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예비교사입니다 - 자살한 교육학과 학우를 추모하며

전태욱2009.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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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예비교사입니다 - 자살한 교육학과 학우를 추모하며

5. 신자유주의, 대한민국 기득권층, 사교육

 


성적을 올리면 성과급을 받는 훌륭한 교사가 되고, 성적을 올리지 못하거나 오히려 떨어뜨린다(세상에 어느 교사가 학생 성적이 떨어지기를 바라겠습니까?)면 능력이 없는 교사가 된다? 이런 논리 어디에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경쟁과 효율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바람직한 교육 현장 모습이자, 사교육 현장에서 적용되고 있는 칼 같은 기준입니다. 진정한 교육 이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으며 오로지 성적 지상주의만이 판치는 그 현장에서 적용되는 기준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교육에 종사자들은 어떻게든지 자기들이 맡은 학생 성적을 올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성적을 올릴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과연 공교육 교사보다도 훨씬 더 뛰어난 수업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까? 그렇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방법은 간단합니다. 학생이 하루에 해야 할 분량을 다하지 못하면, 그 책임을 물어서 어떻게든지 다 하도록 만드는 겁니다. 예를 들자면 집에 못 가게 하면서 계속 시킨다든가, 별도로 보강을 한다든가 숙제를 한다든가 이런 거 말입니다. 성적을 올리는데 필요한 공부 양을 채우는데 모든 관심이 집중될 뿐입니다. 학생이 호소하는 스트레스나 피곤 같은 것은 과업을 방해하는 요소로서 관리될 뿐, 사람 대 사람으로서 해결해 줘야 할 것이 아닙니다. 교육학 하위 분야인 '생활 지도와 상담'에서 다루는 그런 개념은 절대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게 성적을 올리는 데만 온 힘을 쏟아 붓는 사교육 강사들이 동원하는 온갖 수단과 공을 강조하면서, 공교육에 몸을 바치고 있는 교사들이 천하태평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을 저는 지금까지 인터넷에서 많이 만났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습니다. 그들은 애당초 공교육을 비난하는 데만 초점을 맞춘 나머지, 공교육이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관한 기본 사실마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교육 수장이라는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도 그들과 인식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증명되었으니, 과연 공교육 수장으로서 자질이 있는지 의심스럽기 짝이 없으며 대한민국 공교육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예비교사로서 그저 걱정스럽기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이 있습니다. 공교육을 살려야 한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실제로는 공교육을 살릴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설사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 같이 공교육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까닭 자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공교육이 지금과 같은 지경에 이르게 된 까닭은 신자유주의자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것처럼 사교육과 정정당당하게 경쟁해서 살아남지 못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교사들이 교육 현장에서 열심히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공교육이 추구하는 교육 이념 자체가 뿌리 깊은 학벌 사회에서 근본에서부터 왜곡되었고, 신자유주의로 무장한 사교육자들과 기득권층이 결탁해 그 왜곡된 구조를 죽자 살자 지키기 때문입니다.


교사들이 사교육 강사들처럼 성적을 쑥쑥 올릴 수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논리는, 현실 순응만을 강요하는 것으로서 근본에서부터 잘못된 교육 구조를 바로잡을 방법이 절대 아닙니다. 그리고 앞에서도 이미 지적했듯이 성적을 쑥쑥 올려야 훌륭한 교사라는 논리 자체가 교육에 관한 초보다운 이해도 부족하다는 사실을 드러낼 뿐입니다. 이미 수 십 년 동안 한국 사회를 지배했으며, 민주주의 이념이 사회에 뿌리내리기 시작한 뒤에는 신자유주의를 앞세워 더욱 공고해진 학벌 체제를 뿌리 뽑지 않는다면, 그 위에서 어떤 대책을 내놓아도 공교육은 살아날 수 없습니다.


현실이 이렇다면 아주 간단하게 생각해 낼 수 있는 타개책이 있습니다. 바로 공교육 수준을 끌어올리는 겁니다. 사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공교육 수준이 높으면, 당연히 학생들은 사교육에 눈을 돌리지 않을 것이고, 그에 따라서 사교육은 자연스럽게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겁니다. 공교육 대 사교육으로 교육 문제를 바라보는 것은 편협한 시각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만, 사교육자들이 죽자 살자 공교육 정상화를 방해하는 것을 보면 편협해 보이기보다는 오히려 설득력이 더욱 커 보입니다.


사교육자들이야 당연히 자기들 목숨이 오락가락할 테니까 그렇다고 칩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을 파탄으로 몰아넣으며 자기들 안위에만 눈이 먼 수구 세력은 도대체 왜 공교육을 살릴 생각이 전혀 없겠습니까? 이는 공교육이 지닌 속성을 권력을 가진 자들 속성에서 파악한다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공교육 제도는 1차 세계 대전이 벌어지기 전인 18세기 후반에 유럽에서 처음으로 등장했습니다. 프로이센이 국가 체제를 정비하면서, 모든 국민들이 국가가 요구하는 국민으로서 갖춰야 할 소양과 자질을 함양하려면 국가 차원에서 의무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는 필요를 깨달은 뒤, 적극으로 공교육 법령을 제정한 뒤 곧바로 실시합니다. 이는 곧 권력자들에게 공교육이란, 자유로운 민주주의 사회에서 개성을 발휘하며 살아가는 ‘시민’이 아닌 국가에 충성하는 ‘국민’을 만들어 내는 수단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공교육 제도가 지닌 그런 속성을 비판하는 움직임이 거세게 일어났습니다. 그에 따라 공교육이 추구해야 할 목표는 국가에 충성하는 국민에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합리성을 갖춘 시민 양성으로 변합니다. 하지만 공교육 제도가 너무나도 많은 이들을 한꺼번에 같은 단체에서 교육시키는 만큼, 민주주의 사회에서 필요한 다양성을 살리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공교육 제도가 지니고 있는 한계를 보완하는 차원에서 사교육이 지니는 필요성이 인정받게 되었고, 공교육과 사교육이 바람직하게 공존하는데 필요한 원칙이 자연스럽게 확립되었습니다.


위 두 문단에서 설명한 공교육과 사교육에 관한 논리를 토대대한민국을 해방 전이나 해방 후나 수구 친일 매국 세력이 변함없이 틀어쥐었다는 것은 무슨 논리를 들이대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일제 식민지 시대에는 공교육을 ‘우민 정책’, ‘황민화 정책’ 따위를 실현해 식민 지배 체제를 공고하게 하는 수단으로 활용했습니다. 그러면서 민족주의와 독립 정신을 함양하고자 힘썼던 사학을 극렬하게 탄압했습니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일제 식민지 시대에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랬으니, 일제에서 해방되고 난 뒤에는 분명히 정반대로 공교육이 쇠퇴하고 사교육이 번창하는 게 당연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공교육 제도가 지닌 그런 속성을 비판하는 움직임이 대한민국에서도 일어나는 게 당연한 것이었으며, 사교육은 일제 식민지 시대에 공헌한 바를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수구 친일 매국 세력은 그런 현실을 자기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악용했습니다.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공교육을 버리고 사교육으로 손을 뻗쳐, 일제 식민지 시대에서 벗어나면서 극도로 혼란스러운 공교육을 대신해 대한민국 교육을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 선구자로 행세하기 시작했습니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 그토록 이미지를 좋게 만든 것도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았습니다. 사람들은 일제 식민지 시대를 생각하면서 공교육이 지닌 문제점을 크게 비판했으며, 실제로 사교육이 대한민국 초기에는 교육에서 많은 부분을 담당하며 부족한 공교육 제도를 보충해 사람들이 지닌 교육열을 만족시켰습니다.


여기에서 알아두셔야 할 것은 수구 세력은 일제 식민지 시대에 추구한 ‘황민 교육’을 ‘국민 교육’으로 이름만 바꿔서, 공교육이 지닌 속성을 그대로 유지했다는 겁니다. 붕어빵 찍어내는 기계와 같은 공교육 제도를 거쳐 사회에 나온 사람들은 민주 시민과는 거리가 먼 국가에 충성하는 말 그대로 ‘국민’이었습니다. 수구 세력에게는 오로지 그런 국민들만이 필요했지,  다양성과 개성을 지니고 합리 비판 사고를 할 줄 아는 민주 시민 따위는 세상에 나타나지 말아야 했던 겁니다. 곧 ‘순화로서의 사회화’가 그들에게는 공교육이 반드시 추구해야 할 목표였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권력을 지닌 기득권층이 지금과 같이 왜 그렇게 기를 써서 일제고사를 밀어붙이고 수능 성적을 공개하면서까지 평준화 정책을 무너뜨리려고 하면서, 공교육을 살리려면 사교육을 본받아야 한다는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펼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공교육이 다양한 개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공교육으로써 민주 시민이 양성될 것이며, 그에 따라 그들이 왜곡한 사회 구조를 비판하고 개혁하려는 움직임 또한 갈수록 크고 격렬해질 겁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국민들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데 기본으로 갖춰야 할 지식을 갖추게 한다는 그럴듯한 명분 아래, 실제로는 사회를 살아가는데 그다지 필요하지도 않은 온갖 지식을 공교육 제도로써 사람들에게 주입합니다. 그리고 시험으로써 얼마나 사람들이 국가가 요구하는 지식을 제대로 암기했는지 평가합니다. 그 지식이 사람들에게 어떤 뜻이 있으며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또한 다양성이나 개성 따위만큼이나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양성이나 개성을 평가하는 것이 아닌 단순한 암기 사항 평가는 당연히 천편일률인 교육과정과 교육평가로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나온 점수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면 됩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교육에서 효율을 측정하려는 시도 자체가 너무나도 많은 문제를 지니는데도, 기득권층이 효율을 자신 있게 주장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그들이 만들어 놓은 체제 안에서 오로지 점수만으로 모든 것을 평가해 ‘효율’을 높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효율 때문에 교육이 지닌 본질 따위는 깡그리 무시됩니다.


사교육 현장이 바로 그런 미친 효율을 추구하는 곳입니다.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사교육 현장은 진정한 교육 이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으며 오로지 줄을 세우는데 필요한 성적(점수) 지상주의만이 판치는 곳입니다. 그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사교육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논리에 말려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교육을 본받아서 공교육이 혁신해야 한다는 논리 자체도 말이 안 된다는 사실 또한 깨달을 수 있습니다. 모두 교육이 추구해야 할 근본 목표를 깡그리 무시한 채 점수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고 들기 때문에, 애당초 그 바탕 위에서 전개되는 논리 자체가 진정한 교육과는 거리가 멀며 교육 문제를 논의하는데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들이 교육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체가 몰상식이 도달할 수 있는 극치이자 둘도 없는 촌극입니다.


게다가 그걸 미리 예측하고 준비했는지 아니면 그냥 대책 없이 유지만 하다가 세상 흐름이 바뀌니까 옳거니 하면서 써먹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수구 세력은 자기들이 원하는 국민 양성에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일 때는 공교육을 가만히 내버려 둡니다. 일제 잔재를 그대로 물려받은 대한민국 공교육 속에서 사람들은 공교육에 대한 적개심을 계속 키웠고, 천편일률로 아무 뜻 없는 지식만 죽어라 전달하는 공교육 자체에 회의를 느낍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학벌 사회 구조 정점에 올라가 있는 대학교에서는 세계로 뻗어나갈 인재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공교육만으로는 어림도 없는 본고사 문제를 출제하고, 입시 경쟁을 과열시켜 공교육과는 별도로 사교육(이 문단 기준으로 다섯 번째 앞에 있는 문단에서 제가 이야기한 사교육은 사립학교와 사설 학원을 모두 포함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는 사립학교는 이 글 주제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논의에서 제외하겠습니다. 그렇기에 여기서부터 이야기하는 사교육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사설 학원만 뜻합니다)을 받을 수밖에 없도록 만듭니다. 그만큼 사교육에 들어가는 돈은 많아질 수밖에 없으며, 결국 돈 있는 사람들만이 좋은 대학에 가서 사회 권력을 ‘확대 재생산’할 수 있도록 만듭니다.


이처럼 기득권층은 그동안 축적한 자본, 문화, 정치권력을 활용해 근본에서부터 문제가 있지만 자기들에게는 좋은 교육 제도를 온갖 비판을 무시하고 억지 주장을 반복하며 꾸준히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그들이 발악해도 그들이 저지른 온갖 만행 때문에 사회가 얼마나 썩었으며 교육도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 알 사람들은 결국 다 알았습니다. 결국 참지 못한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 민주화 항쟁이 터지면서, 썩어빠진 대한민국을 구석구석 하나도 빠짐없이 개혁하자는 목소리가 폭발합니다.


그러자 기득권층은 이를 그 당시에 추세로 여겨지던 신자유주의와 연결 지어 교묘하게 악용합니다. 교육 개혁을 신자유주의와 연관 지은 뒤에, 정작 사람들이 요구했던 국민을 양성하는 획일 공교육이 아닌 민주 시민을 양성하는 공교육으로 거듭나게 만들자는 개혁안을 무시해 버립니다. 국민을 양성하는 공교육 체제는 변화시키지 않은 채, 개혁을 자기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비틀어서 신자유주의 논리와 혼합해서 선전하기 시작한 겁니다. 여기에서부터 지금 대한민국 사람들이 겪고 있는 모든 위기 근원이 생깁니다. 앞에서도 강조했듯이 신자유주의가 강변한, 실제로 따져보면 말도 안 되며,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필요한 사람들에게 유리한 대로 왜곡된 온갖 원칙과 개념들은 개혁을 갈망하던 사람들에게 깊숙하게 파고들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6. 현 교원양성제도 & 평가제도는 신자유주의 실패작이다

 


여기에서 신자유주의로 무장한 수구 기득권층이 강조하는 그 빛깔 좋은 개살구인 ‘교육에서의 효율’을 다시 한 번 냉철하게 따져봅시다. 교육이 효율이 좋다는 말은, 교육 제도가 사람들이 지닌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 대한민국이 누리고 있는 번영을 유지하고 더 나아가 선진국으로 도약시킬 능력을 갖춘 인재들을 많이 양산한다는 뜻이라고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현실을 따져 보겠습니다. 대한민국 교육은 과연 사람들이 지닌 잠재력을 끌어내는데 필요한 모든 교육 방법을 동원하며 학생들이 지닌 개성을 존중합니까? 정말 수많은 학생들이 자기가 원하는 공부를 하면서 학교나 학원에 다니는 보람을 느낍니까? 대한민국 학생들은 높은 교육 효율 덕분에 적게 공부하면서도 많은 지식을 손쉽게 얻을 수 있습니까? 대한민국 교육 제도가 만들어 낸 수많은 사람들이 과연 그토록 개성과 창의력이 넘치는 뛰어난 인재들입니까?


바로 앞 문단에서 제가 던진 질문을 모두 긍정하는 답안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요즘 같은 상황 속에서는 그 사람들이 누구인지부터 한 번 따져볼 필요가 분명히 있습니다. 대한민국 교육 제도만큼 효율이 낮은 제도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효율을 수구 기득권층이 신자유주의 논리를 이용해 앞에서 설명한 대로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점수라는 기준 하나만으로 재단하려고 한다는 겁니다.


공교육이 지니는 국가에 충성하는 국민을 양성하는 기본 속성이 변하지 않았으니, 공교육이 지니고 있는 고질인 지식 주입과 암기를 중심으로 하는 교육 방법 또한 예전이나 지금이나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에 엉뚱한 곳으로 불똥이 튀었습니다. 교사들이 변해야 한다는 논리가 실제 정책에서도 매우 큰 힘을 얻기 시작한 겁니다. 근본에서부터 교육 자체가 왜곡되어 있는데도, 그 모든 책임을 교사들이 뒤집어쓰고 개혁이 이루어져야 하며 그것이야말로 공교육을 가장 빠르게 개혁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선전되기 시작한 겁니다. 안 그래도 일제 잔재를 그대로 물려받았을 뿐만 아니라 공무 특유 무사안일을 자랑하는 공무원(공교육 교사들도 당연히 여기에 들어갑니다)들을 보면서 부글부글 끓고 있던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솔깃한 논리는 있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수구 기득권층이 장악한 정부에서 교원평가제를 그토록 기를 쓰고 밀어붙이는 까닭 가운데 가장 분명한 것은 경쟁을 위한 경쟁을 촉발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교원평가제는 진정으로 국가 경쟁력을 키울 교육이 추구해야 할 민주 시민 양성이 아닌 국가에 충성하는 비판 의식 없는 국민을 양성하려는 방법 가운데 한 가지로 악용되려고 하고 있습니다. 학벌 사회를 유지하는데 방해가 되는 평준화 정책을 박살내고,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 사교육으로만 좋은 대학과 사회 지위를 보장하는 사회 체제를 굳건하게 만들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까지 끌고 가는 수단 가운데 하나가 되려 하고 있습니다.


좀 더 분명하게 설명하자면, 저항하는 사람들을 무너뜨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 내부에서 아무 뜻도 없는 경쟁을 촉발시키는 겁니다. 아무 뜻도 없는 경쟁은 시너지 효과가 아닌 끝없는 갈등만 낳고, 결국 그 안에서 사람들은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 채 체제 속에서 살아남는데 죽어라 힘쓰게 됩니다. 결국 뭔가 잘못된 것을 바꿔보는데 필요한 힘과 이성 따위를 모조리 쓸데없는 경쟁과 갈등에 쏟아 부어 버리는 겁니다. 지금까지 학생들을 옭아맨 점수라는 기준을 교사에게도 적용하겠다는 겁니다. 자기들 마음대로 정의한 신자유주의 효율을 강변하면서 학생과 교사를 모두 옭아매, 잘못된 교육 체제에 절대 대항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겁니다.


공교육 종사자들이 교원평가는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지금 그토록 사람들이 강조하는 교원평가제 또한 결국 그 얼토당토않은 신자유주의 논리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만큼,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개혁 효과를 제대로 거두지 못할 확률은 1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반대하는 겁니다. 그런데도 교사들이 무작정 철밥통을 수호하려고 추한 꼴 보여준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제발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근본에서부터 잘못된 교육 현장에서 실시될 교원평가제가 얼마나 많은 문제점이 있는지부터 제대로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이 글 앞부분에서 이야기한 현 교원양성체제 안에서 예비교사들이 겪는 비참한 현실 또한 학생들과 교사들이 시달릴 점수에 따른 천편일률 평가와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 논리에 따른 엄청난 비극이자 폐단입니다. 교육 현장에서는 전문가로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서 말도 안 되는 평가 방법으로 교사들을 힘들게 하면서, 교원양성체제는 진정한 교육 전문가를 양성하는 수단이 아닌 공교육 제도 안에서 줄 세우기와 살인 경쟁에 시달리는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임용고시를 통과하는데 목을 매는 소모성 경쟁만을 부추기는 기형으로 전락시켰습니다. 그렇기에 예비교사들은 이런 현실에 단호히 저항하고 참교사로 거듭나고자 목적사대 건설을 외쳤습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를 표방한 노무현 정권은 이를 일언지하에 거절하며 교육재정 7% 확보 공약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좌파 신자유주의자(?) 노무현도 그랬으니 골수 신자유주의자 이명박은 두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7. 미친 경쟁을 버리고 함께 저항하자

 


지금까지 계속 강조했듯이 겉보기에는 그럴싸하지만 뜯어보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는 효율이라는 허황된 논리를 들이대면서, 정부는 임용고시를 시행한 그 때부터 교사를 구조조정 대상으로 몰아넣고자 어떻게든지 핍박하기만 했을 뿐 제대로 지원해 준 적이 없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교사를 바라보는 세 가지 관점 가운데 성직자관만 들먹이면서 정작 전문가다운 대우는 전혀 해 주지 않았으며, 진정한 민주 정부를 외치면서 등장한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은 어이없게도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면서 교육에도 신자유주의 논리를 적용해 대한민국 공교육을 더욱 쇠퇴하게 만들었습니다. 사교육을 전면 금지시킨 전두환 대통령이 차라리 노무현 대통령보다 공교육은 더 많이 신경 썼다는 주장이 나올 지경이니, 이런 기가 막힌 일도 찾아보기 힘들 겁니다.


더욱 기가 막힌 사실은 공교육에 몸 바치고 있는 교사를 해고하는데 더욱 큰 보탬이 되었던 것은, 교직이 아닌 보통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하는 비난이었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저와 지금까지 격렬한 논쟁을 벌였던 수많은 사람들이 '철밥통', '무사안일' 같은 온갖 듣기 안 좋은 논리를 쏟아 부으면서 교사들이 오로지 개인 영달에만 관심이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특히 목적사대 논리를 제시하면 그야말로 꼬리에 불이 붙어 입에 게거품을 물고 달려드는 황소와 같이 맹렬하게 교사들을 헐뜯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이 자기에게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지난 수 십 년간 이 세상을 지배한 신자유주의 망령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더는 안정된 일자리가 없다는 의식에 사로잡힌 지 오래 된 그들은 자기 회사에서 아무리 부당한 대우를 강요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잘못되었기에 고쳐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자기들과 견주었을 때 좀 더 나아보이는 이들(특히 요즘에는 공무원들이 그 집중 포화 대상이 있고, 정부도 얼씨구나 좋다 하면서 그를 빌미로 민영화를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습니다)을 비난하다는 것이 훨씬 더 쉽다는 것을 깨닫고, 그들을 맹렬하게 비난합니다.


우리는 이미 신자유주의자들이 강요했던 온갖 말도 안 되는 원칙과 개념들은 이미 사람들에게 깊숙하게 파고들어 강력한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바로 앞 문단에서 이야기한 그런 현실은 그 영향력이 나타난 결과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것들을 면밀하게 비판하면서 세상을 바라보고 현실을 개혁할 방법을 찾아나서야 합니다. 교육 문제 또한 수구 기득권층이 강요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경쟁에 지쳐 그저 국가 앞에서 고분고분한 채로 먹고 살기에만 바쁜 국민을 생산하는 구조 자체를 개혁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경쟁만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시달리는 바람에, 제가 다니는 부산대학교 사범대에서는 임용고시 스트레스 때문에 꽃다운 학우 한 명이 자살하는 비극이 벌어졌습니다. 더는 이런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됩니다.


지금 모든 사회 문제는 너무나도 복잡하게 얽혀 있어 공통분모를 찾아내기 쉽지 않아 보이지만, 그나마 가장 분명한 것은 1990년대 후반부터 대한민국에 휘몰아친 신자유주의 광풍을 대한민국을 지배해 온 수구 기득권층이 이용했다는 겁니다. 그들이 강요한 말도 안 되는 원칙과 개념들은 수 십 년 동안 대한민국에 깊이 뿌리를 내려 사회 발전을 가로막았으며, 지금은 신자유주의 논리와 결합해 해괴한 괴물 관념을 만들어 대한민국을 근본에서부터 좀먹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가 불러일으킨 재앙이 당연한 것처럼 사람들이 생각하며 지금과 같은 소모성 경쟁에 휩싸여 잘못된 사회 구조를 통째로 개혁하려고 힘을 모으지 않는 이상, 대한민국은 절대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없습니다. 터무니없는 경쟁 논리에 휘말려 서로를 비난하지 말고, 사회 전체를 개혁하고자 힘을 모아야 합니다. 교사들과 예비교사들은 ‘교육이 백년지대계’라는 말 속에 담긴 교육 근본이념에 충실하고자, 줄 세우기 경쟁이 아닌 잠재력과 개성을 일깨워 자아실현을 돕는 참교육을 실현하는데 필요한 교원양성체제와 교육체제 개혁에 나서야 합니다.

 


8. 우리는 예비교사입니다

 


긴 글을 마무리하면서 뜬금없기는 하지만 어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얼마 전에 저는 졸업 사진을 찍었습니다. 2010년에 졸업하는 학우들이 멋지게 차려입고 와서, 화창한 봄날과 자기 앞에 펼쳐질 앞날을 꿈꾸면서 즐겼습니다. 우리 모두 서로 화장을 해 주고 다 같이 사진을 찍으면서 웃었습니다. 하지만 바늘구멍이라고 하는 임용고시를 통과하고자 경쟁해야 하는 이들이 나중에도 과연 그렇게 같이 웃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하기가 힘듭니다. 같이 사진을 찍는 이들은 자기가 들어가야 할 곳을 가로막는 경쟁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강요하는 대로 경쟁자가 되어 같은 과에서 같이 공부하고 나중에 교육 현장에서 만날 이들과 반목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함께 웃고 아이들을 위해 함께 고민할 교사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예비교사로서 대한민국 교육이 얼마나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는지를 통감하고, 우리가 거치고 있는 교원양성체제가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도 사회 전반 문제와 연관 지어서 이해하고자 힘쓸 것입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이 우리 어깨를 너무나도 무겁게 짓누르는 만큼, 교육자로서 전문성을 함양하고자 힘쓸 것입니다. 더는 우리 곁을 떠난 학우와 같은 동지가 생기지 않도록 교육 개혁에 적극으로 나설 것입니다.


우리는 예비교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