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중산간 들녘은 찔레꽃 세상이다. 5월의 교감신경을 제법 자극한다. 콧구멍 속으로 들어와 가슴으로 내려온 저 꽃향기에 등급을 매길 수 없다. 하얀꽃 찔레꽃 곱고 선한 꽃.
화창한 봄날을 무시하고 내 가슴에 비가 내렸다면 5월의 한라산 자락을 떠도는 혼백 때문일 것이다. 얼마나 많은 섬사람들이 이 들판에서 가슴을 쓸어내렸을까. 지천에 뿌려진 찔레꽃과 찔레순이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절망의 밥이 되었을까. 제대로 삼키기라도 했을까. 서글픈 제주 4월의 역사를 지나 5월에도 산 속으로 달려온 그 사람들.
그로부터 59년이 지났지만, 여기 이 들녘은 여전히 비운의 해방구다. 찔레꽃, 그날의 아우성으로 슬픈 역사를 잇는 것일까. 쭈그려 앉아 볼륨을 높이고 장사익의 을 듣는다.
장사익, 그의 노래는 초근목피로 보릿고개를 넘던 시절의 그 찔레꽃을 닮았다. 봄의 진달래가 온 산을 뒤덮을 무렵 길섶마다 산모퉁이마다 새하얗게 속살을 드러내던 흔하디 흔한 들꽃. 게다가 배가 고픈 우리 민족에게 꽃향기 하나로 오그라지는 창자를 더욱 아프게 자극했던 녀석.
그의 노래를 들으면 눈물이 난다. 그 자신도 1992년 이 노래를 만들 무렵, '삶의 바닥'에 앉아 있었다. 그 해 겨울이 가고, 봄의 뜨락에서 '별처럼 슬프고,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을 만났다. 그 옛날 조상들이 가난을 기대던 가슴 시린 그 꽃에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면 슬픔의 힘이 아니었을까. 장사익은 그렇게 노래를 만들었다. 그러나, 슬픔을 씻어낸 뒤 새로 피어나는 찔레꽃은 더이상 슬픔이 아니다. 한바탕 땀을 쏟은 뒤 누리는 개운함과 후련함 같은 것일지도. 언젠가 공연을 앞두고 그가 한 말이 기억난다. "슬픔은 아름답습니다. 가난은 맑습니다. 찔레꽃은 그렇답니다."
그의 노래는 싸하다. 숨막히게 하는 떨림과 울림이 있다. 맺힘과 풀림이 있다. 그는 영락없이 소리꾼이다. 붉은 장미의 지독한 아름다움보다 있는 듯 없는 듯 들녘에 피었다 지는 찔레꽃처럼 문명의 저 편에 여전히 찔레꽃으로 서 있는 그. 날개를 달고 높고 푸른 하늘을 날아봤으면 좋겠다는 그. 소시민의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에서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까지 선한 것과 선하지 않은 것을 고를 줄 아는 그.
그리고 기억한다. 1998년 제주4·3항쟁 50주기 추모 현장에서, 2000년 마산 3·15 의거 80주년 기념식에서, 2002년~2003년 효순·미선 추모 및 반전평화 촛불시위 마당에서, 수차례 이어진 새만금 갯벌 살리기 연대집회에서 그가 토해했던 노래를, 몸부림을. 그래서일까. 불혹을 넘겨 시작한 그의 음악인생은 참 멋지다. 가슴 저미는 감동은 삭지 않는 참나무처럼 단단하게 오래 이어질 것 같다.
들꽃에 눈을 맞추다가 한라산 자락에서 기어이 길을 잃었다. 죄를 묻는다면 선한 꽃향기를 지천에 뿌린 찔레꽃 이 넘에게 해야 할 듯
하얀꽃 찔레꽃 순박한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울었지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
하얀꽃 찔레꽃 순박한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울었지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
아 ~ 찔레꽃처럼 울었지 찔레꽃처럼 노래했지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물었지)
찔레꽃처럼 춤췄지 찔레꽃처럼 사랑했지 찔레꽃처럼 살았지 찔레꽃처럼 울었지 당신은 찔레꽃 찔레꽃처럼 울었지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
찔레꽃[장사익]
제주 중산간 들녘은 찔레꽃 세상이다. 5월의 교감신경을 제법 자극한다. 콧구멍 속으로 들어와 가슴으로 내려온 저 꽃향기에 등급을 매길 수 없다. 하얀꽃 찔레꽃 곱고 선한 꽃.
화창한 봄날을 무시하고 내 가슴에 비가 내렸다면 5월의 한라산 자락을 떠도는 혼백 때문일 것이다. 얼마나 많은 섬사람들이 이 들판에서 가슴을 쓸어내렸을까. 지천에 뿌려진 찔레꽃과 찔레순이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절망의 밥이 되었을까. 제대로 삼키기라도 했을까. 서글픈 제주 4월의 역사를 지나 5월에도 산 속으로 달려온 그 사람들.
그로부터 59년이 지났지만, 여기 이 들녘은 여전히 비운의 해방구다. 찔레꽃, 그날의 아우성으로 슬픈 역사를 잇는 것일까. 쭈그려 앉아 볼륨을 높이고 장사익의 을 듣는다.
장사익, 그의 노래는 초근목피로 보릿고개를 넘던 시절의 그 찔레꽃을 닮았다. 봄의 진달래가 온 산을 뒤덮을 무렵 길섶마다 산모퉁이마다 새하얗게 속살을 드러내던 흔하디 흔한 들꽃. 게다가 배가 고픈 우리 민족에게 꽃향기 하나로 오그라지는 창자를 더욱 아프게 자극했던 녀석.
그의 노래를 들으면 눈물이 난다. 그 자신도 1992년 이 노래를 만들 무렵, '삶의 바닥'에 앉아 있었다. 그 해 겨울이 가고, 봄의 뜨락에서 '별처럼 슬프고,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을 만났다. 그 옛날 조상들이 가난을 기대던 가슴 시린 그 꽃에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면 슬픔의 힘이 아니었을까. 장사익은 그렇게 노래를 만들었다. 그러나, 슬픔을 씻어낸 뒤 새로 피어나는 찔레꽃은 더이상 슬픔이 아니다. 한바탕 땀을 쏟은 뒤 누리는 개운함과 후련함 같은 것일지도. 언젠가 공연을 앞두고 그가 한 말이 기억난다. "슬픔은 아름답습니다. 가난은 맑습니다. 찔레꽃은 그렇답니다."
그의 노래는 싸하다. 숨막히게 하는 떨림과 울림이 있다. 맺힘과 풀림이 있다. 그는 영락없이 소리꾼이다. 붉은 장미의 지독한 아름다움보다 있는 듯 없는 듯 들녘에 피었다 지는 찔레꽃처럼 문명의 저 편에 여전히 찔레꽃으로 서 있는 그. 날개를 달고 높고 푸른 하늘을 날아봤으면 좋겠다는 그. 소시민의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에서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까지 선한 것과 선하지 않은 것을 고를 줄 아는 그.
그리고 기억한다. 1998년 제주4·3항쟁 50주기 추모 현장에서, 2000년 마산 3·15 의거 80주년 기념식에서, 2002년~2003년 효순·미선 추모 및 반전평화 촛불시위 마당에서, 수차례 이어진 새만금 갯벌 살리기 연대집회에서 그가 토해했던 노래를, 몸부림을. 그래서일까. 불혹을 넘겨 시작한 그의 음악인생은 참 멋지다. 가슴 저미는 감동은 삭지 않는 참나무처럼 단단하게 오래 이어질 것 같다.
들꽃에 눈을 맞추다가 한라산 자락에서 기어이 길을 잃었다. 죄를 묻는다면 선한 꽃향기를 지천에 뿌린 찔레꽃 이 넘에게 해야 할 듯
하얀꽃 찔레꽃 순박한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울었지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
하얀꽃 찔레꽃 순박한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울었지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
아 ~ 찔레꽃처럼 울었지 찔레꽃처럼 노래했지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물었지)
찔레꽃처럼 춤췄지 찔레꽃처럼 사랑했지
찔레꽃처럼 살았지 찔레꽃처럼 울었지
당신은 찔레꽃 찔레꽃처럼 울었지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