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이성지(김대건 신부님이 세례를 받은곳)

김민희2009.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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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경기 용인시 양지면 남곡리 632 용곡 은이 마을

전화: 양지 성당(0335-38-3374)

 

 

1831년 조선교구가 설립되고 1836년 초에 모방(Maubant나)신부가 입국하여 곧 서울과 경기도 충청도 지방을 다니면서 전교 활동을 폈다.

그때 그는 1836년 6월 초순 경기도 용인의 은이공소에 가서 포교 활동과 성사 집전하는 중에 은이공소 회장 김제준(이냐시오)의 아들 *김재복(대건)에게 "안드레아"라는 본명으로 세례성사를 주고 그를 신학생으로 선발하였다.

 

 

1836년 7월 11일에 서울에 올라와 이미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서울에 와서 공부를 하고있던 충청도 홍주 다랫골에 사는 최방제(방지거/프란치스코)와 경기도 과천교우 최양업(도마/토마스)와 같이 한문과 라틴어 공부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박해 때문에 이들을 국내에서 신학공부를 시킬 수 없다고 판단한 모방(Maubant) 신부는 이 세 소년을 중국 마카오의 파리 외방전교회에 보내 공부를 계속 시키기로 했다.

 

 

초대 조선교구장 브뤼기에르 주교님께서 '요동신학교'를 세워 조선인 사제를 양성하려 했으나, 갑작스러운 서거로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요동 지방과 조선의 사정을 체험하신 모방 신부는 요동 땅에 조선인 신학교를 세우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것으로 보고했고, 그 이유는 요동에 신학교를 세울 경우 중국어가 일종의 필수 과목이 되기에 라틴어 학습이 늦어지고, 조정이 이를 알게 될 경우 조선교회가 위험에 처해질 것 같아서, 파리외방전교회 극동 대표부 책임자인 르그레즈와 신부님 지시에 따라 마카오 유학길에 오르게 된다.

 

 

세 소년들은 **1836년 12월 2일 출발에 앞서 성서에 손을 얹고 장차 조선포 교지의 장상과 신학교 교장에게 절대 순종할 것을 선서한 다음 이튿날인 12월3일 모방 나신부님의 장도를 축복하는 마지막 강복을 받고 정하상, 현석문, 조신철, 이광열 등 네 회장님의 안내를 받으며 붕정 만리 유학 길에 올랐다. 그 달 28일에는 무사히 의주 변문에 도착하여 압록강을 건너 중국 땅을 밟았다

 

 

 

-설명-

*

"여보,나는 사실 이제야 말이지,지난 2월에 과천 수리산 기슭에 사시는 최영환 어른댁의 최양업 도마가 신학교 유학생으로 선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대건이 생각을 무척 많이 했다오.부럽기도 하고,우리 대건이는 무엇이 부족해서 모방신부님이 관심을 두시지 않나 싶어서 여러 모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란 말이오."

최양업은 김제준의 어머님 이씨의 고모의 맏증손자였다.김대건과는 동갑나기였고 촌수가 멀기는 해도 형제뻘이었다.

"저도 그랬어요.우리 대건이가 내 아들이래서 하는 말이 아니라 용모 반듯하지요.총명하지요,또 신앙심 미더운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더 이상 무얼 바란단 말이예요.안 그래요?지난 3월에는 또 홍성에 사는 최한지씨 댁의 최방제가 유학생으로 뽑혔다는 말을 듣고 참말이지 저도 속이 끓더라구요.마음대로라면 대건이를 데리고 당장 모방 신부님께 달려가고 싶더라구여.꾹 참고 기회가 오기를 천주께 간구했지요."

김제준과 그의 아내 고씨는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걸음을 총충히 떼었다.김대건 은 가다가다 동생 난식을 들처업었다.언덕을 하나 넘었다.은이 공소가 그림처럼 내려다 보였다.은이 공소까지 5릿길밖에 되지 않는 거리가 이날은 꽤 멀고 지리하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신학생을 두 사람만 뽑고 그만두실 예정이었나 봐요.그런데 신학 공부가 원래 어렵고 신부가 되기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어서 생각을 달리 하신 모양이예요.세 사람쯤 보내야 그 중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이 겨우 신부가 되어 돌아올 거라는 생각이 드셨나봐요."

고씨는 모방신부의 지대한 관심 속에 김대건이 신학교 유학생으로 발탁되었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꿈이 아니고 현실임을 누차 확인하면서 천주의 은혜를 실감했다.

오두막은 은이 공소에는 교우 열댓 명과 모방 신부가 벌써 모여 있었다. 

**

모방은 유학생으로 선발된 세 소년에게 서약서를 내밀었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을 인하여 하노라.

"나에게와 또한 나의 뒤를 이어 조선 교회를 다스릴 목자들에게 순명과 복종을 맹세하느냐?"

"맹세합니다."

"나에게와 또한 나의 뒤를 이어 조선 교회를 다스릴 수석 성직자들에게 장상(長上)의 허가 없이는 그들이 지정하지 않은 다른 지방이나 다른 회에 가지 않을 것을 맹세하느냐?"

"맹세합니다."

"외방 전교회 신부,조선 선교사,조선 교회의 수석으로 있는 나에게 아래에 서명한 쇼년들,즉

최 방지거-최 야고버와 황 안나의 아들

태생지:충청도 홍주 다랫골

최 도마-최 방지거와 이 마리아의 아들

태생지:경기도 과천 수리산

김 안드레아-김 이냐시오와 고 울술라의 아들

태생지:충청도 당진 우각면 송산리(솔뫼)

이들이 주 예수 십자상 앞에서 성경 위에 손을 얹고 1836년 12월 2일에 서약하였음."

세 소년은 조금도 주저하는 기색이 없이 한 사람 한 사람 나서서 문서에 서명했다.

"너희들은 앞으로 1주일 뒤에 서울을 떠나게 된다.동행할 사람은 정하상.조신철.김 프란시스코 그리고 또 다른 교우 열 분 정도이다.그리고 중국인 유방제 신부가 마침 중국으로 귀국하게 되어 동행하게 됐다.그런 정도면 어린 너희들으리 돌보아 주실 분들로서는 믿을 만하다고 생각된다.그분들의 말씀에 잘 따르고 천주께 의지하면서 기구 많이 드려라,알겠지?"

"네,신부님."

세 소년은 일제히 대답하면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소설 김대건 한상윤의 장편소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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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일에 찾아 갔을떄에는 십자가에 길쪽 공사중이어 올라가 보지는 못했다.

골배마실성지를 둘러보고 오는 길이라 좀 급하게 돌아 보았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한번더 들러 볼까 합니다~

 

이렇게 이글을 올리면 대략 이부근에 김대건 신부님에 발자취는 돌아 보지 않았나 싶습니다~(미리네 성지 한곳이 더 있었군여^^)

간단한지도 하나 올렸으니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즐거운 하루들 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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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은이성지주변약도_1.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