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력을 쓰지 않고서 얻은 재물로 자신을 안락하게 하는 동시에 남에게도 골고루 분배해 복을 짓는 사람, 재산을 탐내지 않고 재산에 미혹되지 않으며 재산 때문에 죄악에 빠지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은 근심에서 벗어나는 지혜를 얻는다."
이 인용문은 나눔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오늘날의 사회운동가의 말이 아니라 초기 불교의 근본 경전인 [ 상유타 니카야]에서 따온 붓다의 말이다. 인간.사회 혁명의 사상가 붓다는 전쟁을 일삼는 군주와 재물을 나눠가질 줄 모르는 부자를 최고의 악인으로 파악하고 , 생활이 곤궁해서 도적이 된 빈민들이 법망에 걸리더라도 벌주지 말고 생활비를 주어서 그냥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편 가난뱅이들에게 형벌을 주는 재판관을 나쁜 직업으로 생각했다.
지중해 세계의 원시 사회주의자라 불릴만한 예수만큼 강렬한 것은 아니었지만 붓다에게 사유제도.국가권력은 사회적 죄악의 한 원천이었던 것이다.
그러면 승려는 왕궁 가까이 가지 말아야 하고, 칼 찬 사람에게는 설법하지 말아야 하며, 몇 개의 필수품 이상의 재산을 소유하거나 탐내지 말아야 한다고 했던 붓다의 제자들은 오늘날 한국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가?
스님까지 군에 끌려가서 살인 훈련을 받으니 칼 찬 사람에게 설법하는 것은 문제 설정조차 안되고, 지배층.권력자들과의 접촉은 교단의 '문제'라기보다는 자랑거리다. 집착을 버려 고통에서 벗어나라는 해탈의 종교 안에서 학벌에 대한 집착에 의한 돈벌이, 즉 '대입기도'가 제도화된 지 오래다. 자본과 폭력에의 포섭 차원에서 불교에 비해 덜하지 않은 이웃 종교들의 일그러진 모습을 보면서 " 우리만 그런 게 아니지 않느냐" 라고 항변할 수 있지만, 사회주의적 성격을 띤 종교가 돈과 권력에 포로가 됐다는 것은 부끄럽고 아쉽다.
사찰들이 장례식장이나 대기업 직원 훈련장으로 이용되는 등 종교적 서비스업으로 전락한 이웃 일본도 불교 자본화의 추태를 보이고 있다. 과연 동아시아는 붓다의 가르침과 국가.자본주의는 '공존' 할 수 없음을 깨달을 수 없었나? 국가와 자본에 맞선 불교 지도자들은 없었던가? 만약 있었다면 어떻게 제도권 불교가 지금과 같은 지경에 이르렀는가?
불교인 여러분 ! 붓다의 원래 가르침을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 폭력을 쓰지 않고서 얻은 재물로 자신을 안락하게 하는 동시에 남에게도 골고루 분배해 복을 짓는 사람, 재산을 탐내지 않고 재산에 미혹되지 않으며 재산 때문에 죄악에 빠지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은 근심에서 벗어나는 지혜를 얻는다."
이 인용문은 나눔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오늘날의 사회운동가의 말이 아니라 초기 불교의 근본 경전인 [ 상유타 니카야]에서 따온 붓다의 말이다. 인간.사회 혁명의 사상가 붓다는 전쟁을 일삼는 군주와 재물을 나눠가질 줄 모르는 부자를 최고의 악인으로 파악하고 , 생활이 곤궁해서 도적이 된 빈민들이 법망에 걸리더라도 벌주지 말고 생활비를 주어서 그냥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편 가난뱅이들에게 형벌을 주는 재판관을 나쁜 직업으로 생각했다.
지중해 세계의 원시 사회주의자라 불릴만한 예수만큼 강렬한 것은 아니었지만 붓다에게 사유제도.국가권력은 사회적 죄악의 한 원천이었던 것이다.
그러면 승려는 왕궁 가까이 가지 말아야 하고, 칼 찬 사람에게는 설법하지 말아야 하며, 몇 개의 필수품 이상의 재산을 소유하거나 탐내지 말아야 한다고 했던 붓다의 제자들은 오늘날 한국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가?
스님까지 군에 끌려가서 살인 훈련을 받으니 칼 찬 사람에게 설법하는 것은 문제 설정조차 안되고, 지배층.권력자들과의 접촉은 교단의 '문제'라기보다는 자랑거리다. 집착을 버려 고통에서 벗어나라는 해탈의 종교 안에서 학벌에 대한 집착에 의한 돈벌이, 즉 '대입기도'가 제도화된 지 오래다. 자본과 폭력에의 포섭 차원에서 불교에 비해 덜하지 않은 이웃 종교들의 일그러진 모습을 보면서 " 우리만 그런 게 아니지 않느냐" 라고 항변할 수 있지만, 사회주의적 성격을 띤 종교가 돈과 권력에 포로가 됐다는 것은 부끄럽고 아쉽다.
사찰들이 장례식장이나 대기업 직원 훈련장으로 이용되는 등 종교적 서비스업으로 전락한 이웃 일본도 불교 자본화의 추태를 보이고 있다. 과연 동아시아는 붓다의 가르침과 국가.자본주의는 '공존' 할 수 없음을 깨달을 수 없었나? 국가와 자본에 맞선 불교 지도자들은 없었던가? 만약 있었다면 어떻게 제도권 불교가 지금과 같은 지경에 이르렀는가?
- 박노자님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