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동문의 ‘김연아 띄우기’에서 수상한 냄새가 난다

이강율2009.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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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는 끝났지만, 흥분과 감동은 그대로다. 찬사도 끊일 줄 모른다. 그럴 만 하다. 김연아가 마침내 꿈의 200점을 돌파하고 세계선수권까지 제패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런데 몇몇 언론의 김연아 띄우기에서 수상한 냄새가 난다. 이른바 국가주의의 냄새다. 김연아 개인의 성취를 대한민국과 애국가로 땜질하고 덧칠하느라 여념이 없다. 국가가 있고서야 WBC 야구도 있고, 피겨도 있다는 투다.

조선일보는 김연아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그 다음날, 김연아가 시상식에서 눈물 흘린 것을 1면톱으로 전하면서 제목을 이렇게 달았다. "애국가가 울려퍼지자, 연아의 두볼엔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 3월 30일자 조선일보 1면톱

김연아의 우승을 전하면서 그녀의 눈물을 1면 사진에 부각시키고 그를 애국가와 연결시킨 신문은 조선일보가 유일무이하다. 다른 신문들은 죄다 김연아의 환한 미소와 웃음에 포커스를 맞췄다.

조중동문 4총사 가운데 조선일보를 제외한 나머지 3개 신문의 오버도 가산점수를 받기에 충분했다. (중앙일보), (동아일보), (문화일보)같은 사설 제목만 일별해도 대강의 분위기를 감잡을 수 있을 게다.

김연아의 승리를 '한국인 기개 드높인 쾌거'로 해석한 중앙일보는 김연아의 오늘이 있기까지 부단한 노력과 가족의 희생, 그리고 세계 최고 수준의 코치와 안무가 등을 섭외한 매니치먼트사의 도움이 있었음을 거론하면서 "김연아의 성공은 ‘작지만 강한 나라’를 지향할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떠벌였다. 그런데 이런 요소들은 모든 우승에 필수불가결한 것들 아닌가?

'김연아의 감동'을 코리아의 힘으로 읽어낸 동아일보는 한 술 더 떴다. 동아일보는 "김연아의 승리는 그 혼자만의 영예를 넘어 우리 국민의 강한 저력을 보여주는 것"이고 "‘한국 최고가 세계 최고’로 통할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라면서, "세계 최고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김연아만 하더라도 어머니의 헌신적인 뒷바라지, 과학적 스포츠 관리, 우수한 지도자, 그리고 선수 자신의 피눈물 나는 노력이 만들어 낸 합작품이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여기에 뜬금없이 끼워넣은 '우수한 지도자' - 다른 신문에는 이런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 - 는 누구를 염두에 두고 쓴 말일까?

이게 다가 아니다. 동아일보는 심지어 "세계 최고의 실력은 끝없는 노력과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만 연마될 수 있음을 다시금 확인해주었다"면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직접 구경해 보시라.

"김연아의 세계 제패에서 우리는 자율과 경쟁의 소중함을 거듭 깨닫게 된다.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스포츠에서 한국을 빛내는 스타가 잇따라 나오는 것은 스포츠가 기본적으로 최고만이 승리를 차지하는 경쟁시스템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김연아의 성공에서 경쟁시스템의 우월성을 끄집어내는 동아일보의 탁월한 혜안을 보라!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이 말을 비판하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아서 패스~!(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경쟁시스템에 의해 신문시장에서 무장무장 하위권으로 쳐지고 있는 동아일보가 이런 말을 하니까 느낌이 색다르긴 하다.)
 
그러나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김연아를 아예 '대한민국 브랜드'로 덮어 씌운 문화일보의 몫이다. 4단으로 구성된 문화일보 사설에서 '대한민국'이란 말이 몇번 나오는지 아는가? 제목까지 합하면 무려 8회나 된다. 한번 세어 보시라.

"...대한민국은 김 선수에게 빚을 지고 있다...대한민국이 더 크게 지고 있는 빚을...‘김연아’가 곧 대한민국의 황금빛 브랜드...대한민국 딸의 투혼은...우리는 대한민국의 미래 그 이미지가...대한민국 브랜드의 장엄한 흐름...위대한 선수이기에 앞서 대한국민의 용기..."()      

뿐 아니라. 애국가와 태극기까지 총동원된다. "김 선수가 시상대에서 애국가 연주를 들으며 흘린 뜨거운 눈물"과 "미 로스앤젤레스 스테이플스센터의 태극기 물결..." 운운, 이쯤 되면 문화일보 사설은 차라리 대한민국 송가라 할 만 하지 않은가.

조중동문의 '김연아 보도'를 읽노라면, 마치 수령님과 인민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우는 북한 선수들이 연상돼 측은해 보일 지경이다. 애국심이 자신들의 전유물인 냥, 김연아 어깨 위에 꼭 그렇게 무거운 짐을 지워야만 직성이 풀릴까?

굳이 이렇게 호들갑 떨지 않더라도 김연아는 한국의 자랑스런 딸이자 세계의 보물이다. 같은 핏줄을 지녔다는 이유만으로 아무 것도 해 준 것 없는 우리가 그이 덕분에 맘껏 기뻐하고 감격하고 또한 그로 인해 삶의 활력을 찾았다면 그로써 족한 것 아닌가.  

김연아는 이제 'Queen 연아'가 됐다. 쇼트프로그램을 중계하면서 "자신이 한국인인지 아닌지는 상관 없습니다. 모든 피겨팬들은 알고 있을 겁니다. 이 순간이 마치 보물과도 같다는 것을..."고 감격에 겨워 내지른 독일인 해설자의 말이 아니더라도, 김연아는 이미 세계의 보물이다. 제발 그를 내버려 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