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15일 드디어 한민족에게 해방이 찾아 왔다. 일본국 히로히토 천황이 미국 . 영국을 비롯한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 하면서 조국은 해방을 맞이하게 되었다.
- 미국 맥아더 원수가 일본의 항복 문서에 싸인을 하고 있다-
일제 식민 통치 35년간 갖은 핍박과 탄압을 받으면서도 꿋꿋이 견디고 견디었던 조선의 백성들은 이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 것이다. 이 어찌 기쁘지 않는 순간 이었던가?
- 해방이 되자 환호하는 조선의 인민들-
제주도 한라산에서 백두산까지 삼천리 방방곡곡에 "대한 독립 만세" 소리가 귀를 찛을 만큼 울려 퍼졌고, 태극기가 없는 인민들은 일장기를 인용하여 태극기를 만들어 거리에 쏟아져 나와 조선의 해방을 기뻐했다. 시인 심훈이 조국 독립이 오리다 꼭 믿고 썼던 '그 날이 오면' 이 만세 소리와 함께 사람들 사람들 입으로 불리워졌다. 그로부터 몇달이 지나고 일본에선 재일 동포들과 일본의 제국주의에 의해 강제로 이국 땅으로 끌려갔던 학도병과 징용자들 또한 조국으로 돌아 오는 귀국선을 타면서 이국에서의 조국 귀한을 애써 꿈꾸며 불렀던 '귀국선'을 부르며 조국 해방의 기쁨을 같이 누렸다.
그 날이 오면은
-심 훈- [1930]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삼각산(三角山)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육조 앞 넒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한강(漢江)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져도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주기만 할 양이면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종로(鐘路)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우런찬 소리를 한 번만이라도 듣게 되면,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恨)이 남으오리까. 그 자리에서 넘어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반쪽의 해방. 그 슬품과 애환을 담고 담아 조국으로 귀환하다..
국내 뿐 아니라 국외 이곳 저곳에서 망명 생활을 하며 조국 독립을 위헤 목숨 바쳐 싸워온 애국 지사들 또한 조국 해방의 기쁨을 누리고 있었다. 1910 일제에 강제 병합되고, 1919년 3 .1 운동 이후 상해 임시 정부를 중심으로 만주에서 미국 하와이에서 무장 독립투쟁과 독립 외교 운동을 펼쳤던 애국 지사들은 조국으로의 귀환을 서둘렀다. 그러나 이들에게 기쁨은 잠시 였다.
-개인 자격으로 들어 오는 상해 임시 정부 요인들과 김구 . 이승만의 환국 모습-
35년간 그 숱한 어려움과 고초를 겪으며 일본과의 독립 투쟁을 벌어온 그들 이었지만 제 2차 세계 대전에서 승리한 연합국은 이들에게 개인 자격으로 귀국 하라는 말 밖에 없었다. 전쟁의 정식 연합군의 일원이 아닌 것, 그리고 상해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연합군에 인정 받지 못하였다는 것, 이것이 그들이 개인 자격으로 귀국하라 내세운 이유이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었다. 정식 연합군 일원이 되지 못하고 온 민족의 기치를 담아 세운 상해 임시정부를 정통성을 문제삼아 개인 자격으로 귀국 하라니? 이 어찌 슬프지 않은가? 해방된 조국을 전쟁 승전국의 허락을 받고 와야 하니 말이다. 이 문제는 뒷날 남북 분단의 원이의 단초가 되는 문제인지 그 누가 알았으리요...!!
[1] 해방이 찾아 오다..1
해방 .. 조국 해방이 드디어 찾아 오다.^^
1945년 8월 15일 드디어 한민족에게 해방이 찾아 왔다. 일본국 히로히토 천황이 미국 . 영국을 비롯한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 하면서 조국은 해방을 맞이하게 되었다.
- 미국 맥아더 원수가 일본의 항복 문서에 싸인을 하고 있다-
일제 식민 통치 35년간 갖은 핍박과 탄압을 받으면서도 꿋꿋이 견디고 견디었던 조선의 백성들은 이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 것이다. 이 어찌 기쁘지 않는 순간 이었던가?
- 해방이 되자 환호하는 조선의 인민들-
제주도 한라산에서 백두산까지 삼천리 방방곡곡에 "대한 독립 만세" 소리가 귀를 찛을 만큼 울려 퍼졌고, 태극기가 없는 인민들은 일장기를 인용하여 태극기를 만들어 거리에 쏟아져 나와 조선의 해방을 기뻐했다. 시인 심훈이 조국 독립이 오리다 꼭 믿고 썼던 '그 날이 오면' 이 만세 소리와 함께 사람들 사람들 입으로 불리워졌다. 그로부터 몇달이 지나고 일본에선 재일 동포들과 일본의 제국주의에 의해 강제로 이국 땅으로 끌려갔던 학도병과 징용자들 또한 조국으로 돌아 오는 귀국선을 타면서 이국에서의 조국 귀한을 애써 꿈꾸며 불렀던 '귀국선'을 부르며 조국 해방의 기쁨을 같이 누렸다.
그 날이 오면은
-심 훈- [1930]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삼각산(三角山)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육조 앞 넒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한강(漢江)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져도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주기만 할 양이면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종로(鐘路)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우런찬 소리를 한 번만이라도 듣게 되면,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恨)이 남으오리까. 그 자리에서 넘어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반쪽의 해방. 그 슬품과 애환을 담고 담아 조국으로 귀환하다..
국내 뿐 아니라 국외 이곳 저곳에서 망명 생활을 하며 조국 독립을 위헤 목숨 바쳐 싸워온 애국 지사들 또한 조국 해방의 기쁨을 누리고 있었다. 1910 일제에 강제 병합되고, 1919년 3 .1 운동 이후 상해 임시 정부를 중심으로 만주에서 미국 하와이에서 무장 독립투쟁과 독립 외교 운동을 펼쳤던 애국 지사들은 조국으로의 귀환을 서둘렀다. 그러나 이들에게 기쁨은 잠시 였다.
-개인 자격으로 들어 오는 상해 임시 정부 요인들과 김구 . 이승만의 환국 모습-
35년간 그 숱한 어려움과 고초를 겪으며 일본과의 독립 투쟁을 벌어온 그들 이었지만 제 2차 세계 대전에서 승리한 연합국은 이들에게 개인 자격으로 귀국 하라는 말 밖에 없었다. 전쟁의 정식 연합군의 일원이 아닌 것, 그리고 상해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연합군에 인정 받지 못하였다는 것, 이것이 그들이 개인 자격으로 귀국하라 내세운 이유이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었다. 정식 연합군 일원이 되지 못하고 온 민족의 기치를 담아 세운 상해 임시정부를 정통성을 문제삼아 개인 자격으로 귀국 하라니? 이 어찌 슬프지 않은가? 해방된 조국을 전쟁 승전국의 허락을 받고 와야 하니 말이다. 이 문제는 뒷날 남북 분단의 원이의 단초가 되는 문제인지 그 누가 알았으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