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셀 프리드먼 지음 | 김기현 옮김 | 책으로 여는 세상 『만약 그때 그들이 버스를 탔다면, 오늘날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는 없었을 것입니다』 50년 전만 해도 미국 남부에서 흑인들은 백인과 버스에서 나란히 앉아갈 수도, 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도, 같은 극장에서 영화를 볼 수도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버스 안에서의 인종차별은 흑인들을 무척 비참 하게 만들었습니다. 마침내 1955년 12월 5일, 평범한 흑인 시민들이 이에 맞서기 위해 일어섰습니다. 그들은 버스안타기 운동을 펼쳤고, 그것은 무려 381일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만약 그때 너무 힘든 나머지 포기하고 버스를 탔다면 또는 폭력으로 맞섰다면, 오늘날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는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인종차별을 없앤 것이 몇 사람의 영웅이 아니라 평범한 수많은 사람들의 수고였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 책 표지 글 - 미국 역사상 최초로 흑인 대통령 오바마가 당선되었다는 것은, 링컨의 노예해방 선언 이후 흑인들의 인권이 얼마나 성장되었는지를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한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지거나, 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수많은 노력이 담겨있다. 1955년 미국 남부에는 짐 크로 법(jim crow law. 인종분리법과 같은 말로 학교, 공원, 식당, 극장, 공동묘지 등에서 흑인과 백인을 분리하던 인종차별법이며 미국 남부의 여러 주에서 시행되었다)이라는 '인종분리' 법이 존재하였다. 사람들은 '흑인과 백인으로 분리된 병원'에서 태어나는 순간부터 '흑인과 백인으로 구분 된 공동묘지'에 묻히게 되는 그날까지 인종에 따라 분리되어 살았다. "모든 버스마다 앞자리 10개는 백인들을 위해 비워놓아야 했습니다. 버스 안에 백인이 한 명도 없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흑인들은 앞쪽 자리가 텅텅 비어있는데도 뒤쪽에서 비좁게 서서 가야만 했습니다." 「로자 팍스」- "정말로 지쳤던 건 굴복하는 거였어요" 버스에서조차 인종차별을 당해야만 했고, 그것이 법으로 정해져 있던 시대. 그에 대한 저항은 한 여성에서 시작되었다. 흑인여성 로자 팍스. 그녀는 버스에서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되고, 이것을 계기로 그녀가 간사로 활동하고 있던 NAACP(미국흑인지위향상협회)는 버스에서의 인종차별을 없애기 위한 저항을 시작한다. 그것이 바로 '버스 안타기 운동' 이었다. "자유를 위해 오늘은 버스를 타지 마세요" 이 운동에 앞장섰던 인물이 바로 「마틴 루터 킹」목사다. 젊은 나이의 킹 목사는 버스 안타기 운동을 위해 만든 MIA(몽고메리개선협회)의 회장으로 선출되고 연설을 통해 흑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킹 목사의 저항 방법은 인도의 독립을 이끈 간디의 '비폭력'과 '소극적 저항(부당한 제도에 협력하기를 거부하는 것)을 따랐다. "나는 간디가 사용한 비폭력이라는 방법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의 교리가 작용하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흑인들이 자유를 향한 투쟁에서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 가운데 하나라는 걸 일찌감치 깨달았 습니다." - 마틴 루터 킹 - 이러한 방법으로 몽고매리의 모든 흑인들은 일터에 나가거나, 학교에 가거나, 어디를 가든지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다니거나, 카풀을 하였다. 그 과정에서 몽고매리의 시장과 백인우월주의자들은 갖은 협박과 폭력 을 통해 운동을 저지하려 하지만 실패로 끝나고 만다. "내 발은 힘들지만, 내 영혼은 평안합니다." 모든 사람의 이러한 노력으로 마침내 1956년 12월 21일. 버스안타기 운동이 시작된 지 381일이 된 그 날, 몽고매리 시는 버스 안에서의 인종분리를 폐지한다. 그리고 1964년에 인종분리를 완전히 없애는 「시민권법」이 공표된다. 그 다음해인 1965년에는 「투표권법」이 통과됨으로써 흑인도 투표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1968년 4월 4일. 마틴 루터 킹 목사는 테네시 주의 멤피스에서 흑인 환경미화원들이 임근 인상과 작업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고 있는 곳에 지지를 위해 방문하였다가 암살자의 총에 목숨을 잃고 만다. 흑인 지위 향상의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킹 목사. 그의 유명한 연설인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를 옮긴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 마틴 루터 킹 -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이 나라가 일어나, '우리 모두가 틀림없이 알고 있는 진리, 곧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신조의 참된 뜻을 실현하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조지아의 붉은 언덕 위에 예전에 노예였던 사람들의 후손들과 노예 주인이었던 사람들의 후손들이 형제처럼 한 상에 함께 둘러앉게 되리라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불의와 억압의 열기에 신음하는 저 황폐한 미시시피 주마저도 자유와 정의의 오아시스로 바뀌게 되리라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나의 네 자녀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그런 나라에서 살게 되리라는 꿈입니다. 지금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들과 주지사가 연방정부의 조처나 판결에 대해 간섭이니 무효니 하는 말을 떠벌리고 있는 바로 이곳 앨라배마 주에서, 언젠가 흑인 소년 소녀들이 백인 소년 소녀들과 형제자매처럼 손을 맞잡을 수 있게 되리라는 꿈입니다. 지금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모든 골짜기가 돋우어지고, 모든 언덕과 산은 낮아지며, 고르지 않는 곳은 평탄케 되고, 굽은 곳은 곧게 펴지며, 하느님의 영광이 나타나 모든 사람이 함께 그것을 보게 되리라는 꿈입니다.
[책 추천] 그들은 자유를 위해 버스를 타지 않았다.
러셀 프리드먼 지음 | 김기현 옮김 | 책으로 여는 세상
『만약 그때 그들이 버스를 탔다면, 오늘날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는 없었을 것입니다』
50년 전만 해도 미국 남부에서 흑인들은 백인과 버스에서 나란히 앉아갈 수도, 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도, 같은 극장에서 영화를 볼 수도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버스 안에서의 인종차별은 흑인들을 무척 비참
하게 만들었습니다.
마침내 1955년 12월 5일, 평범한 흑인 시민들이 이에 맞서기 위해 일어섰습니다. 그들은 버스안타기 운동을
펼쳤고, 그것은 무려 381일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만약 그때 너무 힘든 나머지 포기하고 버스를 탔다면 또는
폭력으로 맞섰다면, 오늘날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는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인종차별을 없앤 것이 몇 사람의 영웅이 아니라 평범한 수많은 사람들의 수고였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 책 표지 글 -
미국 역사상 최초로 흑인 대통령 오바마가 당선되었다는 것은, 링컨의 노예해방 선언 이후 흑인들의 인권이
얼마나 성장되었는지를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한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지거나,
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수많은 노력이 담겨있다.
1955년 미국 남부에는 짐 크로 법(jim crow law. 인종분리법과 같은 말로 학교, 공원, 식당, 극장, 공동묘지
등에서 흑인과 백인을 분리하던 인종차별법이며 미국 남부의 여러 주에서 시행되었다)이라는 '인종분리'
법이 존재하였다. 사람들은 '흑인과 백인으로 분리된 병원'에서 태어나는 순간부터 '흑인과 백인으로 구분
된 공동묘지'에 묻히게 되는 그날까지 인종에 따라 분리되어 살았다.
"모든 버스마다 앞자리 10개는 백인들을 위해 비워놓아야 했습니다. 버스 안에 백인이 한 명도 없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흑인들은 앞쪽 자리가 텅텅 비어있는데도 뒤쪽에서 비좁게 서서 가야만
했습니다."
「로자 팍스」- "정말로 지쳤던 건 굴복하는 거였어요"
버스에서조차 인종차별을 당해야만 했고, 그것이 법으로 정해져 있던 시대. 그에 대한 저항은 한 여성에서
시작되었다. 흑인여성 로자 팍스. 그녀는 버스에서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되고,
이것을 계기로 그녀가 간사로 활동하고 있던 NAACP(미국흑인지위향상협회)는 버스에서의 인종차별을
없애기 위한 저항을 시작한다. 그것이 바로 '버스 안타기 운동' 이었다.
"자유를 위해 오늘은 버스를 타지 마세요"
이 운동에 앞장섰던 인물이 바로 「마틴 루터 킹」목사다. 젊은 나이의 킹 목사는 버스 안타기 운동을 위해
만든 MIA(몽고메리개선협회)의 회장으로 선출되고 연설을 통해 흑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킹 목사의 저항
방법은 인도의 독립을 이끈 간디의 '비폭력'과 '소극적 저항(부당한 제도에 협력하기를 거부하는 것)을
따랐다.
"나는 간디가 사용한 비폭력이라는 방법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의 교리가 작용하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흑인들이 자유를 향한 투쟁에서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 가운데 하나라는 걸 일찌감치 깨달았
습니다." - 마틴 루터 킹 -
이러한 방법으로 몽고매리의 모든 흑인들은 일터에 나가거나, 학교에 가거나, 어디를 가든지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다니거나, 카풀을 하였다. 그 과정에서 몽고매리의 시장과 백인우월주의자들은 갖은 협박과 폭력
을 통해 운동을 저지하려 하지만 실패로 끝나고 만다.
"내 발은 힘들지만, 내 영혼은 평안합니다."
모든 사람의 이러한 노력으로 마침내 1956년 12월 21일. 버스안타기 운동이 시작된 지 381일이 된 그 날,
몽고매리 시는 버스 안에서의 인종분리를 폐지한다. 그리고 1964년에 인종분리를 완전히 없애는
「시민권법」이 공표된다. 그 다음해인 1965년에는 「투표권법」이 통과됨으로써 흑인도 투표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1968년 4월 4일. 마틴 루터 킹 목사는 테네시 주의 멤피스에서 흑인 환경미화원들이 임근 인상과 작업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고 있는 곳에 지지를 위해 방문하였다가 암살자의 총에 목숨을 잃고 만다.
흑인 지위 향상의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킹 목사. 그의 유명한 연설인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를 옮긴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 마틴 루터 킹 -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이 나라가 일어나,
'우리 모두가 틀림없이 알고 있는 진리, 곧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신조의 참된 뜻을 실현하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조지아의 붉은 언덕 위에 예전에 노예였던 사람들의 후손들과
노예 주인이었던 사람들의 후손들이 형제처럼 한 상에 함께 둘러앉게 되리라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불의와 억압의 열기에 신음하는 저 황폐한 미시시피 주마저도
자유와 정의의 오아시스로 바뀌게 되리라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나의 네 자녀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그런 나라에서 살게 되리라는 꿈입니다.
지금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들과 주지사가 연방정부의 조처나 판결에 대해
간섭이니 무효니 하는 말을 떠벌리고 있는 바로 이곳 앨라배마 주에서,
언젠가 흑인 소년 소녀들이 백인 소년 소녀들과 형제자매처럼
손을 맞잡을 수 있게 되리라는 꿈입니다.
지금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모든 골짜기가 돋우어지고, 모든 언덕과 산은 낮아지며,
고르지 않는 곳은 평탄케 되고, 굽은 곳은 곧게 펴지며,
하느님의 영광이 나타나 모든 사람이 함께 그것을 보게 되리라는 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