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매드슨은 <나는 전설이다>로 한국에서 유명세를 탄 작가입니다. 하지만 외국에서의 인지도는 스티븐 킹 못지 않습니다. 리처드 매드슨은 1926년 뉴저지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산문과 시 등을 브루클린의 지역 신문에 실을 정도로 문학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습니다. 미주리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던 도중 환상소설에 심취합니다. <판타지 & SF>에 <남자와 여자의 탄생>이라는 첫 작품을 발표합니다. 이후 판타지, 공호, SF 중단편을 여러 잡지에 발표합니다. <나는 전설이다>로 일약스타덤에 오릅니다. 또한<환상특급>을 포함한 55편의 드라마 각본을 맡았습니다. <환상특급>은 어릴때 부터 재미있게 본 미국드라마입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듀얼>의 원작자입니다. 한국에서는 <결투>라는 재목으로 방영했습니다. <X-file>의 원작이 된<한밤의 스토커>의 원작자이기도 합니다. 휴고상, 에드거상, 작가협회상, 세계 판타지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그리고 브람스토커상에서 스티븐 킹과 함께 최고의 칭호인 '그랜드 마스터'를 부여받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소설과 방송, 영화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고 있다. 80이 넘은 나이입니다. 열정이 좋습니다. <줄어드는 남자>는 그가 1956년에 쓴 중편소설입니다. 1957년 특수 촬영 영화 <놀랍도록 줄어든 사나이(Incredible Shrinking Man)>로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현재 2009년 개봉을 목표로 할리우드에서 영화화가 진행 중입니다. <나는 전설이다>의 영향이 큰 듯합니다. 방송이나 영화에 나왔던 원작단편들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가장 관심을 가지는 것은 세상 모든 것들로부터 공격을 당하는 고독하고 소외된 남성이다> 라고 리처드 매드슨은 인터뷰를 통해 밝혔습니다. <나는 전설이다>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영화보다 원작이 더 좋았습니다. 기대를 해 봅니다. 첫페이지를 넘깁니다. -그는 다시 눈을 뜨고 양볼 아래쪽의 뼈 윤곽이 도드라지도록 이를 앙다물었다. 물론 떨어져 죽을 수는 없다. 떨어져 죽을 바에야 차라리 식탁 가장자리를 향해 뛰어 보기라도 할 것이다. 어떤 경우라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 따위는 하지 않으리라. 동감합니다. 어떤 경우라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 따위는 하면 안됩니다. 근래들어 너무 쉽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시인이나 철학가라면, 사람이란 육신 이상의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얼마든지 떠벌릴 수 있으리라. 사람의 영적인 가치가 어떻고 영혼의 숭고한 가치가 어떻고 하면서 말이다. 다 좆같은 얘기다. 두 팔로 안지도 못할 커다란 여자를 품으로 해 본 적도 없는 인간들이다. 물론 그도 그들과 똑같은 사람이고 남자라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성기를 보고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그래,그래. 생각이라는게 가능한 이상 특별한 존재라고 했던가? 그는 머릿속으로 비아냥거렸다. 그랬다. 그는 여전히 남자였다. 비록 0.7센티미터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남자인 것이다. 클라리스와 지낸 밤도 그랬다. 그때도 그가 남자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가 그의 가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당신은 안 불쌍해요.남자잖아요.> 확실히 남자라는 이유하나만으로 불쌍하지는 않습니다. 남자란 그런 존재입니다. 아버지의 권위란 결국 신체의 차이에 의존하는 바가 컸다. 아이에게 아버지는 크고 강하며 전지전능한 존재여야 한다. 아이의 관점은 단순하다. 때문에 체구와 목소리의 크기를 권위의 기준으로 삼는다. 아이들은 자신보다 큰 존재를 존경하거나 아니면 두려워한다. 물론 딸을 위협해서 존경심을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가 180센티미터이고 딸애가 125센티미터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주어진 관계가 그렇다는 것이다. 중편소설인 <줄어드는 남자>는 상당히 오랜시간 동안 읽었습니다. 주인공의 상황이 쉽사리 와닿지 않습니다. 2만 피트 상공의 악몽(1962) 두번째 단편인 2만피트 상공의 악몽은 어릴때 <환상특급>에서 본 기억이 있습니다. 상당히 쇼킹했습니다. 어릴때 부모님과 비행기로 여행을 갈 때마다 생각나는 드라마 였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렘린 같은 괴물이 가끔 생각납니다. 원작소설보다 드라마가 더 잘 나왔습니다. 시험(1954) 고려장이 생각납니다. 씁쓸합니다. 홀리데이 맨(1957) 큰 임펙트는 없습니다, 즐겁게 봅니다. 몽타주(1959) 이제와서 시간을 절약한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더이상 아껴서 어디에 쓰겠다는 말인가? 시간은 더 이상 소비하고 저축할 일용품이 아니었다. 가치를 잃었기 때문이다. <저영화에 나오는 작가. 그 친구는 나하고 비슷해. 재능도 있고 의욕도 넘쳐나지. 문제는 진짜로 일을 해내려면 거의 10년이나 걸린다는거야. 10년. 그런데 저 멍청한 영화는 어떻게 하는 줄 알아? 그걸 불과 몇분으로 깔끔하게 요약해 버리는 거야. 책상에 앉아 무게잡는 장면 두컷.시계 두번.짓이겨진 꽁초가 가득한 재떨이 몇컷.빈 커피잔 몇컷.원고뭉치.시가를 씹으면서 작가에게 퇴짜를 놓는 편집장들.터덜터덜 보도를 걷는 장면 몇컷. 그게 다야. 그게 죽도록 고생한 10년의 세월이라고. 난 그런게 싫어.> 공감이 갑니다. 글과 영상은 분명 틀립니다. 배달(1958) 재미있습니다. 스티븐 킹 단편집의 <우유배달부>가 생각납니다. 예약 손님(1970) 독특합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단편입니다. 버튼, 버튼(1970) 좀 흔한 소재입니다. 결투(1971) 스티븐 스필버그가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적어도 5번 이상은 본 영화입니다. 전반적인 느낌이 좋습니다. 주인공은 한명입니다. 긴장감이 굉장합니다. 후에 영화를 다시 한번 볼 예정입니다. 글도 좋습니다. 글을 읽는 내내 영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파리지옥(1994)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비둘기>가 생각납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가장 좋아하는 작가중 한명입니다. 근래들어 신간 서적이 안나와서 아쉽습니다. 글이나 영화 혹은 어떤 작품들을 보면 연상되는 다른 작품들이 있습니다. 즐겁게 읽었습니다. 무려 506페이지 입니다. 일주일에 걸쳐서 나누어 읽었습니다. 리처드 매드슨의 다른 소설들을 기대합니다. 졸음이 쏟아집니다. 날씨가 춥습니다. 이불에 들어가자 바로 잠이 쏟아집니다.
[소설] 리처드 매드슨의 중단편 모음 <줄어드는 남자>
리처드 매드슨은 <나는 전설이다>로 한국에서 유명세를 탄 작가입니다.
하지만 외국에서의 인지도는 스티븐 킹 못지 않습니다.
리처드 매드슨은 1926년 뉴저지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산문과 시 등을 브루클린의 지역 신문에 실을 정도로 문학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습니다.
미주리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던 도중 환상소설에 심취합니다.
<판타지 & SF>에 <남자와 여자의 탄생>이라는 첫 작품을 발표합니다.
이후 판타지, 공호, SF 중단편을 여러 잡지에 발표합니다.
<나는 전설이다>로 일약스타덤에 오릅니다.
또한<환상특급>을 포함한 55편의 드라마 각본을 맡았습니다.
<환상특급>은 어릴때 부터 재미있게 본 미국드라마입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듀얼>의 원작자입니다.
한국에서는 <결투>라는 재목으로 방영했습니다.
<X-file>의 원작이 된<한밤의 스토커>의 원작자이기도 합니다.
휴고상, 에드거상, 작가협회상, 세계 판타지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그리고 브람스토커상에서 스티븐 킹과 함께 최고의 칭호인 '그랜드 마스터'를 부여받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소설과 방송, 영화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고 있다.
80이 넘은 나이입니다.
열정이 좋습니다.
<줄어드는 남자>는 그가 1956년에 쓴 중편소설입니다.
1957년 특수 촬영 영화 <놀랍도록 줄어든 사나이(Incredible Shrinking Man)>로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현재 2009년 개봉을 목표로 할리우드에서 영화화가 진행 중입니다.
<나는 전설이다>의 영향이 큰 듯합니다.
방송이나 영화에 나왔던 원작단편들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가장 관심을 가지는 것은 세상 모든 것들로부터 공격을 당하는 고독하고 소외된 남성이다>
라고 리처드 매드슨은 인터뷰를 통해 밝혔습니다.
<나는 전설이다>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영화보다 원작이 더 좋았습니다.
기대를 해 봅니다.
첫페이지를 넘깁니다.
-그는 다시 눈을 뜨고 양볼 아래쪽의 뼈 윤곽이 도드라지도록 이를 앙다물었다.
물론 떨어져 죽을 수는 없다.
떨어져 죽을 바에야 차라리 식탁 가장자리를 향해 뛰어 보기라도 할 것이다.
어떤 경우라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 따위는 하지 않으리라.
동감합니다.
어떤 경우라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 따위는 하면 안됩니다.
근래들어 너무 쉽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시인이나 철학가라면, 사람이란 육신 이상의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얼마든지 떠벌릴 수 있으리라.
사람의 영적인 가치가 어떻고 영혼의 숭고한 가치가 어떻고 하면서 말이다.
다 좆같은 얘기다.
두 팔로 안지도 못할 커다란 여자를 품으로 해 본 적도 없는 인간들이다.
물론 그도 그들과 똑같은 사람이고 남자라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성기를 보고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그래,그래. 생각이라는게 가능한 이상 특별한 존재라고 했던가?
그는 머릿속으로 비아냥거렸다.
그랬다.
그는 여전히 남자였다.
비록 0.7센티미터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남자인 것이다.
클라리스와 지낸 밤도 그랬다.
그때도 그가 남자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가 그의 가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당신은 안 불쌍해요.남자잖아요.>
확실히 남자라는 이유하나만으로 불쌍하지는 않습니다.
남자란 그런 존재입니다.
아버지의 권위란 결국 신체의 차이에 의존하는 바가 컸다.
아이에게 아버지는 크고 강하며 전지전능한 존재여야 한다.
아이의 관점은 단순하다.
때문에 체구와 목소리의 크기를 권위의 기준으로 삼는다.
아이들은 자신보다 큰 존재를 존경하거나 아니면 두려워한다.
물론 딸을 위협해서 존경심을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가 180센티미터이고 딸애가 125센티미터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주어진 관계가 그렇다는 것이다.
중편소설인 <줄어드는 남자>는 상당히 오랜시간 동안 읽었습니다.
주인공의 상황이 쉽사리 와닿지 않습니다.
2만 피트 상공의 악몽(1962)
두번째 단편인 2만피트 상공의 악몽은 어릴때 <환상특급>에서 본 기억이 있습니다.
상당히 쇼킹했습니다.
어릴때 부모님과 비행기로 여행을 갈 때마다 생각나는 드라마 였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렘린 같은 괴물이 가끔 생각납니다.
원작소설보다 드라마가 더 잘 나왔습니다.
시험(1954)
고려장이 생각납니다.
씁쓸합니다.
홀리데이 맨(1957)
큰 임펙트는 없습니다,
즐겁게 봅니다.
몽타주(1959)
이제와서 시간을 절약한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더이상 아껴서 어디에 쓰겠다는 말인가?
시간은 더 이상 소비하고 저축할 일용품이 아니었다.
가치를 잃었기 때문이다.
<저영화에 나오는 작가.
그 친구는 나하고 비슷해.
재능도 있고 의욕도 넘쳐나지.
문제는 진짜로 일을 해내려면 거의 10년이나 걸린다는거야. 10년.
그런데 저 멍청한 영화는 어떻게 하는 줄 알아?
그걸 불과 몇분으로 깔끔하게 요약해 버리는 거야.
책상에 앉아 무게잡는 장면 두컷.시계 두번.짓이겨진 꽁초가 가득한 재떨이 몇컷.빈 커피잔 몇컷.원고뭉치.시가를 씹으면서 작가에게 퇴짜를 놓는 편집장들.터덜터덜 보도를 걷는 장면 몇컷.
그게 다야.
그게 죽도록 고생한 10년의 세월이라고.
난 그런게 싫어.>
공감이 갑니다.
글과 영상은 분명 틀립니다.
배달(1958)
재미있습니다.
스티븐 킹 단편집의 <우유배달부>가 생각납니다.
예약 손님(1970)
독특합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단편입니다.
버튼, 버튼(1970)
좀 흔한 소재입니다.
결투(1971)
스티븐 스필버그가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적어도 5번 이상은 본 영화입니다.
전반적인 느낌이 좋습니다.
주인공은 한명입니다.
긴장감이 굉장합니다.
후에 영화를 다시 한번 볼 예정입니다.
글도 좋습니다.
글을 읽는 내내 영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파리지옥(1994)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비둘기>가 생각납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가장 좋아하는 작가중 한명입니다.
근래들어 신간 서적이 안나와서 아쉽습니다.
글이나 영화 혹은 어떤 작품들을 보면 연상되는 다른 작품들이 있습니다.
즐겁게 읽었습니다.
무려 506페이지 입니다.
일주일에 걸쳐서 나누어 읽었습니다.
리처드 매드슨의 다른 소설들을 기대합니다.
졸음이 쏟아집니다.
날씨가 춥습니다.
이불에 들어가자 바로 잠이 쏟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