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알래스카에 관한 책이 없어서 어떤 책을 볼까 고민하다가 별 기대 없이 집어든 책이 '알래스카 바람같은 이야기'였다. 이렇게 운명이라는 것은 우연이라는 탈을 뒤집어쓰고 나타나나보다..
사실.. 굉장히 인상에 남았던 책임에도.. 내용이 완벽하게 기억에 남지는 않는다..
하지만 '알래스카 바람같은 이야기' 속의 알래스카 풍경은.. 아직도 눈 앞에 있는듯 생생하다.
호시노 미치오는 영혼으로 알래스카를 사랑했고, 알래스카를 우러러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의 글 뿐만 아니라 그의 사진만 봐도 알 수 있다.
그의 글을 읽노라면 알래스카 에스키모인의 시선으로 알래스카를 바라볼 수 있었고, 그러한 시선으로 본 알래스카는 인간의 이기가 아닌 자연 본연의 모습으로 온화하게 머물러 있었다.
그의 사진 중에 얕은 강에 언제 자연으로 돌아갔는지 알 수 없는 카리부의 뿔 두개가 한데 엉켜있는 모습이 있었다. 두개의 뿔은 누가 일부러 그렇게 두려고 해도 할 수 없을만치 엉켜있어서 도저히 떼어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마음을 잔잔하게 울리는 많은 사진 가운데 그 사진이 기억에 진하게 남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연과 한데 뒤엉키고 싶은 나의 바램이었을까..
다른 구절은 생각이 안나는데, 분명하게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
그는 카리부 떼가 이동하는 것을 찍기 위해 무리들을 찾아다닌다. 그렇다고 카리브 떼에 목을 메어 쫒아다니는
그런 맹목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비록 카리브 떼를 만나지 못하게 된다 하여도 그저 알래스카의 자연 속 광활한 알래스카 대지에 서서 자연을 바라보는 것 자체로도 감사할줄 아는 소소한 사람이었다.
하루는 그가 카리브 떼를 찾아 알래스카를 돌아다니다가 카리브 떼를 만나지 못하고 대지에 누워 아름다운 알래스카의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신비로운 대지의 흔들림과 함께 거대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카리부 떼였다. 다음을 기약하던 시점에 우연히 카리부 무리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는 이처럼 다시보기 힘든 광경을 사진 속으로 담을것인가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길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카메라를 놓고 대지에 누워 카리브떼가 지나가는 장관을 마음속의 사진첩에 담아두기로 하였다. 가끔은 인간이 만들어낸 기계가 아닌 마음 속의 기억으로 남기고 싶은 순간이 있는 법이었다.. 그 당시 그의 마음이 어땠을지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 일화를 읽으며 호시노 미치오라는 사람에 대해 또 한번 생각을 했다.
과연 내가 그 순간에 있었다면.. 난 어떻게 했을까?
캐나다에 있었던 때가 생각난다. 하늘은 어두컴컴해지고 오로지 거리의 조명과 달빛만이 대지를 비추고 있었을 때 난 그 아름다운 광경을 어떻게든 남기고 싶었다. 하지만 내 카메라는 그때 그 아름다움을 담아낼 수 있을만큼 좋은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사진에 담아보겠다고, 연신 카메라 렌즈에 눈을 들이댔었다. 그렇게 카메라에 아름다움을 담아내고자 집착했기에 내 마음 속의 사진첩에는 기억들이 없다.
물론 몇장의 사진이 남아있긴 하지만 난 그 야경이 생생하게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내가 만약 그와 같이 가만히 카메라를 가방에 놔둔채 그 밤의 아름다움을 눈으로, 마음으로 담아냈다면 어땠을까?
" (...) 간혹 단 한 마리의 카리부도 보디 못한 채 돌아온 적도 있었다. 그렇다고 실망하지는 않았다. 알래스카의 자연이 내겐 감동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기다렸던 거대한 카리부 떼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이 아름다운 대지는 가슴이 뜨거워지는 환희로 나의 동경을 채워주곤 했다. (...) 인간의 기척을 태초부터 용납하지 않은 알래스카는 인류에게 남겨진 마지막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21세기가 목전에 다가왔지만, 이곳을 지배하는 힘은 자연의 리듬이다.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광경을 보고 싶었기에 나는 이 얼어붙은 땅을 헤맸던 것이다."
-알래스카는 누구의 땅인가 중
그의 이야기들은 이렇게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직설적으로 풀어내는 자기개발서와는 다르다. 그의 글을
읽으며 스스로 나를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알래스카 바람같은 이야기'를 읽고, 난 당연한 순리인 것처럼 그의 다른 저서들을 찾았다. 안타깝게도
학교 도서관에 있는 그의 책들은 몇 없었다. 그 중 나는 '노던라이츠'라는 책을 찾아 손에 꼭 쥔 채
집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바람같은 이야기'를 읽었을 때의 감동을 놓치고 싶지 않아 이렇게 글로 나의 마음을,
기억을 저장하고자 한다..
"중국에 이런 속담이 있어. 아무리 여행길이 길어도 시작은 첫걸음부터다... 우리에게도 첫걸음은 있었어.
알래스카까지 날아가고 싶다는 동경이었다. 동경이라기보다는 확신이었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계속
생각한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꿈이 이루어진다는 걸 그때 알았어. (...)
-알래스카의 하늘 중 셀리아의 이야기
'노던라이츠'는 '알래스카 바람같은 이야기'와는 조금 다르다. 조금 더 알래스카의 현실에 대해, 과거의
일들에 대해 그리고 알래스카 역사의 한 획을 그엇다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의 삶을 면밀히 이야기해준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처음으로 알래스카의 과거에 대해 알게 되었다. 미개척지로 자연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던 알래스카가 미국에 의해, 다른 나라의 개척자들로 인해 핵실험의 무대가 되기도 하고, 토지소유권 문제로 분쟁 속에 휘말리기도 하고, 새로운 세대의 젊은 에스키모인들에게 변화되고 있는 알래스카와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알래스카 사이에서 혼돈을 겪게한다.
어느날 갑자기 항구를 만들기 위해 알래스카 북서 해안의 케이프 톰슨 지역으로 에드워드 텔러 일행이 찾아왔다. 명목상으로는 항구를 위해서지만 사실상 그들은 원폭, 즉, 핵 실험을 하기 위해서 이곳을 찾은 것이었다. 지금이야 핵폭발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 후폭풍은 또 얼마나 두려운지 모두가 알고 있지만, 그 당시에만 해도, 특히 알래스카 원주민들에게 방사선이니 뭐니 하는 것들은 낯선 것들일 뿐이었다. 미국원자력위원회에서 알래스카를 실험지로 선정하게 된 후 거대한 폭풍이 알래스카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알래스카에서의 조용한 싸움이 시작하게 된 것이다.
케이프 톰슨 지역은 포인트 호프 마을에서 불과 30킬로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라는 것 뿐 아니라 에스키모인들에게는 자연이 선사해주는 생활의 터전이자 근본이었다. 바로 그곳에서 핵폭발 실험을 하고자 했던 것이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조차 알지 못하던 사람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지금까지의 그들의 인생이 뿌리채 흔들리게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닳게 되었다. 이 소설을 읽다보면 지니와 셀리아, 빌 플루이트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특히 지니와 셀리아는 '바람같은 이야기'에서도 많이 언급이 되던 여성들이다. 그들은 알래스카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영웅이자 알래스카를 사랑한 평범하고 모험적인 사람들이다. 그들과 포인트 호프의 마을사람들은 조그만한 반향을 일으키며 핵실험을 반대하는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자연보호단체들 조차도 원자력위원회의 압력에 의해 핵실험에 대한 이야기조차 꺼내지 못하던 때였다. 그들을 보호하려고 하는 곳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끊임없이 자연을, 그들의 터전을 보호하고자 노력했고, 결국 한달을 앞두고 핵실험은 좌초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로인해 그 누구보다 알래스카를 사랑하고, 이해하던 야외생물학자 빌은 알래스카에서 추방당하고, 평생 잊지못할 마음의 상처를 안은 채 알래스카를 떠나야만 했다.. 이렇게 알래스카가 문명에 부딫히며 많은 변화들이 생기고 있다..
"잠깐 기다려줘.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당신들이 말하는 자연보호와는 조금 다르다구. 우리는 계절을 좇아
이동하는 카리부를 사냥해야 해. 카리부는 우리의 일부야. 당신들처럼 보고 즐기기 위해 알래스카가 필요한 게 아니라고. 알래스카는 우리에게 존재 그 자체야."
-고뇌하는 구친 인디언 중
호시노 미치오가 정말 보고싶어했던 인물이 있다. 그의 이름은 돈셸든.. 맥킨리 산의 한 시대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전설적인 부시파일럿이다. 하지만 그는 안타깝게도 1975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위대한 부시파일럿이 되기 위해서는 비행기술만 뛰어나서는 안된다. 비행기술은 기본이고, 자신의 비행기에 올라탄 모든 종류의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손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뿐 아니라, 그가 알래스카에서 무엇을 찾고 있는지도 정확히 꿰뚫어볼 수 있어야 한다. (..) 단순히 손님을 실어 나르는 것이 전부라면 굳이 돈 셸든을 찾아가지 않아도 된다. (..) 돈 셸든은 진심으로 알래스카를 사랑했다. (...) 돈 셸든이 위대한 이유는 산과 하늘이라는 무기질의 세계를 휴머니즘의 세계로 바꿔놓았기 때문이야. 그가 있었기에 맥킨리도, 맥킨리의 하늘도 낭만적일 수 있었어"
-전설의 로지, 캠프 데날리2 중
그가 묘사하는 돈 셸든은 정말 너무나도 매력적인 사람이다. 그가 운전하는 비행기를 탈 수 있다면 아니 만약에 탔다면, 나도 호시노 미치오처럼 알래스카의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게 되어 알래스카를 잊지 못하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비행기 안에서 그를 통해 맥킨리의 낭만적인 하늘을 보고 싶어진다..
호시노 미치오는 이처럼 알래스카를 사랑하고, 알래스카를 사랑하는 이를 사랑하며 본받을 줄도 아는 진정한 사람이었다..
"시대가 변했어. 우리 생활도 백인들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어.. 이제와서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지금도 우리에겐 사냥이 중요해. 새로운 생활은 새로운 생활대로 받아들이고, 옛날 방식은 옛날 방식대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
" 인간의 삶이 직선으로 나 있는 레일 위를 달려 목표했던 지점에 도착하는 것이 아니듯, 인류의 여행 또한 갖가지 폭풍에 노출될 수 밖에 없다. 폭풍 속에서 풍향계를 확인하며 한 걸음씩 나가는 것이 인생이다. 보이지 않는 항구를 찾아 여행하는 것이 인생이다"
-고뇌하는 구친 인디언 중
"어떤 싸움도 100퍼센트 승리를 장담하지 못해. 시대는 계속 움직이고, 인간은 그 움직임에 발을 맞추면서 그때그때 옳다고 생각되는 선택을 내려야 하니까..."
-알래스카는 누구의 땅인가 중 셀리아의 말
세월은 변한다. 시대도 변한다. 사람 개인개인이 살아가는 모습도 변한다. 언제나 변화를 추구하고, 편리를 추구하는 인간들이 있기에 이와 같은 사실은 거부할 수 없다. 사람들은 모두 오늘같은 시대에 단순히 옛날의 모습만을 추구하고, 원한다면 언젠가는 도태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좋던 실던 자의가 아닌 타의로 모든건 변하게된다. 아무리 변하지 않기를 간절히 원하고, 노력한다 하더라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아주 조금씩 슬금슬금 모든 것이 변해서, 어느 순간에 내가 알던 곳이 아닌 다른 장소에 있는 나를 깨닫게 될 것이다. 물론 나도 옛것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의 사람이다. 극심한 자연보호주의도 아니고, 문명보호주의자도 아니긴 하지만 옛것의 소중함을 알고, 옛것을 지키며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 미덕이라는 것을 안다.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부분 만큼만 인간이 사용한다면 좋겠지만 이미 인간은 자연을 내버려두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빠르게 침범하고 있다. 이미 방아쇠는 당겨진 것이다. 우리는 먼 옛날의 정신을 잃지 않고, 한걸음씩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앞으로 전진할 수 밖에 없다. 인생이란 것이 각본처럼 대본처럼 모든게 짜여진대로 움직이는 것이라면, 인생은 너무 시시해질 것이다. 알 수 없는게 인생이기에, 우리가 하는 만큼 작용하는 것이 있기에 인생은 흥미로운 것이고, 다이나믹한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인생을 아름답게 꾸며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두려움이라는 감각이야. 구친 인디언에게 두려움은 굶주림이었어. 물론 옛날 얘기지. 지금은 약간 달라졌어. 지금은 자연을 제일 두려워해. 자연이 사라지면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니까..."
-미래를 내려다보는 신비한 힘 중 링컨 트리트의 말
(...) 그러나 나는 머나먼 자연의 소중함을 믿는다. 알래스카는 머나먼 자연이다. 이곳에는 우리의 일상에서 흔하게 볼 수 없는 자연이 숨 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평생 단 한 번도 알래스카 땅을 밟아보지 못한다. 그렇기에 알래스카는 그들에게도 소중한 땅이다. 그들이 지켜야 하는 땅이다. 지구 어딘가에 태초의 모습이 아직 남아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우리의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곳이 있다면, 그곳이 바로 알래스카다. 알래스카는 눈으로 보는 자연이 아니다. 인간이 영혼으로 찾아가는 머나먼 자연이다.
-알래스카는 누구의 땅인가 중
나는 인간이 자연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연을 무시하고, 인간들의 편리를 위해 파괴만을 일삼는다면 언젠가 자연은 인간들에게 고스란히 그 아픔을 다시 전달할 것이라고 믿는다. 이미 자연은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더 이상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말라고.. 뒷감당을 할 준비는 되어 있냐고.. 자연을 파괴하는 것은 일순간이지만, 파괴된 자연을 회복하는 데에는 억겁의 시간이 필요하다. 호시노가 '노던라이츠'를 썼던 당시와 지금은 또 한참이 다를 것이다. 알래스카가 간직하고 있던 태초의 모습이 아직까지 변치않고 있을지 모르겠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변화의 폭풍 속에 살아가고 있을 알래스카는 그동안 또 다른 어떤 아픔과 직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을 썼을 당시 셀리와 지니의 나이가 여든이었다. 알래스카를 사랑했고, 일생을 알래스카와 함께한 그녀들이 아직도 알래스카에서 지나간 과거를 회상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아니면 그녀들도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였을지도 모르겠다..
어느날 밤, 우리는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나중에 네 아이들이 다른 세계가 궁금하다고 하면 일본으로 보내. 내가 돌봐줄 테니까.."
"네 아이도 다른 세계가 궁금하다고 하면 포인트 호프로 보내. 같이 고래를 사냥하러 갈 테니까."
정말 그런 때가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지금 우리들이 한 이야기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생각만으로도 더없이 기뻤다.
-고래와 함께 사는 젊은 에스키모 중 호시노와 에이모스의 대화
(...) 언제부턴가 다 같이 여행하자는 이야기를 계속 해왔다. 우리에겐 '약속의 강'이 있었다. (...) 아련하기만 했던 마음속의 강이 지도 위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 '쉰예크'는 셀리아와 지니에게 '마지막 강'이 될 것이다. 알래스카의 개척시대를 가장 치열하게 달려온 두 여성의 마지막 모험이 '쉰예크'에서 시작되려는 것이다.
-극북의 벌판을 흐르는 '약속의 강'을 여행하자 중
어쩌면 '쉰예크'는 정말 호시노의 마지막 강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1996년 8월 8일 그는 쿠릴 호반에서 취침 중에 불곰의 습격을 받아 사망했다. 그는 그 당시 43세였다. 그의 사망에 대해 알게된 것은 '바람같은 이야기'에서 그의 모든 이야기가 끝나갈 즈음 그의 사망 소식을 알리는 몇줄의 글로 인해서였다. 나도모르게 울컥 눈시울이 붉어졌다. 2009년인 현재 까지도 쌩쌩히 알래스카 곳곳을 누비며 카리부 떼를 찾아, 자연의 아름다움을 찾아다니고 있을거라 생각했던 그가 결국에는 그가 사랑해 마지않던 알래스카에서 그가 사랑하던 야생동물에 의해 자연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그를 전혀 알지 못하는 나였지만 그의 사망을 접했을 때는 적잖이 충격에 휩싸였다. 20년간 알래스카를 누비며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했던 그가 결국에 자연으로 돌아갔구나.. 아직 이렇게 젊은데.. 알래스카는 그렇게 또 한명의 위인을 잃었다. 하지만 그는 슬프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인생을 받쳤던 알래스카에서 알래스카에 의해 알래스카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그는 분명 알래스카의 영혼으로 남아, 알래스카를 사랑하게 되어버린 사람들에게 또 다른 영혼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카리부 떼와 함께 광활한 대지를 달리고 있을 것이다..
이 사진은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사진이라고 한다.. 불곰이 그의 텐트를 습격했을 때 그는 절제절명의 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생의 끈을 잡고자 도망치려고 아둥바둥하는 대신 알래스카에서의 또 다른 삶을 위해 사진기를 들고 마지막 사진을 남겼다고 한다. 그는 진정 그 누구보다도 알래스카를 사랑했고, 자연에 순응할줄 아는 진정한 사진가였다.
호시노의 글을 읽으면 읽을 수록 알래스카는 도대체 어떤 곳이야?라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어떤 곳이기에 이렇게 사람들이 알래스카를 사랑하게 되는걸까? 나도 알래스카에 가보고 싶어진다. 셀리아와 지니가 가장 그리운 장소라고 지목한 '맥킨리국립공원'에도 가보고 싶고, 그녀들이 가꿔놓은 캠프 데날리에서 자연 속에 하나가 되어 잠을 청해보고 싶고, 호시노가 몇년이고 쫒아다녔던 카리부 떼도 보고 싶다. 그의 글엔 알래스카를 향한 열정이 생기도록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나는 곧 그의 흔적을 찾아 그의 다른 책들을 찾아볼 것이다. 그렇게 그곳에서 또 그의 기척을 느끼고, 알래스카를 느끼고 싶다.
알래스카 최초의 여성 파일럿이자 환경운동가였던 셀리아 헌터와 지니 우드. 알래스카에서 핵실험을 시도했던 채리엇 프로젝트를 중단시킨 생물학자 빌 프루이트. 맥킨리 산 등반에 성공한 후 영원히 이 산에 자신의 삶을 묻어야 했던 엘튼 테일러. 전설적인 부시파일럿 돈 셸든. 알래스카 원주민조차 포기한 야생의 삶을 선택한 캔트너 일가. 아무도 돌보지 않는 묘지를 관리하며 살아가는 밥. 백인을 향한 증오를 딛고 백인 여성과 결혼한 알 스티븐스. 베트남 참전용사인 윌리. 조상들처럼 고개에게 운명을 맡긴 에이모스..
그가 걸었던 알래스카 대지와, 그가 만났던 사람들, 알래스카 자연의 이야기...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호시노 미치오
'노던라이츠'
호시노 미치오 글, 사진 / 김옥 옮김
청어람미디어
2009년 4월 7일 화
호시노 미치오..
우연한한 계기로 인해 처음으로 알래스카라는 지역에 대해 알아볼 일이 생겼었다.
의외로 알래스카에 관한 책이 없어서 어떤 책을 볼까 고민하다가 별 기대 없이 집어든 책이 '알래스카 바람같은 이야기'였다. 이렇게 운명이라는 것은 우연이라는 탈을 뒤집어쓰고 나타나나보다..
사실.. 굉장히 인상에 남았던 책임에도.. 내용이 완벽하게 기억에 남지는 않는다..
하지만 '알래스카 바람같은 이야기' 속의 알래스카 풍경은.. 아직도 눈 앞에 있는듯 생생하다.
호시노 미치오는 영혼으로 알래스카를 사랑했고, 알래스카를 우러러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의 글 뿐만 아니라 그의 사진만 봐도 알 수 있다.
그의 글을 읽노라면 알래스카 에스키모인의 시선으로 알래스카를 바라볼 수 있었고, 그러한 시선으로 본 알래스카는 인간의 이기가 아닌 자연 본연의 모습으로 온화하게 머물러 있었다.
그의 사진 중에 얕은 강에 언제 자연으로 돌아갔는지 알 수 없는 카리부의 뿔 두개가 한데 엉켜있는 모습이 있었다. 두개의 뿔은 누가 일부러 그렇게 두려고 해도 할 수 없을만치 엉켜있어서 도저히 떼어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마음을 잔잔하게 울리는 많은 사진 가운데 그 사진이 기억에 진하게 남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연과 한데 뒤엉키고 싶은 나의 바램이었을까..
다른 구절은 생각이 안나는데, 분명하게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
그는 카리부 떼가 이동하는 것을 찍기 위해 무리들을 찾아다닌다. 그렇다고 카리브 떼에 목을 메어 쫒아다니는
그런 맹목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비록 카리브 떼를 만나지 못하게 된다 하여도 그저 알래스카의 자연 속 광활한 알래스카 대지에 서서 자연을 바라보는 것 자체로도 감사할줄 아는 소소한 사람이었다.
하루는 그가 카리브 떼를 찾아 알래스카를 돌아다니다가 카리브 떼를 만나지 못하고 대지에 누워 아름다운 알래스카의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신비로운 대지의 흔들림과 함께 거대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카리부 떼였다. 다음을 기약하던 시점에 우연히 카리부 무리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는 이처럼 다시보기 힘든 광경을 사진 속으로 담을것인가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길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카메라를 놓고 대지에 누워 카리브떼가 지나가는 장관을 마음속의 사진첩에 담아두기로 하였다. 가끔은 인간이 만들어낸 기계가 아닌 마음 속의 기억으로 남기고 싶은 순간이 있는 법이었다.. 그 당시 그의 마음이 어땠을지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 일화를 읽으며 호시노 미치오라는 사람에 대해 또 한번 생각을 했다.
과연 내가 그 순간에 있었다면.. 난 어떻게 했을까?
캐나다에 있었던 때가 생각난다. 하늘은 어두컴컴해지고 오로지 거리의 조명과 달빛만이 대지를 비추고 있었을 때 난 그 아름다운 광경을 어떻게든 남기고 싶었다. 하지만 내 카메라는 그때 그 아름다움을 담아낼 수 있을만큼 좋은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사진에 담아보겠다고, 연신 카메라 렌즈에 눈을 들이댔었다. 그렇게 카메라에 아름다움을 담아내고자 집착했기에 내 마음 속의 사진첩에는 기억들이 없다.
물론 몇장의 사진이 남아있긴 하지만 난 그 야경이 생생하게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내가 만약 그와 같이 가만히 카메라를 가방에 놔둔채 그 밤의 아름다움을 눈으로, 마음으로 담아냈다면 어땠을까?
" (...) 간혹 단 한 마리의 카리부도 보디 못한 채 돌아온 적도 있었다. 그렇다고 실망하지는 않았다. 알래스카의 자연이 내겐 감동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기다렸던 거대한 카리부 떼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이 아름다운 대지는 가슴이 뜨거워지는 환희로 나의 동경을 채워주곤 했다. (...) 인간의 기척을 태초부터 용납하지 않은 알래스카는 인류에게 남겨진 마지막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21세기가 목전에 다가왔지만, 이곳을 지배하는 힘은 자연의 리듬이다.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광경을 보고 싶었기에 나는 이 얼어붙은 땅을 헤맸던 것이다."
-알래스카는 누구의 땅인가 중
그의 이야기들은 이렇게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직설적으로 풀어내는 자기개발서와는 다르다. 그의 글을
읽으며 스스로 나를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알래스카 바람같은 이야기'를 읽고, 난 당연한 순리인 것처럼 그의 다른 저서들을 찾았다. 안타깝게도
학교 도서관에 있는 그의 책들은 몇 없었다. 그 중 나는 '노던라이츠'라는 책을 찾아 손에 꼭 쥔 채
집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바람같은 이야기'를 읽었을 때의 감동을 놓치고 싶지 않아 이렇게 글로 나의 마음을,
기억을 저장하고자 한다..
"중국에 이런 속담이 있어. 아무리 여행길이 길어도 시작은 첫걸음부터다... 우리에게도 첫걸음은 있었어.
알래스카까지 날아가고 싶다는 동경이었다. 동경이라기보다는 확신이었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계속
생각한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꿈이 이루어진다는 걸 그때 알았어. (...)
-알래스카의 하늘 중 셀리아의 이야기
'노던라이츠'는 '알래스카 바람같은 이야기'와는 조금 다르다. 조금 더 알래스카의 현실에 대해, 과거의
일들에 대해 그리고 알래스카 역사의 한 획을 그엇다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의 삶을 면밀히 이야기해준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처음으로 알래스카의 과거에 대해 알게 되었다. 미개척지로 자연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던 알래스카가 미국에 의해, 다른 나라의 개척자들로 인해 핵실험의 무대가 되기도 하고, 토지소유권 문제로 분쟁 속에 휘말리기도 하고, 새로운 세대의 젊은 에스키모인들에게 변화되고 있는 알래스카와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알래스카 사이에서 혼돈을 겪게한다.
어느날 갑자기 항구를 만들기 위해 알래스카 북서 해안의 케이프 톰슨 지역으로 에드워드 텔러 일행이 찾아왔다. 명목상으로는 항구를 위해서지만 사실상 그들은 원폭, 즉, 핵 실험을 하기 위해서 이곳을 찾은 것이었다. 지금이야 핵폭발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 후폭풍은 또 얼마나 두려운지 모두가 알고 있지만, 그 당시에만 해도, 특히 알래스카 원주민들에게 방사선이니 뭐니 하는 것들은 낯선 것들일 뿐이었다. 미국원자력위원회에서 알래스카를 실험지로 선정하게 된 후 거대한 폭풍이 알래스카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알래스카에서의 조용한 싸움이 시작하게 된 것이다.
케이프 톰슨 지역은 포인트 호프 마을에서 불과 30킬로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라는 것 뿐 아니라 에스키모인들에게는 자연이 선사해주는 생활의 터전이자 근본이었다. 바로 그곳에서 핵폭발 실험을 하고자 했던 것이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조차 알지 못하던 사람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지금까지의 그들의 인생이 뿌리채 흔들리게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닳게 되었다. 이 소설을 읽다보면 지니와 셀리아, 빌 플루이트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특히 지니와 셀리아는 '바람같은 이야기'에서도 많이 언급이 되던 여성들이다. 그들은 알래스카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영웅이자 알래스카를 사랑한 평범하고 모험적인 사람들이다. 그들과 포인트 호프의 마을사람들은 조그만한 반향을 일으키며 핵실험을 반대하는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자연보호단체들 조차도 원자력위원회의 압력에 의해 핵실험에 대한 이야기조차 꺼내지 못하던 때였다. 그들을 보호하려고 하는 곳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끊임없이 자연을, 그들의 터전을 보호하고자 노력했고, 결국 한달을 앞두고 핵실험은 좌초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로인해 그 누구보다 알래스카를 사랑하고, 이해하던 야외생물학자 빌은 알래스카에서 추방당하고, 평생 잊지못할 마음의 상처를 안은 채 알래스카를 떠나야만 했다.. 이렇게 알래스카가 문명에 부딫히며 많은 변화들이 생기고 있다..
"잠깐 기다려줘.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당신들이 말하는 자연보호와는 조금 다르다구. 우리는 계절을 좇아
이동하는 카리부를 사냥해야 해. 카리부는 우리의 일부야. 당신들처럼 보고 즐기기 위해 알래스카가 필요한 게 아니라고. 알래스카는 우리에게 존재 그 자체야."
-고뇌하는 구친 인디언 중
호시노 미치오가 정말 보고싶어했던 인물이 있다. 그의 이름은 돈셸든.. 맥킨리 산의 한 시대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전설적인 부시파일럿이다. 하지만 그는 안타깝게도 1975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위대한 부시파일럿이 되기 위해서는 비행기술만 뛰어나서는 안된다. 비행기술은 기본이고, 자신의 비행기에 올라탄 모든 종류의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손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뿐 아니라, 그가 알래스카에서 무엇을 찾고 있는지도 정확히 꿰뚫어볼 수 있어야 한다. (..) 단순히 손님을 실어 나르는 것이 전부라면 굳이 돈 셸든을 찾아가지 않아도 된다. (..) 돈 셸든은 진심으로 알래스카를 사랑했다. (...) 돈 셸든이 위대한 이유는 산과 하늘이라는 무기질의 세계를 휴머니즘의 세계로 바꿔놓았기 때문이야. 그가 있었기에 맥킨리도, 맥킨리의 하늘도 낭만적일 수 있었어"
-전설의 로지, 캠프 데날리2 중
그가 묘사하는 돈 셸든은 정말 너무나도 매력적인 사람이다. 그가 운전하는 비행기를 탈 수 있다면 아니 만약에 탔다면, 나도 호시노 미치오처럼 알래스카의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게 되어 알래스카를 잊지 못하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비행기 안에서 그를 통해 맥킨리의 낭만적인 하늘을 보고 싶어진다..
호시노 미치오는 이처럼 알래스카를 사랑하고, 알래스카를 사랑하는 이를 사랑하며 본받을 줄도 아는 진정한 사람이었다..
"시대가 변했어. 우리 생활도 백인들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어.. 이제와서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지금도 우리에겐 사냥이 중요해. 새로운 생활은 새로운 생활대로 받아들이고, 옛날 방식은 옛날 방식대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
" 인간의 삶이 직선으로 나 있는 레일 위를 달려 목표했던 지점에 도착하는 것이 아니듯, 인류의 여행 또한 갖가지 폭풍에 노출될 수 밖에 없다. 폭풍 속에서 풍향계를 확인하며 한 걸음씩 나가는 것이 인생이다. 보이지 않는 항구를 찾아 여행하는 것이 인생이다"
-고뇌하는 구친 인디언 중
"어떤 싸움도 100퍼센트 승리를 장담하지 못해. 시대는 계속 움직이고, 인간은 그 움직임에 발을 맞추면서 그때그때 옳다고 생각되는 선택을 내려야 하니까..."
-알래스카는 누구의 땅인가 중 셀리아의 말
세월은 변한다. 시대도 변한다. 사람 개인개인이 살아가는 모습도 변한다. 언제나 변화를 추구하고, 편리를 추구하는 인간들이 있기에 이와 같은 사실은 거부할 수 없다. 사람들은 모두 오늘같은 시대에 단순히 옛날의 모습만을 추구하고, 원한다면 언젠가는 도태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좋던 실던 자의가 아닌 타의로 모든건 변하게된다. 아무리 변하지 않기를 간절히 원하고, 노력한다 하더라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아주 조금씩 슬금슬금 모든 것이 변해서, 어느 순간에 내가 알던 곳이 아닌 다른 장소에 있는 나를 깨닫게 될 것이다. 물론 나도 옛것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의 사람이다. 극심한 자연보호주의도 아니고, 문명보호주의자도 아니긴 하지만 옛것의 소중함을 알고, 옛것을 지키며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 미덕이라는 것을 안다.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부분 만큼만 인간이 사용한다면 좋겠지만 이미 인간은 자연을 내버려두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빠르게 침범하고 있다. 이미 방아쇠는 당겨진 것이다. 우리는 먼 옛날의 정신을 잃지 않고, 한걸음씩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앞으로 전진할 수 밖에 없다. 인생이란 것이 각본처럼 대본처럼 모든게 짜여진대로 움직이는 것이라면, 인생은 너무 시시해질 것이다. 알 수 없는게 인생이기에, 우리가 하는 만큼 작용하는 것이 있기에 인생은 흥미로운 것이고, 다이나믹한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인생을 아름답게 꾸며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두려움이라는 감각이야. 구친 인디언에게 두려움은 굶주림이었어. 물론 옛날 얘기지. 지금은 약간 달라졌어. 지금은 자연을 제일 두려워해. 자연이 사라지면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니까..."
-미래를 내려다보는 신비한 힘 중 링컨 트리트의 말
(...) 그러나 나는 머나먼 자연의 소중함을 믿는다. 알래스카는 머나먼 자연이다. 이곳에는 우리의 일상에서 흔하게 볼 수 없는 자연이 숨 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평생 단 한 번도 알래스카 땅을 밟아보지 못한다. 그렇기에 알래스카는 그들에게도 소중한 땅이다. 그들이 지켜야 하는 땅이다. 지구 어딘가에 태초의 모습이 아직 남아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우리의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곳이 있다면, 그곳이 바로 알래스카다. 알래스카는 눈으로 보는 자연이 아니다. 인간이 영혼으로 찾아가는 머나먼 자연이다.
-알래스카는 누구의 땅인가 중
나는 인간이 자연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연을 무시하고, 인간들의 편리를 위해 파괴만을 일삼는다면 언젠가 자연은 인간들에게 고스란히 그 아픔을 다시 전달할 것이라고 믿는다. 이미 자연은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더 이상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말라고.. 뒷감당을 할 준비는 되어 있냐고.. 자연을 파괴하는 것은 일순간이지만, 파괴된 자연을 회복하는 데에는 억겁의 시간이 필요하다. 호시노가 '노던라이츠'를 썼던 당시와 지금은 또 한참이 다를 것이다. 알래스카가 간직하고 있던 태초의 모습이 아직까지 변치않고 있을지 모르겠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변화의 폭풍 속에 살아가고 있을 알래스카는 그동안 또 다른 어떤 아픔과 직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을 썼을 당시 셀리와 지니의 나이가 여든이었다. 알래스카를 사랑했고, 일생을 알래스카와 함께한 그녀들이 아직도 알래스카에서 지나간 과거를 회상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아니면 그녀들도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였을지도 모르겠다..
어느날 밤, 우리는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나중에 네 아이들이 다른 세계가 궁금하다고 하면 일본으로 보내. 내가 돌봐줄 테니까.."
"네 아이도 다른 세계가 궁금하다고 하면 포인트 호프로 보내. 같이 고래를 사냥하러 갈 테니까."
정말 그런 때가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지금 우리들이 한 이야기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생각만으로도 더없이 기뻤다.
-고래와 함께 사는 젊은 에스키모 중 호시노와 에이모스의 대화
(...) 언제부턴가 다 같이 여행하자는 이야기를 계속 해왔다. 우리에겐 '약속의 강'이 있었다. (...) 아련하기만 했던 마음속의 강이 지도 위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 '쉰예크'는 셀리아와 지니에게 '마지막 강'이 될 것이다. 알래스카의 개척시대를 가장 치열하게 달려온 두 여성의 마지막 모험이 '쉰예크'에서 시작되려는 것이다.
-극북의 벌판을 흐르는 '약속의 강'을 여행하자 중
어쩌면 '쉰예크'는 정말 호시노의 마지막 강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1996년 8월 8일 그는 쿠릴 호반에서 취침 중에 불곰의 습격을 받아 사망했다. 그는 그 당시 43세였다. 그의 사망에 대해 알게된 것은 '바람같은 이야기'에서 그의 모든 이야기가 끝나갈 즈음 그의 사망 소식을 알리는 몇줄의 글로 인해서였다. 나도모르게 울컥 눈시울이 붉어졌다. 2009년인 현재 까지도 쌩쌩히 알래스카 곳곳을 누비며 카리부 떼를 찾아, 자연의 아름다움을 찾아다니고 있을거라 생각했던 그가 결국에는 그가 사랑해 마지않던 알래스카에서 그가 사랑하던 야생동물에 의해 자연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그를 전혀 알지 못하는 나였지만 그의 사망을 접했을 때는 적잖이 충격에 휩싸였다. 20년간 알래스카를 누비며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했던 그가 결국에 자연으로 돌아갔구나.. 아직 이렇게 젊은데.. 알래스카는 그렇게 또 한명의 위인을 잃었다. 하지만 그는 슬프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인생을 받쳤던 알래스카에서 알래스카에 의해 알래스카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그는 분명 알래스카의 영혼으로 남아, 알래스카를 사랑하게 되어버린 사람들에게 또 다른 영혼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카리부 떼와 함께 광활한 대지를 달리고 있을 것이다..
이 사진은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사진이라고 한다.. 불곰이 그의 텐트를 습격했을 때 그는 절제절명의 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생의 끈을 잡고자 도망치려고 아둥바둥하는 대신 알래스카에서의 또 다른 삶을 위해 사진기를 들고 마지막 사진을 남겼다고 한다. 그는 진정 그 누구보다도 알래스카를 사랑했고, 자연에 순응할줄 아는 진정한 사진가였다.
호시노의 글을 읽으면 읽을 수록 알래스카는 도대체 어떤 곳이야?라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어떤 곳이기에 이렇게 사람들이 알래스카를 사랑하게 되는걸까? 나도 알래스카에 가보고 싶어진다. 셀리아와 지니가 가장 그리운 장소라고 지목한 '맥킨리국립공원'에도 가보고 싶고, 그녀들이 가꿔놓은 캠프 데날리에서 자연 속에 하나가 되어 잠을 청해보고 싶고, 호시노가 몇년이고 쫒아다녔던 카리부 떼도 보고 싶다. 그의 글엔 알래스카를 향한 열정이 생기도록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나는 곧 그의 흔적을 찾아 그의 다른 책들을 찾아볼 것이다. 그렇게 그곳에서 또 그의 기척을 느끼고, 알래스카를 느끼고 싶다.
알래스카 최초의 여성 파일럿이자 환경운동가였던 셀리아 헌터와 지니 우드. 알래스카에서 핵실험을 시도했던 채리엇 프로젝트를 중단시킨 생물학자 빌 프루이트. 맥킨리 산 등반에 성공한 후 영원히 이 산에 자신의 삶을 묻어야 했던 엘튼 테일러. 전설적인 부시파일럿 돈 셸든. 알래스카 원주민조차 포기한 야생의 삶을 선택한 캔트너 일가. 아무도 돌보지 않는 묘지를 관리하며 살아가는 밥. 백인을 향한 증오를 딛고 백인 여성과 결혼한 알 스티븐스. 베트남 참전용사인 윌리. 조상들처럼 고개에게 운명을 맡긴 에이모스..
그가 걸었던 알래스카 대지와, 그가 만났던 사람들, 알래스카 자연의 이야기...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곰아', '여행하는 나무', '그리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