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고통의 문제에 대한 석가모니의 이해와 통찰은 결코 완전하지 않습니다.

차윤진2009.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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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고통의 문제에 대한 석가모니의 이해와 통찰은 완전한가?  

 

 

불교가 인생을 괴로움의 과정으로 보고 일체가 모두 고통이며(일체개고) 끝없는 고해라는 보는 관념은 당시 고대인도의 노예신분제 속에서 살아가고 있던 천민들의 지옥같은 삶을 나타낸다.

 

이것은 노예주의 통속적 탐욕, 거친 정욕, 비속한 물욕, 신분제도가 이루어 놓은 엄청난 불평등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에게 무한한 고통을 주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다음으로는 당시 고대인도의 생활수준과 의학 수준의 낙후로 사망율이 높고 그들의 건강이 보장되지 못했음을 반영한다.  

 

고제학설은 실질적으로는 주로 노예제가 이루어놓은 고통을 간접적으로 반영한 것이고, 사람들이 사회와 자연이라는 이중의 압박 속에서 겪는 비통과 신음의 표현이다.

 

여기서 마땅히 지적해야 할 것은 불교의 창시자 석가모니의 인생의 본질에 대한 판단이 소극적이고 단편적이라는 점이다. 그는 생리적 고통과 사회적 고난을 동시에 말했으나, 생리적 고통을 우위에 두었다. 이것은 생리적 고통을 극대화시켜서 , 사회적 고난과 계급적 압박의 심각성을 덮어 버렸다.  

 

그는 노동자와 착취자가 모두 같은 괴로움을 가진 것으로 말했는데, 이것 또한 노예사회의 계급대립이라는 준엄한 사실을 모호하게 한 것이다. 그는 사회적 고난의 실질적인 내용을 왜곡하고, 계급적 압박과 착취가 인민의 고난의 기본원인이라는 근본적 사실을 말살해 버렸다. 요컨대 초계급적 관념과 소극적 저항사상이 고제학설의 이론적 결함이다.

 

불교는 억압을 반대하고 착취를 반대하는 투쟁과는 거리가 멀어서,결국 불교의 이론과 실천은 어둠 속에서 빛을 잃게 되었다. 불교는 인간사회의 본질과 사회생활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고 계급사회의 계급대립 현상을 분명히 알 수 없었으며, 사람들이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른바 처음부터 있어온 맹목적 생의지가 이루어 놓은 업력을 소멸시키고자 할 것이 아니라, 사회를 개조하고 자연에 적응하면서 그것을 이용하고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불교는 객관세계를 바꾸는 데는 소극적이면서, 주관세계를 변혁할 것을 강조하고 내심의 정화를 중시했다. 이것은 유심적이고 소극적인 것이며, 결국에는 실현될 수 없는 것이다.         

      

 

 

- 어느 불교 학자의 글     

 

P.S  70년대에 우리나라의 공장 노동자들이 겪은 고통은, 저 시골에서  검게 그을린 얼굴을 하고 가난하게 살아가는 농부의 삶은, 취업을 못해 알바로 생계를 겨우 유지하는 있는 지금 이시대의많은  젊은이들의 삶은, 저 아프리카에서 기아로 굶주리고 있는 어린 아이들의 삶은 그들 자신의 잘못된 집착에 의한 것이고 그들을 그렇게 만든 부유한 지배계층들은 전생에 선업을 많이 쌓아 그렇게 잘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진리에 도달한 사람들이 아니라 거짓에 도취된 사람들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