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솔로를 보면 저마다 위로의 말을 던지곤 한다. “짚신도 짝이 있다잖아.” 그 말을 믿고 목놓아 기다리다 보면 운 좋게도(?) 정말 짚신이 나타나기도 한다. 백마 탄 왕자와는 거리가 멀지만 딱 나만한 사람이기에 이 사람이 내 짝이구나 싶다.
글/ 젝시라이터 임기양
저..정말, 당신이 내 짝?
아직은 짚신을 거부하고 싶다!
하지만…마음 한 구석 밀려오는 부족함은 어쩔 수 없다. 사실 내 수준에 이 정도면 됐지, 내 짚신이려니 하지만 이 초라해 보이는 짚신 대신 때깔 나는 명품구두를 신고 싶은 그 마음, 누가 알랴. 그러나 이런 속내를 함부로 드러내기도 힘들다. 외로웠던 나날에 간만에 날아온 짚신 한 짝을 보면서 사람들은, “이제야 네 짝을 만난 거네! 축하해~”라며 난리들이다. 저마다 잘 어울린다며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을 하기도 한다. 물론 자신의 짝이 아님을 다행으로 여기면서 말이다. 이럴 때면 당사자는 씁쓸한 여운 때문에 가슴 한 구석이 아릿하다. ‘결국 내 운명은 이 정도?’
신데렐라나 캔디급은 아니더라도 조금은 이상형에 가까운 남자를 만나기를 바랬는데 결국 현실에 타협하는 기분. 그래서 등 떠밀려 내 짝이라는 짚신을 울며 겨자 먹기로 신어야 하는 그 심정.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다. 그나마 운 좋은 누군가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짚신을 떡 하니 꿰차기도 한다. 물론 그녀 역시 레벨이 맞기 때문에 구한 짝이긴 하지만.
끼리끼리 운명은 No~
사람들은 뭐가 그리 불만이냐고, 이제야 제 짝을 만났는데 왜 불평이냐고 할 지도 모른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렇게 맞는 사람을 만나기도 힘든 판에 뭐가 또 아쉬워서 그러는지 당사자 스스로도 답답한 노릇이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사람에겐 기대치가 있다. 그 기대치마저 포기해야 할 때는 현실을 잘 알아서도, 내 주제를 알아서도 아니다. 단지 현실과 타협하는 것! 내 인생은 드라마도, 영화도, 그 어떤 판타지도 아니므로 이상형만 줄기차게 기다리다보면 엔딩이 가까워져 온다. 그러니 적당한 내 ‘짝’에 눈을 돌리고 그나마 그 짚신이 마지막 신발이길 바라며 종지부를 찍는 것이다. 이럴 때 사람들의 “짚신도 제 짝이 있다더니~”라는 말들은 위로가 아닌 비아냥으로밖에 들리질 않는다. ‘그래, 끼리끼리 만나니 잘 만났다고 하겠지.’ 남들은 짚신들의 만남에 운명이라 하겠지만, 정작 당사자는 이 운명을 저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녀들의 등을 떠밀지 마시오!
만약 짚신을 내 손으로 벗어 버린다면 사람들은 또 말할 지 모른다. 제 복을 제가 찬다고. 그 짚신이 정말 내 운명에 최고의 복이었다고 치자. 하지만 그런 복을 거부했다면 그 복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조금은 더 기다리고픈 마음, 그냥 타협하고 싶지 않은 마음, 사랑에 대한 기대감을 버리지 않는 그 마음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자신은 B급이라 해도 동급으로 만나 끼리끼리 살 바엔 차라리 오르지 못할 나무일지언정 A급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 여자 마음이다. 등 떠밀리듯이 짚신을 만나서 훗날 허하고 부족한 심정 되씹을 바에야 차라리 언감생심이라도 더 나은 짝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니, 짚신도 제 짝이 있다며 솔로인 ‘그녀들’에게 강요하지는 말자. 아무리 제 짝이라 들이밀어도 당사자가 싫다면 항우장사도 못 말리는 범. 아직 현실과 타협할 마음이 없는 그녀들을 그냥 지켜봐 주자. 언젠가는 현실로 돌아와 짚신을 만나든, 아니면 소원대로 명품구두를 신든 그건 당사자가 겪어낼 몫이므로.
그녀가 짚신을 거부하는 이유
사람들은 솔로를 보면 저마다 위로의 말을 던지곤 한다.
“짚신도 짝이 있다잖아.”
그 말을 믿고 목놓아 기다리다 보면 운 좋게도(?) 정말 짚신이 나타나기도 한다. 백마 탄 왕자와는 거리가 멀지만 딱 나만한 사람이기에 이 사람이 내 짝이구나 싶다.
글/ 젝시라이터 임기양
저..정말, 당신이 내 짝?
아직은 짚신을 거부하고 싶다!
하지만…마음 한 구석 밀려오는 부족함은 어쩔 수 없다. 사실 내 수준에 이 정도면 됐지, 내 짚신이려니 하지만 이 초라해 보이는 짚신 대신 때깔 나는 명품구두를 신고 싶은 그 마음, 누가 알랴.
그러나 이런 속내를 함부로 드러내기도 힘들다. 외로웠던 나날에 간만에 날아온 짚신 한 짝을 보면서 사람들은, “이제야 네 짝을 만난 거네! 축하해~”라며 난리들이다. 저마다 잘 어울린다며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을 하기도 한다. 물론 자신의 짝이 아님을 다행으로 여기면서 말이다. 이럴 때면 당사자는 씁쓸한 여운 때문에 가슴 한 구석이 아릿하다. ‘결국 내 운명은 이 정도?’
신데렐라나 캔디급은 아니더라도 조금은 이상형에 가까운 남자를 만나기를 바랬는데 결국 현실에 타협하는 기분. 그래서 등 떠밀려 내 짝이라는 짚신을 울며 겨자 먹기로 신어야 하는 그 심정.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다. 그나마 운 좋은 누군가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짚신을 떡 하니 꿰차기도 한다. 물론 그녀 역시 레벨이 맞기 때문에 구한 짝이긴 하지만.
끼리끼리 운명은 No~
사람들은 뭐가 그리 불만이냐고, 이제야 제 짝을 만났는데 왜 불평이냐고 할 지도 모른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렇게 맞는 사람을 만나기도 힘든 판에 뭐가 또 아쉬워서 그러는지 당사자 스스로도 답답한 노릇이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사람에겐 기대치가 있다. 그 기대치마저 포기해야 할 때는 현실을 잘 알아서도, 내 주제를 알아서도 아니다. 단지 현실과 타협하는 것!
내 인생은 드라마도, 영화도, 그 어떤 판타지도 아니므로 이상형만 줄기차게 기다리다보면 엔딩이 가까워져 온다. 그러니 적당한 내 ‘짝’에 눈을 돌리고 그나마 그 짚신이 마지막 신발이길 바라며 종지부를 찍는 것이다.
이럴 때 사람들의 “짚신도 제 짝이 있다더니~”라는 말들은 위로가 아닌 비아냥으로밖에 들리질 않는다. ‘그래, 끼리끼리 만나니 잘 만났다고 하겠지.’ 남들은 짚신들의 만남에 운명이라 하겠지만, 정작 당사자는 이 운명을 저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녀들의 등을 떠밀지 마시오!
만약 짚신을 내 손으로 벗어 버린다면 사람들은 또 말할 지 모른다. 제 복을 제가 찬다고. 그 짚신이 정말 내 운명에 최고의 복이었다고 치자. 하지만 그런 복을 거부했다면 그 복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조금은 더 기다리고픈 마음, 그냥 타협하고 싶지 않은 마음, 사랑에 대한 기대감을 버리지 않는 그 마음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자신은 B급이라 해도 동급으로 만나 끼리끼리 살 바엔 차라리 오르지 못할 나무일지언정 A급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 여자 마음이다. 등 떠밀리듯이 짚신을 만나서 훗날 허하고 부족한 심정 되씹을 바에야 차라리 언감생심이라도 더 나은 짝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니, 짚신도 제 짝이 있다며 솔로인 ‘그녀들’에게 강요하지는 말자. 아무리 제 짝이라 들이밀어도 당사자가 싫다면 항우장사도 못 말리는 범. 아직 현실과 타협할 마음이 없는 그녀들을 그냥 지켜봐 주자. 언젠가는 현실로 돌아와 짚신을 만나든, 아니면 소원대로 명품구두를 신든 그건 당사자가 겪어낼 몫이므로.
* 사진출처/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