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극복 기업 16편] 200여 년 동안 월스트리트의 구원투수로 활약 / JP모건체이스

정준2009.04.25
조회2,391

지난해 하반기부터 닥친 글로벌 금융위기로 결코 무너질 것 같지 않았던 미국 월스트리트의 쟁쟁한 투자은행들이 하나 둘 쓰러졌다. 리먼브라더스는 파산했고 메릴린치도 다른 회사에 팔리는 수모를 겪었다. 3대 투자회사로 콧대 높았던 골드만삭스도 휘청거렸다.

금융권 전체가 한치 앞도 내다 보기 어려운 때 한 금융회사만큼은 굳건히 제 몫을 해내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위기를 활용해 인수합병(M&A)에 나서는 등 한 단계 도약했다. 바로 JP모건체이스이다.


위기를 기회로 삼는 기업

미국의 대형 투자은행들이 밀집한 미국 뉴욕 파크 애비뉴. JP모건체이스(JP모건이 2000년 체이스맨해튼은행과 합병하면서 JP모건체이스로 이름을 변경함)는 이곳 270번가에 자리잡고 있다. 본사 건물 뒤쪽 바로 길 건너편에 월가의 5대 투자은행이었던 베어스턴스가 있었다. 지금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에 휩쓸려 문을 닫았다. 베어스턴스는 2008년 3월 JP모건체이스에 인수됐다. JP모건체이스는 같은 해 워싱턴뮤추얼도 인수했다. ‘월가가 위기에 빠졌을 때 구원투수로 나선다'는 관록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 것이다. JP모건체이스는 어떤 경영 방식으로 세계 금융역사와 함께 했는지 시계추를 돌려 보자.

 [위기 극복 기업 16편] 200여 년 동안 월스트리트의 구원투수로 활약 / JP모건체이스


1799년 뉴욕에 설립한 맨해튼 컴퍼니가 모태

JP모건체이스의 역사는 210년 전인 1799년에 시작됐다. 뉴욕 시민에게 깨끗한 물을 공급하도록 특허 받은 맨해튼 컴퍼니(The Manhattan Company)가 시초였는데, 당시 물 공급과 함께 금융사업 특허를 받았고 뉴욕에서 두 번째로 설립된 상업은행이라는 기록을 갖게 됐다.

당시 주니어스 스펜서 모건은 JS모건이란 이름으로 은행업을 했는데, 차후 이를 물려받은 그의 아들 존 피어몬트 모건 1세가 주도권을 잡으며 JP모건이란 이름으로 변경, 본격적인 금융그룹으로서 발돋움하게 된다. 1914년 미국에 중앙은행이 생기기 전 JP모건은 국책은행과 다름 없었다. 위기 때마다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1895년 미국 정부의 태환용 금 준비금이 10분의 1로 급감했다. 공황으로 인해 국가 재정이 파산 직전에 다다랐다. 당시 클리블랜드 대통령이 어찌할 바를 몰랐을 때 존 피어몬트 모건은 자가용 열차를 타고 워싱턴으로 갔다. 그는 투자자를 모아 국채인수 신디케이트를 만들고 그들이 갖고 있는 금으로 국채를 사도록 조언했다. 그 전략은 맞아 떨어졌고 미국 경제를 위기에서 구하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JP모건은 대규모 회사 설립도 주도해 왔다. 1901년 세계 최초로 자본금 10억 달러가 넘는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스틸(United States Steel)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는데, 이 회사가 바로 최근까지 세계 1위 철강업체였던 US스틸이다. 그 뒤로도 AT&T를 포함해 미국 초대형 회사들의 구조조정과 자본조달을 도왔다.

1905년 미국이 극심한 경기침체에 빠졌을 때도 JP모건이 나섰다. 당시 JP모건은 집단 파산위기에 직면해 있던 월가의 은행들에 구제금융을 제공했다. 자금난에 빠진 뉴욕증권거래소(NYSE)까지 지원했을 만큼 중앙은행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전쟁기간에도 빛을 냈다. 1915년 1차 세계대전 당시 최대 규모였던 5억 달러를 연합군에 차관으로 제공하기도 했다. 이런 JP모건의 역사 때문에 ‘하나님이 자금을 조달한다면 JP모건에 의뢰할 것'이라는 말까지 생겼다.

 [위기 극복 기업 16편] 200여 년 동안 월스트리트의 구원투수로 활약 / JP모건체이스


고객 이익 위해 부실채권 되사기도

JP모건도 때때로 위기의 순간을 맞았다. 1934년 금융규제를 위해 증권과 은행, 보험의 분리를 규정한 ‘글래스-스티걸 법(Glass Steagall Act)'이 발효됐다. 이때 JP모건에서 분화된 모건스탠리가 탄생했고 서로 독립적인 길을 걷게 됐다. JP모건은 이후로 분리와 합병의 역사를 이어 갔다. 현재 이름이 JP모건체이스가 된 것은 지난 2000년 체이스맨해튼은행과 합병했기 때문이다. 베어스턴스와 워싱턴뮤츄얼을 합병하기 전 뱅크원과 합병하기도 했다. 200년 역사 동안 수십 차례의 분리와 인수합병을 반복했다.

JP모건체이스는 자산운용, 투자은행, 상업은행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동안 큰 투자 손실을 보기도 했다. 지난 2002년은 200년 만의 위기라고 할 만큼 심각한 상황까지 몰렸다. 대규모로 투자했던 유통업체 K마트, 통신업체 글로벌크로싱 등이 파산하면서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 사실 이보다 훨씬 더 충격이 컸던 사건은 엔론의 파산이었다. 당시 입은 손실은 무려 26억 달러(약 3조 3,000억 원)에 달했다. 아르헨티나 투자와 지분 투자사업에서도 큰 손해를 봤다.

하지만 JP모건체이스는 역사에서 보듯 호황기는 호황기대로, 또 위기 때는 그에 걸맞은 대처법을 통해 장수기업으로 성장해 왔다. 전문가들이 꼽는 JP모건체이스의 경쟁력은 이런 것들이다.

설립 초기에는 시류에 맞는 사업에 투자했다는 게 강점이었다. 1900년 이전 모건 가문은 미국이 유럽에 발행한 채권을 헐값에 매입했는데, 캘리포니아 금광개발 등으로 채권 값이 올라 큰돈을 벌었다. 또 중국과 비단교역을 했고, 철강 수출로도 부를 축적했다. 모건 가문은 쾌속범선을 운영해 면화 등을 영국과 유럽에 수출하기도 했다.

일찍부터 고객 중심의 사고를 갖고 있었다는 점도 기억할 만 하다. JP모건이 철도건설 붐 등 산업 발달 시기를 잘 타기도 했지만 고객에 대한 책임의식이 강해 굳건한 신뢰를 얻었다는 점도 경쟁력으로 꼽을 수 있다. 발행한 채권이 부실해지면 다시 사들이기도 했고, 직접 기업 경영에 가담해 부실을 막기도 했다. 고객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부자들만 고객으로 삼는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프리미엄 금융서비스에 관해서는 JP모건체이스를 따를 금융사가 없었다.

 [위기 극복 기업 16편] 200여 년 동안 월스트리트의 구원투수로 활약 / JP모건체이스


철저한 경쟁체제와 위기 관리 능력도 경쟁력

현대에 접어들어서는 철저한 경쟁체제와 위기 관리 경영이 성공비결로 지목되곤 한다. 실제로 JP모건체이스는 각 분야의 최고 기업과 경쟁한다. 투자은행 부문에서는 골드만삭스와 힘을 겨뤄 왔고, 자산운용 부문에서는 피델리티와 UBS가 맞수였다. 소매금융 부문에서는 씨티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신용카드 부문에서는 아메리칸익스프레스와 경쟁해 왔다. JP모건체이스는 종합금융사로서 분야별로 강적들과 맞서며 성장했다.

이 네 개 부문에 상업은행과 기업금융을 합쳐 여섯 개 사업부문이 각각 15~20%의 매출을 점유하며 안정적인 구도를 이끌었다. 경쟁에서 성공하기 위해 인재 채용에 공을 들였다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다. 회사가 갖고 있는 다양한 파트너십을 활용해 당대 최고 인재들을 스카우트했다. 임원은 물론 일반 사원들도 대부분 미국 명문 아이비리그 대학 출신들로 채웠고 자체적으로도 철저하게 교육시켰다.

JP모건체이스의 역사에는 경쟁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경쟁만 있었다면 아마 이번 금융위기에 막강한 면모를 드러내지 못했을 것이다. JP모건체이스는 철저한 리스크 관리로도 유명하다. 대표적인 것이 주택담보대출 관리다. JP모건체이스의 2007년 주택담보대출은 767억 달러였다. 미국 내 주택담보대출 시장에서 15% 점유율로 1위였지만, 서브프라임 사태의 충격은 크지 않았다. 위기가 닥칠 것을 대비하고, 제임스 디몬 회장을 비롯한 핵심 수뇌부들은 주택담보대출과 관련한 파생상품 시장에서 손을 떼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당시 수많은 금융회사들이 이해하기도 어려운 수많은 파생상품을 만들어 냈다. 그중 하나가 부동산을 담보로 증권을 발행하는 자산담보부증권이었는데, JP모건체이스는 자체 리스크 관리 기준에 적합하지 않다고 결론 내리고 빠져 나왔다. 고수익 앞에서는 위험에 둔감해지기 마련인데 JP모건체이스는 균형감각을 잃지 않았다.

 [위기 극복 기업 16편] 200여 년 동안 월스트리트의 구원투수로 활약 / JP모건체이스

필자는 JP모건체이스의 역사가 주는 교훈은 ‘상생의 경영'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투자은행들은 수익 때문에 리스크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JP모건체이스는 국가 경제가 어려움에 빠졌을 때 힘껏 도왔다. 순수한 공익을 위해서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공익을 추구하는 게 사익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 명순영 / 매경이코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