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직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인간 체세포 복제를 통한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승인했다. 난자 이용 조건을
강화하고 생명윤리의 잣대를 엄격하게 하는 등 2가지 조건과 2가지 권고를 충족하면 연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로써 2006년 황우석 사태 이후 중단됐던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3년 만에 재개될 수 있는 물꼬가 터진 셈이다.
심사위는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강화되는 세계적 추세를 크게 고려한 흔적이 역력하다. 심사위는 지난해 차병원이 연구심사 요청을 한 이래 내부적으로 조건부 허용 방침을 정하고, 윤리적 기준과 허용 시기를 저울질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 출범 이후 연방정부의 연구지원 금지 규정이 풀리면서 과학 선진국에서 본격적인 줄기세포 연구경쟁이 시작된 것이 심사위의 허용 결정을 재촉한 것으로 보인다.
만능세포로 불리는 배아줄기세포에 대한 연구는 두 얼굴을 지녔다. 의학적으로는 희귀병과 난치병 치료에 획기적인 돌파구를 열어줄 것이란 기대가 높고, 국가적으로도 차세대 성장산업으로서 생명공학의 잠재력은 무한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가 하면 배아줄기세포 연구에는 생명 논쟁과 직결되는 난자와 배아가 실험에 이용될뿐더러 인간복제라는 끔찍한 가능성까지 포함되어 있어 윤리적 마찰이 불가피하다.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과학적이면서 동시에 윤리적인 문제인 것이다.
우리 사회는 황우석 신화의 붕괴로 과학적 진실과 생명윤리의 중요성에 대해 비싼 수업료를 낸 바 있다. 생명윤리에 규제 받지 않는 과학이 얼마나 허망하고 위험할 수 있는가를 절실하게 체험했다. 줄기세포 연구가 국가적 과제라면 생명윤리의 확립이야말로 첨단 생명공학의 시대에 최우선 국가적 과제라는 교훈을 얻었다. 줄기세포에 대한 종교계의 우려가 아니더라도, 모든 과학 연구는 윤리와 상식의 규제를 받지 않을 때 괴물이 될 개연성이 다분하다. 심사위의 이번 결정은 나름대로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세계적인 생명공학 붐에 편승해 생명윤리의 국가적 틀을 짜는 노력을 뒷전으로 밀쳐두는 잘못은 다시 없어야 할 것이다.
줄기세포 연구 앞서 생명윤리 틀 정비 시급하다
줄기세포 연구 앞서 생명윤리 틀 정비 시급하다
대통령 직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인간 체세포 복제를 통한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승인했다. 난자 이용 조건을
강화하고 생명윤리의 잣대를 엄격하게 하는 등 2가지 조건과 2가지 권고를 충족하면 연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로써 2006년 황우석 사태 이후 중단됐던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3년 만에 재개될 수 있는 물꼬가 터진 셈이다.
심사위는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강화되는 세계적 추세를 크게 고려한 흔적이 역력하다. 심사위는 지난해 차병원이 연구심사 요청을 한 이래 내부적으로 조건부 허용 방침을 정하고, 윤리적 기준과 허용 시기를 저울질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 출범 이후 연방정부의 연구지원 금지 규정이 풀리면서 과학 선진국에서 본격적인 줄기세포 연구경쟁이 시작된 것이 심사위의 허용 결정을 재촉한 것으로 보인다.
만능세포로 불리는 배아줄기세포에 대한 연구는 두 얼굴을 지녔다. 의학적으로는 희귀병과 난치병 치료에 획기적인 돌파구를 열어줄 것이란 기대가 높고, 국가적으로도 차세대 성장산업으로서 생명공학의 잠재력은 무한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가 하면 배아줄기세포 연구에는 생명 논쟁과 직결되는 난자와 배아가 실험에 이용될뿐더러 인간복제라는 끔찍한 가능성까지 포함되어 있어 윤리적 마찰이 불가피하다.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과학적이면서 동시에 윤리적인 문제인 것이다.
우리 사회는 황우석 신화의 붕괴로 과학적 진실과 생명윤리의 중요성에 대해 비싼 수업료를 낸 바 있다. 생명윤리에 규제 받지 않는 과학이 얼마나 허망하고 위험할 수 있는가를 절실하게 체험했다. 줄기세포 연구가 국가적 과제라면 생명윤리의 확립이야말로 첨단 생명공학의 시대에 최우선 국가적 과제라는 교훈을 얻었다. 줄기세포에 대한 종교계의 우려가 아니더라도, 모든 과학 연구는 윤리와 상식의 규제를 받지 않을 때 괴물이 될 개연성이 다분하다. 심사위의 이번 결정은 나름대로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세계적인 생명공학 붐에 편승해 생명윤리의 국가적 틀을 짜는 노력을 뒷전으로 밀쳐두는 잘못은 다시 없어야 할 것이다.
2009년 4월 30일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