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지적해야 할 것은 12인연설이 제시하는 중생의 생사유전의 인과관계는 비과학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12인연학설의 몇 부분, 예를 들어 6입처로부터 촉,수,애,취 가 지속적으로 일어난다고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사람의 감각, 감정, 욕망, 행위의 산출과정을 나타내주며,생에서 노사에 이르는 과정 또한 생명체의 변화과정을 반영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총체적으로 볼 때 일종의 유심주의적 허구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주로 두 방면에서 드러난다. 하나는 12인연의 인과관계를 분석해볼 때, 무명을 인간의 생명이 부단히 이어져가게 하는 기점으로 삼고 식과 유를 내세로의 윤회전생의 원인으로 삼는 것은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필연적으로 영혼불멸설에 이르게 한다. 또 12인연설 중에서는 인식상의 무명이 가장 근본적이라는 것 외에 단편적으로 애욕이라는 나쁜 성질과 작용을 강조하고 있다.
이외에도 감각기관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향락의 추구와 성공의 추구라는 탐욕때문에 반드시 다시 태어나게 된다고 잘못 생각한다. 원시불교는 생명과 생명을 번식시키려는 욕구를 탐욕스럽게 갈구하는 것에 반대하고, 또 재물과 권세, 명예를 갈구하는 것도 반대한다. 당시의 고대인도의 있어서 이런 주장이 갖는 사회적 의미는 대단히 복잡하다. 그것은 착취자의 지칠 줄 모르는 탐욕과 노동자의 정상적 생활의 요구를 구분없이 탐욕이라고 통칭한 것이다. 그것은 탐욕을 일종의 사람들의 심리상태로 보는 것이며, 또한 이것을 중생윤회유전의 원인이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불교는 사람들에게 무명을 제거하고 탐애를 끊을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것을 그의 유심주의 인식론과 종교윤리이론으로 확립시켜 전개해 나가고 있다. 그래서 생과 사는 서로 의존관계에 있다 할지라도 생은 반드시 전화하여 사가 된다고 한다. 그러나 생이 사의 직접원인이라는 것을 총괄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었다. 서로의 의존관계라는 말은 인과관계라는 말과는 다르다. 사의 직접원인은 질병과 노쇠등이다.
12인연설의 또 하나의 근본적 잘못은 중생에게 두 번 이상의 생, 즉 여러번의 세상이 있다고 하는 신비적인 관념을 가르쳤다는 점이다. 12인연 중에는 앞의 두 인연 즉 무명과 식을 현재의 생이 있게 된 원인이라고 하고 이것을 다시 과거(전생에 지은 업이 불러들인 과에 소속시킨다. 중간의 8개 인연 즉 식에서 유까지는 현재의 존재과정에 대한 것인데, 그 중에서 식, 명색,6처,촉,수는 과거의 무명과 행이 일으킨 현재의 5과이고, 애,취,유는 현재의 3인이니 미래의 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다. 마지막의 두 인연인 생과 노사는 미래에 속한다. 이것은 이번 생에서의 생존에 대한 집착인 애,취,유로 말미암아 일어난 다음 생의 과이다. 12인연은 과거, 현재의 인과관계와 현재, 미래의 인과관계라는 이중구조를 넘어서지 않는다.
12인연설은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와 이중의 인과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삼세이중인과라 부른다. 이것은 소승불교의 주장이다. 후에 대승불교에서는 발전시켜 이세이중인과설을 제시했는데 이것은 12인연의 앞 10인연을 과거의 인, 나머지 두 인연을 과라 하거나 혹은 앞의 10인연을 현재의 인이라 하고, 뒤의 두 인연을 미래의 과라고 한 것이다. 이러한 이론들은 중생에게 모두 삼세가 있다는 것을 가르친 것인데, 이러한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점은 매우 분명하다.
불교의 12연기설은 완전한 과학적인 이론이 결코 아닙니다.
불교의 12인연설(12연기설)은 완전히 과학적인 이론인가?
마땅히 지적해야 할 것은 12인연설이 제시하는 중생의 생사유전의 인과관계는 비과학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12인연학설의 몇 부분, 예를 들어 6입처로부터 촉,수,애,취 가 지속적으로 일어난다고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사람의 감각, 감정, 욕망, 행위의 산출과정을 나타내주며,생에서 노사에 이르는 과정 또한 생명체의 변화과정을 반영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총체적으로 볼 때 일종의 유심주의적 허구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주로 두 방면에서 드러난다. 하나는 12인연의 인과관계를 분석해볼 때, 무명을 인간의 생명이 부단히 이어져가게 하는 기점으로 삼고 식과 유를 내세로의 윤회전생의 원인으로 삼는 것은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필연적으로 영혼불멸설에 이르게 한다. 또 12인연설 중에서는 인식상의 무명이 가장 근본적이라는 것 외에 단편적으로 애욕이라는 나쁜 성질과 작용을 강조하고 있다.
이외에도 감각기관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향락의 추구와 성공의 추구라는 탐욕때문에 반드시 다시 태어나게 된다고 잘못 생각한다. 원시불교는 생명과 생명을 번식시키려는 욕구를 탐욕스럽게 갈구하는 것에 반대하고, 또 재물과 권세, 명예를 갈구하는 것도 반대한다. 당시의 고대인도의 있어서 이런 주장이 갖는 사회적 의미는 대단히 복잡하다. 그것은 착취자의 지칠 줄 모르는 탐욕과 노동자의 정상적 생활의 요구를 구분없이 탐욕이라고 통칭한 것이다. 그것은 탐욕을 일종의 사람들의 심리상태로 보는 것이며, 또한 이것을 중생윤회유전의 원인이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불교는 사람들에게 무명을 제거하고 탐애를 끊을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것을 그의 유심주의 인식론과 종교윤리이론으로 확립시켜 전개해 나가고 있다. 그래서 생과 사는 서로 의존관계에 있다 할지라도 생은 반드시 전화하여 사가 된다고 한다. 그러나 생이 사의 직접원인이라는 것을 총괄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었다. 서로의 의존관계라는 말은 인과관계라는 말과는 다르다. 사의 직접원인은 질병과 노쇠등이다.
12인연설의 또 하나의 근본적 잘못은 중생에게 두 번 이상의 생, 즉 여러번의 세상이 있다고 하는 신비적인 관념을 가르쳤다는 점이다. 12인연 중에는 앞의 두 인연 즉 무명과 식을 현재의 생이 있게 된 원인이라고 하고 이것을 다시 과거(전생에 지은 업이 불러들인 과에 소속시킨다. 중간의 8개 인연 즉 식에서 유까지는 현재의 존재과정에 대한 것인데, 그 중에서 식, 명색,6처,촉,수는 과거의 무명과 행이 일으킨 현재의 5과이고, 애,취,유는 현재의 3인이니 미래의 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다. 마지막의 두 인연인 생과 노사는 미래에 속한다. 이것은 이번 생에서의 생존에 대한 집착인 애,취,유로 말미암아 일어난 다음 생의 과이다. 12인연은 과거, 현재의 인과관계와 현재, 미래의 인과관계라는 이중구조를 넘어서지 않는다.
12인연설은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와 이중의 인과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삼세이중인과라 부른다. 이것은 소승불교의 주장이다. 후에 대승불교에서는 발전시켜 이세이중인과설을 제시했는데 이것은 12인연의 앞 10인연을 과거의 인, 나머지 두 인연을 과라 하거나 혹은 앞의 10인연을 현재의 인이라 하고, 뒤의 두 인연을 미래의 과라고 한 것이다. 이러한 이론들은 중생에게 모두 삼세가 있다는 것을 가르친 것인데, 이러한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점은 매우 분명하다.
- 어느 불교학자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