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브원(2007)

이영호2009.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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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브원(2007)

  시든 소설이든 뭐든 중요한 것은 그것이 주는 메세지고 의미다. 달리말하여 구성이 어떻고, 각도가 어떻다는 것은 말이 많아지기 위한 방편일 뿐, 대세는 아니다.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느껴야할 그 무엇인 것이다.

 

  8명이나 죽인 사람을 아무 처벌도 가하지 않고 그냥 끝나는 이 영화를 놓고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먼저 이런 장면을 생각해 보자.

나의 부모님이 아무 이유없이 잔인한 강도들에게 살인을 당했다.

그것도 욕을 보이면서.

나는 다행히 어머니가 침대밑으로 들여 보내주는 바람에 살 수 있었다.

그 장면을 똑똑히 목격했을 지언정.

그때부터 나는 복수의 칼날을 갈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그 강도들의 근거지를 찾았고, 지금 내 총구 앞에 그들을 무릎꿇였다.

나는 이제 총구만 당기면 기다리고 기다리던 복수를 할 수가 있다. 그런데 지금 내 옆에 있는 형사가 내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있다.

이렇게 말을 하면서, 

 

"참으시오, 그들 또한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합니다. 참으시오! 제발! 그래야만 합니다!!"

 

그러면 나는 몹시 참기 힘든 표정으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땅을치며 총을 내려 놓을 것이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이런류의 영화가 보여주는, 대개의 스토리였다. 말하자면 개인이 어떤 고통을 당했을 지언정, 심판은 언제나 존경스런?! 법에 맡겨야 한다는 로직이요 클레임이었다.

 

그러나, 브레이브원은 전혀 다른 결론이다. 

주인공은 복수의 대상인 그 범인들을 죽이는 뿐만이 아니라 그 외 5명을 -물론 모두 범죄자이긴 하다- 더 죽인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 경찰이 아예 총을 주인공에게 준다. 자기총으로 쏴야 완전범죄를 할 수 있다고 말을 하면서.  

그리곤 끝이 난다. 깨끗하게.

왜 그렇게 스토리가 흘러갔는지 자세한 내용은 영화를 직접봐야 알 것이지만, 결론 그 자체가 다를 수 없기 때문에 충분히 이 자리에서 논할수 있는여지가 된다 하겠다.

 

이 영화 주인공인 에리카(조디포스터)는 곧 결혼을 앞둔 처녀다. 그러다 공원에서 우연히 만난 깡패 3명에게 약혼자를 잃는다. 자기 또한 엄청 몰매를 맞았다.

몇 달후 정신을 차린 에리카, 정신적 공황상태.. 약혼자는 이미 죽어있고, 에리카의 꿈은 이제 없다. 백지가 아니라 차라리 암흑이다. 나한테 왜 이런일이 일어났을까? 생각해 보고 또 생각해 보고.. 그러다가 경찰(공권력)의 힘을 빌어보지만, 경찰은 형식적 대응일 뿐이다.

-- 여기서 하나 지적하고 싶고 영화가 주는 메세지가 있는 듯 하나. 바로 공권력의 무능함 곧 소위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불리우는 돈 있고, 힘있는 사람들에겐 공권력은 최고의 수단이지만 일반 서민들에겐 -에리카의 경우- 차라리 없으면 더 좋을 그 도구였던 것이다.

대기업 회장들에게 주는 양허안을 봐도 그렇다. 판사들이 겉으로는 지금까지의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매우커 이런 양허안을 적용한다고들 하는데.. 그들이 누구때문에 그런 발전을 이룰수 있었는가? 다 일반인들 때문이 아닌가 ? 기실 그들이 경제발전을 잘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한 마디로 나쁜 버릇으로 경쟁상대 및 때론 기만하며 착취했기 때문으로 나는 본다. 정녕 기업윤리를 지켜가며 공정하게 경쟁해서 이런 발전을 이루었을까?(이 부분은 재차 논의하기로 함). 따라서 이 사실이 맞다면 경제발적의 기여의 이유로 양허안을 적용해서는 안된다. 법리 법대로 일반 범죄자들이 받는 똑 같은 양으로 형을 받아야 한다. 물론 법리대로 처리하면 경제가 다소 위축되고, 그로인해 제3이 피해자, 간접적으로 피해를 받는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경우 나는 보다 장기적으로 일처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장기적이란 뜻은 적어도 50년후의 상황까지 고민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경찰의 힘을 포기한 에리카.

결국은 자기가 해결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다 우연히 들른 슈퍼에서 자기 방어를 위해서는 어쩔수 없는 선택으로 남자 한명을 죽이게 된다.

-- 혹자는 이를 지나친 설정으로 여기기도 하겠지만, 나는 이 것을 영화의 메세지를 나타태기 위한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왜냐하면, 누구한테든 이런일은 충분히 일어날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잠재적 피해자요, 장애자이기 때문이다.

 

점점 살인의 습성을 익혀만 가는 에리카.

마음속엔 이미 두 개의 마음이 공존하고.

그러다가 지하철에서 2명, 거리에서 1명, 범죄자 1명을 죽이게 된다.

그리곤, 마지막에 복수의 대상자들 3명을 죽이게 된다.

그래서 총합이 8명이다.

 

보고 느끼는 바는 저마다 이겠지만, 지금의 시점에서 이런 영화가 호평을 받으면서 상영되었다는 것은.. 뭐랄까 이런 부분이 시대의 흐름을 타기 시작했다...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일단 심의를 통과했으니까 말이다. 먼저 시대의 흐름을 탔다라는 부분을 설명해 보면 이런류의 질문들을 가볍게 생각해 보면 잘 알수 있을 것 같다.

- 우리가 언제부터 동성연애와 동성결혼에 대해 얘기를 하기 시작했지?

- 우리가 언제부터 사형죄폐지에 대해 논하기 시작했지?

- 우리가 언제부터 호주제 폐지를 논하기 시작했지?

위의 질문들의 이면에 숨어있는 공통점은 그 전에는 철저하게 터부시 되다가 일부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서 마치 어느 순간인듯?, 시대의 흐름을 탔다라는 점이다. 특히, 언론과 시민단체에서 -긍정이든 부정이든- 보도도 하고 토론도 하며 찬반논쟁을 했다는 것이다. 즉, 시대의 흐름을 탔다라는 것이다. 나는 이럴때 시대의 흐름을 탓다라는 표현을 쓰는데, 시대의 흐름을 탄다라는 것은 찬성과 반대의 빈도는 그리 중요하지 않고, 그 시대에 얼마나 그 이슈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 의해 그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거 이것이다! 이 오르내림이 중요한 것은, 역사적으로 볼때 이것이 사건의 발단이 된 예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서, 아까 말한 "이런 부분"이란 것의 요지는 위에서 예를 들었듯 이 영화의 결론의 유도와 선택이 그 전에 그것들과 매우 상반된다라는 것인데, 최악의 경우 개인이 당한 피해를 공권력과 국가가 힘없고 소수자란 이유만으로 무시한다면 그 개인은 스스로 복수의 칼날을 높이 쳐 들어도 무방하다! 라는 결론까지 이끌어 낼 수도 있지만... ㅎㅎ 이것은 너무너무 급진일 것이다.

 

  나의 결론은, 우리 사회가 너무 살기가 각박해져 있다는 것이다. 살기가 너무 힘드니까 정부도 사회도 법도 공권력도 사회를 유지시키는 이른바 "먹고 사는 문제"에만 너무 촛점을 맞추는 모습이다. 

지도층이 이러다 보니 일반인들은 점점 무관심화 이기적이 되어가고, 이익을 좀 더 챙길려니 비리가 없을 수 없고(정말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비리가 다양하다), 그 과정에서 힘없고 선한 사람들이 피해를 당하게 되고, 그 피해자들중에 오기가 발동하거나 미쳐진 사람들은 살인죄 같은 중범죄를 저지르기도 하고, 그러면 공권력은 자체적으로 혹은 언론의 힘을 이용해서 그 범죄자를 마치 자기들은 아무 원인이 안되었는냥 아주 치욕스럽게 비판하여 생매장한다. 생각해보라. 누가 유영철이나 강화도 총기사건 그 범인을 100%중에 0.0000001%라도 우호적으로 생각을 하겠는가!

거미줄 처럼 엮여 있는 이 현실을 누가 지금 직시를 하고 있는가.

 

  finally 최후의 심판은 법에 맡겼어야 했다. 아니면 주인공이 형을 살든지.. 비록 감독의 다른 메세지가 있었다 할지라도.

법은 사회의 근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근간이 흔들리면 다 망한다. 나라를 세울때 제일 먼저 정비하는 것도 법이다.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라며 인정하면서 죽어간것도, 비록 악법일지나 그 시대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 그나마 그 악법이었기 때문에 근간을 헤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말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순간 왜 영화제목이 브레이브원인지 이제 알 것 같다.

세상을 바꿀러면 사람들 하나하나의 "Brave One(용기하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ly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