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 호이나키 지음 | 김종철 옮김 | 녹색평론사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먼저 저자의 간단한 약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리 호이나키』 ----------------------------------- 1928년 미국 일리노이주 링컨 출생. 그의 조부모는 그의 부친이 아이였을 적에 폴란드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그는 링컨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닌 뒤 1946년에 해병대에 입대하여 중국에서 근무를 하였고, 제대 후에는 '제대군인 원호법'에 의거하여 장학금으로 대학을 다녔다. 대학시절 그는 트라피스트 수사였던 토머스 머턴의 자전적 기록 <칠층산>을 읽고 크게 감명을 받았고, 아마도 이것이 그 후의 생애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스스로 회고하고 있다. 그는 1951년에 도미니크회 수도회에 들어가서, 1959년에는 맨해튼의 빈민구역에서 사목활동을 했다. 1960년에 그는 스페인어를 배우기 위해서 푸에르토리코로 갔고, 거기서 이반 일리치를 만났고 평생에 걸친 벗이 되었다. 2년 뒤 그는 칠레로 갔고, 그리고 다시 4년 뒤에는 멕시코로 가서 당시 일리치가 쿠에르나바카에서 운영하던 연구소에 합류했다. 1967년에 미국으로 돌아와서 결혼을 하고, 캘리포니아대학(로스앤젤레스) 대학원에 들어가서 정치학 박사과정을 밟았다. 학위과정을 마치고 박사논문을 작성하는 도중에 베트남전쟁으로 대변되는 미국의 제국주의 정책과 미국사회에 만연한 불의와 부도덕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가족과 함께 베네수엘라로 자발적인 망명을 하였으나, 거기서 여러 해를 지낸 다음, 다시 미국으로 되돌아와 일리노이주의 생거먼대학이라는 새로 개설된 실험대학의 교단에 섰다. 그러나 7년 후 그 대학의 정년보장 교수가 된 직후에 그는 대학을 그만두고, 시골로 가서 농부가 되었고, 거기서 "경제주의/화폐중심 사회의 틀에서 얼마나 벗어나서 살 수 있는지"를 실험하였다. 그러는 과정에서도 그는 계속해서 일리치와 협력해서 일했다. 2002년 이반 일리치가 고인이 되기 직전 The Challenges of Ivan Illich (2002) 등의 책을 편집하였고, 계속해서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가르쳐왔다. 그의 저서는 이 책 이외에 피레네 산맥을 넘어서 스페인의 옛 성지까지 걸어서 간 순례여행의 기록 El Camino:Walking to Santiago de Compostela (1996)가 있고, 최근에 Dying is not Death (2007)라는 새로운 책이 출판되어 나왔다. ----------------------------------------- 호이나키의 약력을 보면 그가 자신의 신념에 따라 살았음을 알 수 있다. 도미니크회 수도회에 들어가 빈민구역에서 사목활동을 하고, 미국의 제국주의 정책과 미국사회의 불의와 부도덕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망명을 한 것. 그리고 호이나키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대안적 삶의 실천. 그러나 이 대안적 삶이 그에겐 하나의 실험을 위한 과정으로 얼마 후 다시 세상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어쩌면 시골에서 문명과 떨어져 원시의 생활을 한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더 대단해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서 호이나키는 문명사회(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위험성과 폐해를 깊이있게 다루고 있다. 행복과 더 나은 삶을 위해 열심히 일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불행해지는.. 어느새 우리의 목적은 행복이 아닌, '돈'으로 바뀌어 버린 삶. 『이러한 손노동의 회피, '화이트컬러' 일에 대한 숭상, 도시적인 것에 대한 중독증상, 이른바 노동절약 적 기계에 대한 광적인 집착 - 이런 것들은 명백히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어느날, 한 이웃사람이 내게 말하였다. "소년 시절에는 나는 말(馬)들과 함께 일했어요. 지금은 나는 온통 기계가 되고, 컴퓨터가 되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예전보다는 내가 훨씬더 많은 땅을 다루고 있어요. 하지만 하루가 끝날 때면 나는 예전보다 더 지쳐 있어요" 그 이야기를 할 때, 그는 그가 얼마나 빚을 지고 있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 대화가 있은 후, 그는 빚을 갚기 위해서 자기 땅 가운데 일부를 팔고, 멀리 떨어진 도시에서 정규직 일자리를 구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렇게 해야 백년이 넘게 - 미국에서는 매우 오랜 세월인 - 그의 가족이 살아온 농장에서 계속해서 머물 수 있기 때문이었다.』 -90쪽- 호이나키는 책 속에서 '이반 일리치'에 대해 자주 언급한다. 그리고 실제로 호이나키와 일리치는 동료로서 함께 연구하고, 교제를 나누었다. 이반 일리치는 '생태주의' 사상가로서 그의 저서를 통해 문명과 발전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하고 있다. 특히 '탈학교사회'에서는 교육이라는 체제가 어떻게 기득권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는지.. 그리고 '의료의 한계'에서는 발전되는 의학이 오히려 사람을 더욱 병들게 한다는 말을 하고 있다. - 이반 일치리의 저서 <탈학교사회 Deschooling Society 1971> <공생을 위한 방법 Tools for Conviviality 1973> <에너지와 공평 Energy and equity 1974> <의료의 한계 Limits to medicine : medical nemesis : the expropriation of health 1976> 외 다수. 호이나키가 일리치와 깊은 교제를 나눈 것은 사상과 관점이 같았기 때문이리라. 『종교적 영감 밑에서 시작된 방대한 '보살핌' 및 서비스 시스템들은 개인의 존엄성과 가족의 유대와 우정의 너그러움과 공동체의 자발성을 파괴하는 괴물기계로 전환되어버렸다.』 -128쪽-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고안된 램프나 광전지(光電池)나 온갖 종류의 안전장치와 자동장치들은 헤아릴 수 없는 선의(善意)의 가능성, 아름다운 행동이 꽃필 수 있는 가능성을 처음부터 제거해버린다.』-180쪽- "개인의 존엄성" "가족의 유대" "우정의 너그러움" "공동체의 자발성" "선의(善意)의 가능성" 이 단어들이 바로 호이나키의 말하려고 했던 내용의 핵심이 아니었을까.. 그는 그 자신의 인생행로의 어떤 지점에서도 단지 스쳐 지나가는 관광객이 아니라 이 지상에서 진정으로 '좋은 삶'을 실행할 수 있는 가능성의 근거를 찾아서 끊임없이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순례자로 남으려고 노력한다. - 역자후기 中 -
[책 추천] 正義(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
리 호이나키 지음 | 김종철 옮김 | 녹색평론사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먼저 저자의 간단한 약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리 호이나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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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미국 일리노이주 링컨 출생.
그의 조부모는 그의 부친이 아이였을 적에 폴란드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그는 링컨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닌 뒤 1946년에 해병대에 입대하여 중국에서 근무를 하였고,
제대 후에는 '제대군인 원호법'에 의거하여 장학금으로 대학을 다녔다.
대학시절 그는 트라피스트 수사였던 토머스 머턴의 자전적 기록 <칠층산>을 읽고 크게 감명을 받았고,
아마도 이것이 그 후의 생애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스스로 회고하고 있다.
그는 1951년에 도미니크회 수도회에 들어가서, 1959년에는 맨해튼의 빈민구역에서 사목활동을 했다.
1960년에 그는 스페인어를 배우기 위해서 푸에르토리코로 갔고, 거기서 이반 일리치를 만났고 평생에 걸친
벗이 되었다. 2년 뒤 그는 칠레로 갔고, 그리고 다시 4년 뒤에는 멕시코로 가서 당시 일리치가 쿠에르나바카에서
운영하던 연구소에 합류했다.
1967년에 미국으로 돌아와서 결혼을 하고, 캘리포니아대학(로스앤젤레스) 대학원에 들어가서 정치학 박사과정을
밟았다. 학위과정을 마치고 박사논문을 작성하는 도중에 베트남전쟁으로 대변되는 미국의 제국주의 정책과
미국사회에 만연한 불의와 부도덕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가족과 함께 베네수엘라로 자발적인 망명을 하였으나,
거기서 여러 해를 지낸 다음, 다시 미국으로 되돌아와 일리노이주의 생거먼대학이라는 새로 개설된 실험대학의
교단에 섰다.
그러나 7년 후 그 대학의 정년보장 교수가 된 직후에 그는 대학을 그만두고, 시골로 가서 농부가 되었고,
거기서 "경제주의/화폐중심 사회의 틀에서 얼마나 벗어나서 살 수 있는지"를 실험하였다.
그러는 과정에서도 그는 계속해서 일리치와 협력해서 일했다.
2002년 이반 일리치가 고인이 되기 직전 The Challenges of Ivan Illich (2002) 등의 책을 편집하였고,
계속해서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가르쳐왔다.
그의 저서는 이 책 이외에 피레네 산맥을 넘어서 스페인의 옛 성지까지 걸어서 간 순례여행의 기록
El Camino:Walking to Santiago de Compostela (1996)가 있고, 최근에 Dying is not Death (2007)라는
새로운 책이 출판되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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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나키의 약력을 보면 그가 자신의 신념에 따라 살았음을 알 수 있다.
도미니크회 수도회에 들어가 빈민구역에서 사목활동을 하고,
미국의 제국주의 정책과 미국사회의 불의와 부도덕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망명을 한 것.
그리고 호이나키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대안적 삶의 실천.
그러나 이 대안적 삶이 그에겐 하나의 실험을 위한 과정으로 얼마 후 다시 세상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어쩌면 시골에서 문명과 떨어져 원시의 생활을 한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더 대단해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서 호이나키는 문명사회(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위험성과 폐해를 깊이있게 다루고 있다.
행복과 더 나은 삶을 위해 열심히 일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불행해지는..
어느새 우리의 목적은 행복이 아닌, '돈'으로 바뀌어 버린 삶.
『이러한 손노동의 회피, '화이트컬러' 일에 대한 숭상, 도시적인 것에 대한 중독증상, 이른바 노동절약
적 기계에 대한 광적인 집착 - 이런 것들은 명백히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어느날, 한 이웃사람이 내게
말하였다.
"소년 시절에는 나는 말(馬)들과 함께 일했어요. 지금은 나는 온통 기계가 되고, 컴퓨터가 되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예전보다는 내가 훨씬더 많은 땅을 다루고 있어요. 하지만 하루가 끝날 때면 나는
예전보다 더 지쳐 있어요"
그 이야기를 할 때, 그는 그가 얼마나 빚을 지고 있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 대화가 있은 후,
그는 빚을 갚기 위해서 자기 땅 가운데 일부를 팔고, 멀리 떨어진 도시에서 정규직 일자리를 구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렇게 해야 백년이 넘게 - 미국에서는 매우 오랜 세월인 - 그의 가족이 살아온
농장에서 계속해서 머물 수 있기 때문이었다.』 -90쪽-
호이나키는 책 속에서 '이반 일리치'에 대해 자주 언급한다.
그리고 실제로 호이나키와 일리치는 동료로서 함께 연구하고, 교제를 나누었다.
이반 일리치는 '생태주의' 사상가로서 그의 저서를 통해 문명과 발전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하고 있다.
특히 '탈학교사회'에서는 교육이라는 체제가 어떻게 기득권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는지..
그리고 '의료의 한계'에서는 발전되는 의학이 오히려 사람을 더욱 병들게 한다는 말을 하고 있다.
- 이반 일치리의 저서
<탈학교사회 Deschooling Society 1971>
<공생을 위한 방법 Tools for Conviviality 1973>
<에너지와 공평 Energy and equity 1974>
<의료의 한계 Limits to medicine : medical nemesis : the expropriation of health 1976> 외 다수.
호이나키가 일리치와 깊은 교제를 나눈 것은 사상과 관점이 같았기 때문이리라.
『종교적 영감 밑에서 시작된 방대한 '보살핌' 및 서비스 시스템들은 개인의 존엄성과 가족의 유대와
우정의 너그러움과 공동체의 자발성을 파괴하는 괴물기계로 전환되어버렸다.』 -128쪽-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고안된 램프나 광전지(光電池)나 온갖 종류의 안전장치와 자동장치들은 헤아릴
수 없는 선의(善意)의 가능성, 아름다운 행동이 꽃필 수 있는 가능성을 처음부터 제거해버린다.』-180쪽-
"개인의 존엄성"
"가족의 유대"
"우정의 너그러움"
"공동체의 자발성"
"선의(善意)의 가능성"
이 단어들이 바로 호이나키의 말하려고 했던 내용의 핵심이 아니었을까..
그는 그 자신의 인생행로의 어떤 지점에서도 단지 스쳐 지나가는 관광객이 아니라 이 지상에서 진정으로
'좋은 삶'을 실행할 수 있는 가능성의 근거를 찾아서 끊임없이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순례자로 남으려고 노력한다.
- 역자후기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