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이요 동시에 죄인"

김영준2009.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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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 연구가들은 루터가 실제적 의의 관념에서 칭의를 이해하였는지, 아니면 법정적 의 관념에서 칭의를 이해하였는지에 대하여 논쟁을 해왔다. 칼 홀은 루터가 칭의를 실제적 의미에서 해석했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칭의의 순간에 하나님이 죄인을 의롭게 하고, 최후에 하나님과의 사귐을 통해 실제적으로 의롭게 된 사람을 그렇게 인정한다고 하였다. 반면 칼 홀에 반대하는 사람은 루터의 칭의론을 법정적 의미에서 해석하였다. 즉 루터는 칭의를 실제로 의로와지는 것이 아니라 의로운 것처럼 간주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래서 칭의 이후의 삶은 의롬게 되어가는 과정이 아니라 죄인인 동시에 의인이다. 이러한 해석의 차이는 루터의 신학이 점진적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루터가 로마서 강의를 하던 1515년 경부터 하나님의 의를 인간을 심판하고 처벌하는 의가 아닌 우리를 의롭게 하는 의로 새롭게 성찰하면서 칭의를 하나님의 선물로 이해하며 어거스틴의 신학을 재발견하였다. 그리고 루터는 어거스틴과 마찬가지로 로마서 강의에서 칭의를 그리스도의 의에 참여하는 전유로 이해하여 실제적인 의미로 해석하였다. 그러나 1518-1519년 이후 루터는 그리스도의 외래적 의를 강조하며 전가로서의 칭의를 명백히 해나갔다. 즉 루터는 칭의를 그리스도의 의가 전가되어 의롭다고 선언받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루터는 이러한 신학적 성찰 위에서 구원을 이해하였다.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의로움의 선언이 구원의 근원이라고 보았다. 죄인으로서의 인간을 향하여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화해자로 내세웠다. 그래서 인간은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의로움의 선언을 받는다. 이 때에 인간에게 임하는 그리스도의 의는 인간 안에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외부에 머무르며 죄를 덮어 사면시킨다. 이것은 그의 "두가지 종류의 의"에서 우리에게 임하는 그리스도의 의의 외래적인 성격을 강조하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신앙은 이러한 은혜의 사역을 체험하는 기관이다. 루터는 빈번하게 신앙은 의롭게 되기 위한 조건이 아니며, 신앙으로 생기는 선행 또한 의로와 지는 것과 관련이 없다고 강조했다. 신앙은 구원을 위한 예비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칭의의 수용기관이다.

신앙으로 칭의를 체험한 인간은 그 결과로 새로운 변화를 맞게 된다. 루터는 변화된 삶을 simul iustus et peccator (의인이며 동시에 죄인)라고 표현하였다. 인간은 이 동시성의 역설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기쁨과 감사에서 나오는 자발적인 행위로써 하나님이 준 계명을 지침으로 선을 행한다. 따라서 윤리적인 삶은 구원의 결과요, 신앙의 산물이다.

교리사적으로 볼 때 루터의 구원 이해는 칭의를 의롭게 만드는 것으로 이해하여 칭의와 성화를 구분하지 않고 동일한 것으로 보았던 중세 신학과 다르다. 그는 칭의를 의롭다고 선언하는 것으로 이해하여 칭의를 성화와 구분하였다. 달리 말하면 중세 신학에 있어서 iustus et peccator는 점진적인 관계에 있는 반면, 루터에 있어서 iustus et peccator는 simul의 관계이다. 한편 루터는 인간의 도덕적 행위를 구원과 연관지었던 중세의 전통과 다르게 도덕적 행위를 구원의 결과이며, 하나님에 대한 감사에서 나오는 자벌적 행위라고 함으로써 윤리의 의미를 새롭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