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부문헌에서는 베이브 루스가 남다른 시력을 가지고 있어 날라오는 공의 실밥을 뚜렸히 보며 공을 칠수 있었다고 하지만... 그의 한쪽눈은 거의 법적 실명상태(legal blindness) 였다고 합니다. 한쪽눈이 안보이면 감각기능이 떨어지고 입체시(Stereopsis)가 매우 힘들텐데도 그렇게 많은 홈런을 때려낸것을 보면 매우 대단한 일임에 틀림 없습니다.. 그를 이야기 하지 않고 메이저리그 역사를 논할수 없듯이 그가 남긴 많은 기록들은 화려합니다. 베이브 루스는 10개의 홈런으로 홈런왕이 되던 시절에 무려 54홈런를 치며 초창기 투수위주의 메이져리그의 틀을 완전히 바꾸어 버렸습니다. 20세기 초반 대공황의 여파로 고통받는 미국인들에게 삶의 활력소를 제공한 것은 바로 베이브 루스의 장쾌한 홈런포였고 꺼져가던 야구를 다시 미국의 국민스포츠로 바꾸어 놓은것도 그였습니다. 1914년, 19살에 프로야구 선수가 되었고 동료들은 루스가 거구임에도 불구하고, 아기처럼 천진하고 순진해서 '베이브(Babe)'란 별칭을 지어 주었습니다. 그는 타자로써 뿐만 아니라 투수로도 유명한데, 메이저리그 레드삭스에서 처음 투수로 등장하여 6시즌동안 89승의 성적을 거두었고, 1916년 14회 연장전을 승리로 이끌며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이끌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1916년부터 월드시리즈 29.2 이닝 연속 무실점을 기록하기도 하였습니다.) 타자로 전향한후 1919년 29개의 홈런으로 메이저리그 신기록을 세우며 홈런왕을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보스톤 레드삭스는 루스를 뉴욕 양키스에 펜웨이파크 대관을 위한 대출금 30만달러와 현금 12만5000달러 등 헐값을 받고 트레이드해 버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밤비노의 저주(Bambino'sCurse)'로 향후 80여년간 양키스에게는 영광이, 레드삭스는 한번도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는 징크스 빠지게 되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밤비노란 이탈리아어로 갓난아기를 뜻하는 것으로 영어의 베이브-babe와 같은 뜻으로, 베이브 루스(Babe Ruth)의 이름에서 따온 것) 양키스에서 타자로 새로운 야구인생을 시작한 그는 첫해, 54개의 홈런에 타율 0.376, 158타점, 장타율 8할4푼7리라는 경이적인 성적을 올렸고, 이듬해에도 59개의 홈런을 쳐내며 당시 아메리칸리그 만년 하위팀이었던 양키스를 일약 명문 구단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1920시즌 이후 양키스는 베이브 루스의 맹활약으로 7년 연속 리그 우승을 차지하면서 양키스의 독주시대를 이어나갔읍니다.) 1927시즌엔 한시즌 60홈런의 단일 시즌 홈런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는데요...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낸 탓인지 어린이들을 유달리 사랑했었고... 병상에 있는 소년을 위해 그 유명한 예고홈런을 선사하기도 했습니다. 1945년 다시 돌아온 친정팀 보스턴에서 메이저리그 생활을 마치고 은퇴 후 후두암 판정을 받아 1948년 53세를 일기로 일생을 마감하게 되지만.. 통산 타율 0.342에 714 홈런, 2천213타점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남기게 됩니다.. 그는 홈런 못지않게 많은 삼진을 당했읍니다.. 하지만 그는 말합니다. "714개의 홈런을 칠 수 있었던 것은 1390개의 삼진 아웃이 있었기 때문이다" 삼진이 두려워 제대로 스윙도 못하는 나의 모습을 반성합니다.
베이브 루스(Babe Ruth)
- 일부문헌에서는 베이브 루스가 남다른 시력을 가지고 있어
날라오는 공의 실밥을 뚜렸히 보며 공을 칠수 있었다고 하지만...
그의 한쪽눈은 거의 법적 실명상태(legal blindness)
였다고 합니다.
한쪽눈이 안보이면 감각기능이 떨어지고 입체시(Stereopsis)가
매우 힘들텐데도 그렇게 많은 홈런을 때려낸것을 보면
매우 대단한 일임에 틀림 없습니다..
그를 이야기 하지 않고 메이저리그 역사를 논할수 없듯이 그가 남긴 많은 기록들은 화려합니다.베이브 루스는 10개의 홈런으로 홈런왕이 되던 시절에
무려 54홈런를 치며 초창기 투수위주의 메이져리그의 틀을
완전히 바꾸어 버렸습니다.
20세기 초반 대공황의 여파로 고통받는 미국인들에게 삶의
활력소를 제공한 것은 바로 베이브 루스의 장쾌한 홈런포였고
꺼져가던 야구를 다시 미국의 국민스포츠로 바꾸어 놓은것도
그였습니다.
1914년, 19살에 프로야구 선수가 되었고 동료들은 루스가
거구임에도 불구하고, 아기처럼 천진하고 순진해서
'베이브(Babe)'란 별칭을 지어 주었습니다.
그는 타자로써 뿐만 아니라 투수로도 유명한데,
메이저리그 레드삭스에서 처음 투수로 등장하여 6시즌동안
89승의 성적을 거두었고, 1916년 14회 연장전을 승리로 이끌며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이끌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1916년부터 월드시리즈 29.2 이닝 연속
무실점을 기록하기도 하였습니다.)
타자로 전향한후 1919년 29개의 홈런으로 메이저리그 신기록을
세우며 홈런왕을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보스톤 레드삭스는
루스를 뉴욕 양키스에 펜웨이파크 대관을 위한 대출금 30만달러와 현금 12만5000달러 등 헐값을 받고 트레이드해 버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밤비노의 저주(Bambino'sCurse)'로
향후 80여년간 양키스에게는 영광이, 레드삭스는 한번도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는 징크스 빠지게 되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밤비노란 이탈리아어로 갓난아기를 뜻하는 것으로 영어의
베이브-babe와 같은 뜻으로, 베이브 루스(Babe Ruth)의
이름에서 따온 것)
양키스에서 타자로 새로운 야구인생을 시작한 그는 첫해, 54개의
홈런에 타율 0.376, 158타점, 장타율 8할4푼7리라는 경이적인 성적을 올렸고, 이듬해에도 59개의 홈런을 쳐내며 당시 아메리칸리그
만년 하위팀이었던 양키스를 일약 명문 구단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1920시즌 이후 양키스는 베이브 루스의 맹활약으로 7년 연속 리그 우승을 차지하면서 양키스의 독주시대를 이어나갔읍니다.)
1927시즌엔 한시즌 60홈런의 단일 시즌 홈런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는데요...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낸 탓인지 어린이들을 유달리
사랑했었고... 병상에 있는 소년을 위해 그 유명한 예고홈런을
선사하기도 했습니다.
1945년 다시 돌아온 친정팀 보스턴에서 메이저리그 생활을
마치고 은퇴 후 후두암 판정을 받아 1948년 53세를 일기로
일생을 마감하게 되지만..
통산 타율 0.342에 714 홈런, 2천213타점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남기게 됩니다..
그는 홈런 못지않게 많은 삼진을 당했읍니다..
하지만 그는 말합니다.
"714개의 홈런을 칠 수 있었던 것은
1390개의 삼진 아웃이 있었기 때문이다"
삼진이 두려워 제대로 스윙도 못하는
나의 모습을 반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