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소환을 보며

기웅서2009.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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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치에서 진실이라는 단어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사전적 의미의 진실은 특정 사실의 정황에 대한 심적 증거가

물적 증거로써 증명되었을 때, 즉 모든 인과관계가 명확하여

그 사실에 대한 반론의 여지가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현재 대한민국 정치권 밖에 있는 사람들이

진실을 볼 수 있는 가능성은 몇 %나 될까.

 

정치권 내에서도 무수한 '진실'들이 난무한다.

미결된 사실들은 경제위기와 북한의 위협,

잇따른 자살 사건 등으로 인해 세인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사건 경중의 우선순위를 매기는 것은

국민들의 알 권리 내지는  호기심에 의해서가 아니라

언론에서 보여주느냐, 보여주지 않느냐에 달려있다.

국민들은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기사들 외에는

들여다 볼 만한 여유가 없다. 당장먹고 살기 바쁜 마당에

뉴스와 신문의 구구절절한 사건까지 챙길 여력이 있을리 만무하다.

 

포괄적 뇌물 수수 혐의로 어제 검찰에 소환된 노무현 전 대통령.

그의 소환은 지금까지의 모든 사실들을 뒤덮고

모든 뉴스의 헤드라인으로 등장했다.

4.29 재보궐 선거에서의 여당의 참패도,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의 정계 복귀도,

4대 강 정비에 대한 찬반 여론도,

장자연씨의 자살로 인해 불거진 연예인 성노예화 문제도,

이에 연루된 정계, 언론계 고위층에 대한 의혹도,

그 이전에 무수하게 언론을 오르내리던 사건들도

이 사건 하나에 묻히고 말았다.

 

역대 세 번째 전직 대통령 소환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이 셋 모두가 비자금 조성, 뇌물 수수 등의

권력형 비리에 연루되었다는 점에서

세간의 이목을 끌고도 남음이 있음은 자명하다.

 

하지만 문제는 이 사건이 단순한 희대의 이슈가 된 것이 아니다.

국민의 여론은 '친노'와 '반노' 세력으로 분열되고 있다.

봉하마을부터 대검찰청에 이르기까지 노랑색 풍선의 물결은

전직 대통령이자 뇌물수수 혐의 피의자 노무현을 연호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노무현 구속'을 부르짖는

반대 세력이 집결했다. 그들이 바라보는 것은 진실이 아니었다.

다만 진실 너머에 있는 한 인간에 대한 애정, 혹은 증오의 편에서

서로를 적대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들에게는 사건의 결말이 중요치 않다.

서로가 진실이라고 믿는, 아니 '믿고 싶은'것을

끝까지 '믿고 싶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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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한민국이 친노냐 반노냐를 운운할 때인가.

이 사회의 분열의 가닥이 도대체 몇 갈래까지 더 갈라져야 하는가.

이미 갈라질대로 갈라지고 서로를 향한 첨예한 대립의 골은

갈수록 깊어져만 가는 총체적인 난국에

북한은 장거리 탄도 미사일을 발사하며 사람들을 억류하고 있다.

일본은 해상 자위대의 역량을 강화시키며

미사일 격추에 대한 명분 하에 첨단 무기 확보에 주력하고 있으며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에서 여타 열강에 비해 우위를 점하기 위해

끊임없는 물밑작업을 펼치고 있다.

대한민국은 자살율 세계 1위의 오명을 감추기 위해

과거 조사자료를 밝히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한 현안들은 향후 국가의 존망을 위협하는 중차대한 것이다.

이들을 도외시한 채 한 인물을 두고 사람들이 대립하며

서로를 물어 뜯는 것은 국가 발전의 순기능으로 작용할까?

게다가 전 대통령을 현직 대통령과 비교하며 과거를 그리워하는

일부 국민들은 실현 가능성이 없는 '가능성 자체'를 두고

가타부타를 논하며 현실 자체를 부정하려 든다.

또 다른 국민들은 현 정부의 정책을 무조건 옹호하여

반대론자들을 현실감각이 결여된 자들이라고 조롱한다.

 

과연 진정으로 이 나라가 잘 되기를 바라는 이들은 몇이나 될까.

우리가 바라보기 원하는 진실이 아닌 진정한 진실을 보고

그것을 객관적으로 판단하여 시류에 편승하지 아니하고

진실에 대응하여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가치 판단의 기준조차 없이

'우리가 남이가'라는 식으로 감정적인 슬로건을 내세우며 

대중적 인지도와 환호에 묻어가려는

소위 '영혼 없는' 정치인이 아닌,

진정 냉철하게 시류를 판단하고 그에 대해 올바른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성숙한 정치문화가

이 땅에 도래하기를 간절히 소망할 따름이다. 또한,

이 세대가 노무현 폭풍에 휘말려 다시금 정치권력에 대한 회의와

그로 인한 국론 분열의 도미노 현상에 다시금 빠지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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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는 근심이요 밖으로는 환란을 당하는 것이 현 상황이다.

정치에 대한 불신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할 것이 없다.

경제는 지나친 대외의존도로 인해 자생능력을 상실했다.

종교는 종교성을 잃고 정치색, 경제색, 문화색으로 옷 입었다.

문화는 폭력, 노출, 파격, 막장으로 일관하고 있다.

서민들의 일상에서 소망을 찾아보기 힘든 상황에서

내가 아닌 타인으로부터 소망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치명적인 모순이요 착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모 국회의원의 말대로 사람이 희망 아니겠는가.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지지 못하는 곳에서 희망은 솟아나리라.

아니, 지금도 희망은 솟아나고 있으리라.

다만 진실은 보기 싫어하고 내가 보고싶어 하는 것만 보려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폐쇄적인 스스로의 시야에 갇혀

항상 어두운 세상의 단면만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비판하고

자신은 그들과 다르다며 침을 뱉기에

또 다른 세상이 나의 눈에 들어오지 않을 뿐.

나는 언제나 나보다 열등하고 저급한 부류의 인간들로

다른 사람을 매도하고 비하시켜야만

나 자신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상승할 것이라는

얼토당토 않고 근거도 없는 논리에 항상 빠져들 뿐.

 

내가 진정 나 되는 것은 나 자신이 세상의 모든 것을 판단하되

스스로는 세상에 판단당하지 아니할 때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 세상의 판단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때문에 나는 항상 미완성이며 완성지향형 혹은 완성진행형 존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건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통령 재임 시절, 그가 했던 말들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는 역대 어떤 대통령보다 탈권위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로 인해 사회의 거대 담론이 해체되고 권위가 실추되었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현 정권의 권력 중심형 정책들,

즉, 대화와 토론을 통한 검증절차 없이 선 발표 후 땜질 식의

'나를 따르라'는 식의 정책을 비난하는 사람들의 수는 더 많다.

적어도 노무현 정권에서는 말이 통한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현 정권은 말이 통하지 않는 정부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여전히 상당한 숫자의 지지세력으로부터 지지를 받는 것은

(물론 지지자의 대다수는 앞에서 밝혔듯이 진실이 아닌

자신이 믿고 싶어하는 것을 믿는 사람들이지만)

적어도 그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모든 것을 이끄는

권력독식형 지도자가 아닌,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최선의 방향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노력을 했던 지도자였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그간 정책 결정 과정에서 소외당하고 무시당했던 세력들이

사회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고 그로 인해

다른 분야는 몰라도 인권 신장과 여론 표현의 자유만큼은

국민들이 누릴 수 있지 않았나 조심스럽게 평가해본다.

상대적으로 비슷한 혐의로 법의 심판을 받았던

노태우, 전두환 전 대통령은 국민들의 절대적인 비난만 받은 것을

기억해본다. 지금도 그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이룬 업적을 찬양하기 이전에

그들의 절대군주적 태도에 치를 떨며

독재자, 군사정권이라는 수식어를 먼저 떠올린다.

 

역사는 반복되는 현상의 연속이라는 명제가 진실이라면,

향후 이명박 정권도 법과 국민의 심판을 받을 날이 올지 모른다.

그 때, 현 정권의 소통능력 부재와 권력독식형 정책 추진이

어떠한 모양의 독이 되어 자기 자신을 찌를지 모른다.

 

적어도 '노빠는 답이 없다'는 비난을 받는 지지자들 덕분에라도

피의자 신분이 외롭고 괴롭지만은 않은 전직 대통령이 될 것인가,

아니면 백이면 백 모두가 비난하며 잘됐다고 손가락질하는

철저히 외롭고 괴로운 전직 범죄자가 될 것인가는

전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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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민은 우매하지 않다.

다만 우매한 몇몇이 있을 뿐이다.

우매한 몇몇의 선동에 부화뇌동하는 세력들이 있을 뿐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부지런하며 영민하다.

세계가 이 사실을 인정한다.

다만 보고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는 말이 있듯이,

윗물이 맑지 못하여 아랫물이 보고 배울 것이 없을 뿐이다.

윗물을 맑히는 것은 그보다 위에 있는 물이다.

 

국민은 국가를 이루는 3요소다.

영토, 국민, 주권. 이 3요소에 정치인은 포함되어있지 않다.

정치인은 국민이지 국민의 위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

때문에 국민은 정치인을 욕하기 전에

정치인의 위에 있는 국민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나는 과연 청렴결백한 삶을 살아가는가.

 

지극히 사소한 것들, 예를 들면

교통법규를 준수한다던가,

음주운전을 하지 않는다던가,

상거래에 있어 눈속임을 하지 않았는가,

기초질서 준수를 위해 노력하는가,

국민의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는가 등등.

만약 국민의 의무에 태만한 국민이 정치인을 욕한다면

그것은 국민이 국민 스스로를 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우리보다 직위가 높은 국민에게

높은 수준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적 고위층의 도의적 책임의식)

를 강요하는 동시에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다.

도덕적 청렴성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것일진대,

인간의 심리란 것이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하기 마련인지라,

특히 나보다 뛰어나다고 판단되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엄격하고

높은 수준의 도덕적 청렴을 강요하는지라,

우리는 나의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에 티를 빼라고

고래고래 소리지르기 일쑤다.

그러면서 정작 자신인 자신의 위치에서 마땅히 지켜야 할

사회적 도덕적 책임을 도외시한 채 무조건적인 비난만 일삼는

무지몽매한 세력도 적지 않다.

그들은 어떤 특별한 면책특권이 있어

자신에게도 적용하지 못할 멍에를 다른 사람에게 지우려 하는가.

우리는 사람의 말로써 사람을 판단하기 이전에

행동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성숙한 잣대를 가질 필요가 있다.

 

나는 적어도 한 가정의 자녀일 수 있고, 학생일 수 있고,

부모일 수 있고 가장일 수 있다. 회사의 직원일 수 있고

지도자일 수 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적어도 하나 이상의 사회적 책임을 지고 산다.

이러한 책임의식에 충실한 사회는 적어도

혈연이나 지연이나 학연에 얽매어 책임감 없는 행동도 눈감아주는

무책임한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책임을 도외시한 채

다른 사람의 무책임만을 비난하는,

자기 옷에 묻은 그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이 사회가 당면한 '진실을 보지 않으려는 문제'는

책임감 없는 개인이 책임지지 못할 상황에 처했을 때

그것을 어떻게 해서든 책임지려는 것이 아니라

거짓과 은닉과 은휘를 일삼는데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있는 것도 없는 것이 되고 없는 것도 있는 것이 된다.

 

이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그리고 국민 개개인이 지향해야 할 방향은

자신의 맡은 본분에 최선을 다하는 동시에 책임을 분명히 지는

책임의식과 그에서 비롯된 정직이 아닐까 한다.

 

거짓은 의혹을 낳고 그 의혹을 제거하기 위한

또 다른 거짓을 낳는다.

거짓으로 난무한 사회.

어떠한 진실도 똑바로 보지 않고

한 번, 두 번, 세 번, 그 이상 걸러 보고 의심해보는 사회.

대한민국이 신뢰할 수 없는 나라가 되는 것이

노무현 전 대통령 사건을 통해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또 다른 경종이 아닐까.

 

모 영화의 강렬한 대사 한 마디 밖에는 떠오르는 것이 없다.

 

"너나 잘하세요."