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제 짝사랑 이야기를 [문학과 인생] 교양과목을 수강하며 소설형식으로 재구성한 글 입니다.
내용은 100% 진실임을 밝힘니다.
초 상 화
"미경아 너 혹시 어렸을 때 집이 대전 가양동 예지아파트였니?" 대학에 입학해서 사귄 가장 친한 과 친구 지민이가 만나자마자 인사대신 물었다. "어! 지민아 그걸 어떻게 알았어?" "정말야! 이럴수가, 그럼 너 홍장표란 사람도 알겠네?" "홍장표? 글쎄…… 처음 듣는 이름인데?" "그 사람 홈페이지에 네 이름이 있어서 물어 본건데?" "정말! 지민아 어떤 이야기였는데?" "소녀초상화 설명에 미경이 널 추억하게 한다고 한 것 같아" "안되겠다, 따라와 미경아" 답답하고도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은 지민이는 미경이의 손을 잡고 전산실로 뛰었다 "지민아 천천히 뛰어~"
"주소가 http://any.to/beauty야" "나왔다! 홍장표의 아름다운 세상?" 궁금했던 미경은 못 참고 외쳤다 "내가 주로 mp3음악 다운 받느라 이용하던 곳 인데……, 잘 봐 아름다운 소녀란을 클릭 했더니 첫 번째 소녀 초상화에……, 이것봐!" 천진난만하게 생긴 미경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가장 좋아하는 소녀 그림 - 고등학교 하숙 시절 아파트 윗층에 살던 초등학생 이미경을 추억하게 합니다. (대전시 가양동 예지아파트)] 천천히 글을 읽은 미경이는 가만히 초등학생 때의 기억을 돌아보았다. '누굴까?' "아마 미경이 널 좋아 했나본데?" "홍장표 이 남자 누군데 널 추억한다는거야? 가만! 소개란을 보면 사진이 있겠다" 신이 난 지민이는 손으로 마우스를 움직이며 계속 수다를 떨었다. "미경아 이것 봐! 나이 언제나 스무살, 대전 명석고 졸업, 홍익대 재학중……," 찬찬히 사진만을 바라보던 미경이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나……, 이 남자 알 것 같아" "그래? 누군데?" 지민이는 궁금해서 미경에게 바싹 다가오며 물었다. "어렴풋이 얼굴만 기억해 하지만 몰라" "우~ 씨 뭐야? 정말 잘 몰라?" "응"
"장표야 뭐 하냐?" "응 방명록 답장 좀 쓰려고" "야! 넌 맨날 홈페이지 가지고……, 공부 좀 해라! 4학년이잖아, 나 먼저 도서관 간다!" "응 조금 있다 보자" 매일 아침 전산실부터 들러 홈페이지에 방문한 사람들의 기록을 읽고, 답장하고 이메일 답장하고…… 이것이 내 하루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새로 도착한 열 일곱 통의 메일중 한 통이 나의 기억을 10년 전으로 되돌려 놓았다.
'안녕하세요? 홍장표님 전 임지민이라고해요. 반가운 소식이 있어 이렇게 편지를 보냅니다. 이미경 아시죠? 전 미경이의 같은 과 친구거든요. 혹시 미경이에 대한 소식을 알고 싶나요? 알려 드리죠! 하지만, 전 미경이처럼 티없이 착한 여자가 아니랍니다. 좀 짓궂죠! 홍장표님의 추억을 제게도 조금 나누어 주세요. 그러면 알려 드릴께요. 그럼 짓궂은 지민이가...' 몇 번씩 편지를 읽으며 믿기지 않는 편지에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빨리 미경이의 소식을 알고 싶었지만 나는 바로 답장을 쓸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몇 줄의 문장으로 내 추억을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후 수업이 끝나는 대로 집으로 돌아와 내 방 책상 위에 있는 초상화를 한참 들여다보고 눈을 감았다.
'열 여덟살이었던 10년전, 소녀를 처음 본 날, 그 날로 내 인생의 성장을 멈추고 싶습니다.' 내 이메일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1991년 4월, 벚꽃 잎이 날리던 토요일이었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하숙집으로 향하던 중 이었죠. 오후 따스한 봄기운 때문에 기분이 무척 좋았습니다. 하숙집인 아파트 입구를 들어서다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내게로 달려오는 한 소녀를 보았습니다. 마르고 큰 키, 긴 생머리의 초등학생 소녀는 무엇이 즐거운지 화사한 미소를 머금고 나를 스쳐갔습니다.
나는 바로 멈추어 뒤를 돌아보았고, 얼른 가방을 열고 지갑 속에 있는 작은 초상화를 꺼냈습니다. 그리고 초상화 속의 소녀얼굴을 보고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노는 그 소녀의 작은 얼굴을 보았습니다. '이럴수가, 이렇게 같을 수가...... 화가는 혹시 저 소녀를 모델로 이 초상화를 그린 것일까?' 저는 그때 이렇게 생각하며 약간은 놀랬습니다.
참! 왜 지갑에 그 초상화를 가지고 다니게 됐는지 설명하겠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하숙집 다락방에 올라가 보니 선배들이 열심히 공부한 흔적이 남아 있는 연습장이 버려지지 않고 그대로 쌓아 놓여 있었습니다. 호기심에 연습장을 살피다 좋은 시와 함께 소녀를 그린 초상화 일색인 표지를 보고 마음에 들어 조심스럽게 오려서 보관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제 홈페이지에 있던 아름다운 소녀란의 초상화는 모두 그때 모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성친구와 이야기조차 나눌 수 없었던 고2때 가장 맘에 드는 그림을 여자친구의 사진처럼 지갑 속에 껴 놓고 다녔던 것입니다.
그 소녀는 하숙집 바로 윗 층에 살고 있었지만 볼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습니다. 어쩌다가 소녀의 모습을 보면 주의 깊게 바라보았죠. 늘 명랑하면서도 조숙해 보이는 행동과, 가볍지 않은 우아함으로 같은 나이 또래 아이들에게서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며 난 어이없게 초등학생 소녀를 짝사랑하기 시작했습니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어린 소녀의 귀여움에 대한 마음이 아닌, 그건 분명 사랑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난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고 그 소녀의 이름 '이미경'과, 나이 11살, 다니는 가양초등학교, 언니와 여동생의 이름, 미영, 미진...... 소녀에 대한 모든 것이 나의 전부처럼 생각됐습니다. 소녀에 대해 조금씩 조금씩 알기 시작하며 사랑하는 마음은 간절했지만 말을 건넬 수 없었습니다.
아무런 감정이 없다면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어린 소녀에게 "뭐하며 노니" 하고 말을 건네는 것은 쉬운 일이죠. 그러나 애틋한 내 마음을 혹시 소녀가 알게 돼 놀라서 나를 멀리하지 않을까 걱정했고 무엇보다도 아파트 사람들이 내 모습을 보기라도 하면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오해 할까봐 두려웠기 때문에 가까이 접근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소녀가 앞 화단에서 친구들과 소꿉놀이를 할 때면, 아파트 1층인 내 방은 미경이가 명랑하고 귀여운 목소리로 재잘거리는 소리로 가득했습니다. 난 그럴 때면 방에 누워 두 눈을 감고 소녀의 목소리를 듣곤 했습니다. 아직도 소녀의 목소리를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눈을 감고 생각을 하면 귓가에 소녀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옵니다.
조용한 어느 날 창문을 열고 밖을 보다 나무아래 긴 의자에 혼자 앉아 있는 소녀의 옆 모습을 보았습니다. 전 사랑하는 소녀를 계속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소녀와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기 때문에 들키지 않으려고 얼굴만 창문틀에 내밀고 바라보았죠. 미경이는 그때 사랑스런 얼굴에 잘 어울리는 노란색 스웨터와 긴 플레어 스커트를 입고 있었고, 두 손을 가지런히 무릎에 올려 놓은 채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어린이들을 바라보며 미소짓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전 숨을 죽이고 바라보았죠. 소녀는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던지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려 창문의 나를 보았습니다. 1초, 2초, 3초......9초 오랫동안 호기심 어린 소녀의 눈빛과 애정 어린 내 시선이 함께 했습니다. '노무라 히데오'의 '기도'란 시 구절처럼, 정다운 소녀가 고요한 눈동자로 나를 지켜보고 있으니 나는 사랑을 받고 있는 듯 생각했습니다. 바보같이 먼저 시선을 피했던 것은 저였습니다. 속삭이는 듯한 눈동자 때문에 사실 저…… 부끄러웠습니다. 심하게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창문 밑 방바닥과 벽에 기대고 앉아서 생각했습니다. '저 초등학생 소녀가 내 눈빛의 의미를, 사랑을 알기나 할까?'
짝사랑의 열병이 시작될 무렵 전 하숙집을 학교 근처로 옮겨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전에 글쎄! 미경이의 남자 친구를 보았습니다. 미경이가 조숙해 보인다고 말했죠? 초등학생이 벌써부터 연애를 했던 것입니다.
처음 그 남자애를 보고 제 두 눈은 도끼눈이 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사이가 좋아지도록 빌어 주었습니다. 둘이 다정하게 손을 잡고 아파트 공원을 산책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도 잘 어울리는 그들의 모습에, 이루어 질 수 없는 나의 사랑은 힘없이 무너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고등학생인 내게 질투를 느끼게 한 그 곱상한 남자아이가 그렇게 착하고 믿음직스러워 보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숙집을 옮기며 이제 미경이를 내 마음속에서 놓아 줘야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그래도 가끔 초상화의 그림을 보며 소녀를 생각했고 세월이 지나면 지날 수록 미경이에 대한 그리움은 더해만 갔습니다.
소녀는 저와 어느 곳 이든지 함께 했습니다.. 군대에까지 데려가 관물대에 초상화를 붙였더니 여자친구나, 연예인 사진을 붙인 동기들은 나에게 미친놈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소녀에 대한 짝사랑으로 가슴을 따뜻하게 하며 군 생활에서의 힘든 시절, 고통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제가 대학생활을 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처럼 좋아하는 이성친구를 만나고 평범한 사랑을 경험했다면 예전의 기억은 희미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픔만을 겪은 후 여자들의 알다가도 모를 마음과 행동에 환멸을 느끼게 되면서 - 착한 소녀는 순진하고 정직해서 다 큰 아가씨들처럼 자신의 감정을 감출 줄 모르고 남자를 속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죠. 그래서 미경이를 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 졸업을 앞둔 지금도 미경이에 대한 짝사랑의 추억은 그리워지고 깊어만 가고 있습니다.
저는 미경이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미경이는 내게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제 인생의 미래와 꿈, 사랑과 행복 이 모든 것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미경이가 대학생이 됐을 무렵에 제 마음이 담긴 편지를 써서 직접 전해 주려고 그녀의 집에 찾아 갔었습니다. 얼마전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고 하더군요.
제 생각과 마음이 순수한 것이기에 미경이에 대한 사랑을 멈추지 않으려고 합니다.'
"미경아 여기까지가 내가 너무 궁금해서 너 몰래 그 사람과 주고 받은 메일을 정리해 놓은 거야 다 읽었어?" 미안한 눈빛으로 미경이를 바라보며 지민이가 물었다.
"지민아 나, 눈물이 날 것 같아."
끝.
얼마전에 홈페이지를 만든 동기를 제공해준 소녀이며, 제가 그토록 좋아했던 소녀 미경이에게서 잘 지낸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거의 10년이 지났네요. 잘 지내고 있다는 말, 그 말이 듣고 싶어, 그 모습이 제게 전부이기에 지금까지 찾아 왔습니다.
(짝사랑의) 초상화
이 글은 제 짝사랑 이야기를 [문학과 인생] 교양과목을 수강하며
소설형식으로 재구성한 글 입니다.
내용은 100% 진실임을 밝힘니다.
초 상 화
"미경아 너 혹시 어렸을 때 집이 대전 가양동 예지아파트였니?"
대학에 입학해서 사귄 가장 친한 과 친구 지민이가 만나자마자 인사대신 물었다.
"어! 지민아 그걸 어떻게 알았어?"
"정말야! 이럴수가, 그럼 너 홍장표란 사람도 알겠네?"
"홍장표? 글쎄…… 처음 듣는 이름인데?"
"그 사람 홈페이지에 네 이름이 있어서 물어 본건데?"
"정말! 지민아 어떤 이야기였는데?"
"소녀초상화 설명에 미경이 널 추억하게 한다고 한 것 같아"
"안되겠다, 따라와 미경아"
답답하고도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은 지민이는 미경이의 손을 잡고 전산실로 뛰었다
"지민아 천천히 뛰어~"
"주소가 http://any.to/beauty야"
"나왔다! 홍장표의 아름다운 세상?"
궁금했던 미경은 못 참고 외쳤다
"내가 주로 mp3음악 다운 받느라 이용하던 곳 인데……, 잘 봐 아름다운 소녀란을 클릭 했더니 첫 번째 소녀 초상화에……, 이것봐!"
천진난만하게 생긴 미경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가장 좋아하는 소녀 그림 - 고등학교 하숙 시절 아파트 윗층에 살던 초등학생 이미경을 추억하게 합니다. (대전시 가양동 예지아파트)]
천천히 글을 읽은 미경이는 가만히 초등학생 때의 기억을 돌아보았다. '누굴까?'
"아마 미경이 널 좋아 했나본데?"
"홍장표 이 남자 누군데 널 추억한다는거야? 가만! 소개란을 보면 사진이 있겠다"
신이 난 지민이는 손으로 마우스를 움직이며 계속 수다를 떨었다.
"미경아 이것 봐! 나이 언제나 스무살, 대전 명석고 졸업, 홍익대 재학중……,"
찬찬히 사진만을 바라보던 미경이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나……, 이 남자 알 것 같아"
"그래? 누군데?" 지민이는 궁금해서 미경에게 바싹 다가오며 물었다.
"어렴풋이 얼굴만 기억해 하지만 몰라"
"우~ 씨 뭐야? 정말 잘 몰라?"
"응"
"장표야 뭐 하냐?"
"응 방명록 답장 좀 쓰려고"
"야! 넌 맨날 홈페이지 가지고……, 공부 좀 해라! 4학년이잖아, 나 먼저 도서관 간다!"
"응 조금 있다 보자"
매일 아침 전산실부터 들러 홈페이지에 방문한 사람들의 기록을 읽고, 답장하고 이메일 답장하고…… 이것이 내 하루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새로 도착한 열 일곱 통의 메일중 한 통이 나의 기억을 10년 전으로 되돌려 놓았다.
'안녕하세요? 홍장표님 전 임지민이라고해요. 반가운 소식이 있어 이렇게 편지를 보냅니다. 이미경 아시죠? 전 미경이의 같은 과 친구거든요. 혹시 미경이에 대한 소식을 알고 싶나요?
알려 드리죠! 하지만, 전 미경이처럼 티없이 착한 여자가 아니랍니다. 좀 짓궂죠! 홍장표님의 추억을 제게도 조금 나누어 주세요. 그러면 알려 드릴께요. 그럼 짓궂은 지민이가...' 몇 번씩 편지를 읽으며 믿기지 않는 편지에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빨리 미경이의 소식을 알고 싶었지만 나는 바로 답장을 쓸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몇 줄의 문장으로 내 추억을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후 수업이 끝나는 대로 집으로 돌아와 내 방 책상 위에 있는 초상화를 한참 들여다보고 눈을 감았다.
'열 여덟살이었던 10년전, 소녀를 처음 본 날, 그 날로 내 인생의 성장을 멈추고 싶습니다.'
내 이메일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1991년 4월, 벚꽃 잎이 날리던 토요일이었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하숙집으로 향하던 중 이었죠. 오후 따스한 봄기운 때문에 기분이 무척 좋았습니다. 하숙집인 아파트 입구를 들어서다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내게로 달려오는 한 소녀를 보았습니다. 마르고 큰 키, 긴 생머리의 초등학생 소녀는 무엇이 즐거운지 화사한 미소를 머금고 나를 스쳐갔습니다.
나는 바로 멈추어 뒤를 돌아보았고, 얼른 가방을 열고 지갑 속에 있는 작은 초상화를 꺼냈습니다. 그리고 초상화 속의 소녀얼굴을 보고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노는 그 소녀의 작은 얼굴을 보았습니다. '이럴수가, 이렇게 같을 수가...... 화가는 혹시 저 소녀를 모델로 이 초상화를 그린 것일까?' 저는 그때 이렇게 생각하며 약간은 놀랬습니다.
참! 왜 지갑에 그 초상화를 가지고 다니게 됐는지 설명하겠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하숙집 다락방에 올라가 보니 선배들이 열심히 공부한 흔적이 남아 있는 연습장이 버려지지 않고 그대로 쌓아 놓여 있었습니다. 호기심에 연습장을 살피다 좋은 시와 함께 소녀를 그린 초상화 일색인 표지를 보고 마음에 들어 조심스럽게 오려서 보관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제 홈페이지에 있던 아름다운 소녀란의 초상화는 모두 그때 모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성친구와 이야기조차 나눌 수 없었던 고2때 가장 맘에 드는 그림을 여자친구의 사진처럼 지갑 속에 껴 놓고 다녔던 것입니다.
그 소녀는 하숙집 바로 윗 층에 살고 있었지만 볼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습니다.
어쩌다가 소녀의 모습을 보면 주의 깊게 바라보았죠. 늘 명랑하면서도 조숙해 보이는 행동과, 가볍지 않은 우아함으로 같은 나이 또래 아이들에게서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며
난 어이없게 초등학생 소녀를 짝사랑하기 시작했습니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어린 소녀의 귀여움에 대한 마음이 아닌, 그건 분명 사랑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난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고 그 소녀의 이름 '이미경'과, 나이 11살, 다니는 가양초등학교, 언니와 여동생의 이름, 미영, 미진...... 소녀에 대한 모든 것이 나의 전부처럼 생각됐습니다. 소녀에 대해 조금씩 조금씩 알기 시작하며 사랑하는 마음은 간절했지만 말을 건넬 수 없었습니다.
아무런 감정이 없다면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어린 소녀에게 "뭐하며 노니" 하고 말을 건네는 것은 쉬운 일이죠. 그러나 애틋한 내 마음을 혹시 소녀가 알게 돼 놀라서 나를 멀리하지 않을까 걱정했고 무엇보다도 아파트 사람들이 내 모습을 보기라도 하면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오해 할까봐 두려웠기 때문에 가까이 접근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소녀가 앞 화단에서 친구들과 소꿉놀이를 할 때면, 아파트 1층인 내 방은 미경이가 명랑하고 귀여운 목소리로 재잘거리는 소리로 가득했습니다. 난 그럴 때면 방에 누워 두 눈을 감고 소녀의 목소리를 듣곤 했습니다. 아직도 소녀의 목소리를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눈을 감고 생각을 하면 귓가에 소녀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옵니다.
조용한 어느 날 창문을 열고 밖을 보다 나무아래 긴 의자에 혼자 앉아 있는 소녀의 옆 모습을 보았습니다. 전 사랑하는 소녀를 계속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소녀와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기 때문에 들키지 않으려고 얼굴만 창문틀에 내밀고 바라보았죠.
미경이는 그때 사랑스런 얼굴에 잘 어울리는 노란색 스웨터와 긴 플레어 스커트를 입고 있었고, 두 손을 가지런히 무릎에 올려 놓은 채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어린이들을 바라보며 미소짓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전 숨을 죽이고 바라보았죠.
소녀는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던지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려 창문의 나를 보았습니다.
1초, 2초, 3초......9초
오랫동안 호기심 어린 소녀의 눈빛과 애정 어린 내 시선이 함께 했습니다. '노무라 히데오'의 '기도'란 시 구절처럼, 정다운 소녀가 고요한 눈동자로 나를 지켜보고 있으니 나는 사랑을 받고 있는 듯 생각했습니다.
바보같이 먼저 시선을 피했던 것은 저였습니다. 속삭이는 듯한 눈동자 때문에 사실 저…… 부끄러웠습니다. 심하게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창문 밑 방바닥과 벽에 기대고 앉아서 생각했습니다.
'저 초등학생 소녀가 내 눈빛의 의미를, 사랑을 알기나 할까?'
짝사랑의 열병이 시작될 무렵 전 하숙집을 학교 근처로 옮겨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전에 글쎄! 미경이의 남자 친구를 보았습니다. 미경이가 조숙해 보인다고 말했죠? 초등학생이 벌써부터 연애를 했던 것입니다.
처음 그 남자애를 보고 제 두 눈은 도끼눈이 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사이가 좋아지도록 빌어 주었습니다. 둘이 다정하게 손을 잡고 아파트 공원을 산책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도 잘 어울리는 그들의 모습에, 이루어 질 수 없는 나의 사랑은 힘없이 무너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고등학생인 내게 질투를 느끼게 한 그 곱상한 남자아이가 그렇게 착하고 믿음직스러워 보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숙집을 옮기며 이제 미경이를 내 마음속에서 놓아 줘야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그래도 가끔 초상화의 그림을 보며 소녀를 생각했고 세월이 지나면 지날 수록 미경이에 대한 그리움은 더해만 갔습니다.
소녀는 저와 어느 곳 이든지 함께 했습니다.. 군대에까지 데려가 관물대에 초상화를 붙였더니 여자친구나, 연예인 사진을 붙인 동기들은 나에게 미친놈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소녀에 대한 짝사랑으로 가슴을 따뜻하게 하며 군 생활에서의 힘든 시절, 고통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제가 대학생활을 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처럼 좋아하는 이성친구를 만나고 평범한 사랑을 경험했다면 예전의 기억은 희미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픔만을 겪은 후 여자들의 알다가도 모를 마음과 행동에 환멸을 느끼게 되면서 - 착한 소녀는 순진하고 정직해서 다 큰 아가씨들처럼 자신의 감정을 감출 줄 모르고 남자를 속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죠. 그래서 미경이를 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 졸업을 앞둔 지금도 미경이에 대한 짝사랑의 추억은 그리워지고 깊어만 가고 있습니다.
저는 미경이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미경이는 내게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제 인생의 미래와 꿈, 사랑과 행복 이 모든 것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미경이가 대학생이 됐을 무렵에 제 마음이 담긴 편지를 써서 직접 전해 주려고 그녀의 집에 찾아 갔었습니다.
얼마전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고 하더군요.
제 생각과 마음이 순수한 것이기에 미경이에 대한 사랑을 멈추지 않으려고 합니다.'
"미경아 여기까지가 내가 너무 궁금해서 너 몰래 그 사람과 주고 받은 메일을 정리해 놓은 거야 다 읽었어?"
미안한 눈빛으로 미경이를 바라보며 지민이가 물었다.
"지민아 나, 눈물이 날 것 같아."
끝.
얼마전에 홈페이지를 만든 동기를 제공해준 소녀이며,
제가 그토록 좋아했던 소녀 미경이에게서 잘 지낸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거의 10년이 지났네요.
잘 지내고 있다는 말, 그 말이 듣고 싶어, 그 모습이 제게 전부이기에
지금까지 찾아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