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서울 출생. 숭의여자고등학교 졸업 후, 클래식 다방 DJ, 번역 등의 경험을 쌓다가 특별장학생으로 홍익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타대학교 언론대학원에서 국제홍보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국제 홍보회사 버슨 마스텔라 한국 지사에서 3년간 근무, 타고난 능력으로 고속 승진의 길을 밟을 수 있었으나 15살에 돌아가신 아버지와 약속한 '세계일주'의 꿈을 접지 못해 사표를 내던지고 세계여행길에 오른다. 그리고, 7년. 세계 오지 마을을 다니며 겪은 여행 경험을 책으로 펴낸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전4권)과 해남 땅끝 마을에서 강원도 통일전망대까지 우리 땅을 걸어다니며 쓴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등이 센세이셔널한 반향을 일으키며 인기 저자로 단숨에 급부상한다. 네티즌이 뽑은 인기인 1위, 닮고 싶은 여성 2위, 여성특위가 뽑은 신지식인 5인 중 한 명으로 뽑히기도 한 그녀는 현재 국제 NGO월드비전에서 긴급 구호 활동을 하고 있다. 그녀는 오지를 다닐 때 지키는 세 가지 원칙이 있다고 한다. 육로로만 다닌다, 한곳에서 적어도 일주일 이상 민박을, 한 나라에서는 적어도 한달 이상 있는다, 그리고 생활은 현지인들과 똑같이 한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손님일까 생각하던 눈빛이 어느새 친근하게 바뀌면서 곧 친구가 되어버린단다.
이 책은 이렇듯 그녀가 지난 5년간 밟아온 세계 긴급구호의 현장 보고서이자, 자유롭고 거침없이 사는 우리 인생의 새로운 역할 모델 한비야의 삶의 보고서이다.
차례...
견딜 수 없는 뜨거움으로 - 들어가는 말
한비야, 신고합니다! - 아프가니스탄 아프리카는 더 이상 ‘동물의 왕국’이 아니다 - 말라위·잠비아 당신에게 내 평화를 두고 갑니다 - 이라크 나에게는 딸이 셋 있습니다 별을 꿈꾸는 아이들 - 시에라리온·라이베리아 평화로워 더 안타까운 산들의 고향 - 네팔 세계의 화약고 -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쓰나미는 과연 천재(天災)였을까 - 남아시아 해일 대참사 감자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 북한
가슴 밑바닥에서 울려오는 진군의 북소리 - 나가는 말
후기 부록 - 한비야가 안내하는 긴급구호의 세계
memo...
p. 17. [한비야, 신고합니다! -아프가니스탄 中]
태어날 때부터 전문가인 사람이 어디 있는가.
누구든지 처음은 있는법. 독수리도 기는 법부터 배우지 않는가.
처음이니까 모르는 것도 많고 실수도 많겠지.
저런 초자가 어떻게 이런 현장에 왔나 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베테랑을 비교하지 말자.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만을 비교하자.
나아감이란 내가 남보다 앞서 가는 것이 아니고,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보다 앞서 나가는데 있는 거니까.
모르는 건 물어보면 되고 실수하면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하면되는 거야.
p. 60. ["살아줘서 정말 고마워"]
바드기스를 떠나는 날, 마지막으로 치료급식소를 둘러보고는 압둘에게로 갔다. 힘없이 누워있던 아니가 갑자기 그 조그만
손으로 내 오른손을 잡더니 손가락을 꽉, 개무는 게 아닌가. 따끕하다. 이도 구 개밖에 나지 않은 녀석이 마치
"걱정 마세요. 이제 나 힘 세졌어요"라며 힘 자랑을 하는것 같다.
내 손가락에는 선명한 이빨 자국이 나 있었다. 눈물을 참지 못했다. 바보같이.
p. 61.
현장으로 떠나기 얼마 전에 받은 이메일에서 누군가가 그랬다. 당신들이 목숨 바쳐 일한들, 아프가니스탄에서 고통받는 사람 전체 중
얼마를 돌볼 수 있느냐, 잘해봐야 10만분의 1도 구제하지 못하는것 아니냐고, 맞는 말이다. 나도 그런 생각이 들면 맥이 빠진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되새긴다.
바닷가에 사는 한 어부가 아침마다 해변으로 밀려오는 불가사리를 바다로 던져 살려주었다.
"그 수많은 불가사리 중 겨우 몇 마리를 살린다고 뭐가 달라지겠소?"
동네 사람의 물음에 어부는 대답했다.
"그 불가사리로는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건진 거죠."
이것이 내 마음이다. 그리고 전 세계 긴급구호 요원의 마음이기도 할 것이다.
p. 184~185. [평화로워 더 안타까운 산들의 고향 -네팔 中]
야호, 네팔로 결정됐어!" "와, 좋겠다!" 친구들이 부러워서 죽으려고 한다. "그런데 네팔이 긴급구호 현장이야?" 라며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았다. 긴급구호 현장이 아니면 긴급구호 팀장이 뜰 이유가 있겠는가.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비롯한 산들의 고향으로만 알고 있던 이 나라는 같은 아시아 사람들인 우리조차 무심한 동안 전 국토의 90퍼센트 이상이 공산 반군 손에 들어갔다. 지난 10년, 정부군과 반군 간의 수많은 교전으로 1만여 명의 사상자가 났고, 정부군은 반군에 밀려 수도인 카트만두까지 봉쇄당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 양 세력 틈에 끼여 국민들이 절대적인 기아와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내가 파견 가는 중부 산악 지역은 네팔에서도 가장 열악한 상황으로, 대규모 긴급구호 식량을 배분하고 있는 곳이다.
p. 287. [가슴 밑바닥에서 울려오는 진군의 북소리 中]
오늘도 나는 행군한다. 무엇보다 앞서는 사람 없이 길 없는 길을 가야 하는게 제일 힘들다. 이 길 끝은 과연 정상인가, 내가 가진 식량과 장비는 충분한가, 앞으로 닥칠 크래바스와 암벽은 어떻게 넘어가야 하는 생각으로 때로는 버겁고 무섭기도 하다.
기가 꺾여 자신이 없어질 때마다, 뭄이 지쳐서 한 걸음 한 걸음이 천근만금일 때마다, 그래서 무릂을 꿇고 싶을 때마다 가슴 저 밑바닥에서 울려오는 진군의 북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나에게 내려진 절체절명의 명령 소리가 들린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야ㅣ세계 긴급구호현장 보고서(★★★)
1958년 서울 출생. 숭의여자고등학교 졸업 후, 클래식 다방 DJ, 번역 등의 경험을 쌓다가 특별장학생으로 홍익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타대학교 언론대학원에서 국제홍보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국제 홍보회사 버슨 마스텔라 한국 지사에서 3년간 근무, 타고난 능력으로 고속 승진의 길을 밟을 수 있었으나 15살에 돌아가신 아버지와 약속한 '세계일주'의 꿈을 접지 못해 사표를 내던지고 세계여행길에 오른다.
그리고, 7년. 세계 오지 마을을 다니며 겪은 여행 경험을 책으로 펴낸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전4권)과 해남 땅끝 마을에서 강원도 통일전망대까지 우리 땅을 걸어다니며 쓴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등이 센세이셔널한 반향을 일으키며 인기 저자로 단숨에 급부상한다. 네티즌이 뽑은 인기인 1위, 닮고 싶은 여성 2위, 여성특위가 뽑은 신지식인 5인 중 한 명으로 뽑히기도 한 그녀는 현재 국제 NGO월드비전에서 긴급 구호 활동을 하고 있다.
그녀는 오지를 다닐 때 지키는 세 가지 원칙이 있다고 한다. 육로로만 다닌다, 한곳에서 적어도 일주일 이상 민박을, 한 나라에서는 적어도 한달 이상 있는다, 그리고 생활은 현지인들과 똑같이 한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손님일까 생각하던 눈빛이 어느새 친근하게 바뀌면서 곧 친구가 되어버린단다.
이 책은 이렇듯 그녀가 지난 5년간 밟아온 세계 긴급구호의 현장 보고서이자, 자유롭고 거침없이 사는 우리 인생의 새로운 역할 모델 한비야의 삶의 보고서이다.
견딜 수 없는 뜨거움으로 - 들어가는 말
한비야, 신고합니다! - 아프가니스탄
아프리카는 더 이상 ‘동물의 왕국’이 아니다 - 말라위·잠비아
당신에게 내 평화를 두고 갑니다 - 이라크
나에게는 딸이 셋 있습니다
별을 꿈꾸는 아이들 - 시에라리온·라이베리아
평화로워 더 안타까운 산들의 고향 - 네팔
세계의 화약고 -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쓰나미는 과연 천재(天災)였을까 - 남아시아 해일 대참사
감자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 북한
가슴 밑바닥에서 울려오는 진군의 북소리 - 나가는 말
후기
부록 - 한비야가 안내하는 긴급구호의 세계
p. 17. [한비야, 신고합니다! -아프가니스탄 中]
태어날 때부터 전문가인 사람이 어디 있는가.
누구든지 처음은 있는법. 독수리도 기는 법부터 배우지 않는가.
처음이니까 모르는 것도 많고 실수도 많겠지.
저런 초자가 어떻게 이런 현장에 왔나 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베테랑을 비교하지 말자.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만을 비교하자.
나아감이란 내가 남보다 앞서 가는 것이 아니고,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보다 앞서 나가는데 있는 거니까.
모르는 건 물어보면 되고 실수하면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하면되는 거야.
p. 60. ["살아줘서 정말 고마워"]
바드기스를 떠나는 날, 마지막으로 치료급식소를 둘러보고는 압둘에게로 갔다. 힘없이 누워있던 아니가 갑자기 그 조그만
손으로 내 오른손을 잡더니 손가락을 꽉, 개무는 게 아닌가. 따끕하다. 이도 구 개밖에 나지 않은 녀석이 마치
"걱정 마세요. 이제 나 힘 세졌어요"라며 힘 자랑을 하는것 같다.
내 손가락에는 선명한 이빨 자국이 나 있었다. 눈물을 참지 못했다. 바보같이.
p. 61.
현장으로 떠나기 얼마 전에 받은 이메일에서 누군가가 그랬다. 당신들이 목숨 바쳐 일한들, 아프가니스탄에서 고통받는 사람 전체 중
얼마를 돌볼 수 있느냐, 잘해봐야 10만분의 1도 구제하지 못하는것 아니냐고, 맞는 말이다. 나도 그런 생각이 들면 맥이 빠진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되새긴다.
바닷가에 사는 한 어부가 아침마다 해변으로 밀려오는 불가사리를 바다로 던져 살려주었다.
"그 수많은 불가사리 중 겨우 몇 마리를 살린다고 뭐가 달라지겠소?"
동네 사람의 물음에 어부는 대답했다.
"그 불가사리로는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건진 거죠."
이것이 내 마음이다. 그리고 전 세계 긴급구호 요원의 마음이기도 할 것이다.
p. 184~185. [평화로워 더 안타까운 산들의 고향 -네팔 中]
야호, 네팔로 결정됐어!"
"와, 좋겠다!"
친구들이 부러워서 죽으려고 한다. "그런데 네팔이 긴급구호 현장이야?" 라며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았다. 긴급구호 현장이 아니면 긴급구호 팀장이 뜰 이유가 있겠는가.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비롯한 산들의 고향으로만 알고 있던 이 나라는 같은 아시아 사람들인 우리조차 무심한 동안 전 국토의 90퍼센트 이상이 공산 반군 손에 들어갔다.
지난 10년, 정부군과 반군 간의 수많은 교전으로 1만여 명의 사상자가 났고, 정부군은 반군에 밀려 수도인 카트만두까지 봉쇄당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 양 세력 틈에 끼여 국민들이 절대적인 기아와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내가 파견 가는 중부 산악 지역은 네팔에서도 가장 열악한 상황으로, 대규모 긴급구호 식량을 배분하고 있는 곳이다.
p. 287. [가슴 밑바닥에서 울려오는 진군의 북소리 中]
오늘도 나는 행군한다. 무엇보다 앞서는 사람 없이 길 없는 길을 가야 하는게 제일 힘들다. 이 길 끝은 과연 정상인가, 내가 가진 식량과 장비는 충분한가, 앞으로 닥칠 크래바스와 암벽은 어떻게 넘어가야 하는 생각으로 때로는 버겁고 무섭기도 하다.
기가 꺾여 자신이 없어질 때마다, 뭄이 지쳐서 한 걸음 한 걸음이 천근만금일 때마다, 그래서 무릂을 꿇고 싶을 때마다 가슴 저 밑바닥에서 울려오는 진군의 북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나에게 내려진 절체절명의 명령 소리가 들린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