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치료자의 눈물

선안남2009.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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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해석상담은

'상담'이나 '심리치료'라기보다는 '좋은 대화', '나를 발견하는 대화','통찰력있는 대화'

'나에 초점을 맞춘 대화'라고 할 수 있다.

내담자와 딱 한번 만나, 그 검사 결과를 토대로 이야기를 나누고, 길어야 한시간

정도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개인상담은 다르다. 이건 확실히 '상담'이고, '심리치료'다.

내담자와 일주일에 한번씩 그리고 한시간 정도

더 깊이, 더 많이 이야기를 나눈다.

이를 통해서 내담자들은

자신이 안고 있는 아픔에 대해서 꺼내어서 정리해보고,

자신의 실질적인 '변화'를 위해서 '진짜 나를 있는 그대로 만나는 과정'에 들어간다.

만만치 않은 과정인거다.

더군다나 '깊은', '오래 지속되는' 관계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두렵기만 했던 나에게는 의구심이 많이 드는 과정이었다.

 

그래서인지,

맨 처음 개인 상담을 시작할 때, 나는 매일밤 울었다.

어쩌면 상담실에 찾아와서 개인상담을 받겠다고 얘기한 내담자의 아픔보다도

나의 두려움이 더 컸는 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꼬박꼬박 제시간에 상담실에 왔고,

그녀의 이야기가 제대로 들릴 수가 없이 그녀보다 더 긴장하고 얼어있던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 나는 두려웠다.

긁어부스럼이 되면 어쩌나.

잘 살고 있는데, 잠자고 있던 상처를 이제와서 꺼내면 어쩌자는 걸까?

내가 그 상처를 꺼내어 다시 잘 다독여, 그녀가 더 건강해지는 그 과정을 잘 지켜봐줄 수 있을까?

자신의 속 얘기를 꺼내놓고, 가장 약한 상태에 있는 그 사람에게

내가 더 큰 상처를 주지는 않을까?

내가 뭐라고, 누군가의 아픈 마음을 보듬어주고, 치유한단 말인가?

내가 뭐라고.

나 역시 불완전한, 상처투성이, 방어쟁이 중에 한 명인데 말이다.

 

내가 이런 불안함 때문에 매일밤 울던 그 때, 나는 이 불안을 그 누구와도 나눌 수가 없었다.

내담자들은 나에게 와서 불안하다고 얘기할 수 있지만,

나는 불안하다고 얘기해서는 안되는 거다.

그래서 나는 방향성을 잃어버리고 심리적으로 방황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건강하지 않아서, 다른 사람이 건강해 지는 그 과정에

제대로 온전히 함께 해주지 못할 것만 같았다.

 

나의 그런 불안감이 극에 달했을때,

나는 나의 멘토를 찾아갔다.

 

그녀는 나를 아껴주시는, 강인한 여성이었다.

엄청나게 노력하시는 유능한 상담자였다.

나는 그녀에게 가서 울면서 얘기했다.

 

자신이 없다고. 너무 불안하다고. 내가 과연 상담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모르겠다고.

 

그러자 그녀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더니 갑자기 우시기 시작했다.

눈이 빨개지셨고, 안경을 벗으시고는 티슈를 뽑아 두눈에 흐르는 눈물을 닦으셨다.

 

나는 당황스럽고 놀라워서 오히려 내 눈물을 걷어들였다.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이시는 그 분의 모습은

나에게 있어 거대하고 강한 무언가가 가진 눈물이었다.

 

'나는 그 시기를 다 거치고 편해졌다, 생각했는데,

그 말이 또 나를 울리네요. 그쵸. 내가 뭐라고, 누군가의 아픔을 함께 해줄 수 있겠어요.

내가 더 아파지는데. 나 역시 흔들리는데.

아...그래도 말이죠. 이거 하나는 약속할 수 있어요.

지금은 처음이라서 많이 힘들고, 불안하겠지만, 그리고 앞으로 상담을 하면서

계속 그 불안감을 안고 상담을 할 수 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지금 품고 있는 그 불안함이 더 편해지는 그 시기가 분명히 온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중에 만난 내담자들은 모두 나를 통해서 아픈마음을 스스로 어루만질 수 있게 된다는 것.

아픈 부분을 함께, 똑바로 봐줘야 하는 이 과정이 내담자에게도, 나에게도 너무너무 힘이 들어서

도망가고 그만하고 싶을 그런 때가 있겠지만,

내가 더 힘을 가지고, 확신을 가지고,

망설이고 두려워하는 내담자에게 그 마음을 더 정확하게 분명히 보자고 격려해주고 이해해주고

가끔을 채찍질해줄 때, 내담자는 그 아픔을 수용하고 애도하고 그리고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요.

아픔을 직면하지 않고 피하는 한, 우리는 결코 그 아픔을 해결하고 성숙할 수 없어요.

나는 상담이라는 것이 왜 있는가는

많은 부분 우리가 아픔을 혼자 견디고 직면하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그 아픔을 해결해주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저 함께 해주는 사람인거죠.

그 아픔을 해결해 줄 수도 없을 뿐더러, 그래서도 안되요.

그 아픔을 직시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성장해야 할 사람은 내담자니까.

지금 스스로 해결하는 법을 배워야 삶에서 필연적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는 아픔을

의연하게 대처해 갈 수 있으니까.

그러니 나를 만난다고, 내담자가 더 아파질까하는 걱정은 그대로 내려놔도 되요.

내담자는 그 아픔을 혼자 해결하기 어렵다며, 용기를 내서 나를 찾아왔어요.

그리고 자신을 믿는 만큼 우리를 믿기에 자기 얘기를 하고 있어요.

들어주세요. 그리고 함께 있어주세요.

그러면 분명히 내담자도, 나도, 함께 성장해요."

 

"아픔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것이 저 스스로도 너무 힘이 드는데

제가 과연 그 과정을 도울 수 있을까요?"

 

그녀는 두눈에 흐르는 눈물을 닦으면서 부드럽게, 그러면서도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아픔은 누구에게나 다 아픔이에요. 아픔에 의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 아픔을 건너야, 우리는 성장해요."

 

그 후 나는 용기를 얻었다.

나의 아픔이 누군가에게 이해받았다는 경험을 충분히 한 후에라야

나 역시 다른 누군가의 아픔을 충분히 이해해줄 수 있는 거였다.

 

다시는 밤마다 이유없이 울지 않았고, 첫 개인 상담도 어느정도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제 누가 나에게 와서 어떤 아픔을 이야기 해도

내가 그를 해할까봐 두렵거나 불안해지는 일은 없다.

 

가끔 나의 마음을 울리는 타인의 아픔을 마주할 때면,

나는 그녀의 뜨거운 눈물을 떠올린다.

 

나의 아픔이 타인의 가슴을 울린다는 그 사실하나로 나는 확신을 얻었다.

모든 상처와 아픔은 '관계'를 이야기 한다.

그 상처와 아픔이 생기는 것도, 그 상처와 아픔이 치유되는 것도 '관계' 가 있어서야만 가능하다.

 

그 때나는 상담자와 내담자가 상담실에서 만나 '관계'를 통해 치유해 나가는 과정에만 집중해서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기는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가 나에게 해준 이야기는 모든 '관계'에 대한 은유였다.

 

특히 사랑이라는 관계에 대한 은유였다는 생각이 가장 강하게 든다.

 

우리는 항상 사랑을 갈망하면서도

막상 사랑이 나타나면 그 사랑이 안고 있을 '아픔'과 '상처'가 두려워 머뭇거리게 된다.

도대체 내가 무어라고 이 사람을 사랑할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거다.

누군가를 지속적으로 만나면서 관계를 맺는 다는 것은

우리의 가슴 저 밑바닥에 잠잠히 재워두고 있던

어떤 상처와 아픔을 한번에 자극한다.

그만큼 사랑은 치유적인 관계이기 때문에, 그 상처와 아픔을 보듬어 달라고 반응하게 되는 거다.

그런데 내 상처와 아픔을 직시하는 게 어려운 만큼

내가 상대의 상처와 아픔을 함께 할 수 있을 지에 대한 불안감에도 휩싸이게 된다.

시작도 안하고 두려워지는 거다.

 

하지만 사랑하는 둘은 함께 용기를 내어서 아픔을 건너고 함께 성숙해야 한다.

그게 사랑이고, 상담인것 같다.

 

어쨌든 사람은 '관계' 속에 있다.

'관계' 때문에 아픈것은 관계로 치유가 된다.

그것 하나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