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손에 이끌려 - 2

이성은2009.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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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손에 이끌려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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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우리나라 최남단의 섬 노화도(전남 완도군 노화읍)에 태어나서 나의 구원자로 예비 되었던 정종호 목사와 친구가 된 데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던 긴 역사가 있었다.

  아버님은 1877년생으로서 결코 평탄치 않은 인생을 사신 분이다. 전남 보성군 복래면 일봉리라는 곳에서 결혼하여 1남 1녀를 두셨고 사람을 두고 농사를 지으실 만큼 사셨으며 방앗간도 경영하셨으나 40에 상처하시고 나의 어머님과 재혼하셨다. 어머님은 사주팔자에 나이 많은 사람이나 상처 자리에 시집을 가야 명대로 살 수 있다 해서 일부러 상처 자리를 찾던 중 스무 살이나 나이 차이가 나는 홀아비와 결혼하셨던 것이다. 아버님은 어머님과 결혼하신 후 1녀 1남을 낳으셨는데 지금은 다들 돌아가시고 나만 남았다.

  아버님은 그런대로 재혼하셔서 딸(누님) 하나를 낳고 잘 살았는데 남의 빚을 보증서셨다가 완전히 모든 재산을 날려 버리시고 혼자서 하염없는 길을 떠나 이곳저곳 살 곳을 찾으시다가 내가 태어난 노화도에 정착을 하신 것이다.

  13년간을 혼자서 딸 하나를 데리고 온갖 고생을 겪으면서 사시던 어머님은 어느 날 죽은 줄 알았던 분에게서 편지를 받고 여러 날을 걸려서 노화도에 도착했고 그 후 극도의 가난 속에서 나를 낳으셨다고 했다. 백 일을 지성 드려 기도하면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누군지 모르는 그분에게 기도를 했는데 내가 잉태되어 태어난 것이다. 이때 아버님은 60세 어머님은 37세이셨다.
  그렇다면 그 누가 과연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했을까? 그리고 하필 노화도 그 마을에 태어났음으로 해서 정 목사와 나는 죽마고우의 인연에서 영생에 이르는 친구요 구원자 관계가 되게 하셨을까?

  이것이 우연일까 필연일까? 나는 그것을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 안에서는 미리 알고 안배된 일일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믿음이요 자랑이다.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갔을 때 누가 그 될 일을 알았으며 야곱이 어쩔 수 없이 애굽으로 내려가 정착했을 때 누가 사백 년 후의 여호와 구원을 알았겠는가? 그 사건은 우연이었는가 필연이었는가?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이 사건이 오직 주님으로 말미암았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믿음이며 자랑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믿는다. 하나님은 인간의 상상과 계획을 초월하시는 분으로서 만세전에 모든 일을 미리 예정하신다는 것이다. 왜 이것을 믿는가? 그 일이 너무도 빈틈없고 완전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계획해서 한 일은 어딘가 엉성하고 불완전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은 완전하고도 온전하다. 자손만대에 길이 믿을 수 있는 일이다. 나는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다. 나는 그들과 아무 상관이 없고 그들의 역사와 나의 역사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그러나 내게 일어난 사건과 이스라엘에게 일어난 사건이 동일하기 때문에 나는 그들에게 일어났던 사건이 믿어지는 것이다. ‘그 일을 행하셨던 분이 내 일도 행하셨구나.’라고.

  그렇다. 이것은 내가 믿으려 해서가 아니다. 알면 알수록,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더욱 믿어지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믿음은 이렇게 다져지고 다져진 믿음이고 나의 믿음 역시 70년 동안 다져진 믿음이다.
  절묘하다! 구원자가 예비되고 있는 동안에 나 또한 예비되고 있었다. 모세가 예비되는 동안 이스라엘도 준비되고 있었듯이 구원자가 있는 곳에 나를 낳아 주신 것이다. 그것뿐인가! 우리 두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만난 것 역시 우연한 것 같지 않다.

  나는 우리 동네에 교회가 들어왔을 때 어린이로서는 유일하게 처음부터 참여한 사람이다(현재 노화읍에 있는 소망교회-옛날에는 노화교회). 동네에 친구들이 많았지만 단 한 명도 내 또래에서는 교회에 들어온 사람이 없었다. 정 목사 역시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목포에 가서 고등학교 때 교회에 나감으로 해서 우리 동네 출신 동갑 중에는 아직까지도 오직 우리 둘만 교회 안에 있고 둘만 목회자가 된 것이다. 그러니 이것을 어찌 우연이라고만 할 수 있겠는가! 많은 친구와 사람들이 있었다해도 나의 구원자로 예비된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이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을 구원할 자는 한 사람이면 족했다. 하나님은 이 한 사람을 준비하시느라고 사백 년을 기다리셨고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한 사람 예수를 기다리셨던 것이다. 구원자는 한 사람이다. 범죄자도 한 사람이었고 의로운 자도 한 사람이다. 한 사람으로 인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한 사람으로 인하여 의가 세상에 왔다(롬5:12참조).

  나를 구원할 자는 한 사람이면 충분했던 것이다. 이 한 사람이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을 생각했고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수행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절망에서 구원받았다. 완전하게 구원받은 것이다. 그 후 다시는 내게 절망이 없었다. 절망은 영원히 지옥 불에 던져진 것이다. 할렐루야!

  나는 믿는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는 데 모세 한 사람을 쓰셨고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는 데 예수 한 사람을 쓰셨으며 나를 절망적 상태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한 사람 정종호를 사용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은 완전하고 절대적이다. 비교할 수도 없고 예외도 있을 수 없으며 다른 여지도 없다. 모세가 아니었으면 이스라엘은 아직도 애굽에 있을 것이며 예수가 아니었으면 우리는 아직도 죄 가운데 있을 것이고 내 친구 그가 아니었으면 나는 아직도 노화도 그 절망의 땅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여지가 없는 일이다. 그 누구도 이들을 대치할 자가 없다. 하나님은 온전한 예정 안에서 확실한 선택을 하신다. 그에게는 실수가 없고 어그러짐이나 이지러짐이 없다. 태양이 둥근 것처럼 둥글고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처럼 권세와 능력이 있다. 그의 앞에서는 태산이라도 평지가 되고 바다라도 육지가 된다. 바로가 문제인가, 홍해가 문제인가, 사막이 문제인가? 아니다. 여호와 구원자가 없는 것만 문제인 것이다(슥4:7 참조).

  나의 절망 상태를 해결한 자는 전능자다. 돈이 세상에 널려 있다 해도 내 절망을 해결해 줄 돈은 없었고 좋은 사람들이 세상에 널려 있어도 나를 구원해 줄 사람은 없었으며 우주 가운데 신이많다 해도 나를 구원할 신은 한 분밖에 없었다. 나는 이스라엘이고 그는 전능자다. 나를 구원하신 이는 전능자다. 이 전능자가 없었다면 나는 음부에 내려갈 때까지도 그 절망을 심장 깊이 넣고 갔을 것이다. 그러나 전능자가 있었기에 나는 구원받았다. 할렐루야!

  모세-구원자의 하나님은 야훼(나는 …이다.)이신 분이었다. 그‘나는 …이다.’(I am….)이신 분은 하지 못할 일이 없는 분이시다. 왜냐하면‘나는 …이다.’이신 분이기 때문이다. 정 목사를 모세와 같은 구원자로 만드실 수 있고 나와 같은 자들을 이스라엘처럼 만드실 수 있으며 바로를 굴복시킬 수 있고 홍해를 육지같이 가를 수도 있으며 반석에서 생수가 솟아나게 할 수 있고 하늘에서 만나를 이슬처럼 내릴 수도 있다.
  당시에 나의 형편과 사정은 그 누구도 움직이고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이었다. 누가 과연 애굽의 바로에게 억류된 이스라엘을 움직여 홍해를 건너 나올 수 있게 할 수 있으며 누가 과연 절망 속에 있으면서도 그 절망이 너무 깊어서 그것이 절망인 줄도 모르고 그럭저럭 살고 있던 나를 불러낼 수 있단 말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모세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셨던 분은 야훼이셨고 나의 하나님, 정 목사에게 지략과 힘과 사랑을 주셨던 분 역시 그분이었던 것이다. 완전한 구원자의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야훼이시다. 그러므로 그분의 구원은 완전하고도 온전하다.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그는 전능자시고 하나님이시다. 그가 천지를 창조했으며 인생 위에 계획을 세우시고 자기 자신으로 언약을 세우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를 의지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며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다(사40:31 참조). 나는 새 힘을 얻었으며 독수리 날개를 얻고 힘껏 날아올랐다. 나의 하나님은 야훼(나는 …이다.)이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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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마음으로 생각하고 계획할지라도 그 일을 이루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고 했다(잠16:9). 나는 그나마 생각이나 계획할 형편이 못 되어서 아무 뜻이 없었으나 부름을 받았다.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니게 된 이후 교회는 당연히 나의 생활의 일부가 되었으나 어느 날부터인가 의심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과연 하나님은 계신 것인가? 이 문제가 깊어지자 교회 가는 것이 힘이 없어지고 가끔은 가던 길을 멈추고 머뭇거리다가 다시 가곤 할 때도 있었다.
  그때 나는 남이 보기에는 믿음이 좋은 청년이었고 교회에서도 주일학교를 맡아서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그러나 세례만은 사양하는 형식으로 거절하고 받지 않았다. 그것은 겸손이 아니라 확신이 없기 때문이었다.

  신앙 서적들도 읽어 보고 했으나 하나님을 보여 주는 사람은 없었고 믿게 해 주는 사람도 없었다. 자기들은 이미 다 믿는다는 식이고 강을 건너왔다고들 하는데 어떻게 건너왔는지에 대해서는 내가 납득할 만한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 요즘처럼 교회들이 많고 이적을 행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으며 시골인지라 그런 것을 볼 기회가 없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의 성향으로 보아서는 그런 것을 보았다고 해도 하나님이 계신다고 믿지는 않았을 것 같다.

  이런 과정에서 친구 정 목사는 신학공부를 하고 있을 때여서 방학 때면 집에 내려오곤 했는데 어느 날은 밤을 꼬박 새우면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집요하게 질문했지만 그도 역시 믿음을 제시하면서 믿고 나면 알게 된다고 했고 나는 알아야 믿을 수 있지 않느냐고 했다. 이 두 생각은 밤새도록 평행선을 이루고 끝이 없어서 토론을 끝내고 말았다. 사실은 그의 말이 옳았지만 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의문은 몇 년 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나 답을 얻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서 나는 궁지에서 궁지로, 길이 없는 곳으로 몰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집 생업의 전부였던 가게가 점점 줄어들어 결국에는 물건을 구입할 돈이 말라버린 것이었다. 가게를 살려 보려고 빚을 좀 얻어서 해 보았지만 빌린 돈만 어디론지 사라지고 보니까 빚만 고스란히 남고 말았다.

  장사가 좀 될 때 돈을 모았어야 하는데 그때는 형님이 재산을 불리느라고 매년 아버님께 찾아와서 뭉칫돈을 가져갔고 설상가상으로 그 뒤를 이어 내가 병듦으로 해서 치료비로 솔솔 빠져 나가고 보니 밑천이 말라가게 되었다. 거기다가 아버님 초상, 누님 초상을 연거푸 치렀고 또 5일 장이 생김으로써 상권이 장으로 몰려갔기 때문에 문 앞은 날로 한산해졌던 것이다.

  그때 나는 20세에서 27세까지의 기간이었고 오랜 병 후에 겨우 활동을 시작한 시기였다. 가게가 비고 보니 할 일이 없었다. 그런데 그것뿐이 아니었다. 할 일이 없는 것도 문제였지만 그보다도 매일 같이 떠오르는 태양이 더욱 큰 문제였다. 집이 상가 지역이었기에 앞에 옆에가 모두 상가였다.그러니까 아침에 태양이 떠오르면 집집마다 일어나서 가게 문을 열고 상품을 점검하고 진열해서 손님 맞을 준비를 하는 것이 매일의 일과의 시작이다. 그런데 나는 그 떠오르는 태양이 야속하기만 했던 것이다. 일어나 보니 할 일이 없지 않은가! 가게 문을 닫아 두자니 창고처럼 보기 흉하고 열어 놓자니 속이 비었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은가! 길은 시골길이어서 겨우 5m 정도의 폭밖에 안 되기 때문에 문만 열면 얼굴을 맞대다시피 봐야 하는 것이다.

  이때의 민망함, 그리고 난감함을 나는 잊을 수 없다. 나만 민망한 것이 아니라 앞집 사람도 나를 보기에 민망했던 것이다. 그러니 나는 밥 먹고 나면 교회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고 할 일도 없지만 그래도 아무도 없는 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쉬웠던 것이다. 방학 때가 되기만을 기다렸는데 그때가 되면 정 목사가 내려오기 때문이 었다. 그런데 그도 졸업을 하고 목회를 하게 되자 오지 못했기 때문에 당시 의과대학을 다니고 있던 김영송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상한 목적으로 여름방학, 겨울방학을 기다려야 했던 나는 그것이라도 출구가 있는 것같이 느끼고 살았던 것이다. 그때 나는 그 두 사람과 친하게 되었는데 그 이전에는 별로 친하게 지낸 친구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전에도 말했던가? 나는 학교를 일찍 갔고 게다가 월반까지 하는 바람에 동창생들은 모두 다 최소한 세 살은 위이고 심지어는 다섯 살 위인 사람들도 있었기에 어려서는 그 사람들이 친구였고 정 목사나 김 선생 같은 친구는 바로 이웃 반경 100m 이내에 살았지만 별로 내왕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이 많은 친구들은 성장해서 모두 결혼하고 나니까 정 목사와 김 선생이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된 것이다. 외로웠던 시절 이들은 내게 참 좋은 벗들이었고 말 상대가 되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성격상으로는 혼자서도 별로 외로움 없이 잘 살 사람이다. 그런데 내 형편은 날로 사람들 보기에 민망스럽고 난감해져 갔기 때문에 어디론가 출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동네일에 한 몫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5.16 혁명이 일어나고 새마을 운동이 일어나기 전 재건국민운동이라는 것이 혁명 세계를 뒷받침하고 있을 때였다. 몇 명 친구들과 동생뻘 되는 아이들이 모여서 나를 재건청년회장으로 세웠기 때문에 나는 그때부터 동네 대소사 모든 일에 뛰어들었고 여러 차례의 결혼잔치와 초상 치르기를 도맡아서 처리하곤 했다.

  한 번은 자살한 여인을 처리하는데 추운 겨울날 밤에 관을 메고 산등성을 넘어서 한적한 곳에 묻고 왔던 일도 있었고, 혼사 집에서는 하루 종일 돌아앉아서 먹고 또 다시 돌아앉아서 먹는 술꾼들의 행습을 고친다고 무조건 누가 오든지 술은 두 홉 짜리 한 병으로 제한하고 두 번 다시 앉지 못하도록 했다. 그랬더니 혼사 집 주인들은 아주 고맙다고 했다. 그러나 혼사 집 단골들은 불만이 많았을 것이다.

  그때 나는 무슨 일이든지 불합리한 것들은 고쳐나가자고 동지들에게 설득했고 이들이 잘 따라 주었기 때문에 일은 어려움 없이 진행되었다.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재건국민운동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니까 그때 내가 계속 그런 일을 했더라면 상당한 적을 만들게 되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좋은 일이고 옳은 일이라고는 했지만 오랜 관습을 고치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닐 뿐더러 이런 개혁을 하자면 한쪽에서는 불평이 나게 마련인 것이다. 그러면 결국 적이 생기게 되고 언젠가 기회가 오면 그들이 나를 향해 돌을 던지게 되는 것이다.

  내가 왜 이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하나님께서는 이런 일까지도 미리 막아 주셨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 교회 일과 동네일밖에는 할 일이 없었는데 둘 다 돈은 안 되고 바쁘기만 한 일이었다. 칭찬은 많이 들었지만 실속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뜻밖에 나의 생각과 계획 밖에서 나를 불러내신 것이었다. 내가 그런 일들을 계속 했더라면 잘되었으면 그 동네 이장이 되었을 것이고 그 동네가 중심이 되어 뒤에 읍이 되었으니까 읍장이 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반대로 과격한 개혁을 하다가 친척이라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뿌리 없는 나무 같은 내가 끝까지 순조로울 수 있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면 그때 그쯤 해서 참 좋은 청년, 예수 믿는 사람 중에도 저런 모범적인 청년이 있다 하는 인상만을 남기고 훌쩍 그곳을 떠나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던가!

  나는 무엇이나 개혁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것이 사회 속에 적용되려면 매우 불리하고 위험한 길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교단생활에서도 나는 개혁을 위해 선봉에 섰다가 세력에 밀려 낭떠러지로 떨어졌던 사람이 아닌가! 그러니까 세상에서는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내가 위험한 길에 섰을 때는 그 길을 돌려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켜 주신 것이다. 그래서 시인의 말에 동의한다. “주님은 나의 반석이시요 환난 날에 피할 곳이시다(시18:2).”

  이 생각이 나면 나는 노래를 부른다.
“저 위험한 곳 내가 이를 때면 큰 바위에 숨기시고 주 손으로 덮으셨네(시 446장).”
이 노래를 부르면 내 영혼은 그때를 회상하게 된다. 나는 지혜로운 것 같고 똑똑한 것 같았으나 그것이 위험의 길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세상을 바꾼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말이다.

  잘되었으면 좋은 일 많이 하고 죽은 사람이라는 명성을 들었을 것이고 잘못 되었으면“저놈 때문에 우리 일이 안 돼.”하면서 앙심을 품은 사람들과 부딪쳐서 힘이 없는 나는 보나마다 죽탕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나를 끄집어 내셨다. 그나마 좋은 일밖에는 할 일이 없어서 그것이 라도 함으로써 칭찬 좀 받고 살던 나를 불러내시고 끄집어내신 것이다. 나는 그때 아무 생각도 계획도 희망도 없었다. 그런 나를 왜 불러내셨을까? 길가에서 서성거리고 있던 자들에게“내 포도원에 와서 일하라(마20:1-13 참조).”9시에도 부르시고 12시에도 부르시지만 오후 3시에도 부르시는 분이기에 나를 부르지 않았을까! 오후 3시에 부름받은 자가 얼마나 일을 하겠는가마는 아침 9시에 온 사람과 똑같이 품삯을 주시는 분에게 나는 부름받았던 것이다.

  목표도 없고 계획도 없이 그저 좋은 일이라면 거들기나 하고 그럭저럭 살아가던나, 목회자가 되겠다 안 되겠다에 대해서는 생각도 할 수 없었고 해 보지도 않았던나, 그런 일을 위해서 단 한 번도 생각했거나 기도해 본 일이 없던 나를 왜 부르셨을까? 나는 그분의 생각을 측량할 길이 없고 감당할 수가 없다.

  여호와 이레(준비하시는 하나님)! 나도 모르는 나를 아시는 분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나는 나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분은 아셨기에 나를 부르신 것이 아닐까! 오늘 내게서 이런 말을 들으시려고 나를 부르신 것은 아닐까! 그러나 저러나“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함이 없다(롬11:29).”하신 말씀이 응한 것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