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버스 안에서 마주치는 일은 참 민망한 일이다. 그나마 서로 내릴 때까지 모른 척하고 있다면 모를까, 혹여라도 눈치 없는 녀석이 버스 안에서 큰 소리로
"선생님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라도 할라치면, 주변의 시선이 모두 나에게 쏟아져 이내 얼굴이 붉어지고 만다. 테러리스트가 따로 없다.
'저 녀석, 눈치 없기는... 학교에 도착만 해 봐라. 매점에서 만나면 볼따구니를 꼬집어 줄 테다.'
속으로만 이렇게 다짐을 하고는 발 아래로 시선을 떨군 채, 또 다른 테러리스트들의 시선을 피한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학교가 가까워질수록 점점 버스에는 우리 학교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늘어났다. 모두들 눈치가 구단인지 - 사실은 자기들도 시쳇말로 '쪽팔릴' 게다 - 눈이 마주치면 멋쩍게 목례만 할 뿐, 도를 지나치는 과잉 인사는 하지 않고 있는, 그야말로 아주 어색한 분위기가 버스 안에 감돌았다.
학교까지 서너 정거장 남겨 두고서, 또다시 일군의 우리 학교 학생들이 버스에 올라탔다. 그런데 그 중 한 녀석이 버스 카드를 단말기에 대자, 잔액이 부족하다는 메시지를 낭낭한 여인 목소리의 기계음이 버스 전체에 토해 내다. 두어 번을 다시 대어 보아도, 여인의 목소리는 확고부동하다. 마치 왜 자꾸 귀찮게 구느냐는 듯...
부끄러움에 얼굴이 벌개진 그 녀석은 돈이 없었던지 고개를 푹 숙이고는 조용히 뒷문 쪽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말없이 버스의 하차벨을 눌렀다. 학교까지 가려면 멀었는데도... 나 역시도 대충 짐작이 가는 상황이었던지라, 짐짓 녀석의 옆으로 다가가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쥐어주고는, 차비 내고 오라는 신호를 눈빛으로 보냈다. 녀석은 머쓱하게 고개를 까닥하더니 지폐를 버스 요금통에 넣었다. 운전 기사가 거스름돈 버튼을 조작하자 딸그락거리며 떨어지는 동전 소리가 늦은 요금 지불을 승객들에게 각인시켜 주었다.
그런데 그 녀석은 돈을 내고 왔는데도, 내게 특별히 고마워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거스름돈도 꿀꺽하고선 내놓지 않았다. 처음에는 나와 마찬가지로 버스 안에서 알은 체하는 것이 민망해서 그러려니 했는데, 버스에 내려서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잰걸음으로 내 앞을 가로질러 가더니, 곧 내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저런 괘씸한 녀석 같으니라구. 얼굴도 모른 채, 우리 학교 교복 입은 것 하나만 보고 차비를 줬더니, 감사하다는 말은커녕 거스름돈까지 떼어 먹고 사라지다니. 뻔뻔한 녀석 같으니.'
하고 생각하며, 모처럼만에 좋은 일을 했다 싶었는데, 좋은 일에 대한 반대급부가 없으니 서운하다 못해 적이 화가 나기까지 했다.
그리고 며칠이나 지났을까. 그 날의 일은 까맣게 잊고, 복도를 지나칠 때였다. 어떤 녀석 하나가 불쑥 내 앞에 나타나더니 천 원짜리 한 장을 내민다. 지난 번엔 감사했다며 수줍게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그 녀석이 엊그제 그 녀석이었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짧은 순간이었지만, 학생을 믿지 못하고 괘씸하게 생각했던 나의 경솔함에 부끄러움이 밀려듦과 동시에, 그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경황 없어하는 순간 아이는 다시 그 때처럼 잰걸음으로 복도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교사의 행복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돈 천원을 다시 찾았을 때보다, 우리 아이들의 양심이 사라지고 있다고 생각했다가 그렇지 않음을 확인했을 때 교사는 뿌듯해 한다. 그것은 우리 교육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리라.
요즘들어 전국 학력 평가 결과 공개 후 교육과 관련된 의견들이 분분하다. 새벽부터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 교육과학기술부 정책 담당자가 나와 이야기하는 것을 잠결에 듣고 깨어, 이불 속에서 갑갑한 교육 현실에 끌탕만 치다가 버스타고 출근하는 길에 그 때의 일들을 떠올려 보았다. 과연 그 아이에게 물어야 할까? 너 전국 몇 등이냐고...
넌 전국 몇 등이니?
아이들과 버스 안에서 마주치는 일은 참 민망한 일이다. 그나마 서로 내릴 때까지 모른 척하고 있다면 모를까, 혹여라도 눈치 없는 녀석이 버스 안에서 큰 소리로
"선생님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라도 할라치면, 주변의 시선이 모두 나에게 쏟아져 이내 얼굴이 붉어지고 만다. 테러리스트가 따로 없다.
'저 녀석, 눈치 없기는... 학교에 도착만 해 봐라. 매점에서 만나면 볼따구니를 꼬집어 줄 테다.'
속으로만 이렇게 다짐을 하고는 발 아래로 시선을 떨군 채, 또 다른 테러리스트들의 시선을 피한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학교가 가까워질수록 점점 버스에는 우리 학교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늘어났다. 모두들 눈치가 구단인지 - 사실은 자기들도 시쳇말로 '쪽팔릴' 게다 - 눈이 마주치면 멋쩍게 목례만 할 뿐, 도를 지나치는 과잉 인사는 하지 않고 있는, 그야말로 아주 어색한 분위기가 버스 안에 감돌았다.
학교까지 서너 정거장 남겨 두고서, 또다시 일군의 우리 학교 학생들이 버스에 올라탔다. 그런데 그 중 한 녀석이 버스 카드를 단말기에 대자, 잔액이 부족하다는 메시지를 낭낭한 여인 목소리의 기계음이 버스 전체에 토해 내다. 두어 번을 다시 대어 보아도, 여인의 목소리는 확고부동하다. 마치 왜 자꾸 귀찮게 구느냐는 듯...
부끄러움에 얼굴이 벌개진 그 녀석은 돈이 없었던지 고개를 푹 숙이고는 조용히 뒷문 쪽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말없이 버스의 하차벨을 눌렀다. 학교까지 가려면 멀었는데도... 나 역시도 대충 짐작이 가는 상황이었던지라, 짐짓 녀석의 옆으로 다가가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쥐어주고는, 차비 내고 오라는 신호를 눈빛으로 보냈다. 녀석은 머쓱하게 고개를 까닥하더니 지폐를 버스 요금통에 넣었다. 운전 기사가 거스름돈 버튼을 조작하자 딸그락거리며 떨어지는 동전 소리가 늦은 요금 지불을 승객들에게 각인시켜 주었다.
그런데 그 녀석은 돈을 내고 왔는데도, 내게 특별히 고마워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거스름돈도 꿀꺽하고선 내놓지 않았다. 처음에는 나와 마찬가지로 버스 안에서 알은 체하는 것이 민망해서 그러려니 했는데, 버스에 내려서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잰걸음으로 내 앞을 가로질러 가더니, 곧 내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저런 괘씸한 녀석 같으니라구. 얼굴도 모른 채, 우리 학교 교복 입은 것 하나만 보고 차비를 줬더니, 감사하다는 말은커녕 거스름돈까지 떼어 먹고 사라지다니. 뻔뻔한 녀석 같으니.'
하고 생각하며, 모처럼만에 좋은 일을 했다 싶었는데, 좋은 일에 대한 반대급부가 없으니 서운하다 못해 적이 화가 나기까지 했다.
그리고 며칠이나 지났을까. 그 날의 일은 까맣게 잊고, 복도를 지나칠 때였다. 어떤 녀석 하나가 불쑥 내 앞에 나타나더니 천 원짜리 한 장을 내민다. 지난 번엔 감사했다며 수줍게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그 녀석이 엊그제 그 녀석이었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짧은 순간이었지만, 학생을 믿지 못하고 괘씸하게 생각했던 나의 경솔함에 부끄러움이 밀려듦과 동시에, 그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경황 없어하는 순간 아이는 다시 그 때처럼 잰걸음으로 복도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교사의 행복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돈 천원을 다시 찾았을 때보다, 우리 아이들의 양심이 사라지고 있다고 생각했다가 그렇지 않음을 확인했을 때 교사는 뿌듯해 한다. 그것은 우리 교육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리라.
요즘들어 전국 학력 평가 결과 공개 후 교육과 관련된 의견들이 분분하다. 새벽부터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 교육과학기술부 정책 담당자가 나와 이야기하는 것을 잠결에 듣고 깨어, 이불 속에서 갑갑한 교육 현실에 끌탕만 치다가 버스타고 출근하는 길에 그 때의 일들을 떠올려 보았다. 과연 그 아이에게 물어야 할까? 너 전국 몇 등이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