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여배우가 자신의 소속사의 사장의 요구에 의해 술을 따르고, 정.관.재계 인사들에게 성상납(性上納)의 강요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했다. 심지어 일부 여중고학생들도 학교 폭력을 피하기 위해, 소위 바람막이를 해 줄 수 있는 남자선배에게 성을 상납하고, 성매매까지 강요받았다는 뉴스를 접하고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상납(上納)이란 용어는 윗사람에게 돈이나 물건을 바친다는 의미이다. 과연 인간의 성(性)이 돈이나 물건처럼 거래되는 하찮은 것인가? 아직도 우리 사회는 뿌리 깊은 유교 문화의 어두운 그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안으로 썩고 곪고 있어도, 겉으로 아닌 척 하는 유교 문화의 이중적 얼굴이 여실히 노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동안 유교 문화에서 성(性)은 터부시 되고 금기였다. 하지만, 성(性)은 인류 역사를 지탱하고 유지해온 원동력이고 소중한 생명의 원천이다. 그럼에도 유교 문화에서는 인위적으로 성을 억압하고 은폐함으로써 왜곡된 성문화를 양산했다. 급기야, 남녀의 소중한 사랑과 평등의 조건인 성(性)마저 계급화, 상품화되어 거래되는 실정이 되었다.
문화인을 가장한 야만의 성문화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남녀평등, 인간평등의 길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아직도 고급술집과 노래방에서, 혹은 신성한 학문의 전당인 학교까지 침투해 들어온 성상납문화는, 인간의 고귀한 성(性)을 하찮은 것으로 여기게 만들고, 단순히 여성이 아닌, 인간 그 자체를 하찮은 것으로 만들어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할 수 밖에 없다.
나는 미국에 유학 중인 학생과 국내 대학생과 성관련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이미 미국 사회의 청소년들은 중학생이 되면, 성관련 지식이 충분히 습득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학교에서 성교육 시간이 배당되어 있지만, 다분히 요식적인 행사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국내 학생들의 경우, 대학생이 되어서도 성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조차 지니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와 관련하여, 사회의 많은 논란과 개선의 목소리가 있지만, 아직도 우리가 어두운 유교문화의 잔재를 제거하기에 갈 길은 멀기만 한 것 같다. 어쨌거나, 성(性)은 단순한 오락적 도구가 아니라, 한 인간의 정체성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상대가 원하지 않는 성관계를 부당한 제도나 물리력을 동원하여 강요한다면 당연히 폭력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유교문화의 야만적 폭력으로, 여성을, 아니, 인간을 괴롭히고 있다. 죽이고 있다.
결코 성(性)은 추악하거나 지저분한 것이 아닌, 아름답고 성스러운 것이다. 남녀 성평등의 주장은 단순히 남성과 여성의 불평등 관계 개선뿐만 아니라, 인간 존엄성의 선결 요건이다. 어찌, 인간이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여, 폭군처럼 행세하는 것을 그냥 지켜보고 있어야만 하는가! 우리는 야만의 가면을 벗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살아가고 있고, 후손들이 살아갈 세상이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性상납, 여배우와 여학생들의 실태.......
性상납, 여배우와 여학생들의 실태.......
性상납, 여배우와 여학생들의 실태.......
최근 한 여배우가 자신의 소속사의 사장의 요구에 의해 술을 따르고, 정.관.재계 인사들에게 성상납(性上納)의 강요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했다. 심지어 일부 여중고학생들도 학교 폭력을 피하기 위해, 소위 바람막이를 해 줄 수 있는 남자선배에게 성을 상납하고, 성매매까지 강요받았다는 뉴스를 접하고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상납(上納)이란 용어는 윗사람에게 돈이나 물건을 바친다는 의미이다. 과연 인간의 성(性)이 돈이나 물건처럼 거래되는 하찮은 것인가? 아직도 우리 사회는 뿌리 깊은 유교 문화의 어두운 그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안으로 썩고 곪고 있어도, 겉으로 아닌 척 하는 유교 문화의 이중적 얼굴이 여실히 노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동안 유교 문화에서 성(性)은 터부시 되고 금기였다. 하지만, 성(性)은 인류 역사를 지탱하고 유지해온 원동력이고 소중한 생명의 원천이다. 그럼에도 유교 문화에서는 인위적으로 성을 억압하고 은폐함으로써 왜곡된 성문화를 양산했다. 급기야, 남녀의 소중한 사랑과 평등의 조건인 성(性)마저 계급화, 상품화되어 거래되는 실정이 되었다.
문화인을 가장한 야만의 성문화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남녀평등, 인간평등의 길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아직도 고급술집과 노래방에서, 혹은 신성한 학문의 전당인 학교까지 침투해 들어온 성상납문화는, 인간의 고귀한 성(性)을 하찮은 것으로 여기게 만들고, 단순히 여성이 아닌, 인간 그 자체를 하찮은 것으로 만들어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할 수 밖에 없다.
나는 미국에 유학 중인 학생과 국내 대학생과 성관련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이미 미국 사회의 청소년들은 중학생이 되면, 성관련 지식이 충분히 습득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학교에서 성교육 시간이 배당되어 있지만, 다분히 요식적인 행사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국내 학생들의 경우, 대학생이 되어서도 성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조차 지니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와 관련하여, 사회의 많은 논란과 개선의 목소리가 있지만, 아직도 우리가 어두운 유교문화의 잔재를 제거하기에 갈 길은 멀기만 한 것 같다. 어쨌거나, 성(性)은 단순한 오락적 도구가 아니라, 한 인간의 정체성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상대가 원하지 않는 성관계를 부당한 제도나 물리력을 동원하여 강요한다면 당연히 폭력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유교문화의 야만적 폭력으로, 여성을, 아니, 인간을 괴롭히고 있다. 죽이고 있다.
결코 성(性)은 추악하거나 지저분한 것이 아닌, 아름답고 성스러운 것이다. 남녀 성평등의 주장은 단순히 남성과 여성의 불평등 관계 개선뿐만 아니라, 인간 존엄성의 선결 요건이다. 어찌, 인간이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여, 폭군처럼 행세하는 것을 그냥 지켜보고 있어야만 하는가! 우리는 야만의 가면을 벗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살아가고 있고, 후손들이 살아갈 세상이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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