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어지러울수록 음모론이 활개를 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많이 힘들다보니 사소한 소문이나 의심에도 귀를 기울이게 되고, 쉽게 그것을 믿게 된다는 소리이기도 하는데요.
그래서 요즘 가장 의견이 분분한 정조대왕의 독살설과 관련된 미스터리와 911테러에 관한 음모론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지난 달, 정조의 최대 정적이었던 심환지에게 보낸 어찰 299통이 대량으로 공개되면서 우리는 정조대왕의 인간적인 면들을 많이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과는 별개로 역사 속에서 임금의 갑작스런 죽음은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분답게 온갖 음모와 이야기를 잉태하기에 충분하죠. 실제로도 작년 말, 채널CGV에서 방영한 <정조암살미스터리-8일>을 비롯, 영화와 책으로 소개 된 바 있는 <영원한 제국>, 이덕일씨가 지은 <조선 왕 독살 사건>이라는 책까지 정조대왕의 죽음에 관한 미스터리는 꾸준히 그리고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영원한 제국
조선왕 독살사건
이산 - MBC 드라마
그럼 잠시 정조대왕이 승하하시던 때로 돌아가 보실까요?
때는 정조24년(1800) 6월, 초열흘 전부터 정조는 종기가 나서 붙이는 약을 사용했으나 효과를 보지 못하고, 6월 14일 내의원(內醫院) 제조(提調) 서용보(徐龍輔 1757∼1824) 등을 편전으로 불러 진찰을 받고 종기 외에 홧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정조는 6월 15일, 종기가 머리뿐만 아니라 등 쪽으로도 퍼졌으며 열기까지 올라와 후끈후끈해지자 내의원 제조 서용보를 해임하게 됩니다. 어느 어의 못지않은 해박한 의학 지식을 가진 정조는 자신이 처방과 약 조제를 직접 관장할 정도였는데 20일까지도 병세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6월 21일 종기가 부어 올라오자 정조는 고통을 호소하고 한열도 있어서 정신이 흐려져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을 못할 지경에 이르게 되십니다.
6월 22일에야 어의 피재길에게 지방 의관 김한주, 백동규와 함께 들어와 진찰하라고 명한 정조는 이때까지도 어의가 노론에게 매수되어 자신을 헤칠 가능성이 있다고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23일 정조는 도제조 이시수(李時秀 1745∼1821)에게 고통을 호소했다. 6월 24일부터 3일간 노론 강경파 영수 심환지(沈煥之 1730∼1802)의 친척 심인의 건의로 민간요법인 연훈방(煙熏方)을 쓰게 됩니다.
그리고는 6월 28일, 정조대왕은 승하하시게 됩니다
독살설을 주장하시는 쪽의 의견은 1. 민간요법으로 사용된 연훈방입니다. 정조실록에서는 연훈방 치료의 핵심이 경면주사(鏡面朱沙)라고 적고 있는데요. 경면주사는 수은이 자연 상태에서 굳어 광물로 변한 것으로 동의보감에서 진정과 해독, 해열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명나라의 약학서인 본초강목은 경면주사가 불에 닿으면 치명적인 물질로 변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며 경면주사에 대한 경고를 적고 있습니다.
2. 위의 민간요법을 추천한 사람인 심환지가 정조의 최대 정적이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실제로 정조가 죽자 법적으로 모자지간이었지만 정치적으로는 원수인 정순왕후 김씨는 수렴청정을 하게 되고 1801년 노론 강경파와 손을 잡고 천주교를 탄압하는 신유사옥을 일으켜 남인 이가환, 이승훈, 정약용등을 제거하게 됩니다.
3. 정조가 자신의 죽음을 전혀 예상하지 않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승하 28일전인 5월 30일 그믐날 정조는 하교를 내리면서, 사도세자 문제를 거론하며 대대적인 정계 개편을 암시합니다. 이는 이가환, 정약용처럼 천주교도라는 노론의 공세로 쫓겨났던 남인들을 중용하려는 의지로 해석되는데요. 이렇듯 정계 개편을 앞두고 갑자기 승하하셨다는 점이 수상하다는 의견입니다.
독살설을 부인하시는 쪽의 의견은 1. 연훈방은 수은을 태운 것으로 유해한 약물이지만 한 번의 소량 사용은 독이라기 보다는 약이 될 수도 있으며, 소량의 수은을 사용해 병을 치료한 역사적 예가 많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실제로 정조 사망 이틀 전인 6월 26일 정조의 진료 전 과정을 책임지던 도제조 이시수는 정조에게 "조금 전 연훈방을 사용한 뒤 심인과 여러 의관이 하는 말은 모두 종기 부위가 어제보다 눈에 띄게 좋아져 며칠 지나지 않아 나머지 독도 없어질 거라 하였습니다. 의관뿐만 아니라 아침 연석에서 신들이 본 것으로도 (정조의 상태가) 어제보다 아주 좋아졌습니다."라고 보고했다고 합니다.
2. 정조가 승하하던 해 1월 17일,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를 모신 화성 현륭원을 찾아 아버지 무덤을 둘러보다가 설움이 북받쳐 바닥에 엎드려 땅을 치면서 통곡했다고 합니다. 이때 두 사람이 정조 좌우를 부축해 일으켰는데 그 중 한 사람이 좌의정 심환지였고, 자신의 죽음 뒤에 해야 할 일을 담은 하교를 내리는 정조에게 "전하께서는 어찌하여 이런 차마 들을 수 없는 하교(下敎)를 하십니까? 마음을 졸이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 신들에 대해서는 말할 겨를도 없지만, 오르내리시는 영혼께 걱정을 끼쳐 드림은 생각지 않으십니까?"라며 함께 통곡했다고 실록에 적혀있다고 합니다. 결국 이로 보아 정조는 이 무렵에 죽음이 가까이 왔음을 직감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3. 이번에 발견된 편지에는 정조가 말년에 각종 질병으로 고생했음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승하하시기 두 달 전인 4월 17일자 편지 "나는 갑자기 눈꼽이 불어나고 머리가 부어오르며 목과 폐가 메마르네. 눈꼽이 짓무르지 않을 때 연달아 차가운 약을 먹으면 짓무를 기미가 일단 사라진다. (중략)번갈아 (온몸이) 통증을 일으키니, 그 고통을 어찌 형언하겠는가?"라며 고통스러운 상황을 전달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갑자기 승하하시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직접 살지 않는 이상 무엇이 사실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서찰에서 드러났 듯, 그 역시 한 명의 인간이었단 사실은 변치 않겠죠??
우리나라에서 이런 이야기가 오가는 요즘. 미국에서는 지금까지도 911테러의 배후에 관한 갖가지 음모설이 나오고 있는데요. 그 중 가장 최근에 나온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 음모설의 요인들을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9.11 테러는 미 정부의 자작극이다
Zeitgeist, the Movie 12세 이상 / 122분 / 다큐멘터리 / 미국 피터 조셉 감독
우선 이 다큐멘터리는 3개의 음모론을 펼치고 있습니다.
첫째 장은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들이 예부터 인간을 통치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내용이며, 두 번째는 911테러가 미 정부의 자작극이라는 내용이고, 세 번째는 커튼 뒤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로 인플레이션을 부추기고 경제위기를 유도한 후, 한쪽에서 돈을 챙기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다는 음모론을 펴고 있죠. - 첫째 장과 두 번째 장은 직접 보신 후 판단하시라고 뒤로 미루고요.
이번에 제가 자세히 소개해드릴 장은 두 번째 장, 911테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다큐멘터리 영화에서는 8개의 아이템을 가지고 하나하나 의심의 눈초리를 보냅니다.
적어도 12개국에서 경고를 보냄
1. 911테러 조사위원회에서는 발표한 사고조사보고서에는 911테러에 대한 경고가 없었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CNN international에서 2002년 발표한 것에 따르면 필리핀 정부에서 계획되고 있다고 미리 경고한 것을 비롯하여 각종 대응 지침서에 WTC를 겨냥한 테러에 대비한 훈련메뉴얼이 있었다고 합니다. 과연 미정부에서 이것을 정말 몰랐는지 혹은 알면서도 과소평가한건지는 차차 밝혀지겠죠?
2. 2001년 10월 6일 CNN은 19명의 납치범들의 이름이 탑승자 명단에 없다고 보도했으며, 심지어 미국 정부측에서 WTC에 부딪힌 비행기에 탑승하여 사망한 피해자라고 밝힌 승객 중 일부는 현재까지도 버젓이 살아 있다고 합니다.
코가 약간 더 큰 빈 라덴
사망했다고 알려진 피해자
3. 사건 초기 미국 정부는 테러범의 주모자로 오사마 빈 라덴을 꼽았는데, 그 이유는 테러 이후 자신이 주도했다는 밝히는 동영상 때문이었는데요. 하지만 그 비디오에 나온 오사마 빈 라덴은 이전 알자지라 방송에 나온 빈 라덴보다 피부색이 더 짙고, 코가 훨씬 크다고 하네요. 그 사이에 수술을 했나요??
4. 911 사고 조사 위원회에서는 테러를 위한 준비금이 조사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항목임에도 불구하고 중요하지 않다고 치부하고 조사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테러를 하는 데 있어서는 마음 하나만으로도 가능한 것인가 보죠?? 돈 없이는 비행기를 탈 수도 없는데 말이죠.
멀쩡한 펜타곤 앞의 전조등
조종을 참 못했다는 선생님의 인터뷰
5. 911테러가 벌어진 날 펜타곤에 비행기가 부딪혔는데, 비행기의 잔해가 전혀 남지 않았다고 하네요. 미 정부에서는 항공유에 잔해가 다 녹아버렸다고 하지만 비행기의 잔해들은 항공유가 타는 온도보다 훨씬 높아야만 녹는다고 합니다. 또한 그 비행기를 몰았던 납치범은 비행학교에서도 조종을 잘 못했다고 하는데 그는 펜타곤 앞의 전신주와 가로수등을 피해서 건물에만 피해를 주었다고 하죠? 과외를 받았나...
큰 잔해가 없는 추락 위치
피 한방울 볼수 없었다는 주민 인터뷰
6. 911테러 당일, 총 4대의 항공기가 납치를 당했죠. 2대의 항공기는 WTC에 부딪히고, 한 대는 펜타곤에 부딪혔죠. 그리고 나머지 한 대의 비행기가 더 납치되었는데 결국 승객과의 싸움 끝에 중간에 떨어졌다고 발표 되었습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비행기가 떨어졌다는 Shanksvile에서는 비행기의 잔해를 전혀 찾을수 없었다고 하네요. 떨어진 비행기가 어디 갔을까요?
7번째 빌딩의 위치
무너지는 빌딩
7. WTC는 7개의 빌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비행기는 1번과 2번 타워에 가서 부딪힌 다음, 모두 무너졌다고 알려져 있죠.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7번 빌딩도 무너졌다고 합니다. 비행기가 안 부딪혔는데 말이죠. 마치 전문적인 건물해체 폭파팀이 부수듯 건물의 가운데부터 무너져 내렸다고 하네요. 그리고 이 7번 빌딩의 붕괴에 대한 것은 사고 조사서에도 나와 있지 않다고 합니다.
8. NORAD(북미대공방위사령부)는 납치항공기가 생기면 즉각 출동해서 위험이 있으면 즉각 피격하게 훈련되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고가 있기 전까지 100%의 안전율을 자랑하던 이 시스템은 처음으로 4대의 비행기를 놓치게 되는데, 그 날이 9월 11일 이었답니다.
다양한 인터뷰와 신문 기사들로 설득력 있게 논리를 펴는 911테러 음모론이었습니다.
이외에도 현재 입에 오르내리는 음모론에는 쑹홍빙씨가 지은 “화폐전쟁”이라는 책에서는 미국에서부터 시작된 경제위기가 유럽의 국제금융자본들이 세계를 지배하기 위한 시도라는 것도 있으며, 임종태씨가 지은 “경제 묵시론”이란 책에서는 금융위기의 배후에 성공한 금융 유대인이 있다고 설정하기도 합니다.
물론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피어 올라올 수 없으며, 분명 이런 음모론들에게도 원인을 제공해주는 요인이 있기 때문에 생겨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음모론은 불안을 먹고 자란다는 점입니다. 마음 속의 불안함이 의심을 낳고, 그 의심은 결국 음모론이 되는 것이지요.
힘들 때일수록 더욱 굳게 마음을 다잡고 힘차게 하루하루를 살아 보자구요. 음모론은 언제까지나 설일 뿐일 테니깐요.
희대의 동서양 음모이론
써니 블로그의 어머님이신 홍엄마의 글입니다. 절대 여자분이 아닙니다. 이곳에 방문하시면 원문 및 다양한 글이 있습니다. 꼭 들려주세요. http://besunnyblog.tistory.com/160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음모론이 활개를 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많이 힘들다보니 사소한 소문이나 의심에도 귀를 기울이게 되고, 쉽게 그것을 믿게 된다는 소리이기도 하는데요.
그래서 요즘 가장 의견이 분분한
정조대왕의 독살설과 관련된 미스터리와 911테러에 관한 음모론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지난 달, 정조의 최대 정적이었던 심환지에게 보낸 어찰 299통이 대량으로 공개되면서
우리는 정조대왕의 인간적인 면들을 많이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과는 별개로 역사 속에서 임금의 갑작스런 죽음은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분답게 온갖 음모와 이야기를 잉태하기에 충분하죠.
실제로도 작년 말, 채널CGV에서 방영한 <정조암살미스터리-8일>을 비롯,
영화와 책으로 소개 된 바 있는 <영원한 제국>, 이덕일씨가 지은 <조선 왕 독살 사건>이라는
책까지 정조대왕의 죽음에 관한 미스터리는 꾸준히 그리고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영원한 제국
조선왕 독살사건
이산 - MBC 드라마
그럼 잠시 정조대왕이 승하하시던 때로 돌아가 보실까요?
때는 정조24년(1800) 6월,
초열흘 전부터 정조는 종기가 나서 붙이는 약을 사용했으나 효과를 보지 못하고,
6월 14일 내의원(內醫院) 제조(提調) 서용보(徐龍輔 1757∼1824) 등을 편전으로 불러 진찰을 받고
종기 외에 홧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정조는 6월 15일, 종기가 머리뿐만 아니라 등 쪽으로도 퍼졌으며 열기까지 올라와 후끈후끈해지자
내의원 제조 서용보를 해임하게 됩니다. 어느 어의 못지않은 해박한 의학 지식을 가진 정조는
자신이 처방과 약 조제를 직접 관장할 정도였는데 20일까지도 병세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6월 21일 종기가 부어 올라오자 정조는 고통을 호소하고 한열도 있어서 정신이 흐려져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을 못할 지경에 이르게 되십니다.
6월 22일에야 어의 피재길에게 지방 의관 김한주, 백동규와 함께 들어와 진찰하라고 명한 정조는
이때까지도 어의가 노론에게 매수되어 자신을 헤칠 가능성이 있다고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23일 정조는 도제조 이시수(李時秀 1745∼1821)에게 고통을 호소했다.
6월 24일부터 3일간 노론 강경파 영수 심환지(沈煥之 1730∼1802)의 친척 심인의 건의로
민간요법인 연훈방(煙熏方)을 쓰게 됩니다.
그리고는 6월 28일, 정조대왕은 승하하시게 됩니다
독살설을 주장하시는 쪽의 의견은
1. 민간요법으로 사용된 연훈방입니다. 정조실록에서는 연훈방 치료의 핵심이 경면주사(鏡面朱沙)라고 적고 있는데요. 경면주사는 수은이 자연 상태에서 굳어 광물로 변한 것으로 동의보감에서 진정과 해독, 해열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명나라의 약학서인 본초강목은 경면주사가 불에 닿으면 치명적인 물질로 변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며 경면주사에 대한 경고를 적고 있습니다.
2. 위의 민간요법을 추천한 사람인 심환지가 정조의 최대 정적이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실제로 정조가 죽자 법적으로 모자지간이었지만 정치적으로는 원수인 정순왕후 김씨는 수렴청정을 하게 되고 1801년 노론 강경파와 손을 잡고 천주교를 탄압하는 신유사옥을 일으켜 남인 이가환, 이승훈, 정약용등을 제거하게 됩니다.
3. 정조가 자신의 죽음을 전혀 예상하지 않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승하 28일전인 5월 30일 그믐날 정조는 하교를 내리면서, 사도세자 문제를 거론하며 대대적인 정계 개편을 암시합니다. 이는 이가환, 정약용처럼 천주교도라는 노론의 공세로 쫓겨났던 남인들을 중용하려는 의지로 해석되는데요. 이렇듯 정계 개편을 앞두고 갑자기 승하하셨다는 점이 수상하다는 의견입니다.
독살설을 부인하시는 쪽의 의견은
1. 연훈방은 수은을 태운 것으로 유해한 약물이지만 한 번의 소량 사용은 독이라기 보다는 약이 될 수도 있으며, 소량의 수은을 사용해 병을 치료한 역사적 예가 많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실제로 정조 사망 이틀 전인 6월 26일 정조의 진료 전 과정을 책임지던 도제조 이시수는 정조에게 "조금 전 연훈방을 사용한 뒤 심인과 여러 의관이 하는 말은 모두 종기 부위가 어제보다 눈에 띄게 좋아져 며칠 지나지 않아 나머지 독도 없어질 거라 하였습니다. 의관뿐만 아니라 아침 연석에서 신들이 본 것으로도 (정조의 상태가) 어제보다 아주 좋아졌습니다."라고 보고했다고 합니다.
2. 정조가 승하하던 해 1월 17일,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를 모신 화성 현륭원을 찾아 아버지 무덤을 둘러보다가 설움이 북받쳐 바닥에 엎드려 땅을 치면서 통곡했다고 합니다.
이때 두 사람이 정조 좌우를 부축해 일으켰는데 그 중 한 사람이 좌의정 심환지였고, 자신의 죽음 뒤에 해야 할 일을 담은 하교를 내리는 정조에게 "전하께서는 어찌하여 이런 차마 들을 수 없는 하교(下敎)를 하십니까? 마음을 졸이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 신들에 대해서는 말할 겨를도 없지만, 오르내리시는 영혼께 걱정을 끼쳐 드림은 생각지 않으십니까?"라며 함께 통곡했다고 실록에 적혀있다고 합니다. 결국 이로 보아 정조는 이 무렵에 죽음이 가까이 왔음을 직감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3. 이번에 발견된 편지에는 정조가 말년에 각종 질병으로 고생했음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승하하시기 두 달 전인 4월 17일자 편지 "나는 갑자기 눈꼽이 불어나고 머리가 부어오르며 목과 폐가 메마르네. 눈꼽이 짓무르지 않을 때 연달아 차가운 약을 먹으면 짓무를 기미가 일단 사라진다. (중략)번갈아 (온몸이) 통증을 일으키니, 그 고통을 어찌 형언하겠는가?"라며 고통스러운 상황을 전달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갑자기 승하하시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직접 살지 않는 이상 무엇이 사실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서찰에서 드러났 듯,
그 역시 한 명의 인간이었단 사실은 변치 않겠죠??
우리나라에서 이런 이야기가 오가는 요즘.
미국에서는 지금까지도 911테러의 배후에 관한 갖가지 음모설이 나오고 있는데요.
그 중 가장 최근에 나온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 음모설의 요인들을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9.11 테러는 미 정부의 자작극이다
Zeitgeist, the Movie
12세 이상 / 122분 / 다큐멘터리 / 미국
피터 조셉 감독
우선 이 다큐멘터리는 3개의 음모론을 펼치고 있습니다.
첫째 장은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들이 예부터 인간을 통치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내용이며,
두 번째는 911테러가 미 정부의 자작극이라는 내용이고,
세 번째는 커튼 뒤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로 인플레이션을 부추기고 경제위기를 유도한 후,
한쪽에서 돈을 챙기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다는 음모론을 펴고 있죠.
- 첫째 장과 두 번째 장은 직접 보신 후 판단하시라고 뒤로 미루고요.
이번에 제가 자세히 소개해드릴 장은 두 번째 장, 911테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다큐멘터리 영화에서는 8개의 아이템을 가지고 하나하나 의심의 눈초리를 보냅니다.
적어도 12개국에서 경고를 보냄
1. 911테러 조사위원회에서는 발표한 사고조사보고서에는 911테러에 대한 경고가 없었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CNN international에서 2002년 발표한 것에 따르면 필리핀 정부에서 계획되고 있다고 미리 경고한 것을 비롯하여 각종 대응 지침서에 WTC를 겨냥한 테러에 대비한 훈련메뉴얼이 있었다고 합니다. 과연 미정부에서 이것을 정말 몰랐는지 혹은 알면서도 과소평가한건지는 차차 밝혀지겠죠?
2. 2001년 10월 6일 CNN은 19명의 납치범들의 이름이 탑승자 명단에 없다고 보도했으며, 심지어 미국 정부측에서 WTC에 부딪힌 비행기에 탑승하여 사망한 피해자라고 밝힌 승객 중 일부는 현재까지도 버젓이 살아 있다고 합니다.
코가 약간 더 큰 빈 라덴
사망했다고 알려진 피해자
3. 사건 초기 미국 정부는 테러범의 주모자로 오사마 빈 라덴을 꼽았는데, 그 이유는 테러 이후 자신이 주도했다는 밝히는 동영상 때문이었는데요. 하지만 그 비디오에 나온 오사마 빈 라덴은 이전 알자지라 방송에 나온 빈 라덴보다 피부색이 더 짙고, 코가 훨씬 크다고 하네요. 그 사이에 수술을 했나요??
4. 911 사고 조사 위원회에서는 테러를 위한 준비금이 조사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항목임에도 불구하고 중요하지 않다고 치부하고 조사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테러를 하는 데 있어서는 마음 하나만으로도 가능한 것인가 보죠?? 돈 없이는 비행기를 탈 수도 없는데 말이죠.
멀쩡한 펜타곤 앞의 전조등
조종을 참 못했다는 선생님의 인터뷰
5. 911테러가 벌어진 날 펜타곤에 비행기가 부딪혔는데, 비행기의 잔해가 전혀 남지 않았다고 하네요. 미 정부에서는 항공유에 잔해가 다 녹아버렸다고 하지만 비행기의 잔해들은 항공유가 타는 온도보다 훨씬 높아야만 녹는다고 합니다. 또한 그 비행기를 몰았던 납치범은 비행학교에서도 조종을 잘 못했다고 하는데 그는 펜타곤 앞의 전신주와 가로수등을 피해서 건물에만 피해를 주었다고 하죠? 과외를 받았나...
큰 잔해가 없는 추락 위치
피 한방울 볼수 없었다는 주민 인터뷰
6. 911테러 당일, 총 4대의 항공기가 납치를 당했죠. 2대의 항공기는 WTC에 부딪히고, 한 대는 펜타곤에 부딪혔죠. 그리고 나머지 한 대의 비행기가 더 납치되었는데 결국 승객과의 싸움 끝에 중간에 떨어졌다고 발표 되었습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비행기가 떨어졌다는 Shanksvile에서는 비행기의 잔해를 전혀 찾을수 없었다고 하네요. 떨어진 비행기가 어디 갔을까요?
7번째 빌딩의 위치
무너지는 빌딩
7. WTC는 7개의 빌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비행기는 1번과 2번 타워에 가서 부딪힌 다음, 모두 무너졌다고 알려져 있죠.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7번 빌딩도 무너졌다고 합니다. 비행기가 안 부딪혔는데 말이죠. 마치 전문적인 건물해체 폭파팀이 부수듯 건물의 가운데부터 무너져 내렸다고 하네요. 그리고 이 7번 빌딩의 붕괴에 대한 것은 사고 조사서에도 나와 있지 않다고 합니다.
8. NORAD(북미대공방위사령부)는 납치항공기가 생기면 즉각 출동해서 위험이 있으면 즉각 피격하게 훈련되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고가 있기 전까지 100%의 안전율을 자랑하던 이 시스템은 처음으로 4대의 비행기를 놓치게 되는데, 그 날이 9월 11일 이었답니다.
다양한 인터뷰와 신문 기사들로 설득력 있게 논리를 펴는 911테러 음모론이었습니다.
이외에도 현재 입에 오르내리는 음모론에는 쑹홍빙씨가 지은 “화폐전쟁”이라는 책에서는 미국에서부터 시작된 경제위기가 유럽의 국제금융자본들이 세계를 지배하기 위한 시도라는 것도 있으며, 임종태씨가 지은 “경제 묵시론”이란 책에서는 금융위기의 배후에 성공한 금융 유대인이 있다고 설정하기도 합니다.
물론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피어 올라올 수 없으며, 분명 이런 음모론들에게도 원인을 제공해주는 요인이 있기 때문에 생겨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음모론은 불안을 먹고 자란다는 점입니다. 마음 속의 불안함이 의심을 낳고, 그 의심은 결국 음모론이 되는 것이지요.
힘들 때일수록 더욱 굳게 마음을 다잡고 힘차게 하루하루를 살아 보자구요.
음모론은 언제까지나 설일 뿐일 테니깐요.
Posted by 홍종완(snowcloud@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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