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지 추수밭>&(신천지추수밭)좁고 협착한 길이라 할지라도 그 길을 기필코 가야만 목적지에 도달할

조봉덕2009.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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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 추수밭>&(신천지추수밭)좁고 협착한 길이라 할지라도 그 길을 기필코 가야만 목적지에 도달할 수있다는것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진리

<신천지 추수밭>&(신천지추수밭)좁고 협착한 길이라 할지라도 그 길을 기필코 가야만 목적지에 도달할 수있다는것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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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예수는 믿으나 예수의 말은 믿지 않는 이상한 時代

 

한동안 아니 요즘도 거리에 나서면 흔히 접할 수 있는 볼거리가 있다. 그것은 ‘예수 믿으세요’라는 글과 장면이다. 심지어는 ‘예수 천국, 불신 지옥’ 등 차마 쳐다보기조차 민망한 글귀들이 난무하다.

뿐만 아니라 모든 종파가 한결같이 자기 종파에만 구원이 있다고 말한다. 어찌 이뿐이겠는가. 기독교 안에서도 자기 교단만이 구원의 길이 있음을 외치고 있다.

 

모르고 보고 들으면 그럴 듯하지만 알고 들으면 그 어디에도 구원은 없다. 신앙을 ‘道’라 한다. 그렇다면 신앙을 왜 길이라 할까. 그 이유는 길을 나서는 것은 목적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 목적지를 가기 위해선 그 목적지를 가기 위해 설계된 길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해진 그 길을 따라가야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리고 그 길은 넓고 좋아 많은 이가 찾는 길이 아니고, 좁고 협착한 길이라서 찾는 이가 없는 길이라고 한다. 또 좁고 협착한 길이라 할지라도 그 길을 기필코 가야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진리를 발견하게 된다.

 

이처럼 우리도 이 길을 걷노라 하며 신앙생활을 하고는 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신앙의 길이라기보다 사람의 길 즉, 세상의 목적을 두고 있음을 부인할 사람이 그리 많지 않으리라 믿는다. 신앙을 핑계 삼아 사람의 욕망을 채운다는 뜻이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음을 그 만물이 우리에게 밝히 보이고 있으니 신앙의 눈 즉, 영적인 눈과 가치관으로 이 시대를 분별(고전 2:14)해야 한다.

 

세상이 나고 석가·공자·맹자나 모든 선지자, 예언가들은 오직 한 사람을 약속했다. 하나님은 그들을 택해 보여주고 알려주고 전하게 했을 뿐 그들과 함께 하지는 않았다.

 

오직 함께한 분은 예수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죄와는 상관없는 분이기에 죄 없는 예수 외에는 그 누구와도 함께하지 않았음을 성경이 밝히 증거하고 있지 않은가. 모두가 사람에게서 나 원죄, 유전죄, 자범죄라는 죄 가운데 있으나, 예수께선 하나님의 씨로 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예수께서 초림으로 오실 때도 그 시대 신앙인들은 하나님은 믿었으나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들어 미리하신 말씀은 믿지 않았다. 결국 예수께선 답답함을 대신해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이 있는 줄 알고 성경을 상고하지만 이 성경은 내게 대해 증거했다”라는 말씀을 남기면서 “모세를 믿었다면 나를 믿었을 텐데 나를 믿지 않는 걸 보니 모세도 믿지 않는다”라고 당시 신앙인들의 무지와 오만과 강퍅함을 꼬집었다.

 

그렇게 하나님과 함께하신 예수는 공생애를 마치고 가실 때는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고, 오셔서는 누구와 함께할 것을 친히 말씀하심은 물론, 많은 사도들에게 계시를 통해 기록으로 남기게 했으니 바로 오늘날 우리가 상고하는 신약 즉, 새언약의 약속의 말씀이다.

 

오늘날도 초림 때와 같다는 말처럼, 예수는 믿으면서 예수의 말을 믿지 않는 외식하는 신앙인으로 모두가 전락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라는 말씀처럼, 입술로는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도 예수의 말은 깨닫지도 믿지도 지키지도 않으니 사실은 나를 사랑하지 않음을 미리 지적하신 것이다.

 

초림으로 오신 예수는 만국을 다스리는 철장을 받으셨다. 그 철장은 세상의 쇠 지팡이를 말함이 아니요, 아버지로부터 말씀을 받았고(요 17:8), 또 권세를 받았으니(요 17:2), 세상을 심판하는 마치 철장과 같은 말씀의 권세(요 12:48)를 의미했던 것이다.

 

그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주전 약 700년 전 시편 기자를 통해 미리 하신 예언이 이루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 약속대로 내가 마귀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받은 것처럼, 나도 마지막 날인 요한계시록 때 마귀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그에게 내가 이기고 받은 것처럼 철장 권세(계 2:26~27)를 주겠다고 했다면 그 예언은 틀림없이 이루어져 철장 권세를 받는 이가 출현해야 신약 또한 이루어질 것이 아닌가. 시대마다 주는 이가 있고, 받는 이가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해선 안 될 것은 믿음이란 기록된 예언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 있는가 하면, 그 예언이 이루어진 실체를 믿는 믿음(히 11장)이 있다. 예를 든다면 구약의 예언 속에 감춰져 있던 예수(고전 2:7~8, 골 2:2)께서 실상으로 나타나기 전에는 그 예언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 믿음이 된다.

 

하지만 그 예언이 언제까지 예언으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어 예수라는 실체가 나타났다면 예언은 이제 의미가 없고 성경대로 출현한 예수를 믿는 것이 실상의 믿음이요 온전한 믿음이요 참 믿음이 된다. 또 그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된다(요 14:24)는 이치를 깨달아야 한다.

 

오늘날도 진정 예수를 믿는다면 예수가 약속한 약속의 말씀을 믿어야 하며, 그 약속의 말씀대로 나타난 실체가 있다면, 그 실체를 믿어야 하며, 그 실체는 미리 한 예언으로 자신을 증거 할 것이므로 예언은 실상의 믿음의 증거물이 된다.

 

마치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라고 하신 말씀처럼 말이다.

 

신앙의 소망을 달성하기 위해선 이와 같이 원칙이 있고 순리가 있고 길이 있음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며, 성경은 물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성인들과 선지 예언가들은 오직 마지막 때 나타날 이 한 사람을 증거 하기 위해 보내심을 받은 종들임을 깨닫기를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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