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自殺)하고 싶다는 사람에게 어떤 충고가 적절할까? 흔히 조언자들은 “당신의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 중에는 당신보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으니 용기를 갖고 살아가기 바란다.”라고 충고 한다. 결론적으로 이 충고는 대단히 적절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 충고를 주고받는 사람들이 그 깊은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자신의 주장과 충고에 대한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갖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우선 ‘당신의 주위에 많은 사람이 있다.’라는 말은 자신만 생각하지 않고 주위 사람들의 삶에 깊은 사랑의 관심을 지니고 살아가야만 자신의 삶에 대한 의미와 소중함을 깨닫는다는 지극히 당연한 철학이 담겨 있다. 한걸음 더나가서, 주위 사람들에게 ‘더 깊은 관심’을 지닌 사람들은 개인적인 사소한 문제로 자살을 쉽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따끔한 충고인 것이다.
훈민정음으로 기록된 최초의 작품 <용비어천가>의 제2장에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많이 열린다.”라고 했다. 여기에서 ‘나무’는 단순히 교과서에서 배운 ‘국가’만 의미하지 않고, 바로 ‘개인’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즉, 자신을 포함하여 주위 사람들에 대해 평소 뿌리 깊은 사랑의 철학을 지닌 사람은 바람과 같은 크고 작은 잦은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고, 인생의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열매와 같은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것이다.
평소 본인은 자신을 포함하여 주위 사람들에 대한 깊은 관심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글을 통하여 ‘뿌리 깊은 사랑의 철학’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 비교적 나의 노력은 많은 사람들에게 새 희망의 꽃으로 피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당신의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있다. 힘을 내고 살라.”는 적절한 충고를 했던 조언자가 돌연 태도를 바꾸고, 나에게 “당신은 어찌해서 세상을 비틀어지고 부정적으로만 보는가?”라고 엉뚱한 충고를 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세상을 올바로 보고 긍정적으로 살라는 이 충고에,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을까? 의아해 하실 분이 계실 것이다. 간단한 실험으로, 물이 담긴 투명한 유리잔에 곧은 나무를 넣고 보면, 그 곧은 나무는 굽어져 보인다. 사물이 비틀어져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현상(現像)일 뿐, 본질(本質)의 곧음[直]엔 변함이 없다. 그럼에도 자신의 눈에 굽어져 보인다고, 다른 사람에도 비틀어져 있다고 강요하는 지극히 어리석은 짓이다.
즉, 무지와 편견에 사로잡힌 자신이 어리석은 주장이나 충고가 자칫 자신을 포함하여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해롭게 만들 수 있다. 따라서 평소 뿌리 깊은 사랑의 철학을 지닌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의 주장뿐만 아니라, 자신의 주장에도 모순이 없는지 다시 되돌아 성찰하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 만약 자신의 주장에 모순이 발견되면 부질없는 자존심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반성하고 수정․보완하는 용기도 지녀야 한다. 그래야만, 제대로 된 주장과 조언을 할 수 있다.
TIP : 인간 본질의 깨달음을 전달하고, 직접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뿐만 아니라, 시사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해결안을 모색하는 것도 모두 깊은 사랑의 실천이다. 이에 본인은 <자살하려는 사람에게 적절한 충고는 무엇일까?>에 이어, <뿌리 깊은 사랑의 철학>의 구체적인 방법론을 비롯하여, <단순한 속담 및 격언 등 명구(名句)가 지닌 위험성>에 대해 글로 작성할 것이다.
자살하려는 사람에게 적절한 충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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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하려는 사람에게 적절한 충고는 무엇일까?
자살(自殺)하고 싶다는 사람에게 어떤 충고가 적절할까? 흔히 조언자들은 “당신의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 중에는 당신보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으니 용기를 갖고 살아가기 바란다.”라고 충고 한다. 결론적으로 이 충고는 대단히 적절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 충고를 주고받는 사람들이 그 깊은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자신의 주장과 충고에 대한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갖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우선 ‘당신의 주위에 많은 사람이 있다.’라는 말은 자신만 생각하지 않고 주위 사람들의 삶에 깊은 사랑의 관심을 지니고 살아가야만 자신의 삶에 대한 의미와 소중함을 깨닫는다는 지극히 당연한 철학이 담겨 있다. 한걸음 더나가서, 주위 사람들에게 ‘더 깊은 관심’을 지닌 사람들은 개인적인 사소한 문제로 자살을 쉽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따끔한 충고인 것이다.
훈민정음으로 기록된 최초의 작품 <용비어천가>의 제2장에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많이 열린다.”라고 했다. 여기에서 ‘나무’는 단순히 교과서에서 배운 ‘국가’만 의미하지 않고, 바로 ‘개인’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즉, 자신을 포함하여 주위 사람들에 대해 평소 뿌리 깊은 사랑의 철학을 지닌 사람은 바람과 같은 크고 작은 잦은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고, 인생의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열매와 같은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것이다.
평소 본인은 자신을 포함하여 주위 사람들에 대한 깊은 관심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글을 통하여 ‘뿌리 깊은 사랑의 철학’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 비교적 나의 노력은 많은 사람들에게 새 희망의 꽃으로 피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당신의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있다. 힘을 내고 살라.”는 적절한 충고를 했던 조언자가 돌연 태도를 바꾸고, 나에게 “당신은 어찌해서 세상을 비틀어지고 부정적으로만 보는가?”라고 엉뚱한 충고를 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세상을 올바로 보고 긍정적으로 살라는 이 충고에,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을까? 의아해 하실 분이 계실 것이다. 간단한 실험으로, 물이 담긴 투명한 유리잔에 곧은 나무를 넣고 보면, 그 곧은 나무는 굽어져 보인다. 사물이 비틀어져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현상(現像)일 뿐, 본질(本質)의 곧음[直]엔 변함이 없다. 그럼에도 자신의 눈에 굽어져 보인다고, 다른 사람에도 비틀어져 있다고 강요하는 지극히 어리석은 짓이다.
즉, 무지와 편견에 사로잡힌 자신이 어리석은 주장이나 충고가 자칫 자신을 포함하여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해롭게 만들 수 있다. 따라서 평소 뿌리 깊은 사랑의 철학을 지닌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의 주장뿐만 아니라, 자신의 주장에도 모순이 없는지 다시 되돌아 성찰하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 만약 자신의 주장에 모순이 발견되면 부질없는 자존심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반성하고 수정․보완하는 용기도 지녀야 한다. 그래야만, 제대로 된 주장과 조언을 할 수 있다.
TIP : 인간 본질의 깨달음을 전달하고, 직접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뿐만 아니라, 시사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해결안을 모색하는 것도 모두 깊은 사랑의 실천이다. 이에 본인은 <자살하려는 사람에게 적절한 충고는 무엇일까?>에 이어, <뿌리 깊은 사랑의 철학>의 구체적인 방법론을 비롯하여, <단순한 속담 및 격언 등 명구(名句)가 지닌 위험성>에 대해 글로 작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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