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에 관하여..

김현섭2009.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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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아침 사무실에서 신문을 읽다가, 우리나라 자살률이 OECD국가 중에서 1위라는 기사를 보았다. 별걸 다 1위를 하는군 하면서 아침에는 무심코 다른 기사를 읽어내려 갔었는데.. 일찍 잠자리에 들어 게시판에 올릴 새 글 을 머리 속으로만 썼다 지웠다 하는 와중에 퍼뜩 이라는 단어가 스쳐 지나갔다.

- 나는 태어나서 지금껏 자살충동을 느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려서 부터 워낙에 내 뜻대로 살아온지라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별반 스트레스가 없었다. 고2때, 1학기말 고사 3일째 시험을 보다가 문득 내가 공부로 전교 1등을 하기는 물건너 갔으니깐 차라리 전교 꼴등을 해보자 하는 생각을 하고는.. 그날 시험부터 0점을 위해 시험을 보았었다. 그때의 그 홀가분함이란.. 그리고 성적표를 받는 날, 나는 교무실로 불려가 담임선생님한테 엄청 맞았었다. 무엇 때문에 반항하는거냐고, 시험을 다시 봐야 한다는 등 한참을 맞았었다. 그리고는 성적표를 받아보는데 어찌나 허탈하던지.. 반석차는 65분의 65로 꼴등을 했는데 전교석차는 1029분의 1022로 내 뒤에 7명이나 더 있었던 것이었다. 게다가 0점은 하나도 없고 최저점수가 10점 이었으니 그 허탈감이란.. 나중에 대학원서 쓸 때는 그 한 번의 객기가 내신성적을 어찌나 떨어트렸는지.. 그 후회감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으랴..

- 내가 오늘 옛 기억을 떠 올리는 것은, 성적비관으로 자살하는 학생들이 한 해에 꽤 된다고 해서이다. 물론 그런 객기를 부리고서도 나는 즐겁게 잘 살고 있나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살은 돌이킬 수 없는 객기이며 결정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 기독교 교리에서는 자살행위를 그야말로 금단의 열매, 즉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은 행위 만큼이나 죄악시 한다. 그것은 살인보다 열배 스무배 큰 죄라고 나는 알고 있다. 그 이유를 조금 전에 문득 깨달았다.

- 하나님 앞에서는 용서받지 못할 죄가 없다. 설령 자살로 생을 마감한 히틀러 일지라도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죄를 회개하면 설령 전범재판에서 사람들에게 교수형을 당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죄가 없어지는 것이다. 죄의 속성은 인간대 인간으로 결정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규범이니깐.. 살인하지 말라는 제6계명을 어겼다면, 이미 죽은 사람의 피값을 누구에게 지불하는가.. 그 피 값은 하나님이 친히 받으시리라 생각한다.

- 자살은 회개할 기회를 없이 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커다란 죄악이다. 인간이 짓는 모든 죄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로 회개하고 개선을 노력한다면 삭감 내지는 탕감되는 것으로 나는 알고 있다.

- 가령 어떤 학생이 15층에서 성적비관을 이유로 뛰어 내린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그는 불과 0.1초도 안되서 틀림없이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서는 그 결정을 되돌리고 싶지만, 0.2초도 안되서 지면에  충돌하여 몸을 누이게 될 것이다. 그 0.3초가 일평생처럼 길게 느껴질 것이다. 어쩌면 그 마지막 순간에 살아있는 우리로서는 경험하지 못할 기이한 영적 체험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은 쓸쓸히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고 죽음에 이르렀듯이, 그 모든 것들을 표현할 기회를 두 번 다시 얻지 못할 것이다.

- 한강 다리 위에서 굳은 결심으로 투신 자살하는 사람도 막상 몸에 물이 닿는 순간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는 살려고 바둥대지만 이내 밑으로 몸이 가라앉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물에 빠져 죽을 결심을 하는 사람은 대개 수영을 전혀 못하니깐, 한모금 한모금 물을 마시면서 살고 싶어서 바둥대다가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눈 앞의 죽음, 그 순간의 오만가지 생각과 함께 찾아드는 절실한 후회와 함께..

- 목을 매달아 죽는 사람도 그 마지막 순간에는 자신이 매어단 줄을 잡고 어떻게든 살려고 바둥대다가 생을 마감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자살의 결정과 그 행위 이면에는 이런 말 못할 사연들이 반드시 있으리라고 나는 확신한다.

- 예수께서 유다에게 차라리 너는 태어나지 않은 것이 나을 뻔 하였다고 말씀하신 것은, 유다의 자살을 이미 아셨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비록 그리스도 예수를 은 30냥에 팔았던 유다일지라도, 하나님 앞에 자신의 행위를 진실로 회개하고 탕자처럼 돌아왔다면.. 그 모든 죄는 흰 눈처럼 씻기워졌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 자살은 하나님 앞에 회개할 기회마저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장 어리석고 무의미한 헛된 결론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 전에 써 두웠던 글.. 고최진실씨의 자살 소식을 접하고서는 왜?? 라는 슬픔에 안타까웠다. 동생 최진영씨와 어린시절 함께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는데.. 이젠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서라도 사회와 문화 의식을 개혁할 필요를 절감한다. 더불어 교회에서 이러한 운동의 구심점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