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한국교회의 효율·성장·성공의 DNA를 그대로 이어받은 한국 정통 기독교 신자이다.
그는 한국교회의 표본이다. 그의 말과 생각에 한국교회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
그러므로 이명박 대통령의 평가는 곧 한국교회의 평가와 다르지 않다. 그런 면에서 한국교회의 현실을 보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모습을 살펴보려고 한다.
첫째, 한국교회는 거대주의·성장주의·성공주의에 매몰해 있다.
벌써 상당한 세월이 흘렀지만 한국교회는 세계 50대 교회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그중 10위 안에 3개가 들어있다. 지금도 별반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우리나라가 세계에 내 놓을 수 있는 대표적인 것 중에 하나가 거대교회이다.
한국교회는 경제의 호불호를 불문하고 세계 최대가 되었다. 부흥이라는 이름 아래 한국교회의 말할 수 없는 성장주의와 성공주의에 침륜해 있다. 큰 것이 옳고 선하다는 잘못된 생각이 우리를 세뇌시키고 있다.
양적 성장이 결코 모든 허물을 덮지 못한다. 규모 앞에 고개를 숙인 목회자들, 기를 펴지 못하는 목회자들이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핍박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적 기득권으로 인정받는 시대에 성공은 무시무시한 독이다. 목회의 모든 것을 효율과 성장, 성공에 맞추고 있다면 과연 진정한 기독교가 그 안에 존재할 수 있을까?
이명박 대통령은 모든 것을 제켜두고 거대주의와 성장주의와 성공주의에 몰입하고 있다. 거대와 성장과 성공을 상대화시킬 그 어떤 것도 그 앞에는 없다. 오직 경제 제일주의와 성장주의에 매몰되어 있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의 모습과 이명박 대통령의 모습이다.
둘째, 오늘 한국교회는 무엇보다도 이원론적 신앙으로 가득 차 있다.
영과 몸을 분리하고 교회와 사회를 분리하고 현세와 내세를 분리하는 이원론에 빠져있다. 헬라 사상의 핵심인 이원론이 무서운 이단임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그것이 이단적인 사상인지도 모르고 영·교회·내세 중심적으로 세계를 보려고 한다. 이원론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도 거의 목회자들은 이원론에 젖어 있는지도 모르는 목회자들이 많다.
이 대통령은 이원론적인 신앙인의 전형이다. 그는 인간 내면 중심적인 신앙에 매몰되어 있어 세계와 신앙을 연결하지 못하고, 현재와 미래를 함께 볼 줄 모르는 신앙에 갇혀 있다. 그는 현재의 문제를 성경적 시각에서 전혀 볼 줄 모르는 색맹이다.
셋째, 한국교회는 탈역사적이고 비윤리적이다. 기독교 신앙은 철저하게 역사적·윤리적이다.
혹 이런 말을 하면 기독교 신앙은 윤리가 아니라고 대꾸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 기독교 신앙은 윤리가 아니다. 기독교 윤리는 회개한 사람들이 예수님께 순종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예수 없이 따로 윤리를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러나 아무리 믿음이 있더라도 행함이 없고 열매가 없으면 그것은 죽은 믿음이다.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약 2:16) 한국교회는 역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말로는 하나님이 이 세계의 통치자라고 하면서 역사는 하나님 없이 제 갈 길로 가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은 역사 속에 참여하시는 하나님이다. 예수님의 성육신은 하나님의 세계 긍정이요, 역사 참여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국교회의 이러한 탈 역사적이고 비윤리적인 생각을 그대로 닮았다.
그는 역사의식이라고는 조금도 없다. 기껏, '서울시를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라는 신정론적인 언어는 구사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무엇을 추구하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하나님나라는 생명의 나라다. 하나님나라는 죽음이 가득한 이 땅의 모든 것을 '살리는' 나라다. 이명박 대통령은 생명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과 같다. 역사 도피주의와 비윤리성으로 충만한 한국교회를 본받은 이명박 대통령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기본적이고 인문학적인 관심조차 없다.
넷째, 한국교회가 가난한 자, 약한 자의 편을 들지 않고 기득권의 편에 서 있듯이 이명박 대통령은 철저하게 가난한 자들을 외면하고 약한 자들을 무시한다.
성경을 아는 기독교인의 본능은 모름지기 가난한 자의 편에서 울고 웃는 것이라는 것쯤은 성경 상식이다.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느니라.'(잠 14:31) 기독교는 가난한 자들의 종교다. 물론 부자들에게 복음이 필요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기독교는 이 땅에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은 들어서자마자 기득권자들의 편에 서서 기득권자들을 위해 지금까지 모든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기업 프렌들리(friendly)로 시작해서 어떻게 하면 경제가 잘 될 것인가에 대해서만 오로지 부심하고 있다. 용산참사만 해도 그렇다. 그것도 사람이 여섯 명이나 죽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없는 자들에게 짐을 지우고 그들을 정죄하기에 바쁘다. 그렇게 된 사회경제적 구조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기득권자들의 옹호와 반정부적인 사람들을 좌파로 몰고, 경제제일주의에만 집착하고 있다.
다섯째, 한국교회의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는 가족주의, 파벌의 문제다.
예수님께서는 혈연·지연·학벌·남녀·빈부귀천의 차이를 버리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파벌로 얼룩져 있다. 총회장 선거부터 신학교 총장, 담임목사 선거, 장로권사를 뽑는 데까지 가족주의가 횡행하고 있다.
예수님이 거부하신 가족주의가 기독교회 안에 판을 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러한 한국교회의 풍토에서 자라난 사람이다.
그는 서슴없이 이 땅에 가족주의를 조장하며 에스(S)라인, 고소영 등의 유명한 말들을 만들어냈고 역대 그 어느 대통령보다 자기 고향 경상도를 중심으로 사람을 기용하고 있다. 이 어찌 기독교의 장로가 할 일인가.
교회는 장로가 성경적으로 정치하도록 감시해야 한다
교회는 장로가 성경적으로 정치하도록 감시해야 한다. 구약에 보면 참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가 나온다. 성경에 나타난 거짓 예언자는 항상 왕의 편이요, 통치자의 편이었다. 왕의 보호자였다. 하지만 참 예언자들은 당시 이스라엘의 위기 상황에서도 '괜찮다 괜찮다 하나 어디가 괜찮은가!'라고 말했다(렘 6:14). 이와 같이 참 예언자는 왕의 실정과 위기 상황에 대해서 '괜찮지 않다'고 외쳤다.
한국교회 목사들은 거짓 예언자인가?
보수주의자는 성경을 보수해야지, 왜 행동을 보수적으로 하는가. 성경을 보수한다는 것은 성경을 있는 그대로 실천한다는 말이다. 목사들은 신구약 성경에서 증언하는 예언자 전통·예수 전통으로 돌아가라. 진정으로 하나님나라를 바라고 그분의 말씀을 따르는 혁명적인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독일 신학자들이 언젠가 '예수님의 산상수훈으로 정치를 실현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가지고 논쟁한 적이 있다.
한국교회는 개인적이며 실존적 신앙과 경건주의 신앙에 몰입하다보니 사회의 현실에 무감각할 뿐만 아니라 무관심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우주적이고 역사적이며 세계적인 하나님이시다. 크리스천 통치자는 이 점을 명심하고 하나님의 법을 이 땅에 실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한국교회가 장로가 대통령이 되기를 그렇게 원했다면 장로가 성경적으로 정치하도록 예언자처럼 감시하고 채찍질해야 한다.
장로 대통령이라고 교회가 두둔하기에 앞장선다면 보편적 상식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옹호하는 세력으로 전락한다는 것은 한국교회에 큰 누를 끼치는 것이다.
장로 대통령이 성경적 관점을 가지고 모든 백성들에게 칭찬(행 2:47)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좋은 평신도 지도자가 나오도록 교회가 먼저 변화해야 한다
교회는 믿음이 깊든 얕든, 직분을 가지고 있든 없든 다니고 있는 교회의 여러 가지 모습에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우민정책과 형식주의, 거대주의, 권위주의를 만들어 내면서 성경적 정체성과는 거리가 먼 집단이 되었다. 형식주의적 교인을 양산하고 있다.
피상적인 교인을 양산하고 있다. 교회는 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온갖 아양을 떨고 있다.
아론의 금송아지를 숭배하고 있다. 교회 안에서 물질주의가 팽배하고 있다.
파스칼은 '나는 신음하는 자만을 인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교회는 진리를 찾아 나서는 자이고 그 진리가 진주와 같아서 기뻐하면서 모든 것을 다 팔고 따르는 자들의 모임이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피상성으로 얼룩져 있다.
한국교회의 비뚤어진 모습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한국교회는 진리에서 떠난 지 오래다.
그러니 거기에서 나오는 자들이 어떤 자들이겠는가.
교회는 각 분야에서 좋은 평신도 지도자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무엇보다 먼저 교회가 회개하고 변혁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희망이 없다.
교회는 하나님나라의 전시장이요 전진 기지가 아닌가.
교회가 그 대조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언제까지 이런 현실에 안주하고만 있을 것인가.
어느 교단의 비상시국 기도회에서 '이명박 정부의 출범 이후 민주주의가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용산참사·일제고사·4대강 살리기·각종 미디어 법 때문에 가난한 자, 약한 자들이 희생하고 점점 반민주화 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온통 효율, 성장주의에만 몰입하고 있다. 모든 것이 부자들의 정책으로 바뀌고 있다.
지금 이 정권은 거짓말과 진실 은폐 등 파렴치한 공화국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고 말했다.
십 년 전으로 돌아가자더니 삼십 년 전 독재정권으로 돌아가고 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남북관계는 최악의 상태로 치닫고 있다.
북한의 버릇을 고치려다가 발목을 잡힌 격이 다. 그가 대통령이 된 이후 남북문제가 진전되기는커녕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아래에서 생태·환경·사회·정치·교육 등 모든 분야가 황폐해 지고 있다.
우리는 한국교회의 대표주자인 이명박 대통령이 밉든 곱든 기도해야 할 것이다. 많이 기도해야 한다.
그래야 한국교회도 살고 이 나라도 살 수 있다. 종교선호도 조사를 보면 불교·천주교·개신교 순이다.
한국교회가 더 많이 전도하기 위해서는 백성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이 나라 백성들이 한국교회로부터 돌아선 것을 아는가 모르는가!
체제 순응적 한국교회로서는 이 땅을 개혁할 만한 세력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가 모르는가!
한국교회는 용산참사와 같은 약하고 가난한 자들의 아우성을 아는가 모르는가!
참된 교회는 그 시대 시대마다 개혁을 외쳤고 가난한 자, 약한 자 편에 서 왔는데 왜 한국교회는 기득권자들의 편들이 되었는가. 한국교회가 이 땅에 들어올 때 어려운 자들, 약한 자들의 편에 서 있었는지 아는가 모르는가!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사 58:12)
"이 어찌 기독교 장로가 할 일인가!"
이명박 대통령은 한국교회의 효율·성장·성공의 DNA를 그대로 이어받은 한국 정통 기독교 신자이다.
그는 한국교회의 표본이다. 그의 말과 생각에 한국교회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
그러므로 이명박 대통령의 평가는 곧 한국교회의 평가와 다르지 않다. 그런 면에서 한국교회의 현실을 보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모습을 살펴보려고 한다.
첫째, 한국교회는 거대주의·성장주의·성공주의에 매몰해 있다.
벌써 상당한 세월이 흘렀지만 한국교회는 세계 50대 교회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그중 10위 안에 3개가 들어있다. 지금도 별반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우리나라가 세계에 내 놓을 수 있는 대표적인 것 중에 하나가 거대교회이다.
한국교회는 경제의 호불호를 불문하고 세계 최대가 되었다. 부흥이라는 이름 아래 한국교회의 말할 수 없는 성장주의와 성공주의에 침륜해 있다. 큰 것이 옳고 선하다는 잘못된 생각이 우리를 세뇌시키고 있다.
양적 성장이 결코 모든 허물을 덮지 못한다. 규모 앞에 고개를 숙인 목회자들, 기를 펴지 못하는 목회자들이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핍박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적 기득권으로 인정받는 시대에 성공은 무시무시한 독이다. 목회의 모든 것을 효율과 성장, 성공에 맞추고 있다면 과연 진정한 기독교가 그 안에 존재할 수 있을까?
이명박 대통령은 모든 것을 제켜두고 거대주의와 성장주의와 성공주의에 몰입하고 있다. 거대와 성장과 성공을 상대화시킬 그 어떤 것도 그 앞에는 없다. 오직 경제 제일주의와 성장주의에 매몰되어 있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의 모습과 이명박 대통령의 모습이다.
둘째, 오늘 한국교회는 무엇보다도 이원론적 신앙으로 가득 차 있다.
영과 몸을 분리하고 교회와 사회를 분리하고 현세와 내세를 분리하는 이원론에 빠져있다. 헬라 사상의 핵심인 이원론이 무서운 이단임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그것이 이단적인 사상인지도 모르고 영·교회·내세 중심적으로 세계를 보려고 한다. 이원론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도 거의 목회자들은 이원론에 젖어 있는지도 모르는 목회자들이 많다.
이 대통령은 이원론적인 신앙인의 전형이다. 그는 인간 내면 중심적인 신앙에 매몰되어 있어 세계와 신앙을 연결하지 못하고, 현재와 미래를 함께 볼 줄 모르는 신앙에 갇혀 있다. 그는 현재의 문제를 성경적 시각에서 전혀 볼 줄 모르는 색맹이다.
셋째, 한국교회는 탈역사적이고 비윤리적이다. 기독교 신앙은 철저하게 역사적·윤리적이다.
혹 이런 말을 하면 기독교 신앙은 윤리가 아니라고 대꾸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 기독교 신앙은 윤리가 아니다. 기독교 윤리는 회개한 사람들이 예수님께 순종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예수 없이 따로 윤리를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러나 아무리 믿음이 있더라도 행함이 없고 열매가 없으면 그것은 죽은 믿음이다.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약 2:16) 한국교회는 역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말로는 하나님이 이 세계의 통치자라고 하면서 역사는 하나님 없이 제 갈 길로 가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은 역사 속에 참여하시는 하나님이다. 예수님의 성육신은 하나님의 세계 긍정이요, 역사 참여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국교회의 이러한 탈 역사적이고 비윤리적인 생각을 그대로 닮았다.
그는 역사의식이라고는 조금도 없다. 기껏, '서울시를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라는 신정론적인 언어는 구사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무엇을 추구하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하나님나라는 생명의 나라다. 하나님나라는 죽음이 가득한 이 땅의 모든 것을 '살리는' 나라다. 이명박 대통령은 생명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과 같다. 역사 도피주의와 비윤리성으로 충만한 한국교회를 본받은 이명박 대통령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기본적이고 인문학적인 관심조차 없다.
넷째, 한국교회가 가난한 자, 약한 자의 편을 들지 않고 기득권의 편에 서 있듯이 이명박 대통령은 철저하게 가난한 자들을 외면하고 약한 자들을 무시한다.
성경을 아는 기독교인의 본능은 모름지기 가난한 자의 편에서 울고 웃는 것이라는 것쯤은 성경 상식이다.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느니라.'(잠 14:31) 기독교는 가난한 자들의 종교다. 물론 부자들에게 복음이 필요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기독교는 이 땅에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은 들어서자마자 기득권자들의 편에 서서 기득권자들을 위해 지금까지 모든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기업 프렌들리(friendly)로 시작해서 어떻게 하면 경제가 잘 될 것인가에 대해서만 오로지 부심하고 있다. 용산참사만 해도 그렇다. 그것도 사람이 여섯 명이나 죽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없는 자들에게 짐을 지우고 그들을 정죄하기에 바쁘다. 그렇게 된 사회경제적 구조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기득권자들의 옹호와 반정부적인 사람들을 좌파로 몰고, 경제제일주의에만 집착하고 있다.
다섯째, 한국교회의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는 가족주의, 파벌의 문제다.
예수님께서는 혈연·지연·학벌·남녀·빈부귀천의 차이를 버리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파벌로 얼룩져 있다. 총회장 선거부터 신학교 총장, 담임목사 선거, 장로권사를 뽑는 데까지 가족주의가 횡행하고 있다.
예수님이 거부하신 가족주의가 기독교회 안에 판을 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러한 한국교회의 풍토에서 자라난 사람이다.
그는 서슴없이 이 땅에 가족주의를 조장하며 에스(S)라인, 고소영 등의 유명한 말들을 만들어냈고 역대 그 어느 대통령보다 자기 고향 경상도를 중심으로 사람을 기용하고 있다. 이 어찌 기독교의 장로가 할 일인가.
교회는 장로가 성경적으로 정치하도록 감시해야 한다
교회는 장로가 성경적으로 정치하도록 감시해야 한다. 구약에 보면 참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가 나온다. 성경에 나타난 거짓 예언자는 항상 왕의 편이요, 통치자의 편이었다. 왕의 보호자였다. 하지만 참 예언자들은 당시 이스라엘의 위기 상황에서도 '괜찮다 괜찮다 하나 어디가 괜찮은가!'라고 말했다(렘 6:14). 이와 같이 참 예언자는 왕의 실정과 위기 상황에 대해서 '괜찮지 않다'고 외쳤다.
한국교회 목사들은 거짓 예언자인가?
보수주의자는 성경을 보수해야지, 왜 행동을 보수적으로 하는가. 성경을 보수한다는 것은 성경을 있는 그대로 실천한다는 말이다. 목사들은 신구약 성경에서 증언하는 예언자 전통·예수 전통으로 돌아가라. 진정으로 하나님나라를 바라고 그분의 말씀을 따르는 혁명적인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독일 신학자들이 언젠가 '예수님의 산상수훈으로 정치를 실현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가지고 논쟁한 적이 있다.
한국교회는 개인적이며 실존적 신앙과 경건주의 신앙에 몰입하다보니 사회의 현실에 무감각할 뿐만 아니라 무관심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우주적이고 역사적이며 세계적인 하나님이시다. 크리스천 통치자는 이 점을 명심하고 하나님의 법을 이 땅에 실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한국교회가 장로가 대통령이 되기를 그렇게 원했다면 장로가 성경적으로 정치하도록 예언자처럼 감시하고 채찍질해야 한다.
장로 대통령이라고 교회가 두둔하기에 앞장선다면 보편적 상식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옹호하는 세력으로 전락한다는 것은 한국교회에 큰 누를 끼치는 것이다.
장로 대통령이 성경적 관점을 가지고 모든 백성들에게 칭찬(행 2:47)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좋은 평신도 지도자가 나오도록 교회가 먼저 변화해야 한다
교회는 믿음이 깊든 얕든, 직분을 가지고 있든 없든 다니고 있는 교회의 여러 가지 모습에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우민정책과 형식주의, 거대주의, 권위주의를 만들어 내면서 성경적 정체성과는 거리가 먼 집단이 되었다. 형식주의적 교인을 양산하고 있다.
피상적인 교인을 양산하고 있다. 교회는 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온갖 아양을 떨고 있다.
아론의 금송아지를 숭배하고 있다. 교회 안에서 물질주의가 팽배하고 있다.
파스칼은 '나는 신음하는 자만을 인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교회는 진리를 찾아 나서는 자이고 그 진리가 진주와 같아서 기뻐하면서 모든 것을 다 팔고 따르는 자들의 모임이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피상성으로 얼룩져 있다.
한국교회의 비뚤어진 모습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한국교회는 진리에서 떠난 지 오래다.
그러니 거기에서 나오는 자들이 어떤 자들이겠는가.
교회는 각 분야에서 좋은 평신도 지도자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무엇보다 먼저 교회가 회개하고 변혁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희망이 없다.
교회는 하나님나라의 전시장이요 전진 기지가 아닌가.
교회가 그 대조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언제까지 이런 현실에 안주하고만 있을 것인가.
어느 교단의 비상시국 기도회에서 '이명박 정부의 출범 이후 민주주의가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용산참사·일제고사·4대강 살리기·각종 미디어 법 때문에 가난한 자, 약한 자들이 희생하고 점점 반민주화 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온통 효율, 성장주의에만 몰입하고 있다. 모든 것이 부자들의 정책으로 바뀌고 있다.
지금 이 정권은 거짓말과 진실 은폐 등 파렴치한 공화국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고 말했다.
십 년 전으로 돌아가자더니 삼십 년 전 독재정권으로 돌아가고 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남북관계는 최악의 상태로 치닫고 있다.
북한의 버릇을 고치려다가 발목을 잡힌 격이 다. 그가 대통령이 된 이후 남북문제가 진전되기는커녕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아래에서 생태·환경·사회·정치·교육 등 모든 분야가 황폐해 지고 있다.
우리는 한국교회의 대표주자인 이명박 대통령이 밉든 곱든 기도해야 할 것이다. 많이 기도해야 한다.
그래야 한국교회도 살고 이 나라도 살 수 있다. 종교선호도 조사를 보면 불교·천주교·개신교 순이다.
한국교회가 더 많이 전도하기 위해서는 백성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이 나라 백성들이 한국교회로부터 돌아선 것을 아는가 모르는가!
체제 순응적 한국교회로서는 이 땅을 개혁할 만한 세력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가 모르는가!
한국교회는 용산참사와 같은 약하고 가난한 자들의 아우성을 아는가 모르는가!
참된 교회는 그 시대 시대마다 개혁을 외쳤고 가난한 자, 약한 자 편에 서 왔는데 왜 한국교회는 기득권자들의 편들이 되었는가. 한국교회가 이 땅에 들어올 때 어려운 자들, 약한 자들의 편에 서 있었는지 아는가 모르는가!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사 58:12)
* 이 글은 <복음과상황> 4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박철수 / 분당두레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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