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랑, 그 슬픔에 관한 이야기

김종수2009.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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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ao Ta Che (腳踏車) - 주걸륜
초단편 멜로 소설

男 - 바람향이 달콤한 날

 

 

요란한 휴대폰 벨소리에 내 짧은 휴식은 산산이 조각나 버렸다. 요 며칠 계속되는 철야에 내 몸은 녹초가 되어 기절하기 직전에까지 몰려있다. 지금 난 KO직전의 그 몰골이다.

휴대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짜증섞인 목소리에 나에게 강한 펀치를 날린다. 자취방 주인 아주머니다. 내일까지 두 달치 방값을 안 내면 방을 빼라는 말에 내 몸은 바닥으로 꺼져들어가 먼지가 된다.

이런....두달 동안 하는 일이 안 풀려 돈을 받지 못했다. 이번 일주일의 철야모드로 곧 내 호주머니에 두둑한 돈 뭉치가 들어온다. 그럼 보아란 듯이 아주머니 면상에 돈을 던져주리라! 상상만으로도 웃음이 절로 나온다.

뱃속에서 밥을 달라는 신호가 들린다. 벌써 점심때구나...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질 못했으니...새벽에 같이 일하는 녀석들과 먹은 족발로 인해 강한 압박이 느껴져 아침을 걸렀는데 이제 위산이 역류하고 있다. 따뜻한 국물이 간절히 생각난다.

대충 잠바를 챙겨 입고 문을 연다. 두 녀석은 아직도 꿈나라다. 젊은것들이..체력이 저리 약해서..문을 열자 투명한 바람이 내 볼을 스치며 퍼져간다. 오늘따라 바람 향이 너무나 달콤하다. 그 날...그녀와 헤어지던 날의 바람처럼 너무나 달콤하다.

너무나 슬픈 그 순간 난 왜 바람에서 달콤한 향을 느꼈는지 모르겠다. 오늘따라 눈에 보이는 것들이 그 날을 회상하게 만든다. 그녀를 지우기 위해 몸서리쳤던 수없이 많은 시간들...

 

시간이 약이라며 곧 잊을 거라는 친구들의 위로처럼 난 점점 흐려지는 그녀의 기억들을 이제 아무런 감정도 없이 무의미하게 회상해 술안주로 삼곤 한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그 날은 죽고 싶고 금방이라도 죽어버릴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불행한 놈이라 생각했지만 그건 그때뿐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 아픔은 사라져 갔다.

그러고 보니 십년 전 오늘이 바로 그녀를 처음 본 날이었다. 그 날은 아마 눈이 내렸을 것이다. 내 기억 속엔 눈이 내렸던 걸로 기억된다. 아마도....

그녀는 내가 아르바이트하는 편의점에 뛰어들어와 따뜻한 캔 커피를 찾았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녀의 모습은 이 세상 그 어떤 누구 보다 아름다웠다. 내 눈엔 오직 그녀 한사람만 보였으니...내 귀에서 잔잔한 멜로디의 음악이 배경음악으로 깔렸고 그녀의 몸에선 광채가 났다. 그때 유치하게 난 왜 그런 상상을 하며 그녀를 멍하니 바라봤는지...

잔돈 500원을 거슬러 주면서도 얼마나 떨었는지..잘가라는 또 오라는 말도 못하고...그 후 그녀가 다시 나타나기를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는지...그녀가 편의점 앞을 지나갈 때마다 제발 들어오라고 얼마나 속으로 외쳤는지 모른다.

 

그런데 하늘은 날 버리지 않았다. 다음 해 난 복학을 했고 그녀와 난 한 반이 되었다. 이런 우연이...이건 분명 필연이라며 하늘이 선택한 사랑이라고 너무나 즐거워했었다.

그녀에게 줄 선물을 고르고 장미꽃을 한 아름 사 그녀가 있는 기숙사 앞에서 소리질러 그녀의 이름을 불러 밖으로 불러낸 후 난 무릎을 꿇고 그녀에게 꽃을 안겨주며 소리쳤다. 사랑한다고...사귀자고...

기숙사 창문을 열고 그 모습을 보던 아이들의 함성과 박수소리가 아직도 내 귓가에 메아리친다. 그때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나온 건지..지금은 절대 할 수 없을 것이다. 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그렇게 우리의 사랑은 시작되었다. 낮엔 학교 수업으로 밤에는 아르바이트로 바빠 많이 챙겨주지도 못했고 일요일에는 난 교회학교 교사로 그녀는 시골집으로 내려가 많은 데이트도 하지 못했었다.

1학기 기말시험이 끝나던 주, 토요일 밤에 본 심야영화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두 손 꼭 잡고 본 영화....그 영화의 제목도 그 영화의 내용도 기억나질 않는다. 난 그날 오직 그녀의 옆모습만 바라보고 있었으니...

영화를 보고 나와 학교 뒷산에 있는 전망대에 올라가 한 손에 폭죽을 들고 마치 아이들처럼 좋아했었던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날 폭죽소리에 시끄럽다는 민원이 들어가 경찰이 출동하고 나와 그녀는 놀라 도망치고...

그녀가 여름방학 때 어학 연수를 떠난 후 3개월 동안 난 정말 살아도 산 것이 아니었고 웃어도 웃는 것이 아닌 날들의 반복이었다. 전화 연락도 안되고...난 그녀를 생각하며 고등학생들이 쓰는 노트에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녀가 돌아올 때쯤 내가 쓴 편지는 노트 5권이 되어있었다.

뭐가 그리 할 말이 많다고 그리도 많이 쓴 건지..지금은 쓰라고 해도 도저히 못 쓸것이다. 그녀에게 그 노트를 안겨주자 그녀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었다.

그녀가 그 노트를 다 읽었는지 아님 중간에 포기를 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악필이었으니...아마 읽기가 매우 곤란했을 것이다.

12 24일 저녁 8시...나와 그녀의 마지막 약속 시간이었다. 난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7시 30분부터 미친놈처럼 자정까지 그 자리에 서서 기다렸다. 그리고 난 심한 독감에 걸려 병원에 입원까지 했다. 나도 첨 병신이지...

 

그 후로 단 한번도 그녀를 만난 적도 없었고 전화연락도 안됐다. 몇 번 편지를 보내봤지만 수취인불명이라고 돌아오는 편지...메일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학교에도 나타나지 않았고 그녀의 친구들 중에도 그녀의 행방을 아는 이는 없었다. 난 그녀가 없는 학교에서 쓸쓸히 졸업을 했고 몇 곳의 회사를 전전하다 지금은 프리랜서로 일을 하고 있다.

 

가끔 그래 아주 가끔 그녀가 생각나는 날이 있다.

이런 날....

바람의 향이 달콤한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