽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한지, 항문부위의 점막이 갈변하여 조금씩 떨어져 나오고 있는데 지금까지 약 50 평방센티는 되는 것 같다.
인공화합물이든 천연물이든, 그것이 세포독성에 기초한 항암제라면 그에 대한 암세포의 임사점이 정상세포보다 낮다는 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용되는 항암제가 환자의 몸을 다치지 않으면서도 완전한 효과를 발현하는 임계점을 찾는 일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즉, 정상세포에는 안전하되 암세포는 전부 사멸되는 임계점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병원치료에서 항암제의 완전반응을 좀처럼 도출해 내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도 암세포의 완전임사점까지 항암제의 세포독성을 높이지 못하는 데에 있다.
왜냐하면, 숙주세포의 치사량과 암세포의 치사량 사이의 간격이 그리 넓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다 통상, 실험에서의 치사량은 피 실험동물의 반수가 죽는 양으로 정의되고 있다.
그러므로 숙주의 안전한 복용량과 암세포의 완전한 임사량 사이의 간격은 자연, 더욱 더 좁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에 반해, 어떤 독성에 대한 각 개체의 민감도는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비근한 일례로, 인삼사포닌의 경우, 어떤 사람은 10 ppm에서 효과가 발현되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100 ppm에서도 반응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 그 이전에, 제품의 법제 방법이나 복용자의 비만도, 장내 환경 등에 의해서도 그 흡수율이 크게 달라진다.
그러므로 병원에서 일반적으로 하는 것처럼, 환자의 체중에 근거하여 시용량을 일률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그야말로, 비과학적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꼭 같은 암종에서 꼭 같은 함암제를 써도 그 유효율이 각자 다르게 마련인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항암제의 도달율도 형편없이 낮은 수준이다.
그 일례로, 내가 맞은 표적치료제의 경우도 선택성이 탁월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그 도달율이 고작, 20 % 내외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 항암제를 투여해도 대개는 약간의 부분반응이 나타나다가 곧, 내성이 생겨서 더 이상 쓸 수가 없게 되고 되려, 환자의 몸만 망치고 마는 것이다.
때문에 일단, 항암제를 쓸 양이면 반드시, 자신의 경우에 합당한 항암용량을 찾아내어 완전반응을 유도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항암제는 목숨이 경각에 달했다 싶을 정도로 강하게, 그리고 짧게 써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이지, 약한 농도로 맞춰서 오래 쓰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낼 소지가 없지 않다고 본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이같이, 심한 괴로움을 당하고 있으면서도 앞으로, 우루시올의 복용량을 지금보다 더욱 높여보려고 마음을 먹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당면 문제는, ‘그 적정 시용량을 어떻게 찾아 내냐?’는 것이다.
짧은 기간 내에 의사가 단독으로 그걸 찾을 수는 단연코, 없다고 본다.
환자 스스로도 어지간히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반드시 환자가 의사가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 그 임계점을 찾아야 는데 그것은 곧, 표준치료의 범주를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고로, 의료사고 시의 귀책사유 등을 우려해서, 그 어떤 의사도 그렇게 해 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현실적으로는 결국, 자기 자신이 스스로 할 수 밖에 없는 성질의 것이 되고 만다.
또, 항암제의 세포독성을 어떻게 조절하느냐의 문제도 있다.
그 대안이 바로, 항암제는 병원에서 맞고 환자는 ‘항암활성제’를 써서 세포독성을 조절하는 것이다.
그 목적으로 가장 보편적인 물질이 스테로이드 제제와 인슐린 등이다.
나의 경우는 이전의 화학항암 때와 마찬가지로, 인삼의 유사인슐린 효과를 응용해서 그 나름의 목적을 달성해 보려 하고 있다.
이에 관한 한은 환자 당사자 외는 그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영역이다.
이러한 환자만의 생각이나 방법을 남에게 권유하는 것은 더 더욱 금물이다.
이러는 나 자신을 지켜보노라니, 단 하나 뿐인 목숨을 담보하면서까지, 무모하리만큼 과감하게, 그리고 고독한 모험을 감행해야 하는 나의 이 처지가 참으로 처절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