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이 많으면 짐도 많아지는 법....

장형철2009.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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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이 많으면 짐도 많아지는 법! 여행도 인생도 마찬가지

욕심이 많으면 짐도 많아지는 법.... “할아버지, 우린 론세스바예스까지 갈 건대요.”
그런데도 할아버지는 자꾸만 똑같은 몸짓을 한다.
“노, 노, 여기서 안 잔다니까요.”
안 잔다며 손사래를 치니 할아버지 얼굴이 점점 험악해진다. 어라? 분위기가 요상해지네. 모두들 뭔 일인가 싶어 우리에게 시선이 쏠린다. 그러다 할아버지가 안에다 대고 뭐라고 큰소리를 치니 안에서 젊은 여자가 나온다. 여인은 ‘콘티넨탈 호텔’이라는 말과 함께 종이 쪽지에 84유로라는 숫자를 적었다.

그 순간 머리를 스치는 생각 하나! ‘아차!’ 아침에 나올 때 호텔비를 지불하지 않았던 것이다. 로비에 아무도 없어 셋?시어머니, 남편, 나?다 까맣게 잊고 그냥 길을 나섰으니, 졸지에 방값을 떼어먹고 몰래 도망친 파렴치한이 된 것이었다. 당연히 호텔 주인의 수배령이 떨어졌고 할아버지는 그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한 것이었다.그 순간 손바닥으로 이마를 치며 “아~” 소리를 내니 할아버지의 얼굴도 그제야 환해진다. 돈을 드리고 연신 깜박했다는 것을 강조하고 호텔 주인에게도 ‘미안하다, 실수다’라는 걸 꼭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할아버지는 조그만 동양인 셋만 나타나길 잔뜩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나타나자 돈을 내라는 거였는데, 그것도 모르고 안 잔다며 손사래를 치는 우리 모습에 발뺌하는 줄 알았을 게다. 그러니 할아버지 얼굴이 점점 험악해질 수밖에. ‘아, 첫날부터 이게 무슨 망신이람’. 산티아고 가는 길 첫걸음부터 신고식을 단단히 치른 셈이다.

망신살이 뻗친 알베르게를 지나면서 오르막길이긴 하지만 경사가 완만하다. 아침 안개가 자욱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안개가 걷히고 부드러운 산세가 넓게 펼쳐진 모습이 시원해 보인다.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명성답게 피레네의 푸른 초지는 한 폭의 유화 같은 풍경이다.
넓은 초원에는 방울 소리를 딸랑이며 노니는 양떼도 있고 풀을 뜯는 말도 보인다. 그 끝없는 길 위에 띄엄띄엄 걸어오는 여행자들의 모습도 한 폭의 그림 같다. 젊은 커플도 있고 손을 꼭 잡고 천천히 걷는 노부부의 모습도 아름답다.마음의 짐을 덜고 경계심을 버리고 자연과 하나가 되어서일까? 스치는 순례자들 모두가 가족이고 친구 같은 느낌이다. 서로 기념사진을 찍어 주고 정이 듬뿍 담긴 말투로 좋은 여행 하라며 서로를 격려해 준다. 간간히 차가 지나가면 이 평화로운 풍경이 잠시 깨지기도 하지만 차가 지나가고 나면 다시 걷는 자들만의 길이 된다.

피레네를 넘어오던 중 특히 생각나는 세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은 피레네 초입에서 만난 50대 가량의 아저씨. 이 길을 걷는 이들 대부이 양말 한 짝이라도 줄이고 싶어할 만큼 고심하며 짐과의 전쟁을 벌이건만 유달리 몸집이컸던 이 아저씨는 이것저것 가득 채운 커다란배낭에 거대한 쌍안경까지 달고 와 출발점부터 연신 주저앉아 관절을 살피며 힘겨워했다. 뭐도울 거라도 없을까 하여 상태를 물으니 오히려 짜증스러운 표정에 퉁명스러운 반응이다. 욕심이 많으면 짐도 많아지고 짐이 늘면 가는 길이 버겁다. 여행도 인생도 마찬가지다.
욕심이 많으면 짐도 많아지는 법....
그리고 나머지 두 사람은 피레네 산맥을 넘어 론세스바예스로 오는 막바지 길목에서 만난 부자지간. 키는 크지만 살집은 별로 없어 보이는 아저씨가 커다란 배낭을 앞뒤로 두 개나 둘러멨다. 내심 ‘이 아저씨는 짐 욕심이 더하네.’ 싶으면서도 힘이 장사라고 칭찬을 했더니 엄지를 곧추세우며 씩씩하게 걷는다. ‘그래도 먼저 아저씨에 비하면 심성은 좋네.’ 그런 줄만 알았다.

아저씨가 하나도 무거운 배낭을 두 개나 짊어진 이유를 알게 된 건 몇 걸음 더 걸어서였다. 열예닐곱으로 보이는 아들이 맨몸으로 걷고 있다. 아들은 심술이 난 듯 얼굴이 퉁퉁 부어 있다. 게다가 아들은 가다 말고 길바닥에 벌렁 드러눕기까지 했다. 그러면 앞서 가던 아버지는 다시 돌아와 아들을 달래 길을 걷는다. 그렇게 몇 걸음을 옮기다 아들은 또 드러눕는다. 아버지는 한참 가다 그런 아들 때문에되돌아오다 우리와 몇 번을 마주쳤다. 우리와 마주칠 때마다 아버지는 슬쩍 웃음을 보이지만 그 웃음이 서글프다. 눈치를 채고 걸음을 빨리 해서 우리가 앞서가다 보니 급기야 뒤편에서 아들을 꾸짖는 아버지의 고함 소리가 들려온다. 얼마나 속상할까? 그런 아버지가 딱해 보였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유럽인들에게 이 길은 비행 청소년의 수행길로도 이름난 곳이라고 하는데, 생각해 보니 이 부자도 그일환이 아닌가 싶다. 아들의 배낭……, 버릴래야 버릴 수 없는 숙명의 짐이다.

어둑어둑해질 무렵 론세스바예스의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높은 천장 밑에 2층 침대가 빽빽하게 놓인 모습이 수용소 같기도 해서 처음엔 어리둥절했다. 우리가 좀 늦게 도착한 터라 100여 개의 침대는 거의 다 찼다. 물집 치료 도구를 갖춰 놓은 자원봉사자 테이블에 가서 자리를 배정 받으려 했더니 먼저 사무실에 가서 돈을 내고 증명서에 도장을 찍고 오란다. 사무실에서 숙박 등록을 하고 이곳에서 가 리비 껍데기?1.5유로?를 사서 배낭에 달았다. 산티아고 길을 걷는 이들은 이 가리비 조개껍데기를 배낭에 매달고 걷는다. 일종의 순례자 표시다. 사무실에서 나오는데 아버지 속을 어지간히도 썩이던 말썽꾸러기 아들과 마주쳤다. 그전엔 마주쳐도 인사 한번 하지 않던 녀석이 우리를 보더니 반가워하며자기 아버지를 못 봤느냐고 묻는다.
“너 찾으러 갔는데 못 봤니?”
못 봤다며 아들은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다. 그렇게 말썽을 피우던 아들 또한 아버지가 안 보이니 겁이 난 모양이다. 그게 핏줄이지 싶다. 핏줄을 떠나 나도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그러던 중 저만치서 아버지가 오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더 반가워서 “너희 아버지 저기 오신다.” 하며 아들에게 얘기해 주고 쑥스러워하는 아들보다 먼저 뛰어가서 “아저씨 아들, 저기 있어요.”라고 큰 소리로 외쳐 주고 나니, 내 속이 다 편해진다. 아무튼 부자지간에 이 길을 걸으며 좋은 결과를 이루길 바랄 뿐이다.
욕심이 많으면 짐도 많아지는 법.... 우리에게 배정된 자리는 2층 침대. 고소공포증이 있는 돌다리가 내심 걱정이됐는지 자원봉사자에게 묻는다.
“침대 칸막이가 없는데 자다가 떨어지면 어떡해요?” 봉사자가 빙그레 웃으며 말한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당신이 이곳에서 잠자다가 떨어진 최초의 순례자가 될 거요.”
안전하단 말보다 그의 유머러스한 한마디가 첫날 밤 알베르게의 낯설음을 싹 잊게 해 주었다.
짐을 풀어 놓고 샤워실이 있는 지하로 내려갔다. 화장실 옆에 딸려 있는 작은샤워실은 비닐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고 옷을 벗고 입을 때는 나와서 입어야 하는 관계로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사람들이 쳐다보는 게 쑥스러웠지만 아무도 내게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저녁은 8시 30분에 알베르게 앞에 있는 식당에서 순례자들이 다 같이 모여 식사를 하는데 그 시간도 독특했다. 국적도 제각각이고 서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인데도 같은 길을 걷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두들 친근감을 나타내는 표정이다.

서로에 대한 호기심에 많은 대화가 이어진다. 내 옆자리엔 네덜란드 아저씨가 앉았다. 휴가냐고 물으니 “에브리데이 휴가”란다. 매너도 좋고 인상도 좋아 보이는 아저씨는 일을 그만두고 길을 떠났다고 한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대뜸 히딩크 얘기부터 꺼낸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이곳을 어떻게 알고 왔느냐”고 묻는다. 이런 질문은 이후에도 몇 번을 더 받았다.

바둑판을 들고 온 프랑스 청년 옆에 앉은 돌다리는 간간히 영어 단어를 섞어가며 그림까지 그려 가며 그럭저럭 바둑 얘기를 이어간다.? 이후 만날 때마다 바둑을 두자고 한다.? 우리 둘 사이에 앉은 시어머니는 묵묵히 음식만 드신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 “말이 안 통하니 이 순간 내 입의 용도는 오로지 먹는 데만 쓰이는 구나.” 식사를 마치고 알베르게에 들어오니 여기저기 웅성거리는 소리가 건물 안을 가득 메워 정신이 없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밤 10시가 되니 불이 일제히 꺼지면서 사방이 쥐 죽은 듯 조용하다. 몸을 뒤척일 때마다 침낭 스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 되도록이면 움직이지 않으려 참고 또 참으려니 그것도 고역이다.
욕심이 많으면 짐도 많아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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