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린 시절을 지낸 나의 할머니 댁은 뿔뿔이 세상에 흩어져 각자의 생활에 바빴던 대식구가 일년에 네다섯번 정도 모이는 만남의 장소와도 같았던 곳이었다. 할머니댁에 맡겨져서 자랐던 나에게 서울에서 가족들이 내려온 다는 것은... 나의 작은 체구를 싣고서 씽씽 달리던 나의 세발 자전거를 며칠간 구석에 주차해 두어야 한다는 것. 나의 놀이터였떤 시골 마당에 서울 넘버의 차들이 가득 찬다는 것. 그리고 할머니의 특별한 손맛을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것은... 시골에서 흙으로 산으로 천지를 뛰놀던 나의 꽤재재한 모습을 놀려대던 이모들, 이것 저것 맛있는 것 해달라며 편한옷으로 갈아 입던 모습, 부엌에서 들려오는 이모들의 수다와, 할아버지와 할머니 나 이렇게 단촐했던 나무 밥상위에 어디서 나왔는지 수저만 한바탕....오랜만의 만남이 어색할 틈도 없이, 그렇게 소란을 떨었던 우리들의 상봉은 말티즈 예삐까지 이리저리 꼬리치며 바삐 움직이게 만들었다.
한바탕의 점심 식사후 맘씨 착한 막내 이모가 타주는 커피는 오로지 어른들 만의 특권이었다. 그래도 제일 나이가 많았던 나와 나의 아랫 동생들에겐 우리만의 특권이 있었으니... 그것은 할아버지방에 들어가서 박카스 하나를 훔쳐 마시는 것이었다. 아직도 느껴지는 그 쌉싸름하고 머리가 띵한 맛은... 어린아이들에겐 전혀 어울리지 않았고, 그래서 우린 마치 하나의 모험을 하듯 그렇게 훔쳐서 잘도 마셨다. 한여름 찌는 더위에 지친 이모들과 아이들을 위해서, 할머니는 시원한 얼음을 넣어 만든 비빔국수를 자주 해주셨다. 물론 어렸던 나에겐 김치며 매운 고추장 대신 달달하고 고소한 참기름과 깨소금 양념을 해서 주셨다.
할머니댁의 이층 옥상에 올라가면, 먼 시골의 시내를 한 눈에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거리에 하나둘 가로등이 켜지기 시작하고, 뒷산에 보이는 키 큰 나무들에 얹혀 사는 새들의 둥지가 도드라져 보이기 시작할때면, 우리의 첫만남의 날이 지기 시작한 걸 알 수 있었다.
내일은 시내에 내려가서 무얼 사먹어야지. 드라마를 보며 떠는 수다. 팩이며 로션이며 낯선 화장품 냄새 가득했던 안방의 냄새. 이모들은 다 자란 여자들이었지만, 아직도 할머니댁 이 층 방에 들어가면, 이모들이 소녀였을 때 썻던 책상이며 바라봤을 창문이 그대로 놓여있다. 그땐 이해 할 수 없었지만, 넷째이모의 책상에 칼로 '조용필' 이라고 쓰여 있는걸 보곤...뭔가...했었다.
나에겐 이모들 이라기 보단 언니들 같았던 젊었던 이모들의 방문. 한적하고 한가했던 시골에선 그때가 가장 활기있던 시간들 이었다. 까마귀 같이 까맸던 나와 다르게, 새하얗고 화장품 냄새 가득하고, "뾰죽구두"소리로, 하늘거리는 치마의 꽃무늬로, 가득했던 이모들의 모습. 나를 데리고 목욕탕에 가서 내 살가죽을 벗길듯이 씻겨주기도 하고, "할머니 말씀 잘 듣고 잘 있어" 라며 인사하던 작별의 모습. 남아 있던건 크기도 모양도 각색이었던 이모들이 옷이며 짐을 싸왔을때 썼던 상점의 종이봉투들.
갈 수 없기에 더 그리워지는 생각들이 종종 있다. 그리운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은 늘 같이 가기에, 난 이 모든 기억들이 그리움과 동시에 너무나 사랑하는 기억들 중 하나일 것이다. 너무나 평범하고 또 친근한 기억이지만, 나의 일상에서 문득 돌아가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로 소중한 기억이기도 하다.
문득 푹푹 찌고 더운 여름이 오면 그 때의 기억들을 다시금 생각하곤 한다. 푸르른 시골의 뒷산, 그 산 중턱에 있었던 회색 벽돌의 할머니의 집, 해가 따뜻하게 데위놓은 계곡의 돌들과, 해도 데울 수 없었던 시원했던 계곡물. 그리고 할머니가 나를 배려해 달콤하게 만들어 주셨던 비빔국수를. 또 시끄럽고 유쾌했던 이모들의 수다도. 할아버지 방에서 몰래 훔쳐 마시던 박카스도. 그래도 시골에서 오래 자랐던 나를 병아리 마냥 졸졸 따라오던 사촌동생들. 한 낮에 올라갔던 뒷산에서 바라보던 옆 마을의 모습. 그 곳을 넘어가면 다른 세계가 나올 것 마냥 작았던 집들. 소 키우던 축사의 모습.
그런데 지금의 난 그보다 더 나쁜 세계도 마음껏 뛰어넘고 있다.
아슬아슬한 선과 악의 줄다리기 속에 지쳐 이렇게 평범하고 온전했던 시골에서의 나의 어린시절을 되돌려 생각해 보는것이 낙이 되고 있다.
나의 수필..
한바탕의 점심 식사후 맘씨 착한 막내 이모가 타주는 커피는 오로지 어른들 만의 특권이었다. 그래도 제일 나이가 많았던 나와 나의 아랫 동생들에겐 우리만의 특권이 있었으니... 그것은 할아버지방에 들어가서 박카스 하나를 훔쳐 마시는 것이었다. 아직도 느껴지는 그 쌉싸름하고 머리가 띵한 맛은... 어린아이들에겐 전혀 어울리지 않았고, 그래서 우린 마치 하나의 모험을 하듯 그렇게 훔쳐서 잘도 마셨다. 한여름 찌는 더위에 지친 이모들과 아이들을 위해서, 할머니는 시원한 얼음을 넣어 만든 비빔국수를 자주 해주셨다. 물론 어렸던 나에겐 김치며 매운 고추장 대신 달달하고 고소한 참기름과 깨소금 양념을 해서 주셨다.
할머니댁의 이층 옥상에 올라가면, 먼 시골의 시내를 한 눈에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거리에 하나둘 가로등이 켜지기 시작하고, 뒷산에 보이는 키 큰 나무들에 얹혀 사는 새들의 둥지가 도드라져 보이기 시작할때면, 우리의 첫만남의 날이 지기 시작한 걸 알 수 있었다.
내일은 시내에 내려가서 무얼 사먹어야지. 드라마를 보며 떠는 수다. 팩이며 로션이며 낯선 화장품 냄새 가득했던 안방의 냄새. 이모들은 다 자란 여자들이었지만, 아직도 할머니댁 이 층 방에 들어가면, 이모들이 소녀였을 때 썻던 책상이며 바라봤을 창문이 그대로 놓여있다. 그땐 이해 할 수 없었지만, 넷째이모의 책상에 칼로 '조용필' 이라고 쓰여 있는걸 보곤...뭔가...했었다.
나에겐 이모들 이라기 보단 언니들 같았던 젊었던 이모들의 방문. 한적하고 한가했던 시골에선 그때가 가장 활기있던 시간들 이었다. 까마귀 같이 까맸던 나와 다르게, 새하얗고 화장품 냄새 가득하고, "뾰죽구두"소리로, 하늘거리는 치마의 꽃무늬로, 가득했던 이모들의 모습. 나를 데리고 목욕탕에 가서 내 살가죽을 벗길듯이 씻겨주기도 하고, "할머니 말씀 잘 듣고 잘 있어" 라며 인사하던 작별의 모습. 남아 있던건 크기도 모양도 각색이었던 이모들이 옷이며 짐을 싸왔을때 썼던 상점의 종이봉투들.
갈 수 없기에 더 그리워지는 생각들이 종종 있다. 그리운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은 늘 같이 가기에, 난 이 모든 기억들이 그리움과 동시에 너무나 사랑하는 기억들 중 하나일 것이다. 너무나 평범하고 또 친근한 기억이지만, 나의 일상에서 문득 돌아가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로 소중한 기억이기도 하다.
문득 푹푹 찌고 더운 여름이 오면 그 때의 기억들을 다시금 생각하곤 한다. 푸르른 시골의 뒷산, 그 산 중턱에 있었던 회색 벽돌의 할머니의 집, 해가 따뜻하게 데위놓은 계곡의 돌들과, 해도 데울 수 없었던 시원했던 계곡물. 그리고 할머니가 나를 배려해 달콤하게 만들어 주셨던 비빔국수를. 또 시끄럽고 유쾌했던 이모들의 수다도. 할아버지 방에서 몰래 훔쳐 마시던 박카스도. 그래도 시골에서 오래 자랐던 나를 병아리 마냥 졸졸 따라오던 사촌동생들. 한 낮에 올라갔던 뒷산에서 바라보던 옆 마을의 모습. 그 곳을 넘어가면 다른 세계가 나올 것 마냥 작았던 집들. 소 키우던 축사의 모습.
그런데 지금의 난 그보다 더 나쁜 세계도 마음껏 뛰어넘고 있다.
아슬아슬한 선과 악의 줄다리기 속에 지쳐 이렇게 평범하고 온전했던 시골에서의 나의 어린시절을 되돌려 생각해 보는것이 낙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