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PRO VOBIS ET MULTIS"

유수연2009.02.20
조회63
2009년 2월 16일

김수환 추기경님의 선종.

로마를 다녀온 터라 교황님들의 무덤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되었는데
김수환 추기경님의 모습을 유리관으로 만들어 조문객들에게 공개하였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교황 베네딕토16세의 이름으로 거행된 장례미사와 입관 절차.
난 입관식 이후에 가서 유리관을 통하여 볼 기회는 없었으나,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의 가시는 길을 조금이나마 닦아놓고 왔다는 데에 보람이 있었다.

계획하고 간 것이 아니라, 당일날 결정한 거라 자주색 털달린 자켓을 입고 간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지만
그래도 조문은 드리는게 맞는 것 같아 줄을 서서 들어갔다.

어제만 해도 3시간 넘게 기다려서 들어갔다고 하던데, 유리관 대신 나무관으로 바뀐 탓인지
줄이 상당히 짧아 5분도 안되서 들어가게 되었다.
오히려 연도 줄이 훨씬 길었다.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명동성당이 조문객들로, 연도하는 신도들로 가득핬고
그들의 연도 소리는 성당 내에 잔잔하게 그러나 힘차게, 꽉차게 울려퍼졌다.

나에겐 연도도 처음 접하는 거였고, 이 분위기 자체가 낯설었지만
일인당 주어진 시간이 3초 남짓밖에 되지 않아 어색함을 느낄 새도 없이
관  앞에서 성호경을 긋고 앞길을 빌어드리고 바로 나왔다.

수녀님들, 외국인들, 우리나라 신도, 비신도들로 성당이 가득찬 느낌.
그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호위를 받으며 하늘로 올라가셨다.

발길을 돌려 나오면서 방명록에 유수연 발렌티나라고 적고 괄호로 예비신자라고 적을까 살짝 망설였지만,
4월이면 받을 세례, 내가 하늘나라에 가서 추기경님을 뵐 때면 당당하게 발렌티나가 되어있을테니-하고 생각하며 그냥 나왔다.

마침 사람들이 꼬스트홀에서 추모미사를 마치고 나오고 있었다.
매30분마다 거행되는 미사인데, 시간도 맞고 해서 나도 무엇엔가 이끌려 들어가게 되었다.

성가책도 없고, 주보도 없었지만, 역시나 보편성 덕분에
전국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별 무리없이 미사를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미사를 집전하신 신학교에 계신 신부님은
김수환 추기경님을 유치원 때 처음 뵙었다고 한다.
그리고 추기경님에 대해 회고하면서
47세에 이른 나이에 가장 높은 위치의 추기경님이 되셔서도
40여년간 단 한번도 권위적다는 이야기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자신을 낮추었고
인자한 웃음을 띄우시며 항상 껄껄 웃는 분이셨다고 했다.
6,10 항쟁 때 새벽에 수녀님들, 신부님들에게 전화하여 옷입고 다 나오라고,
성당앞으로 다 모이라고 하시고는 당신께서 맨 앞에 서서
나를 먼저 밟고, 신부들을 밟고, 수녀들을 밟고 가라고 하셨다고 한다.
추기경님은 특히나 청년들을 좋아하셨다고 한다.
청년 피정 때면 명동성당에 들려서 잘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인사를 하고 가는데
그 때마다 껄껄껄 웃으시며 좋은 말씀을 해주셨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몸소 안구기증을 통해 천주교 신자들에게 모범이 되신 것이다.
안구기증을 하는 사람을 보면 개신교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도 처음 안 사실이다.
안구기증이라고 해서 눈 알을 다 빼는 것이 아니라, 딱 써클렌즈 만한 눈동자 위 얇은 부분만 샥 도려내는 것이라고 하니, 많이들 해서 추기경님의 뒤를 쫓자고 하셨다.
내가 한국사람임이 이렇게 자랑스러울 때도 있구나 싶었다.

내 바로 옆에 있는 여자분이 눈물을 흘렸다.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도 났다.


그리고 성체성사가 시작되었다.
성가책이 없으니, 아는 성가도 아니니 입도 뻥긋하지 못하고
예비자니까 나가지는 못하고 자리에 앉아있었는데
내 눈에 한 할아버지께서 거동이 불편하시고 눈도 잘 못뜨시는 분께서
힘들게 앞으로 나가시며 한 소절. 딱 한소절을 중간에 부르셨는데
그 모습에 그만 울컥 눈물이 났다.

나의 눈물을 빼낸 것은
조문도, 연도도, 다른 사람들의 눈물도 아니었다.

연로하신 한 할아버지의 진심어린 발걸음이었다.

가톨릭. 천주교를 알아가면서
가장 피부로 느끼는 것이 남녀노소, 직위의 높고 낮음을 불문하고
다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보편성'을 모태로 하여 하나로 모일 수 있는 힘.

그것이 김수환 추기경님의 장례미사를 '국가, 국민葬' 으로 만든 힘인 것 같다.


추기경님이 남기신 말.
'너희와 모든이를 위하여'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

 



주님 그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