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sophy of Caring 돌봄의 철학 Kari Martinsen(1943~present)
박효선2009.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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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i Martinsen(1943~present)
Philosophy of Caring
Credentials and Background of the Theorist
Kari Marie Martinsen은 간호사이자 철학가이며, 노르웨이의 수도인 오슬로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그녀는 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노르웨이를 점령하고 있었던 1943년에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님은 둘다 레지스탕스였으며, 아버지는 비합법적으로 일했다. 그녀의 집은 어린 여동생, 부모님, 그리고 할머니의 3세대로 구성되었고, 전쟁발발 후에 가족안에서는 도덕적이고 사회정치적인 토론이 우위를 차지했다. 두분 부모님은 오슬로의 대학에서 경제학자로 교육을 받았고 그녀의 어머니는 거의 집밖에서 일을 했다.
고등학교 졸업후에 Martinsen은 오슬로에 있는 Ulleval 간호대학에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64년에 간호사가 되었다. 그녀는 대학 입학을 위한 준비를 하면서 1년동안 병원에서 임상실습을 하면서 일했다. 그러나 대학교 학위를 시작하기전에 그녀는 간호에 관한 한층 높은 교육을 받았고 1966년에 정신과 간호사가 되었다. 그녀는 오슬로 근처에 있는Dikemark 병원에서 2년동안 근무했고 정신과 외래에서 여러해동안 종사하였다.
간호사이며 정신과 간호사인 그녀는 사회불평등과 건강서비스의 불평등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건강, 질병, 돌봄, 치료는 불평등하게 분배되고 있었다. 몇몇의 환자들은 다른 몇몇이 그들이 필요한 도움을 받지 못하고 기다리는 동안에 도움, 지원, 관리를 받았다. 더나아가 그녀는 한편으론 건강관리 이론, 이상과 목표 사이에는 불일치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 간호, 의약, 건강서비스의 실행적, 구체적인 결과 또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고용시장 밖으로 소외된 사람과 아픈 사람들을 지지하고 돕기 위해서 사회와 전문분야가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 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간호전문가에게 던진 질문중 하나는 가장 취약한 환자와 돌봄을 매우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낙담시키지 않게 하도록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가이다. 그다음으로 따라오는 질문은 의학이 신체적인 질병을 제일 먼저 다룰 때 간호사는 아픈 사람을 위한 간호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다시말해서 Martinsen은 건강서비스안에서 환자들을 객관화시키는 과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서 돌봄의 대상을 어떻게 적절하게 간호할 수 있는지에 대해 묻고 있다. 그녀는 동일한 객관화가 간호의 훈련을 위한 과학적인 기초에 중요성을 증대시킬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제시했다.
이러한 근본적인 질문들은 Martinsen이 1968년 오슬로 대학교에서 심리학 학사학위를 받을 시점에 더 많은 연구를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시점에서 그녀는 심리학 석사학위를 받을 계획을 세웠다. 자격을 얻기 위해서 그녀는 생리학과 중급수준에 있는 다른 선택과목의 학점을 얻기 위해 중간 시험을 치러야만 했다. 그녀는 1969년에 생리학 시험을 치뤘다. 그녀는 다른 중급과목으로서 철학을 선택했고, 1971년에 시험을 치뤘다. 두 시험 모두 오슬로 대학에서 치뤄졌다. 철학과 현상학을 접하면서 그녀의 계획은 변했다. 그녀는 생리학보다 철학이 존재론적인 질문들에 더 도움이 된다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깨달음은 노르웨이의 다음으로 가장 큰 도시인 Bergen 대학교에서 생겼났다.
1972년에서 1974년까지 그녀는 Bergen 대학교에서 철학 대학 학생이었다. 대학원에서 철학논문(Magister artium)의 학위가 1975년에 발표되었고, 그녀는 시민과 전문가와 건강관리 근로자에게 방해되는 문제점을 철학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논문의 주제는 철학과 간호(Marxist와 현상학적인 공헌, Martinsen, 1975)였다. 그 논문은 토론을 창출시켰고 더 많은 비평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다. 논문은 전문성을 무비평적으로 수용한 간호훈련의 결과와 간호의 과학적 기초를 무비판적으로 포용하는 결과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함으로서 비평적 눈길을 끌었다. 그러한 발전은 가장 많은 도움을 필요로하는 환자들에게서 멀리 떨어져있는 간호사들에게 조언을 줄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노르웨이에서 간호사가 쓴 첫 번째 논문은 간호훈련을 비판적 철학과 사회관점에서 분석했다.
노르웨이에서 1970년대 중반동안에는 간호대학을 위한 간호교수가 부족했고 Bergen에 도 마찬가지였다. Bergen에 세 개의 간호대학교의 학장들은 처음으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일시적으로 교수training코스의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Bergen 대학교와 Bergen에 있는 세 개의 간호대학교와 국가에 의해서 공동으로 설립되어졌다. 대학교 수준의 자격을 갖고 있는 간호사가 선두가 되도록 요구되었다. Martinsen은 1976년에서 1977년까지 Bergen에서 간호교수훈련 학부장으로 요청받게 되었다.
철학적 연구와 간호와 간호교육내에서 접했던 사회학적인 문제들을 통해서, Martinsen은 간호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노르웨이에서 시작된 간호가 어떻게 교육되었는지, 누가 시작의 책임을 가지고 있는지, 그들이 무엇을 성취했는지에 대해서.. 이러한 문제들을 좀더 면밀히 살펴보기위해서 Martinsen은 1976년에 노르웨이인 간호협회에 보조금을 신청하였다. Bergen 대학에서 사회의학과 위생연구소와도 협약을 맺게 되었고, 그녀가 학부장으로 있는 간호 교수훈련프로그램에서 간호학을 강의하는 동안에 그곳에서 의과생들에게 사회의학에 대하여 강의하였다.
그 당시는 간호교육에 대한 심한 논쟁이 진행중이었다. 공공 위원회는 전통적인 3년의 학위체제의 유지를 제안했으나 결국 이는 각 단계별 자격취득시스템으로 대체되었다. 1년의 과정이수 후에 학생은 간호 보조원으로서 자격을 취득해야하고 그이후 2년후에 간호사의 자격을 얻게된다. 이것은 종합적인 3년학위제도의 폐지를 의미한다. 노르웨이 간호협회를 선두에두고 전국의 간호사들은 3년의 간호학위를 보장하기 위한 항의시위를 했다. 게다가 융통성없이 제기되어 있는 이 논쟁에서 간호교육 문제위에는 정치적인 토론의 목소리가 뜨거워졌다.
Martinsen은 이러한 논쟁에 직접 뛰어들었다. 그녀는 간호교육은 4년의 프로그램으로 변화해야한다고 주장하면서 단계별 교육의 원칙은 허용하였다. 또한 그녀는 2년과정 후의 간호보조자와 4년과정이 후의 간호사자격이 주어지도록 교육모델을 그렸다. 간호협회가 추구하는 포괄적인 3년의 학위목표와 함께 그녀의 주장은 도발로서 비춰지게 되었다.
1978년에 그녀는 노르웨이의 총체 과학 연구 위원회로부터 지원금을 받게 되었다. 지금은 오슬로에 있는 대학에서 역사협회에 소속되어 있다. 그녀는 최근에 사회정치학적인 역사과목에서 석사학위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면서 간호의 사회역사에 대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1981년부터 1985년까지 그녀는 Bergen대학의 역사연구회에서 연구보조자로서 근무했다. 그녀 자신의 연구에 더하여 Martinsen은 페미니스트 역사 과목에서 석사학위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고 관리하면서 노르웨이 페미니스트 역사의 기본토대를 발전시켰다.
1976년과 1986년까지 기간은 Martinsen의 업적에서 역사적인 기간으로 묘사된다. 그녀는 몇가지 역사적인 논문들을 출판했다. 이기간동안 가까운 협력자로서 사회역사학 교수인 Anne Lise Seip, 페미니스트 역사의 교수인 Ida Blom , 사회학 교수인 Kari Wærness가 있었다. 1979년에 Martinsen과 Wærness는 “횟불을 붙여라”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으로 Caring without care?라는 책을 출판했다. 저자가 표현하는 문제점들은 간호가 병상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지는 않은지, 아픈사람과 약한이들에 대한 간호가 증가하는 기술적인 간호와 처치로 인해 사라지고 있지는 않은지, 간호사들이 다른 업종에게 점점 더 구체적이고 중요한 돌봄작업을 넘기고 있는 관리자나 연구자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한 것들이었다.
질병과 돌봄에 의존하는 사람을 돕는 것은 여성의 일로서 매우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전문적으로 훈련된 간호사의 등장은 1800년대 후반이 시작되어 노르웨이에서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독일에 다른 집사 교회에서 교육을 받은 여집사들이 노르웨이에서 일하는 최초의 훈련받은 의료근로자들이 되었다. Martinsen은 이들이 어떻게 노르웨이에서 간호 교육을 일으켰는지 기술했으며 그들이 어떻게 확장시키고 , 책을 쓰고, 시설과 가정 모두에서 간호수행을 했는지를 기술하였다. 그들은 노르웨이의 공공 건강 시스템의 선구자들이었다. 이런 개척 시점은 그녀 저서인 『Nursing History : Frank and Engaged Deaconesses : A Caring Profession Emerges 1860-1905』에 기술되어져 있다. 이책을 근거로 해서 Martinsen은 Bergen 대학에서 1984년에 철학박사를 받게 되었다.
그녀의 시문과 관련하여 그녀는 두가지 강의들을 준비했다 : 건강 정책 문제와 1969년의 병원법을 배경으로 한 건강 정책의 사색, 그리고 의사의 임신에 대한 관심- 주산기 관리의 부분 : 시점 1890-1940. 역사적 시기의 10년 동안의 논문에서 그녀는 1970년 중반부터 시작하여 간호학의 사회역사와 페미니스트 역사 그리고 의학의 사회역사에 대하여 기술했다.
1986년부터 그녀는 건강 협회에서 준교수로, Bergen 대학교에서 사회의학 교수로 2년동안 근무했다. 그녀는 석사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고 관리감독을 했으며 사회철학적이고 역사적인 논문의 출판에 더 매진했다. Caring, Nusing and Medicine. Historical Philosophical Essays(Martinsen,1989c)인 이 책은 1989년에 출판되었다. 그것은 간호내의 돌봄과 간호의 철학, 간호역사의 에세이, 의학과 건강서비스의 역사의 세부분으로 나누어졌다. 이책은 Martinsen의 역사적인 면의 요소를 끌어냈고 그녀의 논문에서 더 많은 철학적인 시점의 시초를 두드러지게 하였다. 이 논문은 여러edition이 있다. 2003년판에는 저자에 대한 긴 인터뷰가 포함되어져 있다. 돌봄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점들과 분별의 의미에 대한 해석이 1985년부터 1990년까지 그녀를 몰두하게 한 문제들이다. 1990년에 덴마크에서 출판된 논문들의 collection에서 그녀는 논문에 "도덕적인 수행과 실제간호에서의 문서화“라고 제목을 붙였다. 그 책에서 그녀는 이렇게 기술했다.
윤리적인 수행은 돌봄에 바탕을 둔다. 돌봄은 단지 간호의 가치있는 토대를 구성하는 것 뿐아니라 우리의 삶의 기본적인 전제조건이다.... 신중함은 감정이입을 요구하고 행동의 대체를 사정하기 위하여 상황적 분별력을 요구한다... 간호의 윤리적인 수행을 학습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상황안에서 윤리가 어떻게 자리잡고 있는지를 배워야만 한다. 행동과 말에 있어 경험적 객관성을 통해서, 또한 신중함을 통하여 이해된다. 이 두가지 경우에 중요한 것은 선의의 간호를 배우는 것이다.
1990년에 Martinsen은 덴마크로 이사했다. 그녀는 간호학 프로그램인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과정을 확립시키기 위해서 Arhus의 대학교에 고용되었다. 그녀는 5년간 남아있었다. 그녀의 철학적인 기초는 덴마크의 삶-철학, 이론학적인 전통을 접하면서 더욱 발전하였다. Caring, Nusing and Medicine: Historical-Philosophical Essays, Martinsen(1989,c)에서 Martinsen은 독일 철학가 Martin Heidegger의 돌봄의 개념을 연관시켰다. 덴마크에사는 동안, 2차세계대전동안 나치 신봉주의자로서의 Heidegger의 입장은 그녀에게 더욱 명확하게 다가왔다. 그 당시에 출판된 대학 논문들은 Heidegger가 독일의 국립 사회당의 일원임을 증명하였다. 그리고 그는 그의 유대인 동료인 Emmund Husserl과 Hannah Arendt와 같은 친구들을 배신했다. Heidegger는 나치와의 관련 때문에 전쟁후 수년간 가르칠 수 없게 되었다.
Martinsen은 『From Marx to Løgstrup:On Morality, Social Criticism and sensuousness in Nursing(Martinsen,1993,b)』에서 Heidegger의 철학에 대하여 그녀자신의 사상을 비교하였다. Knud E.Løgstrup(1905-1985)는 덴마크의 신학자이면서 철학가이다. 정확히 말하면 삶과 배움은 분리 되어질 수 없기 때문에 돌봄의 근본적인 측면을 실증하기 위해서 Heidegger보다 더 많은 원천적 기회에 다가가는 것이 Martinsen에게는 중요했다. K.E. Løgstrup는 대체적 원천적 기회를 내놓았다. K.E. Logstrup는 1985년에 죽었지만 Martison은 그의 책을 통하여 그를 알고 있었다. Løgstrup의 아내인 Rosemarie Løgstrup는 원래 독일인이였다. 그녀는 독일에서 철학을 공부하면서 남편을 만났고 나중에 그의 책을 독일어로 번역하였다. Martinsen은 덴마크에서 살고 일하면서 Rosemari Løgstrp를 여러차례 방문했다. 그들의 친분과 학자적인 대화는 Martinsen이 노르웨이로 다시 되돌아온 후에도 계속되었다.
Martinsen은 덴마크에서 살고 일하면서 노르웨이와 덴마크의 공공 회담에서 Patricia Benner를 만날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고 1996년 California에서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러한 회담중 하나가 Tromsø 대학교에서 열리게 되었다. Martinsen은 윤리와 사명, 문화와 신체라는 주제를 가지고 출판했다. 그녀는 또한 핀란드 간호학 교수인 Katie Eriksson과 함께 토론을 계속 하였다. Eriksson과 Martinsen은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에서 만났다. 처음에 Eriksson과의 토론은 팽팽하고 긴장되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대화는 훌륭하고 계몽적으로 발전해나갔다. Martinsen은 이러한 대화내용을 Phenomenology and Caring: Three Dialogues.라는 제목의 책으로 만들었다. Eriksson은 책에 맺은말을 썼다. Martinsen은 이 책의 첫 번째 장에서 Caring and Metaphysics - Has Nursing Science Got Room for This?, 두 번째장에서는 “간호수행내의 신체와 영혼”, 세 번째로는 “창조 현상학 - 윤리와 힘 : Løgtrup의 종교철학과 간호수행의 만남” 이라고 표제를 붙였다. 이것은 Martinsen이 Benner와 함께 나눈 대화와 유사한 인상적인 언어이다. 책의 머리말에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핀란드인 간호 연구사인 Katie Eriksson과 나와의 토론은 간호의 “big words"를 다루고 있다. 우리가 말하고 쓰는 단어들은 열정, 희망, 고통, 아픔, 희생, 창피, 위반, 의심 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러한 것이 “big words"이다. 하지만 삶 안에서나, 우리의 매일의 간호 상황안에서의 위치 보다 크진 않다. 덴마크인의 신학자와 철학자 Løgstrup이 쓴 자비심은 삶의 부활이며 다른 사람들의 삶에 기여한다..... 그밖의 간호는 삶과 죽음 사이에 존재하는 삶의 순환내에서 환자들에게 삶의 가능성을 주는 것 이외에 또 무엇을 하는가? 우리는 이러한 “big words"들의 의미를 경험하기 위해서 우리 주변인들의 삶에 과감히 뛰어들어야 한다.
Martinsen은 Arhus에서 가르치는 동안에 그녀는 또한 Tromso의 대학에서 간호과학 부서에서 1994년도에 초에 두 번째 교수를 시작하였다. 1997년도에 그녀는 북쪽으로 이사했고 결과적으로 전임교수가 되었다. 그녀는 이 위치에서 겨우 1년동안만 있었다. 그녀는 연구와 집필을 위한 시간의 부족을 느끼고 1998년도에 프리랜서가 되었다.
1990년부터는 철학적 연구기간으로 특징지워진다. 근본적인 철학과 존재론적인 질문들과 간호학에 관련한 그 질문들의 의미가 그녀의 사상를 지배했다. 그녀는 이 기간에 공통점이 없는 프로젝트에서 일하면서 자신의 책에 더하여 몇가지 저널과 간행물을 출판하였다. 이시점으로부터 2권의 책은 이미 언급했다. 2000년도에 “The Eye and the Call” 이라는 책이 출판되었다. 이 책안의 제목들은 전보다 더 시적인 감동을 주도록 씌여있었다. : “마음의 눈으로 보기”,“윤리, 문화 그리고 신체의 상처” “사명-그것 없이 할수 있을까?” 그리고 “사랑의 행위와 사명” Martinsen은 또한 공간과 구조에 대한 개념을 연구했다. 공간과 구조는 인간존엄성을 지켜줄 수 있다. 이것을 그녀는 처음으로 시적인 제목을 가진 기사를 썼다. “집과 노래, 눈물과 수치 : 인간 존엄성을 보호받는 공간과 구조” 2004년도에 그녀는 건강서비스내에 있는 공간과 구조에 대한 프로젝트를 연구하고 있다.
Martinsen은 Bergen에 한 기독교 대학교와 오슬로의 대학 두 곳에서 자리를 잡게 되었다. 1989년부터 1990년까지 그녀는 Bergen에 있는 Bergen 여집사 대학교에서 연구자로서 있었고, 1999년부터 가을 2004년도까지는 오슬로에 있는 Lovisenberg 기독교 대학에서 파트타임 제2교수로 있었다. 개념과 학술적인 모험들이 그녀를 둘러싸고 쉽게 싹이 트고 번성하게 했으며, 그녀는 다른 사람들을 학술적 프로젝트로 이끌었다. Bergen에서 일하는 중 그녀는 몇몇 간호대학 교수들의 논문의 collection을 “The Thoughtful Nurse (Martinsen ,1993,c)”라는 제목으로 편집하였다. 오슬로에 있는 Lovisenberg 집사 대학교에서 Martinsen은 조교와함께 1877년도에 만들어진 노르웨이의 첫번째 간호학 교재의 new edition을 출판하기 시작했다. Martinsen은 학술적인 간호의 교재가 되기를 바란다는 맺은말을 썼다. 오슬로에서 신학과에 제2교수로있는 동료와 함께 Martinsen은 또 다른 논문의 모음집을 편집했다. 편집자와 함께 대학 강의자들이 논문들을 책으로 내는데 기여하였다. 그 제목은 “윤리, 훈련과 정화 : Elizabeth Hagemann의 윤리학 책-새로운 읽기”이다. 이책은 1930년도에 출판된 간호사들을 위한 윤리에 관한 교재에 대한 분석을 제공했고 1965년도에 바로 교재로 사용되었다. 윤리교재가 2003년도에 재판되어졌을때 독일 사회학자인 Max Weber 뿐만아니라 두명의 프랑스 철학가인 Pierre Bourdieu와 Michel Foucault의 입장에서 해석되었다.
이 마지막 출판물과 함께 Martinsen은 역사안에 자신의 근본으로 되돌아갔다. 역사적이고 철학적인 요소가 융합된것처럼 보인다. 그요소들은 그녀의 사상안에 각각 다른 면으로 나타나있지만 각각 다른 기간동안의 그녀의 연구에 다채로운 색깔로 나타나고 있다.
2002년도에 Martinsen은 자신의 길인 Bergen 대학으로 되돌아가서, 간호과학부문인 공공 건강과 일차 건강 관리부서에 교수로서 고용되어졌다. 석사와 박사학생들의 관리감독 및 강의는 현재의 주된 일이다. 그녀는 박사과정을 준비하고 있고 북유럽나라들에서 감독과 강의자로서 많은 요청을 받고 있다.
Theoretical Sources
초기 1970년경에 간호전문성의 분석에서 Martinsen은 세명의 철학가들을 특별히 주목했다. 독일 철학가이자 정치가, 그리고 사회 이론주의자인 Karl Marx (1818-1883), 독일 철학가이고 현상학의 창시자인 Edmund Husserl(1859-1938), 프랑스 철학가이자 신체 현상주의자인 Merleau-Ponty(1908-1961)이다. 나중에 그녀는 그녀의 이론학적인 원천을 다른 철학가들과 신학자, 그리고 사회주의자을 통해 확대해 나갔다.
Karl Marx: Critical Analysis- A Transformative Practice
마르크스 주의 철학은 Martinsen에게 간호의 훈련과 간호가 발견한 사회위기를 직접 현실감있게 묘사할 수 있는 몇가지 분석학적인 도구를 주었다. 위기는 깨지기쉽고, 특수화되고, 기술적으로 계산되고, 동시에 간호에 대하여 전체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는 듯이 보이는 성질을 평가하는 훈련의 실패로 이루어진다. 그녀는 훈련은 실습의 해방이 없는 실증주의와 자본주의 체계의 일부임을 발견했다. "Reversed care-law"는 최소한의 도움을 필요로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관리한다. Marx는 개인주의를 비평했고 가난한 사람들의 지출에 대한 부자들의 배상필요성에 대해서 비평했다. Martinsen의 관점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건강 서비스 안에서 발생 할 때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한 폭로는 현실의 변화를 초래하는 힘을 가질 수 있다. 그녀는 우리가 간호의 본질과 내용과 내부구조, 역사적 기원, 전문성에 대해 의문점을 가져야 한다고 썼다. 이것은 역사적, 사회적 배경내의 전문성과 직업의 견지에서 비평적인 간호수행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
Edmund Husserl: Phenomenology as the Natural Attitude
Husserl의 현상학은 Martinsen의 과학와 실증주의의 비평에는 중요하다. 자기자신의 실증주의 관점은 객관화시키는 태도 사물의 성격을 감소시키는 비개성적, 다른 사람향한 계산하는 태도로 이루어져있다. Husserl은 엄격한 과학으로서 현상을 바라본다. 현상학의 엄격한 방법론적인 과정은 우리가 무의식중에 행하거나 당연시 여겨 수행한 상황이나 구조들을 폭로할 수 있는 그러한 과학적 존재에 대한 침착한 반성적 태도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연습은 당연히 행했던 것들을 어렵게 만드는 것에 관한 것이다. 당연히 자신을 이해하는 방심을 문제화함으로서, 반대적으로 또는 원근법적 시야에서 나타나곤 하는 “존재 그 자체”를 포착하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현상학연구는 우리가 무언가를 의미있게 이해하고 인식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접근했을때 가지게 되는 자연스러운 태도안에서부터 시작되는 과학발생 이전에 대해 다루고 있다. 현상학은 환경, 포함, 연결, 신체, 살아있는 존재에 기본바탕을 두고 있다. 우리는 환경안에서, 시간과 공간속에서 살고 있으며 우린 역사적으로 살고 있다. 신체는 몸과 영혼이 불리되어질 수 없으며 그것은 전체적이며 다른 신체와 다른 세계안의 존재와 다른 본질과 관련되어있다.
Merleau-Ponty: The Body as the Natural Attitude
Merleau-Ponty는 Husserl의 생각에 기본바탕을 두고 있지만, 세상안의 인간의 신체에 대하여 다른 어떤 사상가들보다 더 많은 초점을 두고 있다. Husserl과 Merleau-Ponty 두사람은 다른 사람과 함께 사는 세상으로부터 인간을 분리한 데카르트를 비평했다. 신체는 세상안에있을 때 자연스러워진다. 간호전문직은 모든면에 있어 신체와 연관되어있다. 우리는 돌봄의 일 안에 신체를 이용하며 우리는 간호, 처치, 돌봄의 필요안에 또 다른 이의 신체를 연관시킨다. 우리의 신체와 환자들의 신체는 행동, 태도, 말, 목소리 톤, 몸짓을 통해 표현된다. 현상학은 살아있는 존재, 돌봄이 행해져야 하는 전문적 상황을 포함한 상호연관된 자연스러운 세상내에 다른 이들과 함께 사는 사람들의 매일의 삶에대한 해석, 묘사, 인식의 행위가 포함된다. 인지, 설명, 살고 있는 삶의 인지 행동에 수반된다.
Martin Heidegger: Existential Being as Caring
Martin Heidegger는 독일 현상주의학자이었다. 그리고 Husserl의 학생이었다. 그는 어떤것인지, 어떻게 존재하는지와 같은 실재적인 존재에 대하여 탐구했다. Martinsen은 돌봄의 개념을 Heidegger와 연관시켰다. 왜냐하면 “그의 사상안에 중심적인 개념으로서 돌봄이 있기 때문이다.... 요지는 근본적인 돌봄의 질을 도출해내거나 무엇이 돌봄이며 무엇을 달성해야 하는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그녀는 우리 실제적 삶의 분석과 돌봄이 무엇인가에 관한 분석이 분리할수 없는 단위라고 기술했다. 한가지를 탐구하기 위해서 동시에 다른것들을 탐구해야한다. 그것들은 함께 분리할 수 없는 단위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돌봄은 인간을 이해하는데 있어 가장 근본적인 개념이다. 배경으로 현상학과 Heidegger를 둠으로써 Martinsen은 돌봄에 대한 요점을 두었다 : 돌봄은 전제조건으로서 적어도 두부분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인간은 다른사람을 위한 걱정과 근심을 가지고 있다. 돌봄은 우리가 서로 어떻게 연관되어있는지, 우리 일상생활안에서 서로에게 어떻게 걱정을 표현하는지를 포함한다. 돌봄은 인간의 존재의 가장 자연적이며 가장 근본적인 양상이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Martinsen은 그녀의 관점을 Heidegger에게로 변경했다. 정밀하게 말하면 삶과 철학은 분리가 되어질수 없기 때문에 Martinsen에게 있어 돌봄의 근본적인 측면을 묘사하기 위해서 Heidegger 주변의 출처에 접근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동시에 그녀는 Heidegger의 원칙과 격렬한 사상을 거부하지 않았다. 거주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썼을 때 그녀는 Heidegger에게 다시 되돌아갔다. Heidegger는 거주라는 용어로 정의된이 개념을 정확하게 연구해왔다. 거주한다는 것은 항상 처음과 맨 먼저 존재들 사이에 사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Heidegger가 Merleau Ponty가 단지 우리를 위한 존재 뿐아니라 객관적으로 말해서 우리 삶을 구체화하는데 참여하는 존재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고 얘기했을 때 염려했던 것을 강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는 거주할 때 가지고 살던 것들 안에서 우리자신의 일부를 버린다. 그것은 환경에 의해 둘러싸여있는 거주하는 신체이다.
Knud Eiler Løgstrup: Ethics as a Primary Condition of Human Existence
K.E.Løgstrup은 덴마크의 철학가 이며 두명의 다른 댄마크 작가인 Nikolaj Frederik Severin Grundtvig(1783-1872)와 Søren Aaby Kierkegaard(1813-1855)의 작품에 사상을 제공한 신학자이다. Løgstrup는 Grundtvig의 글들을 Kierkegaard와 함께 저항을 견디는 동안에 같은 의견으로서 이용하였다. 이들 두명 모두 Løgstrup과 같은 철학가이며 신학자이다. Heidegger의 공백뒤에 Løgstrup의 연구는 Martinsen에게 중요하게 되었다. 인간의 인식과 실제경험이 요점이다. Løgstrup는 두가지 지적인 요소들을 통해서 요약되어질 수 있다고 했다 : 현상학과 창조 이론학, 후반에 종교의 철학이 포함됨. 현상학자로서 그는 인간존재의 본질적인 현상을 분석하고 드러내려고 노력했다. 그의 현상학적인 연구논문을 통해서 Løgstrup은 주권자 또는 자발적인 삶의 발언 : 신뢰, 희망, 열정, 열린 대화,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것들이 우리의 존재의 이전문화적인 특징을 말하는데 필수적이다. 특징으로서 그것들은 우리 문화를 위한 환경, 존재를 위한 상태를 제공하며, 그것들은 인간 공동체를 가능하게 만든다. Heidegger사상에서도 돌봄은 매우 특징적인 것이다. 돌봄은 존재가 나타나면 반드시 나타나야 한다. 왜냐하면 존재는 우리자신과는 다른 존재와 꾸준히 관계를 맺음으로서 특징지어지기 때문이다. Løgstrup의 사상과 같이 주권자의 삶의 발언은 인간공존에 있어 필수적인 특성이다.
Martinsen은 Løgstrup의 경우 형이상학과 윤리학이 창조의 개념안에 엮여있다고 적었다.
그것들은 우리가 창조되어왔던 상황으로부터 야기된 다른 돌봄과 같이 우리와 함께하는 특징적인 현상이다. 다른 이들을 돌보는 것 자체는 믿음, 열린 대화, 희망, 열정을 통한 인간관계에서 드러나게 된다. Løgstrup이 주권자의 삶의 발언 이라 일컬었던 현상들 또한 윤리로 태어났다. 그들은 필수적인 윤리를 의미한다. 믿음, 열린 대화, 희망, 열정은 근본적으로 정당화를 필요로하지 않는 선한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것들을 통제하려든다면 그들을 파괴될 것이다. 형이상학과 윤리학 또는 형이상학적인 윤리학은 실제적이다. 인간이 고유의 권한을 박탈당했을때의 삶의 질문과 관련되어있다.
우리는 존재를 통제하기 위함이 아닌 돌봄을 해야한다. “서구문화는 그것을 이해하고 통제하기 위해서 필요한 유일한 것이다. 우리 문화의 요람과 구약성서로부터 구전되어온 신앙으로부터 전승되어왔다. 그 안에서 지키고, 보고 그리고 한편으로 돌보고 양성하고 다른 한편으로 사용하는 것이 통합되어 대립하고 있다. 이들은 통합되어 대립하고 있다라는 것은 다시 말하면 그것들은 단독으로 그리고 각각이 구분되고 능가할 수 없는 채로 대립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이 서로서로 적응하기 시작하면 전체의 소리를 내는 하나로서 통합된 대립상태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돌봄에 있어서 지도자와 보호자, 양성과 활용 즉, 통합된 대립으로서 돌봄 방법을 양성하고 이용하는 것은 거만하고 착취적이 되는 것이 아닌 서로서로와 성격을 다룸에 있어 제한적이고 신중해진다는 의미이다.
윤리적인 질문은 어떻게 사회가 고통 투쟁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돌보냐는 것이다. 간호상황에서 Martinsen은 이러한 방법안에 질문들을 명확히 얘기했다. “간호사로서 우리가 인간의 영원한 의미와 개인의 끝없는 가치를 돌볼 수 있는가?-개개인에 알맞은 것으로부터 동떨어져서 사용되어질 수 있거나 성취할 수 있을까? 나자신으로부터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은 것처럼 다른사람으로서 다른사람을 보는 것을 견뎌낼 수 있을까?”
Max Weber: Vocation as the Duty to serve one's neighbour Through One's work
Max Weber는 독일의 사회주의학자이며 사회과학의 철학안에 큰 중요성을 갖게한 인물이다. Weber는 인간활동의 의미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으며 산업화의 출현이 드러나는 사회에 대한 비평가였다. Martinsen은 자본주의와 과학의 비평주의안에 있는 Marx에더하여 Weber에서도 새로운 유사점을 발견하였다. Løgstrup이 종교철학자였을때 Weber는 종교 사회주의 학자였다. Weber는 서구의 끝없는 중재와 끝없는 소비를 비판했다. 과학은 창조된 세상을 각성하게하다 왜냐하면 과학이 그안에 있는 모든 것을 객관화시키는 목적으로서 창조된 것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Martinsen은 특히 그녀의 사명의 해석안에 Weber와 참여하는 것에 대해 염려하였다. Weber는 다음과 같이 세속안에서 사명을 논했던 Martin Luther를 주시했기 때문이다.
사명은 일생의 직업 또는 노동의 제한된 분야, 개개인이 그의 동료에게 부여하게 되는 일이다. 젊은 Luther는 사명을 일과 연결시켰고 친절한 사랑의 행동으로서 그것을 이해했다. 사명은 창작의 개념을 바탕으로하여 이해되며, 우리는 일을 통해 다른 이를 돌보기 위해 창조되었다.
다시말해서 사명은 창조의 공헌에 있다. 젊은Luther을 사상을 참고하여 Martinsen은 사명이란 우리가 우리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삶의 상황안에 놓여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적었다. 그것은 나의 사명안에서 내가 내 이웃을 만나고 보살피고자 하는 의욕이다. 그것은 삶의 법칙으로서 존재안에 자리잡고 있다.
Michel Foucault:
The Effect of His Method Intensifying Phenomenologists' Phenonmenlogy
현상주의학자들은 우리의 경험에 관한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Martinsen은 철학에 대한 그녀의 논문에서 Foucalut를 참조했지만,그러나 1976년으로부터 그녀의 역사 연구와의 연관성에서는 이 철학가에 대해 제일 많은 염려를 보였다. Foucalt는 프랑스 철학가이면서 관념의 역사가였다. 그는 연속성과 상황이 아닌 분열과 차이점에 대해 관심이 있었다. 그는 그것을 각각의 역사적인 사건안에서 또한 사회의 형태를 만들어낸 사상을 구성하고 공통된 구조와 용어의 체계가 존재하는 각각의 다른 문화안에서 주장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Foucault는 인간을 개인적이고 독립적인 개인으로서 강조하는 주관적인 철학에 맞서게 되었다. 예를들어, Foucault는 근본적인 상황이 정신이상자를 위한 시설이 생겼을 당시 그리고 그 후에 정신이상자를 정신적인 질병으로서 정의하기 시작했을때의 역사적인 사건이 있을 동안 존재하는 지에 대해 의문점을 가졌다. 무언가 새로운 일이 일어났었다. 무엇에 의한 것일까? 왜 그러한 일이 일어났으며, 사회안에서 무엇이 성취되어야 하는가? 무슨 행위가 시작되었나?; 권력과 관련되어있고 훈련을 확립을 내포했는가? 이런식으로 질문하는 것은 다른 방식안에 있는 역사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 일반적인 개념을 지나친 것과 같이 이해의 여러 단계를 파헤치는 것이다. Foucault는 대중을 특성화시키는 것을 가능하게 한 기초적 사회 특성을 이끌어냈다.그것들은 암묵적 전제조건들을 파헤치게 했다. 이러한 방법으로 Foucault의 방식은 현상학적 과정을 집중화시켰다.그는 우리가 살고있는 상황안에서 그리고 역사적인 사건안에서 생각하는 방법으로부터 다르게 생각하도록 요구한다. 그러한 응시는 묘사적이 될 뿐 아니라 또한 비평적이 될 것이다.
Martinsen은 다른 사람을 돌봄에 있어 우리는 다른 방법으로 타인을 관련시켜야 하고, “전통적인 주시”,“평가적 주시”를 사용하는 객관화시키는 의학이나 자연과학내에서 추구하는 방법보다는 다른 것을 추구해야 한다고 얘기했다. 그러한 주시는 특별한 공간을 필요로하고, 돌봄은 지식의 다른 형태를 발전시키기 위한 공간의 다른 형태를 요구한다. 건강서비스내 돌봄에 관하여 우리가 가져야할 질문은 :어떤 학문으로서의 성격, 도는 구조가 간호수행과 공간적 제도에서 오늘날 우리의 실행에 기반이 되어야 하는가? 우리의 특별한 역사적 사건으로부터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게 될까? 우리가 찾는 비평적 간호가 여기에 있는가? 비평적인 간호 수행이 오늘날의 연구와 건강서비스에 무엇을 의미하게 될까?
Paul Ricoeur: The Bridge-Builder
Ricoeur는 프랑스 철학가이다. 그의 입장은 비평적 논리적해석법이나 논리적해석적 현상학으로 명명된다. 그는 자연과학과 인간과학 사이 그리고 현상학과 구조주의 또 다른 분류된 견해 사이에 다리를 만들 것을 요구한다. 그는 예를 들어 시간과 대화, 언어와 역사, 통찰력과 과학에 대한 글을 쓴다. Ricoeur는 서로가 이해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사람들간의 의사소통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그는 과학의 언어와는 대조적인 매일의 언어와 그것의 많은 의미들에 관심을 가졌다. Martinsen은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의학의 문화는 다른 분류안에 포함된 단어들안에서 그리고 구체적 상황의 연관성안에서 항상 판단되는 것이 아닌 단어들안에서 개념적인 언어를 끌어냄으로서 특징지워진다....반면 돌봄양식의 매일의 언어에서 단어들은 환자공동체와 전문 공동체내의 구체적인 돌봄내부로 들어와 다른 상황적 의미가 펼쳐지게 되는 방법을 따르게 된다. 매일의 언어가 말로 표현되는 것처럼, 단어들은 톤을 강조했을 때 그 표현이 가지는 힘과 구별되어야한다.
MAJOR CONCEPT & DEFINITIONs
Martinse은 용어의 정의를 내리는 것을 내켜하지 않았다. 정의는 개념을 제한하는 경향이 있다. 그녀는 반대로 개념의 내용이 주어져야 하며 용어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용어의 의미있는 내용을 제한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정의안에 가두어 놓은 것은 피해야 한다고 썼다.
Care
돌봄이라는 용어는 간호의 기본 가치를 형성할 뿐 아니라 근본적인 우리 삶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돌봄은 선을 통한 인간의 긍정적인 발전이다. 관리는 삼위일체이다. 즉 관계적, 실행적, 윤리적이다. 돌봄은 다른이의 상황을 향해 바깥쪽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전문적인 상황속에서 관리는 교육과 훈련을 요구한다. 전문적인 지식없는 환자를 위한 걱정은 단순히 감상적인 생각일 뿐이다. 보호, 방치뿐 아니라 감상 또한 돌봄의 표현이 아니다.
Professional Judgement and Discernment
이 특성들은 구체성과 연결되어있다. 그것은 우리가 임상적 관찰을 학습하는 삶의 실제 상황안에서 전문적 판단을 훈련함을 통한 것이다. 단지 임상적으로 보고, 듣고, 만지기 위한 것 뿐 아니라 분석적으로 알맞은 방법으로 보고 듣고 만지는 훈련인 것이다. 환자는 우리에게 인상을 만들고 우리는 신체적으로 느끼게 되며, 인상은 감각적인 것이다.인식은 상황안에서 다양성과 배경을 환기시키는 비슷한 특성이 있다. 즉, 하나가 다른 하나를 상기시키고 이러한 집합이 상황의 내의 인상, 전문적 지식, 이전의 경험 사이의 연결을 만들어낸다. 신중함은 본래의 감각과 매일의 언어를 통하여 전문적 지식을 표현한다.
Moral Practice is founded on care
윤리의 실행은 간호에서 돌봄이 표현될 수 있는 것 같이 공감과 반성이 함께 작용하는 때에 존재한다. 윤리는 설명되어야 하는 구체적인 상황안에 존재한다. 우리의 행동들은 설명될 필요가 있다. 이는 공감과 반성을 구성하는 감정이입의 객관성을 통하여 정당화되고 학습되어진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기본적인 상황이 인식과 공감이라는 것과 대상이 어떻게 최상으로 도움을 받게 될 것인지를 찾아내는 것을 의미한다. 정직과 판단력은 윤리적 실행의 일부이다.
Person-oriented Professionalism
인간본위의 전문의식은 고통받는 인간으로서의 환자로서 볼 수 있고, 그의 완전함을 보호할 수 있는 전문적 지식을 요구한다. 공동으로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방어와 생명을 돌보았던 경험안에 모인, 선의의 교환으로서의 전문적인 능력과 인간애를 요구한다. 다른사람과의 만남에서 그 자신의 무언가를 주기를 원하는 일이나, 돌보고, 지켜보고 간호해야하는 대상인 인간을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요구되는 일과 같은 우리가 하는 일에 있어서는 약속이 요구된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삶의 환경안에 있는 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는 것에 관한것이며, 타인을 중심에 두는 것에 대한 것이며, 대면자의 다른이들에게의 적응을 돌보는 것에 관한 것이다.
Sovereign Life Utterances
주권적인 삶의 발언은 창조자체와 동반되는 현상이다. 그것은 모든 사회에서 문화발생 이전부터 존재해왔고 잠재성으로 드러난다. 인간의 통제와 영향력 위에 있으며 그러므로 주권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 삶에서 주권적인 삶의 발언의 실현을 위한 상황은 우리의 역량밖에 있다. 주권적인 삶의 발언에는 솔직함, 자비, 신뢰, 희망, 사랑이 있다. 이것들은 우리가 시간, 공간, 공기, 물, 음식과 같은 것들을 받은 똑같은 방법으로 받을 수 있는 현상이다. 그것을 받지 못한다면, 삶은 붕괴된다. 삶은 받아들임을 통해 스스로 보호된다. 주권적인 삶의 발언은 돌봄의 전제조건이 되며 동시에 돌봄행위와 같이 구체적인 삶안에서 주권적인 삶의 발언을 현실화시키기 위한 필수조건이 된다. 우리는 우리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신뢰, 희망,자비, 사랑이 실현되는 쪽으로 행동할 수 있고, 또한 그것들을 막을 수도 있다. 그것들 없이 돌봄은 실현될 수 없다. 동시에 돌봄행위는 우리개인의 삶과 전문인으로서의 삶에 주권적 삶의 발언을 현실화하기 위한 길을 명확히 해준다. 돌봄은 환자가 사랑과 자비의 의미를 경험할 수 있게 해주고, 돌봄은 희망을 밝혀주고 지탱시켜주며 돌봄은 간호사와의 관계에 있어 신뢰와 솔직함을 중요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될 수 있다. 동일한 방식으로 돌봄의 결핍은 다른 사람의 자비를 경험하는 것을 차단하고 건강서비스에 대한 제한적인 태도와 불신을 야기할 수 있다.
The Untouchable Zone
이 용어는 타인과의 대면이나 본질과 대면했을 때 손상시켜서는 안되는 영역을 말하는 것이다.그것은 우리가 존중해야만 하는 영역을 의미한다. 금제영역은 관계에 있어 어떠한 보호적인 거리를 만들어낸다. 그것은 공명정대를 확보하게 하며 논증, 이론, 전문직업의식을 요구한다. 돌봄에서의 금제영역은 개방성, 친밀감, 취약성 그리고 동기가 제자리에 있을 때 그 반대로 통합된다. 개방성과 금제영역은 돌봄에 있어 모순을 하나로 통합하는데 기여한다.
Vocation
사명은 누군가를 돌보거나 만날 때 나를 철저히 인간적인 방향에 있도록 만들어주는 요구되는 삶이다. 사명은 근본적으로 인간적인 이웃에 대한 사랑에 관한 삶의 법칙으로서 주어진다. 그것은 이웃을 돌보는데 요구되는 윤리이다. 이러한 이유로 간호는 전문적인 지식에 더하여 개인의 정화를 요구한다.
The Eye of the Heart
이 개념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우화로부터 유래된다. 마음은 모든 사람의 존재에 관해서 무엇가를 말한다. 마음은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존재에 대하여 또 누군가 처해있는 상황과 고통에 끌리게 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감각과 인지로서 우리는 이해하기 전에 감동받게 되지만, 추가적인 이해또한 요구된다. 마음의 눈으로 보고 또 보여지는 것은 감각에 따라 눈으로 이해되고, 그 안에서 인식과 이해를 통합하는 상호작용에 바탕을 둔 참여적 배려를 구성한다.
Registering Eye
기록하는 눈은 객관화시키는 것이고 시야는 관찰자의 그것이다. 그것은 체계안의 연관성을 찾고, 조직화하고, 정렬하고 분류하며 자리매김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기록하는 눈은 근대자연과학, 기술, 산업화사이의 공통점을 나타낸다. 누군가 환자로 드러났을때 전문가로서 편중된 방법으로 이러한 응시를 사용한다면, 열정은 그 상황 밖으로 옮겨지고 삶에 대한 의지는 감소될 것이다.
Use of Empirical evidence
예를 들어 우리는 의심되는 수학적 증거를 받아들일 수 없으며 이를 물리적 대상이나 사람에게 적용할 수 없다. 부분적, 예상적 증거는 설득력있게 설명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부분에서 사례의 경험적 사실을 증거에 근거하여 설명하고 설득력있는 방법으로 명확히 할 수 있는 것은 식별과 화술이다. 분별력을 연습하는 것은 우리가 만나게 되는 환자의 표현을 해석하게 해준다. 전문적인 지식과 쌓여진 경험은 환자의 상황을 접했을 때 유연성있는 범위의 시야를 가지게 한다. 화술은 행동을 묘사하고 규정할 수 있게 한다. “좋은 화술은 존재안에 존재적 윤리를 있게 해주며 실제적 행동을 불가피하게 만든다.
Major Assumptions
돌봄이 간호의 범위 밖에 있더라도 돌봄은 간호와 돌봄의 성질을 가진 다른 직업의 기본이 된다. 돌봄은 타인에 대해 고려하고, 돌보며 염려하는 행동을 포함하고 있다. 돌봄에 대해 얘기할 때 세가지가 동시에 나타나야 한다. 이를 돌봄의 “3가지 연합”이라고 부를 수 있다.
즉 돌봄은 관계적, 실행적, 윤리적이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관계적이라는 것은 돌봄이 적어도 두사람 이상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Martinsen은 이렇게 묘사했다.
사람은 타인에 대해 염려하고 불안해 한다. 누군가 고통을 받으면 그 고통을 함께 느끼는 다른 사람은 마음아파할 것이며 고통을 완화시켜줄 것이다. 돌봄은 가장 자연스럽고 기본적인 인간존재의 일면이다. 돌봄의 행위에 있어 인간관계는 가장 필수적이다. 인간의 본질은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위해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요점은 돌봄은 항상 다른사람들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Philosophy of Caring 돌봄의 철학 Kari Martinsen(1943~present)
Kari Martinsen(1943~present)
Philosophy of Caring
Credentials and Background of the Theorist
Kari Marie Martinsen은 간호사이자 철학가이며, 노르웨이의 수도인 오슬로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그녀는 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노르웨이를 점령하고 있었던 1943년에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님은 둘다 레지스탕스였으며, 아버지는 비합법적으로 일했다. 그녀의 집은 어린 여동생, 부모님, 그리고 할머니의 3세대로 구성되었고, 전쟁발발 후에 가족안에서는 도덕적이고 사회정치적인 토론이 우위를 차지했다. 두분 부모님은 오슬로의 대학에서 경제학자로 교육을 받았고 그녀의 어머니는 거의 집밖에서 일을 했다.
고등학교 졸업후에 Martinsen은 오슬로에 있는 Ulleval 간호대학에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64년에 간호사가 되었다. 그녀는 대학 입학을 위한 준비를 하면서 1년동안 병원에서 임상실습을 하면서 일했다. 그러나 대학교 학위를 시작하기전에 그녀는 간호에 관한 한층 높은 교육을 받았고 1966년에 정신과 간호사가 되었다. 그녀는 오슬로 근처에 있는Dikemark 병원에서 2년동안 근무했고 정신과 외래에서 여러해동안 종사하였다.
간호사이며 정신과 간호사인 그녀는 사회불평등과 건강서비스의 불평등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건강, 질병, 돌봄, 치료는 불평등하게 분배되고 있었다. 몇몇의 환자들은 다른 몇몇이 그들이 필요한 도움을 받지 못하고 기다리는 동안에 도움, 지원, 관리를 받았다. 더나아가 그녀는 한편으론 건강관리 이론, 이상과 목표 사이에는 불일치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 간호, 의약, 건강서비스의 실행적, 구체적인 결과 또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고용시장 밖으로 소외된 사람과 아픈 사람들을 지지하고 돕기 위해서 사회와 전문분야가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 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간호전문가에게 던진 질문중 하나는 가장 취약한 환자와 돌봄을 매우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낙담시키지 않게 하도록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가이다. 그다음으로 따라오는 질문은 의학이 신체적인 질병을 제일 먼저 다룰 때 간호사는 아픈 사람을 위한 간호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다시말해서 Martinsen은 건강서비스안에서 환자들을 객관화시키는 과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서 돌봄의 대상을 어떻게 적절하게 간호할 수 있는지에 대해 묻고 있다. 그녀는 동일한 객관화가 간호의 훈련을 위한 과학적인 기초에 중요성을 증대시킬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제시했다.
이러한 근본적인 질문들은 Martinsen이 1968년 오슬로 대학교에서 심리학 학사학위를 받을 시점에 더 많은 연구를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시점에서 그녀는 심리학 석사학위를 받을 계획을 세웠다. 자격을 얻기 위해서 그녀는 생리학과 중급수준에 있는 다른 선택과목의 학점을 얻기 위해 중간 시험을 치러야만 했다. 그녀는 1969년에 생리학 시험을 치뤘다. 그녀는 다른 중급과목으로서 철학을 선택했고, 1971년에 시험을 치뤘다. 두 시험 모두 오슬로 대학에서 치뤄졌다. 철학과 현상학을 접하면서 그녀의 계획은 변했다. 그녀는 생리학보다 철학이 존재론적인 질문들에 더 도움이 된다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깨달음은 노르웨이의 다음으로 가장 큰 도시인 Bergen 대학교에서 생겼났다.
1972년에서 1974년까지 그녀는 Bergen 대학교에서 철학 대학 학생이었다. 대학원에서 철학논문(Magister artium)의 학위가 1975년에 발표되었고, 그녀는 시민과 전문가와 건강관리 근로자에게 방해되는 문제점을 철학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논문의 주제는 철학과 간호(Marxist와 현상학적인 공헌, Martinsen, 1975)였다. 그 논문은 토론을 창출시켰고 더 많은 비평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다. 논문은 전문성을 무비평적으로 수용한 간호훈련의 결과와 간호의 과학적 기초를 무비판적으로 포용하는 결과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함으로서 비평적 눈길을 끌었다. 그러한 발전은 가장 많은 도움을 필요로하는 환자들에게서 멀리 떨어져있는 간호사들에게 조언을 줄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노르웨이에서 간호사가 쓴 첫 번째 논문은 간호훈련을 비판적 철학과 사회관점에서 분석했다.
노르웨이에서 1970년대 중반동안에는 간호대학을 위한 간호교수가 부족했고 Bergen에 도 마찬가지였다. Bergen에 세 개의 간호대학교의 학장들은 처음으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일시적으로 교수training코스의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Bergen 대학교와 Bergen에 있는 세 개의 간호대학교와 국가에 의해서 공동으로 설립되어졌다. 대학교 수준의 자격을 갖고 있는 간호사가 선두가 되도록 요구되었다. Martinsen은 1976년에서 1977년까지 Bergen에서 간호교수훈련 학부장으로 요청받게 되었다.
철학적 연구와 간호와 간호교육내에서 접했던 사회학적인 문제들을 통해서, Martinsen은 간호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노르웨이에서 시작된 간호가 어떻게 교육되었는지, 누가 시작의 책임을 가지고 있는지, 그들이 무엇을 성취했는지에 대해서.. 이러한 문제들을 좀더 면밀히 살펴보기위해서 Martinsen은 1976년에 노르웨이인 간호협회에 보조금을 신청하였다. Bergen 대학에서 사회의학과 위생연구소와도 협약을 맺게 되었고, 그녀가 학부장으로 있는 간호 교수훈련프로그램에서 간호학을 강의하는 동안에 그곳에서 의과생들에게 사회의학에 대하여 강의하였다.
그 당시는 간호교육에 대한 심한 논쟁이 진행중이었다. 공공 위원회는 전통적인 3년의 학위체제의 유지를 제안했으나 결국 이는 각 단계별 자격취득시스템으로 대체되었다. 1년의 과정이수 후에 학생은 간호 보조원으로서 자격을 취득해야하고 그이후 2년후에 간호사의 자격을 얻게된다. 이것은 종합적인 3년학위제도의 폐지를 의미한다. 노르웨이 간호협회를 선두에두고 전국의 간호사들은 3년의 간호학위를 보장하기 위한 항의시위를 했다. 게다가 융통성없이 제기되어 있는 이 논쟁에서 간호교육 문제위에는 정치적인 토론의 목소리가 뜨거워졌다.
Martinsen은 이러한 논쟁에 직접 뛰어들었다. 그녀는 간호교육은 4년의 프로그램으로 변화해야한다고 주장하면서 단계별 교육의 원칙은 허용하였다. 또한 그녀는 2년과정 후의 간호보조자와 4년과정이 후의 간호사자격이 주어지도록 교육모델을 그렸다. 간호협회가 추구하는 포괄적인 3년의 학위목표와 함께 그녀의 주장은 도발로서 비춰지게 되었다.
1978년에 그녀는 노르웨이의 총체 과학 연구 위원회로부터 지원금을 받게 되었다. 지금은 오슬로에 있는 대학에서 역사협회에 소속되어 있다. 그녀는 최근에 사회정치학적인 역사과목에서 석사학위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면서 간호의 사회역사에 대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1981년부터 1985년까지 그녀는 Bergen대학의 역사연구회에서 연구보조자로서 근무했다. 그녀 자신의 연구에 더하여 Martinsen은 페미니스트 역사 과목에서 석사학위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고 관리하면서 노르웨이 페미니스트 역사의 기본토대를 발전시켰다.
1976년과 1986년까지 기간은 Martinsen의 업적에서 역사적인 기간으로 묘사된다. 그녀는 몇가지 역사적인 논문들을 출판했다. 이기간동안 가까운 협력자로서 사회역사학 교수인 Anne Lise Seip, 페미니스트 역사의 교수인 Ida Blom , 사회학 교수인 Kari Wærness가 있었다. 1979년에 Martinsen과 Wærness는 “횟불을 붙여라”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으로 Caring without care?라는 책을 출판했다. 저자가 표현하는 문제점들은 간호가 병상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지는 않은지, 아픈사람과 약한이들에 대한 간호가 증가하는 기술적인 간호와 처치로 인해 사라지고 있지는 않은지, 간호사들이 다른 업종에게 점점 더 구체적이고 중요한 돌봄작업을 넘기고 있는 관리자나 연구자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한 것들이었다.
질병과 돌봄에 의존하는 사람을 돕는 것은 여성의 일로서 매우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전문적으로 훈련된 간호사의 등장은 1800년대 후반이 시작되어 노르웨이에서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독일에 다른 집사 교회에서 교육을 받은 여집사들이 노르웨이에서 일하는 최초의 훈련받은 의료근로자들이 되었다. Martinsen은 이들이 어떻게 노르웨이에서 간호 교육을 일으켰는지 기술했으며 그들이 어떻게 확장시키고 , 책을 쓰고, 시설과 가정 모두에서 간호수행을 했는지를 기술하였다. 그들은 노르웨이의 공공 건강 시스템의 선구자들이었다. 이런 개척 시점은 그녀 저서인 『Nursing History : Frank and Engaged Deaconesses : A Caring Profession Emerges 1860-1905』에 기술되어져 있다. 이책을 근거로 해서 Martinsen은 Bergen 대학에서 1984년에 철학박사를 받게 되었다.
그녀의 시문과 관련하여 그녀는 두가지 강의들을 준비했다 : 건강 정책 문제와 1969년의 병원법을 배경으로 한 건강 정책의 사색, 그리고 의사의 임신에 대한 관심- 주산기 관리의 부분 : 시점 1890-1940. 역사적 시기의 10년 동안의 논문에서 그녀는 1970년 중반부터 시작하여 간호학의 사회역사와 페미니스트 역사 그리고 의학의 사회역사에 대하여 기술했다.
1986년부터 그녀는 건강 협회에서 준교수로, Bergen 대학교에서 사회의학 교수로 2년동안 근무했다. 그녀는 석사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고 관리감독을 했으며 사회철학적이고 역사적인 논문의 출판에 더 매진했다. Caring, Nusing and Medicine. Historical Philosophical Essays(Martinsen,1989c)인 이 책은 1989년에 출판되었다. 그것은 간호내의 돌봄과 간호의 철학, 간호역사의 에세이, 의학과 건강서비스의 역사의 세부분으로 나누어졌다. 이책은 Martinsen의 역사적인 면의 요소를 끌어냈고 그녀의 논문에서 더 많은 철학적인 시점의 시초를 두드러지게 하였다. 이 논문은 여러edition이 있다. 2003년판에는 저자에 대한 긴 인터뷰가 포함되어져 있다. 돌봄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점들과 분별의 의미에 대한 해석이 1985년부터 1990년까지 그녀를 몰두하게 한 문제들이다. 1990년에 덴마크에서 출판된 논문들의 collection에서 그녀는 논문에 "도덕적인 수행과 실제간호에서의 문서화“라고 제목을 붙였다. 그 책에서 그녀는 이렇게 기술했다.
윤리적인 수행은 돌봄에 바탕을 둔다. 돌봄은 단지 간호의 가치있는 토대를 구성하는 것 뿐아니라 우리의 삶의 기본적인 전제조건이다.... 신중함은 감정이입을 요구하고 행동의 대체를 사정하기 위하여 상황적 분별력을 요구한다... 간호의 윤리적인 수행을 학습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상황안에서 윤리가 어떻게 자리잡고 있는지를 배워야만 한다. 행동과 말에 있어 경험적 객관성을 통해서, 또한 신중함을 통하여 이해된다. 이 두가지 경우에 중요한 것은 선의의 간호를 배우는 것이다.
1990년에 Martinsen은 덴마크로 이사했다. 그녀는 간호학 프로그램인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과정을 확립시키기 위해서 Arhus의 대학교에 고용되었다. 그녀는 5년간 남아있었다. 그녀의 철학적인 기초는 덴마크의 삶-철학, 이론학적인 전통을 접하면서 더욱 발전하였다. Caring, Nusing and Medicine: Historical-Philosophical Essays, Martinsen(1989,c)에서 Martinsen은 독일 철학가 Martin Heidegger의 돌봄의 개념을 연관시켰다. 덴마크에사는 동안, 2차세계대전동안 나치 신봉주의자로서의 Heidegger의 입장은 그녀에게 더욱 명확하게 다가왔다. 그 당시에 출판된 대학 논문들은 Heidegger가 독일의 국립 사회당의 일원임을 증명하였다. 그리고 그는 그의 유대인 동료인 Emmund Husserl과 Hannah Arendt와 같은 친구들을 배신했다. Heidegger는 나치와의 관련 때문에 전쟁후 수년간 가르칠 수 없게 되었다.
Martinsen은 『From Marx to Løgstrup:On Morality, Social Criticism and sensuousness in Nursing(Martinsen,1993,b)』에서 Heidegger의 철학에 대하여 그녀자신의 사상을 비교하였다. Knud E.Løgstrup(1905-1985)는 덴마크의 신학자이면서 철학가이다. 정확히 말하면 삶과 배움은 분리 되어질 수 없기 때문에 돌봄의 근본적인 측면을 실증하기 위해서 Heidegger보다 더 많은 원천적 기회에 다가가는 것이 Martinsen에게는 중요했다. K.E. Løgstrup는 대체적 원천적 기회를 내놓았다. K.E. Logstrup는 1985년에 죽었지만 Martison은 그의 책을 통하여 그를 알고 있었다. Løgstrup의 아내인 Rosemarie Løgstrup는 원래 독일인이였다. 그녀는 독일에서 철학을 공부하면서 남편을 만났고 나중에 그의 책을 독일어로 번역하였다. Martinsen은 덴마크에서 살고 일하면서 Rosemari Løgstrp를 여러차례 방문했다. 그들의 친분과 학자적인 대화는 Martinsen이 노르웨이로 다시 되돌아온 후에도 계속되었다.
Martinsen은 덴마크에서 살고 일하면서 노르웨이와 덴마크의 공공 회담에서 Patricia Benner를 만날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고 1996년 California에서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러한 회담중 하나가 Tromsø 대학교에서 열리게 되었다. Martinsen은 윤리와 사명, 문화와 신체라는 주제를 가지고 출판했다. 그녀는 또한 핀란드 간호학 교수인 Katie Eriksson과 함께 토론을 계속 하였다. Eriksson과 Martinsen은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에서 만났다. 처음에 Eriksson과의 토론은 팽팽하고 긴장되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대화는 훌륭하고 계몽적으로 발전해나갔다. Martinsen은 이러한 대화내용을 Phenomenology and Caring: Three Dialogues.라는 제목의 책으로 만들었다. Eriksson은 책에 맺은말을 썼다. Martinsen은 이 책의 첫 번째 장에서 Caring and Metaphysics - Has Nursing Science Got Room for This?, 두 번째장에서는 “간호수행내의 신체와 영혼”, 세 번째로는 “창조 현상학 - 윤리와 힘 : Løgtrup의 종교철학과 간호수행의 만남” 이라고 표제를 붙였다. 이것은 Martinsen이 Benner와 함께 나눈 대화와 유사한 인상적인 언어이다. 책의 머리말에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핀란드인 간호 연구사인 Katie Eriksson과 나와의 토론은 간호의 “big words"를 다루고 있다. 우리가 말하고 쓰는 단어들은 열정, 희망, 고통, 아픔, 희생, 창피, 위반, 의심 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러한 것이 “big words"이다. 하지만 삶 안에서나, 우리의 매일의 간호 상황안에서의 위치 보다 크진 않다. 덴마크인의 신학자와 철학자 Løgstrup이 쓴 자비심은 삶의 부활이며 다른 사람들의 삶에 기여한다..... 그밖의 간호는 삶과 죽음 사이에 존재하는 삶의 순환내에서 환자들에게 삶의 가능성을 주는 것 이외에 또 무엇을 하는가? 우리는 이러한 “big words"들의 의미를 경험하기 위해서 우리 주변인들의 삶에 과감히 뛰어들어야 한다.
Martinsen은 Arhus에서 가르치는 동안에 그녀는 또한 Tromso의 대학에서 간호과학 부서에서 1994년도에 초에 두 번째 교수를 시작하였다. 1997년도에 그녀는 북쪽으로 이사했고 결과적으로 전임교수가 되었다. 그녀는 이 위치에서 겨우 1년동안만 있었다. 그녀는 연구와 집필을 위한 시간의 부족을 느끼고 1998년도에 프리랜서가 되었다.
1990년부터는 철학적 연구기간으로 특징지워진다. 근본적인 철학과 존재론적인 질문들과 간호학에 관련한 그 질문들의 의미가 그녀의 사상를 지배했다. 그녀는 이 기간에 공통점이 없는 프로젝트에서 일하면서 자신의 책에 더하여 몇가지 저널과 간행물을 출판하였다. 이시점으로부터 2권의 책은 이미 언급했다. 2000년도에 “The Eye and the Call” 이라는 책이 출판되었다. 이 책안의 제목들은 전보다 더 시적인 감동을 주도록 씌여있었다. : “마음의 눈으로 보기”,“윤리, 문화 그리고 신체의 상처” “사명-그것 없이 할수 있을까?” 그리고 “사랑의 행위와 사명” Martinsen은 또한 공간과 구조에 대한 개념을 연구했다. 공간과 구조는 인간존엄성을 지켜줄 수 있다. 이것을 그녀는 처음으로 시적인 제목을 가진 기사를 썼다. “집과 노래, 눈물과 수치 : 인간 존엄성을 보호받는 공간과 구조” 2004년도에 그녀는 건강서비스내에 있는 공간과 구조에 대한 프로젝트를 연구하고 있다.
Martinsen은 Bergen에 한 기독교 대학교와 오슬로의 대학 두 곳에서 자리를 잡게 되었다. 1989년부터 1990년까지 그녀는 Bergen에 있는 Bergen 여집사 대학교에서 연구자로서 있었고, 1999년부터 가을 2004년도까지는 오슬로에 있는 Lovisenberg 기독교 대학에서 파트타임 제2교수로 있었다. 개념과 학술적인 모험들이 그녀를 둘러싸고 쉽게 싹이 트고 번성하게 했으며, 그녀는 다른 사람들을 학술적 프로젝트로 이끌었다. Bergen에서 일하는 중 그녀는 몇몇 간호대학 교수들의 논문의 collection을 “The Thoughtful Nurse (Martinsen ,1993,c)”라는 제목으로 편집하였다. 오슬로에 있는 Lovisenberg 집사 대학교에서 Martinsen은 조교와함께 1877년도에 만들어진 노르웨이의 첫번째 간호학 교재의 new edition을 출판하기 시작했다. Martinsen은 학술적인 간호의 교재가 되기를 바란다는 맺은말을 썼다. 오슬로에서 신학과에 제2교수로있는 동료와 함께 Martinsen은 또 다른 논문의 모음집을 편집했다. 편집자와 함께 대학 강의자들이 논문들을 책으로 내는데 기여하였다. 그 제목은 “윤리, 훈련과 정화 : Elizabeth Hagemann의 윤리학 책-새로운 읽기”이다. 이책은 1930년도에 출판된 간호사들을 위한 윤리에 관한 교재에 대한 분석을 제공했고 1965년도에 바로 교재로 사용되었다. 윤리교재가 2003년도에 재판되어졌을때 독일 사회학자인 Max Weber 뿐만아니라 두명의 프랑스 철학가인 Pierre Bourdieu와 Michel Foucault의 입장에서 해석되었다.
이 마지막 출판물과 함께 Martinsen은 역사안에 자신의 근본으로 되돌아갔다. 역사적이고 철학적인 요소가 융합된것처럼 보인다. 그요소들은 그녀의 사상안에 각각 다른 면으로 나타나있지만 각각 다른 기간동안의 그녀의 연구에 다채로운 색깔로 나타나고 있다.
2002년도에 Martinsen은 자신의 길인 Bergen 대학으로 되돌아가서, 간호과학부문인 공공 건강과 일차 건강 관리부서에 교수로서 고용되어졌다. 석사와 박사학생들의 관리감독 및 강의는 현재의 주된 일이다. 그녀는 박사과정을 준비하고 있고 북유럽나라들에서 감독과 강의자로서 많은 요청을 받고 있다.
Theoretical Sources
초기 1970년경에 간호전문성의 분석에서 Martinsen은 세명의 철학가들을 특별히 주목했다. 독일 철학가이자 정치가, 그리고 사회 이론주의자인 Karl Marx (1818-1883), 독일 철학가이고 현상학의 창시자인 Edmund Husserl(1859-1938), 프랑스 철학가이자 신체 현상주의자인 Merleau-Ponty(1908-1961)이다. 나중에 그녀는 그녀의 이론학적인 원천을 다른 철학가들과 신학자, 그리고 사회주의자을 통해 확대해 나갔다.
Karl Marx: Critical Analysis- A Transformative Practice
마르크스 주의 철학은 Martinsen에게 간호의 훈련과 간호가 발견한 사회위기를 직접 현실감있게 묘사할 수 있는 몇가지 분석학적인 도구를 주었다. 위기는 깨지기쉽고, 특수화되고, 기술적으로 계산되고, 동시에 간호에 대하여 전체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는 듯이 보이는 성질을 평가하는 훈련의 실패로 이루어진다. 그녀는 훈련은 실습의 해방이 없는 실증주의와 자본주의 체계의 일부임을 발견했다. "Reversed care-law"는 최소한의 도움을 필요로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관리한다. Marx는 개인주의를 비평했고 가난한 사람들의 지출에 대한 부자들의 배상필요성에 대해서 비평했다. Martinsen의 관점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건강 서비스 안에서 발생 할 때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한 폭로는 현실의 변화를 초래하는 힘을 가질 수 있다. 그녀는 우리가 간호의 본질과 내용과 내부구조, 역사적 기원, 전문성에 대해 의문점을 가져야 한다고 썼다. 이것은 역사적, 사회적 배경내의 전문성과 직업의 견지에서 비평적인 간호수행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
Edmund Husserl: Phenomenology as the Natural Attitude
Husserl의 현상학은 Martinsen의 과학와 실증주의의 비평에는 중요하다. 자기자신의 실증주의 관점은 객관화시키는 태도 사물의 성격을 감소시키는 비개성적, 다른 사람향한 계산하는 태도로 이루어져있다. Husserl은 엄격한 과학으로서 현상을 바라본다. 현상학의 엄격한 방법론적인 과정은 우리가 무의식중에 행하거나 당연시 여겨 수행한 상황이나 구조들을 폭로할 수 있는 그러한 과학적 존재에 대한 침착한 반성적 태도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연습은 당연히 행했던 것들을 어렵게 만드는 것에 관한 것이다. 당연히 자신을 이해하는 방심을 문제화함으로서, 반대적으로 또는 원근법적 시야에서 나타나곤 하는 “존재 그 자체”를 포착하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현상학연구는 우리가 무언가를 의미있게 이해하고 인식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접근했을때 가지게 되는 자연스러운 태도안에서부터 시작되는 과학발생 이전에 대해 다루고 있다. 현상학은 환경, 포함, 연결, 신체, 살아있는 존재에 기본바탕을 두고 있다. 우리는 환경안에서, 시간과 공간속에서 살고 있으며 우린 역사적으로 살고 있다. 신체는 몸과 영혼이 불리되어질 수 없으며 그것은 전체적이며 다른 신체와 다른 세계안의 존재와 다른 본질과 관련되어있다.
Merleau-Ponty: The Body as the Natural Attitude
Merleau-Ponty는 Husserl의 생각에 기본바탕을 두고 있지만, 세상안의 인간의 신체에 대하여 다른 어떤 사상가들보다 더 많은 초점을 두고 있다. Husserl과 Merleau-Ponty 두사람은 다른 사람과 함께 사는 세상으로부터 인간을 분리한 데카르트를 비평했다. 신체는 세상안에있을 때 자연스러워진다. 간호전문직은 모든면에 있어 신체와 연관되어있다. 우리는 돌봄의 일 안에 신체를 이용하며 우리는 간호, 처치, 돌봄의 필요안에 또 다른 이의 신체를 연관시킨다. 우리의 신체와 환자들의 신체는 행동, 태도, 말, 목소리 톤, 몸짓을 통해 표현된다. 현상학은 살아있는 존재, 돌봄이 행해져야 하는 전문적 상황을 포함한 상호연관된 자연스러운 세상내에 다른 이들과 함께 사는 사람들의 매일의 삶에대한 해석, 묘사, 인식의 행위가 포함된다. 인지, 설명, 살고 있는 삶의 인지 행동에 수반된다.
Martin Heidegger: Existential Being as Caring
Martin Heidegger는 독일 현상주의학자이었다. 그리고 Husserl의 학생이었다. 그는 어떤것인지, 어떻게 존재하는지와 같은 실재적인 존재에 대하여 탐구했다. Martinsen은 돌봄의 개념을 Heidegger와 연관시켰다. 왜냐하면 “그의 사상안에 중심적인 개념으로서 돌봄이 있기 때문이다.... 요지는 근본적인 돌봄의 질을 도출해내거나 무엇이 돌봄이며 무엇을 달성해야 하는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그녀는 우리 실제적 삶의 분석과 돌봄이 무엇인가에 관한 분석이 분리할수 없는 단위라고 기술했다. 한가지를 탐구하기 위해서 동시에 다른것들을 탐구해야한다. 그것들은 함께 분리할 수 없는 단위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돌봄은 인간을 이해하는데 있어 가장 근본적인 개념이다. 배경으로 현상학과 Heidegger를 둠으로써 Martinsen은 돌봄에 대한 요점을 두었다 : 돌봄은 전제조건으로서 적어도 두부분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인간은 다른사람을 위한 걱정과 근심을 가지고 있다. 돌봄은 우리가 서로 어떻게 연관되어있는지, 우리 일상생활안에서 서로에게 어떻게 걱정을 표현하는지를 포함한다. 돌봄은 인간의 존재의 가장 자연적이며 가장 근본적인 양상이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Martinsen은 그녀의 관점을 Heidegger에게로 변경했다. 정밀하게 말하면 삶과 철학은 분리가 되어질수 없기 때문에 Martinsen에게 있어 돌봄의 근본적인 측면을 묘사하기 위해서 Heidegger 주변의 출처에 접근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동시에 그녀는 Heidegger의 원칙과 격렬한 사상을 거부하지 않았다. 거주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썼을 때 그녀는 Heidegger에게 다시 되돌아갔다. Heidegger는 거주라는 용어로 정의된이 개념을 정확하게 연구해왔다. 거주한다는 것은 항상 처음과 맨 먼저 존재들 사이에 사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Heidegger가 Merleau Ponty가 단지 우리를 위한 존재 뿐아니라 객관적으로 말해서 우리 삶을 구체화하는데 참여하는 존재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고 얘기했을 때 염려했던 것을 강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는 거주할 때 가지고 살던 것들 안에서 우리자신의 일부를 버린다. 그것은 환경에 의해 둘러싸여있는 거주하는 신체이다.
Knud Eiler Løgstrup: Ethics as a Primary Condition of Human Existence
K.E.Løgstrup은 덴마크의 철학가 이며 두명의 다른 댄마크 작가인 Nikolaj Frederik Severin Grundtvig(1783-1872)와 Søren Aaby Kierkegaard(1813-1855)의 작품에 사상을 제공한 신학자이다. Løgstrup는 Grundtvig의 글들을 Kierkegaard와 함께 저항을 견디는 동안에 같은 의견으로서 이용하였다. 이들 두명 모두 Løgstrup과 같은 철학가이며 신학자이다. Heidegger의 공백뒤에 Løgstrup의 연구는 Martinsen에게 중요하게 되었다. 인간의 인식과 실제경험이 요점이다. Løgstrup는 두가지 지적인 요소들을 통해서 요약되어질 수 있다고 했다 : 현상학과 창조 이론학, 후반에 종교의 철학이 포함됨. 현상학자로서 그는 인간존재의 본질적인 현상을 분석하고 드러내려고 노력했다. 그의 현상학적인 연구논문을 통해서 Løgstrup은 주권자 또는 자발적인 삶의 발언 : 신뢰, 희망, 열정, 열린 대화,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것들이 우리의 존재의 이전문화적인 특징을 말하는데 필수적이다. 특징으로서 그것들은 우리 문화를 위한 환경, 존재를 위한 상태를 제공하며, 그것들은 인간 공동체를 가능하게 만든다. Heidegger사상에서도 돌봄은 매우 특징적인 것이다. 돌봄은 존재가 나타나면 반드시 나타나야 한다. 왜냐하면 존재는 우리자신과는 다른 존재와 꾸준히 관계를 맺음으로서 특징지어지기 때문이다. Løgstrup의 사상과 같이 주권자의 삶의 발언은 인간공존에 있어 필수적인 특성이다.
Martinsen은 Løgstrup의 경우 형이상학과 윤리학이 창조의 개념안에 엮여있다고 적었다.
그것들은 우리가 창조되어왔던 상황으로부터 야기된 다른 돌봄과 같이 우리와 함께하는 특징적인 현상이다. 다른 이들을 돌보는 것 자체는 믿음, 열린 대화, 희망, 열정을 통한 인간관계에서 드러나게 된다. Løgstrup이 주권자의 삶의 발언 이라 일컬었던 현상들 또한 윤리로 태어났다. 그들은 필수적인 윤리를 의미한다. 믿음, 열린 대화, 희망, 열정은 근본적으로 정당화를 필요로하지 않는 선한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것들을 통제하려든다면 그들을 파괴될 것이다. 형이상학과 윤리학 또는 형이상학적인 윤리학은 실제적이다. 인간이 고유의 권한을 박탈당했을때의 삶의 질문과 관련되어있다.
우리는 존재를 통제하기 위함이 아닌 돌봄을 해야한다. “서구문화는 그것을 이해하고 통제하기 위해서 필요한 유일한 것이다. 우리 문화의 요람과 구약성서로부터 구전되어온 신앙으로부터 전승되어왔다. 그 안에서 지키고, 보고 그리고 한편으로 돌보고 양성하고 다른 한편으로 사용하는 것이 통합되어 대립하고 있다. 이들은 통합되어 대립하고 있다라는 것은 다시 말하면 그것들은 단독으로 그리고 각각이 구분되고 능가할 수 없는 채로 대립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이 서로서로 적응하기 시작하면 전체의 소리를 내는 하나로서 통합된 대립상태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돌봄에 있어서 지도자와 보호자, 양성과 활용 즉, 통합된 대립으로서 돌봄 방법을 양성하고 이용하는 것은 거만하고 착취적이 되는 것이 아닌 서로서로와 성격을 다룸에 있어 제한적이고 신중해진다는 의미이다.
윤리적인 질문은 어떻게 사회가 고통 투쟁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돌보냐는 것이다. 간호상황에서 Martinsen은 이러한 방법안에 질문들을 명확히 얘기했다. “간호사로서 우리가 인간의 영원한 의미와 개인의 끝없는 가치를 돌볼 수 있는가?-개개인에 알맞은 것으로부터 동떨어져서 사용되어질 수 있거나 성취할 수 있을까? 나자신으로부터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은 것처럼 다른사람으로서 다른사람을 보는 것을 견뎌낼 수 있을까?”
Max Weber: Vocation as the Duty to serve one's neighbour Through One's work
Max Weber는 독일의 사회주의학자이며 사회과학의 철학안에 큰 중요성을 갖게한 인물이다. Weber는 인간활동의 의미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으며 산업화의 출현이 드러나는 사회에 대한 비평가였다. Martinsen은 자본주의와 과학의 비평주의안에 있는 Marx에더하여 Weber에서도 새로운 유사점을 발견하였다. Løgstrup이 종교철학자였을때 Weber는 종교 사회주의 학자였다. Weber는 서구의 끝없는 중재와 끝없는 소비를 비판했다. 과학은 창조된 세상을 각성하게하다 왜냐하면 과학이 그안에 있는 모든 것을 객관화시키는 목적으로서 창조된 것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Martinsen은 특히 그녀의 사명의 해석안에 Weber와 참여하는 것에 대해 염려하였다. Weber는 다음과 같이 세속안에서 사명을 논했던 Martin Luther를 주시했기 때문이다.
사명은 일생의 직업 또는 노동의 제한된 분야, 개개인이 그의 동료에게 부여하게 되는 일이다. 젊은 Luther는 사명을 일과 연결시켰고 친절한 사랑의 행동으로서 그것을 이해했다. 사명은 창작의 개념을 바탕으로하여 이해되며, 우리는 일을 통해 다른 이를 돌보기 위해 창조되었다.
다시말해서 사명은 창조의 공헌에 있다. 젊은Luther을 사상을 참고하여 Martinsen은 사명이란 우리가 우리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삶의 상황안에 놓여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적었다. 그것은 나의 사명안에서 내가 내 이웃을 만나고 보살피고자 하는 의욕이다. 그것은 삶의 법칙으로서 존재안에 자리잡고 있다.
Michel Foucault:
The Effect of His Method Intensifying Phenomenologists' Phenonmenlogy
현상주의학자들은 우리의 경험에 관한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Martinsen은 철학에 대한 그녀의 논문에서 Foucalut를 참조했지만,그러나 1976년으로부터 그녀의 역사 연구와의 연관성에서는 이 철학가에 대해 제일 많은 염려를 보였다. Foucalt는 프랑스 철학가이면서 관념의 역사가였다. 그는 연속성과 상황이 아닌 분열과 차이점에 대해 관심이 있었다. 그는 그것을 각각의 역사적인 사건안에서 또한 사회의 형태를 만들어낸 사상을 구성하고 공통된 구조와 용어의 체계가 존재하는 각각의 다른 문화안에서 주장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Foucault는 인간을 개인적이고 독립적인 개인으로서 강조하는 주관적인 철학에 맞서게 되었다. 예를들어, Foucault는 근본적인 상황이 정신이상자를 위한 시설이 생겼을 당시 그리고 그 후에 정신이상자를 정신적인 질병으로서 정의하기 시작했을때의 역사적인 사건이 있을 동안 존재하는 지에 대해 의문점을 가졌다. 무언가 새로운 일이 일어났었다. 무엇에 의한 것일까? 왜 그러한 일이 일어났으며, 사회안에서 무엇이 성취되어야 하는가? 무슨 행위가 시작되었나?; 권력과 관련되어있고 훈련을 확립을 내포했는가? 이런식으로 질문하는 것은 다른 방식안에 있는 역사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 일반적인 개념을 지나친 것과 같이 이해의 여러 단계를 파헤치는 것이다. Foucault는 대중을 특성화시키는 것을 가능하게 한 기초적 사회 특성을 이끌어냈다.그것들은 암묵적 전제조건들을 파헤치게 했다. 이러한 방법으로 Foucault의 방식은 현상학적 과정을 집중화시켰다.그는 우리가 살고있는 상황안에서 그리고 역사적인 사건안에서 생각하는 방법으로부터 다르게 생각하도록 요구한다. 그러한 응시는 묘사적이 될 뿐 아니라 또한 비평적이 될 것이다.
Martinsen은 다른 사람을 돌봄에 있어 우리는 다른 방법으로 타인을 관련시켜야 하고, “전통적인 주시”,“평가적 주시”를 사용하는 객관화시키는 의학이나 자연과학내에서 추구하는 방법보다는 다른 것을 추구해야 한다고 얘기했다. 그러한 주시는 특별한 공간을 필요로하고, 돌봄은 지식의 다른 형태를 발전시키기 위한 공간의 다른 형태를 요구한다. 건강서비스내 돌봄에 관하여 우리가 가져야할 질문은 :어떤 학문으로서의 성격, 도는 구조가 간호수행과 공간적 제도에서 오늘날 우리의 실행에 기반이 되어야 하는가? 우리의 특별한 역사적 사건으로부터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게 될까? 우리가 찾는 비평적 간호가 여기에 있는가? 비평적인 간호 수행이 오늘날의 연구와 건강서비스에 무엇을 의미하게 될까?
Paul Ricoeur: The Bridge-Builder
Ricoeur는 프랑스 철학가이다. 그의 입장은 비평적 논리적해석법이나 논리적해석적 현상학으로 명명된다. 그는 자연과학과 인간과학 사이 그리고 현상학과 구조주의 또 다른 분류된 견해 사이에 다리를 만들 것을 요구한다. 그는 예를 들어 시간과 대화, 언어와 역사, 통찰력과 과학에 대한 글을 쓴다. Ricoeur는 서로가 이해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사람들간의 의사소통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그는 과학의 언어와는 대조적인 매일의 언어와 그것의 많은 의미들에 관심을 가졌다. Martinsen은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의학의 문화는 다른 분류안에 포함된 단어들안에서 그리고 구체적 상황의 연관성안에서 항상 판단되는 것이 아닌 단어들안에서 개념적인 언어를 끌어냄으로서 특징지워진다....반면 돌봄양식의 매일의 언어에서 단어들은 환자공동체와 전문 공동체내의 구체적인 돌봄내부로 들어와 다른 상황적 의미가 펼쳐지게 되는 방법을 따르게 된다. 매일의 언어가 말로 표현되는 것처럼, 단어들은 톤을 강조했을 때 그 표현이 가지는 힘과 구별되어야한다.
MAJOR CONCEPT & DEFINITIONs
Martinse은 용어의 정의를 내리는 것을 내켜하지 않았다. 정의는 개념을 제한하는 경향이 있다. 그녀는 반대로 개념의 내용이 주어져야 하며 용어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용어의 의미있는 내용을 제한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정의안에 가두어 놓은 것은 피해야 한다고 썼다.
Care
돌봄이라는 용어는 간호의 기본 가치를 형성할 뿐 아니라 근본적인 우리 삶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돌봄은 선을 통한 인간의 긍정적인 발전이다. 관리는 삼위일체이다. 즉 관계적, 실행적, 윤리적이다. 돌봄은 다른이의 상황을 향해 바깥쪽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전문적인 상황속에서 관리는 교육과 훈련을 요구한다. 전문적인 지식없는 환자를 위한 걱정은 단순히 감상적인 생각일 뿐이다. 보호, 방치뿐 아니라 감상 또한 돌봄의 표현이 아니다.
Professional Judgement and Discernment
이 특성들은 구체성과 연결되어있다. 그것은 우리가 임상적 관찰을 학습하는 삶의 실제 상황안에서 전문적 판단을 훈련함을 통한 것이다. 단지 임상적으로 보고, 듣고, 만지기 위한 것 뿐 아니라 분석적으로 알맞은 방법으로 보고 듣고 만지는 훈련인 것이다. 환자는 우리에게 인상을 만들고 우리는 신체적으로 느끼게 되며, 인상은 감각적인 것이다.인식은 상황안에서 다양성과 배경을 환기시키는 비슷한 특성이 있다. 즉, 하나가 다른 하나를 상기시키고 이러한 집합이 상황의 내의 인상, 전문적 지식, 이전의 경험 사이의 연결을 만들어낸다. 신중함은 본래의 감각과 매일의 언어를 통하여 전문적 지식을 표현한다.
Moral Practice is founded on care
윤리의 실행은 간호에서 돌봄이 표현될 수 있는 것 같이 공감과 반성이 함께 작용하는 때에 존재한다. 윤리는 설명되어야 하는 구체적인 상황안에 존재한다. 우리의 행동들은 설명될 필요가 있다. 이는 공감과 반성을 구성하는 감정이입의 객관성을 통하여 정당화되고 학습되어진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기본적인 상황이 인식과 공감이라는 것과 대상이 어떻게 최상으로 도움을 받게 될 것인지를 찾아내는 것을 의미한다. 정직과 판단력은 윤리적 실행의 일부이다.
Person-oriented Professionalism
인간본위의 전문의식은 고통받는 인간으로서의 환자로서 볼 수 있고, 그의 완전함을 보호할 수 있는 전문적 지식을 요구한다. 공동으로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방어와 생명을 돌보았던 경험안에 모인, 선의의 교환으로서의 전문적인 능력과 인간애를 요구한다. 다른사람과의 만남에서 그 자신의 무언가를 주기를 원하는 일이나, 돌보고, 지켜보고 간호해야하는 대상인 인간을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요구되는 일과 같은 우리가 하는 일에 있어서는 약속이 요구된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삶의 환경안에 있는 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는 것에 관한것이며, 타인을 중심에 두는 것에 대한 것이며, 대면자의 다른이들에게의 적응을 돌보는 것에 관한 것이다.
Sovereign Life Utterances
주권적인 삶의 발언은 창조자체와 동반되는 현상이다. 그것은 모든 사회에서 문화발생 이전부터 존재해왔고 잠재성으로 드러난다. 인간의 통제와 영향력 위에 있으며 그러므로 주권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 삶에서 주권적인 삶의 발언의 실현을 위한 상황은 우리의 역량밖에 있다. 주권적인 삶의 발언에는 솔직함, 자비, 신뢰, 희망, 사랑이 있다. 이것들은 우리가 시간, 공간, 공기, 물, 음식과 같은 것들을 받은 똑같은 방법으로 받을 수 있는 현상이다. 그것을 받지 못한다면, 삶은 붕괴된다. 삶은 받아들임을 통해 스스로 보호된다. 주권적인 삶의 발언은 돌봄의 전제조건이 되며 동시에 돌봄행위와 같이 구체적인 삶안에서 주권적인 삶의 발언을 현실화시키기 위한 필수조건이 된다. 우리는 우리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신뢰, 희망,자비, 사랑이 실현되는 쪽으로 행동할 수 있고, 또한 그것들을 막을 수도 있다. 그것들 없이 돌봄은 실현될 수 없다. 동시에 돌봄행위는 우리개인의 삶과 전문인으로서의 삶에 주권적 삶의 발언을 현실화하기 위한 길을 명확히 해준다. 돌봄은 환자가 사랑과 자비의 의미를 경험할 수 있게 해주고, 돌봄은 희망을 밝혀주고 지탱시켜주며 돌봄은 간호사와의 관계에 있어 신뢰와 솔직함을 중요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될 수 있다. 동일한 방식으로 돌봄의 결핍은 다른 사람의 자비를 경험하는 것을 차단하고 건강서비스에 대한 제한적인 태도와 불신을 야기할 수 있다.
The Untouchable Zone
이 용어는 타인과의 대면이나 본질과 대면했을 때 손상시켜서는 안되는 영역을 말하는 것이다.그것은 우리가 존중해야만 하는 영역을 의미한다. 금제영역은 관계에 있어 어떠한 보호적인 거리를 만들어낸다. 그것은 공명정대를 확보하게 하며 논증, 이론, 전문직업의식을 요구한다. 돌봄에서의 금제영역은 개방성, 친밀감, 취약성 그리고 동기가 제자리에 있을 때 그 반대로 통합된다. 개방성과 금제영역은 돌봄에 있어 모순을 하나로 통합하는데 기여한다.
Vocation
사명은 누군가를 돌보거나 만날 때 나를 철저히 인간적인 방향에 있도록 만들어주는 요구되는 삶이다. 사명은 근본적으로 인간적인 이웃에 대한 사랑에 관한 삶의 법칙으로서 주어진다. 그것은 이웃을 돌보는데 요구되는 윤리이다. 이러한 이유로 간호는 전문적인 지식에 더하여 개인의 정화를 요구한다.
The Eye of the Heart
이 개념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우화로부터 유래된다. 마음은 모든 사람의 존재에 관해서 무엇가를 말한다. 마음은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존재에 대하여 또 누군가 처해있는 상황과 고통에 끌리게 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감각과 인지로서 우리는 이해하기 전에 감동받게 되지만, 추가적인 이해또한 요구된다. 마음의 눈으로 보고 또 보여지는 것은 감각에 따라 눈으로 이해되고, 그 안에서 인식과 이해를 통합하는 상호작용에 바탕을 둔 참여적 배려를 구성한다.
Registering Eye
기록하는 눈은 객관화시키는 것이고 시야는 관찰자의 그것이다. 그것은 체계안의 연관성을 찾고, 조직화하고, 정렬하고 분류하며 자리매김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기록하는 눈은 근대자연과학, 기술, 산업화사이의 공통점을 나타낸다. 누군가 환자로 드러났을때 전문가로서 편중된 방법으로 이러한 응시를 사용한다면, 열정은 그 상황 밖으로 옮겨지고 삶에 대한 의지는 감소될 것이다.
Use of Empirical evidence
예를 들어 우리는 의심되는 수학적 증거를 받아들일 수 없으며 이를 물리적 대상이나 사람에게 적용할 수 없다. 부분적, 예상적 증거는 설득력있게 설명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부분에서 사례의 경험적 사실을 증거에 근거하여 설명하고 설득력있는 방법으로 명확히 할 수 있는 것은 식별과 화술이다. 분별력을 연습하는 것은 우리가 만나게 되는 환자의 표현을 해석하게 해준다. 전문적인 지식과 쌓여진 경험은 환자의 상황을 접했을 때 유연성있는 범위의 시야를 가지게 한다. 화술은 행동을 묘사하고 규정할 수 있게 한다. “좋은 화술은 존재안에 존재적 윤리를 있게 해주며 실제적 행동을 불가피하게 만든다.
Major Assumptions
돌봄이 간호의 범위 밖에 있더라도 돌봄은 간호와 돌봄의 성질을 가진 다른 직업의 기본이 된다. 돌봄은 타인에 대해 고려하고, 돌보며 염려하는 행동을 포함하고 있다. 돌봄에 대해 얘기할 때 세가지가 동시에 나타나야 한다. 이를 돌봄의 “3가지 연합”이라고 부를 수 있다.
즉 돌봄은 관계적, 실행적, 윤리적이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관계적이라는 것은 돌봄이 적어도 두사람 이상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Martinsen은 이렇게 묘사했다.
사람은 타인에 대해 염려하고 불안해 한다. 누군가 고통을 받으면 그 고통을 함께 느끼는 다른 사람은 마음아파할 것이며 고통을 완화시켜줄 것이다. 돌봄은 가장 자연스럽고 기본적인 인간존재의 일면이다. 돌봄의 행위에 있어 인간관계는 가장 필수적이다. 인간의 본질은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위해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요점은 돌봄은 항상 다른사람들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