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속 5센티미터

이영준2009.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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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속 5 센티미터

잔잔하고 은은하게 그려낸 '슬픈 첫사랑의 아픔, 그리고 아름다움'

 

 

감독 : 신카이 마코토

 

 

최루성 연애소설도 아닌, 무언가 커다란 반전으로 소름을 돋게 하는 것 역시 아닌, 우리들로 하여금 그저 잊고 있던, 우리가 모두 겪었을 만한 평범한 첫사랑의 추억을 회상하게 만드는 작품. 초속 5센티미터는 우리로 하여금 입가에선 추억으로 엷은 웃음을 머금게 하며, 눈가에는 눈물이 작은 방울로 맺히고, 눈시울은 옅은 빛으로 천천히 빨개지는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우선, 처음 작품을 봤을 때 굉장히 인상 깊었던 것은, 매우 사실적인 배경과 캐릭터 행동 묘사였다. 또한 감독의 편집력과 캐릭터 주변 배경 등을 이용한 감정 묘사 또한 매우 뛰어나 극도로 서정적인 마음으로 작품에의 몰입을 돕는다.

 

너무나 쉽게 만나서 쉽게 헤어지는 우리 세대의 연애 풍속. 이 작품은 말 한마디 건넬 때마다 가슴 설레고 조심스러웠던 어린 시절의 첫사랑의 추억으로 마음을 뭉클거리게 만든다.

 

 

너와 내가 멀어지는 속도,

바로 초속 5센티미터.

너와 내가 닿을 듯 닿지 않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거리이다.

이 작품은 한 시간이 조금 넘는 러닝타임에, 3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1화 [ 벚꽃 무리 ]

- 아름다웠던 순백의 첫사랑 -

 

 초등학생이었던 타카키와 아카리는 중학교에 진학 하면서 멀리 떨어지게 되고, 헤어진 후 1년이 되는 겨울에 재회한다. 아카리에게로 달려가는 타카키는 아카리를 생각하며 회상에 잠기고, 자꾸만 늦어지는 열차는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 또한 애타게 한다. 반복해서 화면에 비춰지는 타카키의 손목시계, 눈보라, 열차 지연 안내방송 등으로 타카키와 아카리의 애타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정말 멀다. 너무 멀다. 또 이렇게 그들은 어긋나는걸까. 가슴을 졸이는동안 타카키는 결국 아카리의 기차역에 도착한다.

 

 

타카키와 함께 애를 태우고 있던 나는 불안해하며 고개 숙이고 있는 기차역의 아카리를 보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다.

기쁨 반, 미안함 반으로 아카리에게 다가가 안기는 타카키.

 

 

 무사히 만났다는 안도감에 아카리는 눈물을 보이고, 결국은 재회하는 두 사람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의 입가에도 은은한 미소가 :)

 

 

 

 

 

 어린 시절, 기차역에서 흩날리던 벚꽃의 추억이 눈 내리는 벚나무 동산에서 두 사람 앞에 다시 펼쳐진다. 둘은 눈꽃이 흩날리는 벚나무 아래에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정말 아름답다 ㅠ

 

 보는 이의 은은한 서정성을 자극하는 배경음악과 배경 묘사, 편집 등은 작품을 수십번을 감상해도 놀랍다. 첫사랑의 추억을 이렇게 은은한 감동으로 묘사해 냈다는 것, 이런 작품을 선사해준 감독에게 고마움까지 느껴진다. 그들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에 나도 어린 시절의 첫사랑을 회상하게 된다.

 

 다시 작품으로 돌아와서, 타카키와 아카리는 헛간에서 함께 하룻밤을 지내고, 날이 밝은 후 헤어지게 된다. 열차 문이 닫히고, 아쉬워하는 두 사람에게서 어쩌면 다신 만날 수 없을 것 같다는 예감이 강하게 든다.

 

 

 

2화 [ 우주비행사 ]

- 초속 5cm : 가까운 듯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너와 나의 거리 -

 

 

 2화는 스미다 카나에라는 소녀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2화에서 또한 카나에의 설레는 짝사랑이 매우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다. 타카키를 몇 년째 짝사랑 해 온 스미다의 마음이 너무나도 아름답고 안타깝다.

 

 

 

 스미다와 타카키의 하교길에 있는 편의점. 타카키는 늘 커피우유를 고르지만 스미다의 수줍은 마음은, 똑같이 커피우유를 가르키다가 타카키에게 그 마음을 들키는 것이 두려워 결국 흰 우유를 골라오곤 한다. 우리들이 한번 쯤 겪었던 첫사랑의 기억, 바로 그것이다.

 정말정말 풋풋하고 상큼했던, 그리고 가슴이 '아린다' 라는 감정을 처음 배운 시절 ㅠ

 

 

 

 

 

 

 스미다는 짝사랑으로 행복해하며, 아파한다.

타카키는 그녀의 마음을 전혀 모르는걸까.

짝사랑을 몰래 해 본 사람이라면 스미다에게 마구마구 감정이입이 된다 :)

 

 

 

타카키를 동산에서 우연히 만난 스미다.

타카키와의 공감대를 공유한 그녀는 그동안의 망설임을 종이비행기로 접어 날려버린다.

 

 

 

 

 

동산에서 타카키와의 대화 이후 스미다는 뭔가 안정을 찾은 듯한 표정이다. 시원한 바람과 흩날리는 나무

와 풀들, 항상 함께 속삭이는 파도가 그녀에게 어서 고백하라고 다그친다. 상쾌한 바람과 시원한 파도,

동시에 화면에 휘감기듯 깔려주는 BGM.  뭔가 예감이 좋다 !

 

 

 

타카키와의 하교길, 처음으로 둘이서 걸어서 집으로 향하게 되고,

처음으로 타카키와 같은 커피우유를 골랐다.

오늘은 분명히 고백하는거다. 나도 함께 설레는.. 아.. 아.. ㅋ

 

 

 

 

 바보같은 스미다... 결국 고백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짝사랑이 가슴아린 이유가 바로 이런것 아니겠는가.

 

 타카키는 언제나 뭔가 다른 것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고백하려는 순간 스미다에게는 문득' 타카키에겐 나 따위가 들어갈 자리가 없구나 ' 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언제나 문자를 보내고 있고, 확신에 찬 눈빛으로 활을 쏘고 있는 그를 볼 때마다 슬퍼지는 마음은 스미다를 결국 지금 여기, 지금 이곳까지 데려왔다. 가까운 듯 멀고, 좁아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타카키와의 거리. 그리고 오늘 여기, 타카키 앞에서 결국에는 기어코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사춘기 시절, 떨어지는 낙엽만 보아도 울컥 눈물이 솓아나는 그 시절의 깊고 슬픈 짝사랑은 이렇게 아프기에 아름답다.

 

 그녀의 슬프고 아름다운 짝사랑 이야기에 아름다운 피아노의 선율과 바람 부는 들판, 찬란한 하늘, 한적한 시골길, 아름다운 황혼이 곁들여져 잔잔한 웃음과 어느 순간 울컥하는 눈물이 기어코 섞이고 마는 것이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거의 모든 부분을 혼자서 작업하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하늘이 낸 천재인 듯하다.

 

 2화에서도 역시, 깊은 곳에 잠자고 있던 첫사랑의 추억과 치열한 세월 속에 쪼그라져 사라진 줄 알았던 나의 서정성이 살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 풋풋해 풋풋해 ><

 

 

 

 

3화 - 슬프기에 아름다운 첫사랑의 추억 -

 

3화에는 성인이 된 아카리와 타카키가 등장한다.

 

 

아카리는 잊고 있던 어린시절의 편지를 발견하게 되고,

그날 밤 그녀는 어린시절 아련한 첫사랑의 추억을 꿈에서 만나게 된다.

 

 

 

도쿄로 향하는 열차에서 그녀의 손가락 에 반짝이는 약혼반지가 보이고, 기분 좋은 햇살을 받으며,

오래 전 기차역, 그 눈 내리는 밤의  첫사랑을 회상해 보는 아카리였다.

 

 

 

 

이 무렵, 타카키는 극한의 매너리즘에 시달리고 있었다.

 

"단지 생활을 하고 있는 것 만으로, 슬픔은 쌓여만 간다. "

 어디서 오는 슬픔인지 알 수 조차 없다.

 평범하고 피곤한 일상으로 점철된 생활은 그에게 언제부터인가 슬픔으로 쌓여만 간다.

 

그러던 중, 눈 내리는 편의점의 창 밖을 보며 그는 회상에 잠긴다.

 

 

 

 

 

 

 

 

 

 

두 사람의 기억 속,

아름다운 첫사랑의 추억이

두 사람 각자의 목소리로 교차되며 읊어지고 난 뒤,

작품의 클라이맥스가 펼쳐진다.

 

 

이 4분 남짓한 뮤직비디오는 우리들 첫사랑의 추억을 타카키, 아카리, 스미다를 통해 회상하게 해 준다.

 

 

 

  

 

 

 

 

 이제 스물 여섯 살, 학교와 사람들, 결국에는 비집고 들어가야 하는 학교 밖 사회.

이 모든 현실에 찌들어 성난 파도처럼 요동치고 격해진 나의 마음을

시원한 바람과 아름다운 황혼이 비치는 잔잔한 호수와 같이 만들어주는 작품의 이 뮤직비디오는

이 작품의 백미라 할 만하다.

 

 감독의 편집력이 최고로 빛을 발하는 부분으로, 작품 전체를 효과적으로 요약하고 있으며,

가수의 애절한 음성과 가사, 멜로디가 완벽한 조합을 이루며 작품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

 

 

 어린 시절 풋풋한 사랑의 추억으로 수놓여진 그 기차역에서 어느덧 어른이 된 타카키와 아카리는

결국 서로 엇갈리고, 둘은 곧 함께 돌아보게 되지만 그들의 앞을 기차가 가로막는다.

 그렇게 간절했던 첫사랑은 이렇게 다시 엇갈린다.

 하지만 둘은 더 이상 안타까워하지 않는다.

 아카리는 기차가 지나가기 전에 벌써 사라지고,

 아카리가 서있던 자리를 말없이 응시하던 타카키 또한 잔잔한 웃음을 띠며 기차역을 뒤로 한다.

과거를 미련없이 그저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게 된 타카키의 마지막 표정에서 그의 희망적 미래를 엿볼 수 있었다.

 

이제 그들에게 첫사랑은 어린 시절의 슬프고 아름다웠던 추억일 뿐이다. 우리 모두에게 그렇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