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업보윤회설은 모든 것을 바르게 통찰한 완전한 사상이 결코 아닙니다.

차윤진2009.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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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업보윤회설은 모든 것을 바르게 통찰한 완전한 사상인가?

 

 

업보윤회설은 사람들이 '업'을 짓는 작용을 강조하고 일체가 모두 스스로 지어 스스로 그 결과를 받는 것임을 강조한다. 이것은 상제가 있어 외부로부터 사람의 운명을 주재한다는 주장과 다르면서도 객관적으로는 사람들의 행위에 대해 어느 정도 훈계와 구속으로 작용한다. 사람들의 활동은 특정한 결과를 가져오고 그래서 그 보응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일정한 범위내에서 어떤 의미에서는 합리적인 일면을 가지고 있다.    

 

비유컨대, 사람들이 선하고 정의로운 일에 종사하면 역사적으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게 되지만, 나쁜일을 하여 국가와 민족에 재앙을 끼치면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조건적이지 무조건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지적해야만 한다. 계급사회에서 사람의 운명은 주로 그의 계급의 지위에 의해 결정된다. 착취계급이 통치지위에 있는 사회에서는 부귀영화는 착취계급의 특권이고, 빈천은 피착취계급의 운명이다. 계급의 지위에 변화가 발생하지 않는 한, 이런 상황은 바뀌기 어렵다.

 

계급사회에서는 선을 행하는 자는 화를 입고, 악을 행하는 자는 복을 받는다. 이것은 별로 신기한 맛이 없이 일상적인 현상이다. 불교의 윤리도덕에 있어서의 주된 주장은 선악의 행위와 복과 화는 일치한다는 것이어서, 선은 복을 받고 악은 화를 받는다고 하지만, 이것은 많은 경우 사람들에 대한 위안에 그칠 뿐이다.    

 

불교는 현세의 화복은 전세에 지은 업의 결과라고 하며, 현세에 지은 선업, 악업은 사후에 신명의 재판을 통해 상벌을 받는 것이 한치의 어긋남도 없다고 한다. 이러한 신학적 허구는 실제로는 현실 중의 선악과 화복이 일치하지 않음을 인정하는 것과 같다.

 

불교에서는 또한 교묘하게 업보윤회설을 이용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불교를 믿도록 고무하여, 탑이나 제당을 건립하면 천 배의 보답을 받는다고 하고, 승려에게 보시하면 백 배의 보답을 받는다고 하면서, 반대로 불교를 비방하면 영원히 성불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또한 극심한 징벌을 받아 아비지옥으로 떨어져 끝없는 고통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 불교에서는 한편으로는 사람들에게 부귀와 천백 배의 보답으로 유인하고, 한편으로는 지옥과 끝없는 고통으로 겁을 주어 힘을 다해 불교의 가르침을 받들고 믿게 한다.

 

- 어느 불교 학자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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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제 글을 읽으신 모든 분들은 불교의 가르침과 주장과는 달리 다른 견해를 얼마든지 가질 수 있으며 불교의 가르침에 대한 충분한 반론및 이의제기를 할 수 있음을 알 수 있게 되셨으리라 믿습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무조건 불교를 비방한자는 성불할 수 없고 아비지옥에 간다고 말하는 것은 신적인 권위없이 인간에게서 비롯된 인간의 가르침으로서 주장할 수 있는 한계범주를 오만하게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