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wing..

배병두2009.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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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nowing..Knowing..Knowing..Knowing..Knowing..Knowing..Knowing..Knowing..Knowing.. 영화소개 Knowing..Knowing..Knowing..Knowing..Knowing..Knowing..Knowing..Knowing..Knowing.. 

노잉(2009, Knowing)

` 감독 알렉스 프로야스
` 배우 니콜라스 케이지  / 로즈 번 / 벤 멘델슨 
` 장르 블록버스터 / 액션 / 드라마
`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 시간 121 분
` 개봉 2009-04-15
` 국가 미국

 

Knowing.. Knowing..Knowing..Knowing..Knowing..Knowing..Knowing..Knowing.. 줄 거 리  Knowing..Knowing..Knowing..Knowing..Knowing..Knowing..Knowing..Knowing..Knowing..Knowing..

인류의 운명이 걸린 숫자의 비밀!!
베일이 벗겨지는 순간, 충격적인 미래가 펼쳐진다!!

1959년, 미국의 한 초등학교.
아이들이 그린 미래의 모습이 타임캡슐에 담긴다.

그로부터 50년 후인 2009년.
타임캡슐 속에서 알 수 없는 숫자들이 가득 쓰여진 종이를 발견한 캘럽은 그 종이를 MIT 교수인 아버지 테드(니콜라스 케이지 분)에게 전해준다. 종이에 적힌 숫자들이 지난 50년간 일어났던 재앙을 예고하는 숫자였음을 알게 된 테드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고를 막기 위해 필사적인 사투를 벌이기 시작하는데…

 

 

 

Knowing - 복음을 말하다..

Knowing : 예언자, 예언의 성취를 다루고 있는, 이 자체가 복음입니다.

 

등장인물

- 존(니콜라스 케이지) : 아내 앨더슨을 잃고,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알고 있으며, 자기 아들인 캐일럽을 매우 사랑하고 

                                아낀다. 언제나 둘이 함께 영원할 것을 기억하며, 아들과 함께 나누는 둘 만의 암호적 메세지는 자녀간의                                 관심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한다. 그는 결정론(창조론)을 믿지 않으며, 우연적인 삶을 지지하는 자이다.

                                수 많은 사람들 중, 결정론을 믿기 싫어하는 한 부류의 사람으로 보여진다.

 

- 캐일럽(벤 멘델슨) : 존의 아들이며, Knowing에서는 부름받은 자, 선택받은 자로 등장하며, 50년전 타임캠슐의 주인공의

                              한 예언자적 편지를  받음으로, 그의 삶을 일변도를 걷게 된다. 무언가의 다른 세계와 속삭이며,

                             마지막 종말(불의 심판)을 눈으로 목격한다.

                             다이애나의 딸인 애비와 함께 선택된, 부름받은 자와 나중에 함께 하늘로 올라간다.

                             캐일럽은 천국을 믿는 자로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준다.

 

- 다이애나(로즈 번) : 애비의 어머니이며, 타임캠슐 주인공의 딸이기도 하다. 그는 어머니의 예언이 맞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믿지 않았으며, 어머니를 정신병자 취급했다. 그러나 숫자적 의미가 하나씩 성취됨을 보고도, 여전히

                              예언을 외면하였으며, 끝까지 인간적 생각과 삶을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 딸 즉 가족을 매우 사랑하며,

                              마지막에 어머니가 자신이 어렸을 때 만들어준 작품이 자신이 외면했던 어머니방에 있음을 보고, 놀라며

                              부모님의 자식을 향한 마음과 사랑이 무엇인가를 다시한 번 보여주고 있다. 다이애나는 오늘날 성경이 진리인것은

                              알지만 여전히 인본주의와 함께 온전히 믿지 못하는 한 인간의 일상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 애비 : 다이애나의 딸이며, 존의 아들인 캐일럽과 함께 등장하는 주인공, 캐일럽과 함께 선택받은 자이며,

           따뜻하고 착하며, 솔직한 성격의 소유자.

 

 

- 존의 아버지 : 존의 아버지는 목사이며,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 걷는 신실한 목회자, 항상 아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음을

                      안타까워하지만, 존의 예언, 동굴로 피해야 한다는 인간의 생각보다, 모든 것, 인간의 생명, 자신의 마지막까지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며, 마지막 존과 자신의 딸, 가족과 함께 어디에도 피하지 않고, 묵묵히 그 자리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목회자로서의 모본과 그리스도인의 종말론, 하나님의 뜻에 따름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주는 인물.

 

- 존의 동생(여동생?) : 존을 아끼며, 존이 아내인 앨더슨을 잃고, 방황하는 모습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

                                존의 아들인 캐일럽을 생각하는 가족적인 사람이며, 믿음이 견고한, 존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인물.

                                존이 힘들 때, 곁에 있어주며 끝없는 위로와 보살핌으로 마지막까지 함께 존과 그의 가족과 마지막을

                                맞이하는데, 어려운 가운데서도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를 당신의 품안에 안으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인물.

 

 

 

 

말씀 오버랩...

 

Knowing..1. 시간과 일시, 표시되지 않는 것은 장소를 뜻한다.

               숫자가 일어나는 사건을 50년전에 예언한 것을 받아적어진대로 이루어짐을 보며..

 

              여기서 우리는 마치 구약의 예언이 신약에 이루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신약에서는 항상 구약에 예언했던

              예를 들어, 에스겔에서 예언했던...~ 을 성경에 응한대로 이루려 하심이라..이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모습이다.

              또한 50년전의 예언서를 받아적음은 마치 모세가 시내산에서 40일 40주야를 금식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적은 모습과

              오버랩되고 있다. 또한 그 예언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뜻하고 있다.

 

             왜냐하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주의 말씀은 영원함을 인함이다.

 

 

 

           2.50년전, 한 초등학생이 예언을 받아적음을 보며..

 

             여기서는 마치 내일을 경고하는 하나님의 메세지를 전하는 사사를 뜻하는 듯하다. 마치 엘리야나 엘리사..

             앞으로 이러한 일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언하셨듯이,

             미술시간, 그의 선생님은 그림을 그리지 않고, 숫자만 적는 것을 보고 기이하게 여긴다.

             세상은 알지 못하고,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것, 하나님의 뜻이 아닐까?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했다. 그리고 비를 내려 지구를 멸절시키겠다고 말이다.

             노아는 그 말씀에 순종하여 방주를 만든다. 그것도 120년동안, 산 꼭대기에서 말이다.

 

             세상의 사람들은 그 시간에도 시집가고, 장가가고, 술마시고, 인생 될대로 되는 것으로 살았다.

             지금 날이 이렇게 화창한데, 무슨 비가 오냐고? 정신나간 소리 하지 말라고? 말이다.

             어쩌면 오늘날의 세상도 이와같지 않은가? 지구종말? 불의심판? 그런거 이단이나 지껄이는 이야기 아니냐고?

             외계인이나 소설같은 꾸며낸 신화 아니냐고? 말이다.

 

             이처럼 성경을 통해 나아오는 진리의 예언은 이미 신약까지 말씀대로 이루어졌고, 이제 요한계시록의 이루어짐만 남아있다.

             이것은 단순히 이단적이거나 소설적 신화를 떠나 하나님의 말씀을 무오한 진리로 믿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경고에

             깊이 인식해야 하며, 그 경고를 따라 반드시 결정하고 돌이켜야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도 우리가 그 분을 떠나 다른 것을 사랑하고 섬길 때, 당신의 구원을 우리에게서 거두심을 인함이다.

             우리가 어느 때에까지 하나님의 목전에서 악을 행할 것인가..

 

 

           3. 존의 친구, 필(?)이 존이 발견한 쪽지의 예언성취 무시함을 보며..

 

 

             사실 그러하다. 세상은 하나님의 존재를 싫어한다. 그런것이 어디있느냐? 고 말이다.

             분명히 말씀을 따라 이루어졌지만,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사람들이 꾸며낸 이야기, 예수의 이야기는 사람이야기

 

             우리는 말씀의 능력을 경험한다. 우리는 말씀이 살아있음을 정말, 하나님께서 계시구나하는 것을 알게 될 때,

             다시 한번 그 분의 위대하심을 발견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세상에 말할 때, 세상은 믿지 않는다.

             마치 정신병자 취급한다. 너 병원가봐야 하는거 아니냐고? 지금 시대가 어느 때인데? 그런거 우연이라고 말이다.

 

             세상은 모든 것을 인연화, 우연화한다. 자기 살기도 바쁘고,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속에서 적응하느라 수고해도 모자랄망정

             이상한 예언 몇 개 맞았다고 그게 진리라고 막, 설치는 존을 보며 이해 못하는 것이다. 세상은 그렇다.

 

             혹시 당신은 어떠한가? 하나님의 약속, 이루어짐 단순히 성경적 지식이 아니라 참 진리임을 믿는가?

             이제까지도 하나님의 말씀이 무오했다면,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세상의 조롱과 세상의 비웃음에 동요하지 말라.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왜냐하면 복음은 세상이 알 수 없는 유일한 능력임을 인함이다.

 

 

              4. 존이 다이애나에게 끝까지 마지막 피할 길을 찾아 외쳤지만, 인간적 생각으로 동굴을 택할 때..

 

             존은 그래도, 피할 길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50년전 그 주인공이 긁었던 문짝을 떼어내 자신의 집으로 가져와

             그 흔적을 찾아가고 결국은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그 와중에 다이애나는 그것을 믿지 못하고, 지금 당장 멸망이 오는데

             빨리 땅 밑으로 피하자며 기다리다 아이들만 데리고 떠나가 버린다.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임을, 우리는 여기서 피할 길을 내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몸에서 난 자가 열방을 이끌어갈 다음세대의 씨임을 하나님께로서 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그 상황은 이미 늙었고, 사라도 경수가 지나 어려운 상황, 사라는 믿기보다 웃어버렸다.

             하나님께서 농담하신것처럼 받은 것이다. 그러면서 시간이 지나도 이루어지지 않음을 보고 인간적 생각으로

             종을 빌어 자신의 씨를 낳아버린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피할 길을 주신다. 당장은 보이지않는 거 같은데,

          지금은 마라인데 결국은 엘림을 주시는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적인 가능성을 우리가 얼마나 추구하는가? 지나친 조바심이 인간적 행동의 흐름으로 말미암아

             그 분의 피할 길마저도 보이지 않은 암울함을 나타낼 때가 많다.

 

             결국 다이애나는 인간적 선택으로 자기의 아이들을 찾아가다 사고를 당해 죽고 만다.

 

             이것이 인본주의의 결말이다. 내 생각과 내 경험에는 이것이 맞는 거 같고, 하나님말씀은 붕 뜬, 구름잡는 듯한..

             너무 신화같은 멀리있는 글자밖에 안 되는 것이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약속의 이루어짐도

             믿어야 한다. 믿지 못하고, 인간의 방법을 택할 때, 그것은 이미 피할 길을 떠나 또 다른 죽음의 길을 선택할 뿐이다.

 

             하나님, 끝까지 신뢰하라, 우리의 구원도 지금 당장 믿었다고만 아니라 그 분오시는 날까지 생명되신 예수님을 붙들고

            인내함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라 말씀하신다. 구원은 인내이다. 밥을 하려면 뜸을 기다려야 한다.

           

            기다림에 지쳐 사람의 길, 사람의 뜻을 구할 것인가?

            기억하라. 하나님의 길과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생각과 다르고 우리의 지혜를 능가하는 무한한 경이로움이시다.

 

            자신의 뜻을 끝없이 낮추고 하나님께 겸손하라.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끝없이 베푸시나니..

 

 

          5. 애비와 캐일럽이 부르심을 받아 하늘로 올라감을 보고..

 

 

            애비와 캐일럽은 검은 옷을 입은 자들에게 이끌려 하늘로 올라간다. 그 때 존과 마주치는데, 존은 함께갈 수 없다했다.

            거기는 선택받은자만 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처음에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이 올라가며 뒤에 날개가 보이고,

            함께 올라간다.

 

            이것을 보며, 여전히 선택받은 우리와 함께 하는 여호와의 사자를 경험할 수 있고, 역시나 인간은 천사보다

            아름다운 존재는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천사를 사람의 수종드는자, 하나님의 수종드는 자로 만드셨음을 볼 수 있다.

 

            천국은 선택받은 자의 것이다. 사도바울은 끝없이 서신서에서 외친다.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사도된 나 바울은..

            이것이 무엇인가? 왕되신 하나님께서 마패를 받은 것과 같다. 그리스도의 대사이다. 즉, 부름을 받은 자라는 것이다.

 

            12제자도 부름을 받았다. 마지막날에 양과 염소로 구분하시며 심판을 말씀하신다.

            결국, 무엇인가? 선택받은 자만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존은 결국 함께가지 못한다. 마치 노아의 방주 때에 노아가족들이 방주로 들어갈 때,

            세상의 사람들은 소리쳤다. 우리도 들어가게 해 달라고, 그러나 하나님은 노아가족 8명, 택한 자들만 구원하셨다.

 

 

 

            예수님이 누구신가? 구원자이시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그 분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1:21)

            자기 백성에 주목하라. 저가 자기 나라에 왔으나 자기 백성이 영접치 아니하고(요 1장 참조)

 

            중요한 것이다. 사도바울도 끝없이 외친다. 너희가 버리운 자가 아닌가 생각하라는 것이다.

            구원은 절대절명의 문제이다. 단순히 교회 다니고 안 다니고의 문제가 아니다.

 

            생명이 걸린 문제이다. 이 생명에 집중하라. 생명되신 예수님께 매여 있으라

 

            왜냐하면 아들이 있는 자에게 생명이 있고, 아들이 없는 자이게는 생명이 없다.(요5:12)

 

            마지막에 애비와 캐일럽은 새로운 곳에서 맞이한다.

            지구가 불로 심판되고 마치 새하늘과 새땅에서 거니는 것처럼, 중앙동산에 선악과로 보이는 나무가 서 있다.

            여기서 마지막 장면이다.

 

            그렇다. 선택받은 자에게는 새하늘과 새 땅이 있다. 그 날에 잠자던 성도들도 함께 일어난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말씀하신다. 세상에 있으나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다. 이것이 성도이다.

 

            하늘의 시민으로, 부름받은 자로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Knowing 은 말해 주고 있다.

 

            우리가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라.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