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마민

배상진2009.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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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마민! "나는 믿는다"
 
  유태인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그들의 최대 명절 유월절엔 꼭 등장하는 노래 한 곡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니마민'이라는 노래입니다. 히브리어로 '나는 믿는다'라는 뜻입니다. 이곡이 작곡된 곳은 놀랍게도 유태인 최대 학살 현장이었던 아우슈비츠 수용소였습니다. 이 곡을 작사하고 작곡한 것도 모두 그곳에 감금된 불행한 유태인들이었습니다. 이 곡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우리는 구세주가 오시리라는 걸 믿고 있다. 그러나 구세주는 조금 늦게 오신다." 그들은 이 노래를 부르며 가스실로, 생체실험실로, 총살현장으로 행진해갔습니다. 죽음의 극한 상황 속에서 그들이 입을 모아 불렀던 이 노래는 지금도 유월절 식탁 위에서 유태인의 후손들에 의해 끊임없이 불려지고 있습니다.

  어느날 젊고 유능한 한 유태인 외과의사가 아우슈비츠에 수감되었습니다. 그는 이 노래를 부르며 가스실과 실험실을 향해 죽음의 행진을 하고 있는 동족들의 행렬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도 이 노래를 부르며 머지않아 가스실로 끌려가게 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노동시간에 이 외과의사는 흙 속에 파묻힌 깨진 유리병 조각을 숨겨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그는 매일 그 유리병 조각의 날카로운 파편으로 면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그 날부터 가사를 이렇게 고쳐 불렀습니다. "난 구세주가 오시리란 걸 믿고 있다. 주님이 늦게 오시는 것이 아니라 다만 내가 성급할 뿐이다" 그는 죽음의 극한 상황 속에서 아침과 저녁 두 차례 면도를 했습니다. 그를 제외한 모든 남자들은 죽음의 목전에서 삶의 희망을 포기한 채 수부룩하게 자란 수염으로 흉측한 얼굴을 하고 있을 때 그 외과의사는 삶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말끔한 얼굴과 초롱초롱한 눈빛을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후가 되면 나치들이 유태인들 중에서 그 날 처형자들을 골라냈습니다. 그들은 외과의사의 턱을 볼 때마다 차마 그를 가스실로 보내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잘 면도질된 파란 턱 때문에 지나치게 싱싱해 보였고 삶의 의지로 넘쳐 있었고 아주 쓸모 있는 인간이라는 선입감을 주었으며 그를 죽이는 것은 아직 이르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동족들은 아우슈비츠에 들어서는 날부터 이미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습니다. 나치들은 그 앞에 서 있는 무리들을 바라볼 때, 이미 나이보다 20세 정도는 더 늙어버린 낙엽 같은 사람들을 가차없이 가스실로 보냈습니다. 유태인들은 저항 없이 가스실로 갔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동료들이 죽어갈 때마다 외과의사는 자신의 비망록에 이렇게 썼습니다. "고통 속에서 죽음을 택하는 것은 가장 쉽고 나태한 방법이다. 죽음은 그리 서두를 것이 못된다. 죽음 앞에서 살아남으려고 하는 의지, 이것이야말로 주님이 원하시는 새로운 창조다"
  그 외과의사는 결국 나치가 완전히 패망할 때까지 살아남았습니다. 살아서 아우슈비츠를 떠날 때 그의 소지품은 단 두 가지였습니다. 그것은 비망록과 유리 조각이었습니다. 정작 인간을 죽게 하는 것은 질병이 아니라 절망과 근심입니다.
  그 외과의사가 병조각으로 살을 깎듯이 매일 면도질을 한 것은 살아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주님은 결코 늦게 오시지 않는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다만, 성급한 인간들이 주님을 기다리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대다수의 유태인들은 피할 수 없는 죽음에 순순히 복종함으로써 그것을 신의 뜻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외과의사는 죽음의 극한 상황 속에서 오직 살아남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죽기보다 더 어려운 삶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살아서 당당히 아우슈비츠를 떠나던 날 이렇게 외쳤습니다. "가스실로 떠난 동족들은 한 번 죽는 것으로 족했다. 그러나 난 살아남기 위해서 매일 죽지 않으면 안되었다"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의 도움을 기다렸던 유태인 의사는 말합니다. “하나님의 도움은 결코 늦는 법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너무 성급할 뿐입니다.”

  사도 바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배가 미항이라는 항구를 떠났을 때 바다엔 아름답고 감미로운 남풍이 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곧 그 남풍을 뚫고 몰려온 것은 '유라굴로'라는 무서운 광풍이었습니다. 고통은 마치 광풍 유라굴로와도 같습니다. 그것은 갑자기 순한 남풍을 앞세우고 역류하듯 불어 닥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의 선박 위에서 온갖 경험과 지식과 재주, 그리고 재물을 바다 속에 던져 버리도록 요구해 옵니다. 그러나 모두 내어던진 후에도 큰 광풍은 바다위에 그대로 머물러 있고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않는 날이 계속되었습니다.
   사도행전의 기자는 그 상황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더라"그러나 주님은 언제나 그 마지막 상황에서 일하십니다. 그리하여 바울은 주님의 계시대로 선언합니다. "이제 안심하십시오. 내가 로마에 가기를 여러차례 기도해왔기 때문에 여러분 모두를 나와 함께 구해 주시겠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곧 한 섬에 도달할 것입니다." 삶은 그 자체가 광풍 유라굴로입니다. 유태인에겐 아우슈비츠가 바로 광풍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광풍 속에서도 주님은 언제나 새로운 한 섬, 생의 정박지를 이미 마련해 놓고 계십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 속에서도 저 아우슈비츠에서 유태인들이 불렀던 아름다운 영창, '아니마민'은 계속됩니다. "주님은 결코 늦지 않으신다. 다만 우리가 성급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